소설리스트

밀푸색마-114화 (114/383)

밀푸색마 EP.114 세 달 주겠네 (1)

양하정을 보내고, 나는 내 처소에 누워서 생각에 잠겼다.

이 세상에 떨어진지 벌써 9개월 정도가 지났다.

그동안 무공도 많이 키웠고, 여자들도 열심히 따먹었다.

솔직히 많다. 너무 많이 따먹었다.

더 문제는 앞으로도 따먹고 싶은 여자들이 남아있다는 거다. 더 늘어날지도 모르고.

'돈이 필요해...'

돈과 세력은 나눌 수가 없다. 결국 세력이 있어야 돈을 지킬 수 있고 돈이 있어야 세력이 유지된다.

대체역사물처럼 뭔가를 해보고 싶지만, 잘 될지도 알 수 없고 대박을 치려면 종잣돈도 있어야한다.

'무엇보다 주객이 전도될 위험이 크다는 거지.'

사부가 열어젖힌 대밀프시대. 일찍부터 결혼한 무림 여협들은 이제 슬슬 자식들이 성년에 도달할 나이일터.

자녀를 키워야한다는 책임감에서 해방되는 이 시기에 열심히 따먹어야 밀프로서 가장 아름다울 시기의 여자들을 상대적으로 쉽게 수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차라리 몇 년만 더 일찍 왔으면 '아아, 이것은 XX라는 것이다'를 연발하면서 일확천금 쌉가능인데...

'이대로 강호 곳곳에 여자들이 흩어져있으면 애나 키우다가 내가 오면 다리 벌리라고 하게 되는 개새끼가 된다고!'

몇 년 뒤쯤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나를 보자마자 '아저씨, 누구야?'를 시전하는 장면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뒤통수가 얼얼하다.

'안 돼! 그럴 수는 없어!'

가장 좋은 건 인력, 자금 모두 빵빵한 곳에 적당한 아이디어를 뿌려서 로열티 성격의 보상을 받고 내 재산을 형성하는 거다.

하지만 마땅한 곳이 당가밖에 없다. 팽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당분간 다른 일로 바쁠 것 같고...

'근데 짜증나.'

당가에 좋은 일을 하면 결과적으로 당조명 좋은 일이 된다. 어쩌면 또 콧대를 세우면서 팽연화를 홀대하려고 할지도 모르지.

"어디 없나, 좋은 투자자가..."

탁탁탁탁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바깥이 소란스럽다. 도를 든 상태로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는 사람들.

'무슨 일 났나?'

바깥으로 나가서 슬금슬금 인파를 따라가보니, 팽월이 급하게 제자들을 불러모아서 세가를 나서려던 참이었다.

"오, 강 아우!"

초조한 표정의 팽월의 얼굴이 날 보더니 활짝 펴졌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네.]

팽무도와 양하정을 따라갔던 일대제자 하나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돌아오긴 돌아왔는데 뭐 하나 제대로 전달도 하지 못하고 쓰러져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큰일 아닙니까? 빨리 가봐야...]

[그건 그런데...]

상대가 관부다. 즉 정부다. 혹시나 쳐맞고 있더라도 팽가가 반격을 해버리면 거의 무조건 반역이다.

팽무도는 몰라도, 소가주에 불과한 팽월이 치러가자고 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크다, 그 말이다.

"소협, 미안하지만 이 일은 본가의 일이오, 외인은 참견하지 말아주면 좋겠구려."

웬 중년 남자가 나와 팽월이 눈을 마주치는 것을 보고 사정을 짐작했는지 끼어들었다.

몇몇 사람이 가면 안 된다고 버티고 있던 모양이다. 가주도 아닌 팽월이 관부에 적대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할 수는 없다고.

이 상황에 니 일 내 일 가르는 좆같은 행태에 짜증이 치미는 것을 참으며 나는 입을 열었다.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선 근처에 간 다음..."

"아니, 그럼 소협이 책임질 수 있소? 만약 그마저도 관에 대한 반발로 해석된다면, 어쩌시겠소?"

"대협, 쫄았으면 쫄았다고 하셔도 됩니다."

내 급발진에 중년인은 당황한듯 입을 뻐끔거렸다.

하지만 꼴에 성질이 올라오는지 얼굴이 시뻘개져서 도병에 손을 얹으면서 날 위협하기 시작했다.

"지금 말 다했소? 나는 세가의 미래를 생각해서..."

"아, 그렇군요. 세가의 미래를 위해서 가주도 버릴 수 있는 거고, 제자들도 버릴 수 있는 거죠. 전 다 이해합니다."

내 비아냥에 중년인은 도병을 손으로 꽉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정말로 화를 내고 싶은 건 나다. 어차피 나 혼자 가도 위기상황을 뒤집지 못할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다면, 이미 먼저 갔을텐데.

그래도 저 뒤에서 팽가의 제자들이 웅성대는 소리를 들어보니 내가 한마디 한 덕분에 여론이 뒤집히긴 한 것 같다.

"강 소협의 말대로 합시다. 당숙께서는 노여움을 푸시고, 우선 가시죠."

[고맙네, 강 아우.]

시뻘개지다못해 검게까지 보이는 얼굴의 중년인에게 대신 사과한다는듯 고개를 꾸벅거리는 얼굴과는 달리, 팽월의 전음을 들어보면 속이 시원한듯 했다.

팽가의 제자를 인솔하는 틈에 껴서, 나도 안찰사사를 향해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일이 있더라도 잘 버티고 있기를.

나는 양하정에게 좀 더 강하게 경고할 것을 잘못했다는 생각을 억지로 머릿속에서 내쫓았다.

이런 생각을 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도착하고 일 다 끝난 다음에 후회해도 늦지 않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조금만 더 빨리 가자! 이 팽가 느림보 개새끼들아!

마교의 소교주, 영호경은 상대의 도를 흘려냈다. 마치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도명은 오호단문도법만의 특징.

그리고 그 정점에 있는 상대의 도는 역시 산악이 내려앉는 것처럼 무거웠다.

그것을 피해 훌쩍 물러난 영호경을 향해 도의 주인, 팽무도가 입을 열었다.

"강호에 이만한 검술을 가진 여고수가 있다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마교에서 왔는가?"

게다가 종종 보이는 여유까지.

"왜 마교라고 생각하지?"

"마교밖에 없지, 상리에 어긋나는 검법, 그러면서도 정교하고 안정적인 검로... 하지만 마기가 짙게 풍기니..."

팽무도는 폭발적인 움직임으로 접근해오지만, 그 보법이 단발성이라는 것은 이미 간파했다.

그 한 걸음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은 다시 거북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팽무도는 여전히 여유가 있어보였다.

"검패 그 늙은이도 아니고, 그 밑에 여제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교주의 딸이겠지. 아니 그런가?"

"...대답하지 않겠어."

영호경은 지금 이 상황이 매우 불만스러웠다. 분명 그녀는 통제를 벗어난 일부 교도들을 벌하기 위해 하북으로 왔다.

교도들이 잠입해있다는 거처를 찾아왔는데, 갑자기 교도들이 일을 벌였다며 팽가의 제자들과 칼부림을 벌이게 된 이 상황.

'이장로...!'

그가 정파무림과의 전면전을 입 아프게 주장해온 것은 안다. 그녀 역시 어느 정도 그 의견에 동조해왔으니까.

하지만 교주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면전에서 그 명령을 철회해달라고 칼을 물고 간언할지언정, 교주의 허락없이 일을 벌이다니.

"산공독을 먹인 것은 내 본의가 아니야. 그건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래."

"하, 이 따위가 내게 무슨 큰 족쇄가 된다고 믿는가보군."

자신감있는 태도와는 달리, 충분히 족쇄가 되고 있었다. 아직 부족한 실력의 영호경이 팽무도를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큰 증거.

본래 산공독을 먹으면 반 각이 되지 않아 내공을 다룰 수 없게 되어야하지만, 팽무도는 이미 반 시진 가깝게 초절정고수로서의 무위를 뽐내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뭔가 조치가 되어있는 것은 분명하더라도 그 위력은 시시각각 줄어만 가고 있었다.

'언젠가는 실력으로 이길 수 있을텐데...'

이대로 그녀가 완전히 힘으로 압도할 수 있을 때까지만 착실하게 버티면, 영호경은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이 자를 죽여야되나?'

지금 그녀가 팽무도와 맞서고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이 자를 풀어놓으면, 이 자가 이끄는 팽가의 제자들이 명교도들을 모조리 죽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죄를 지은 교도들이라도 명교 내에서 처리를 해야 옳지, 이 자의 손에 죽게 둘 수는 없었다.

관인으로 위장하고 있기는 했지만, 귀식대법으로 감추고 있던 마기를 풀어놓은 이상 성주에게 탄원하는 것만으로도 반역의 누명은 쉽게 피해갈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대규모의 충돌이 벌어진 이상, 상대도 응분의 보복을 하려고 들 것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이 자를 살려두면, 정파무림과의 충돌에서 귀찮은 적이 하나 늘어난다. 하지만 죽이면, 혹시나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충돌을 앞당길 수 있어.'

강윤을 만나기 이전의 그녀였다면, 두말않고 이 자를 죽였을 것이었다.

설령 그로 인해 자신이 소교주의 지위를 박탈당한다고 하더라도 감수할 수 있었다.

정사대전은 벌어질 것이고, 전력에서 앞서는 마교와 그 휘하 사파들의 힘으로 명교천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혈마와 이어지는 끈을 쥔 지금은 달랐다.

좀 더 안정적으로, 교도들의 희생을 겪지 않고서도 명교천하를 이룩할 수 있는데 어째서 급하게 충돌을 일으킨다는 말인가?

혈마가 명교와 함께 해준다면, 그리고 정파의 핵심고수들을 격파해준다면 일반교도들이 피를 흘릴 일도 최소화된다.

'문제는 내가 여기서 멈춘다고 해도, 정파 쪽에서 가만히 있지 않는다면 허사다.'

일격필살의 기운을 담은 도를 휘두르는 이 자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고 해도 믿을까?

믿는다고 해도 문제다. 결국 명교가 중원무림에 손을 뻗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얻은 정파무림은 전력을 모아 맞서려고 들 것이 분명했다.

'이장로...!'

어디로 굴러도 외통수다.

이대로 말없이 방치해두고 간다고 해도 팽무도는 따라붙거나, 내력을 완전히 잃을 때까지 소모되어 교도들에게 살해당할 것이 분명했다.

영호경이 이장로에게 따져물어도, 일부 교도들의 일탈이 이런 큰일로 번질 줄은 몰랐다고 지껄이겠지.

그리고 결국, 정사대전은 벌어진다. 이장로의 바람대로.

'내 반드시 가만두지 않겠다.'

이장로에 대한 독심을 굳히는 한편, 그녀는 검에 실린 내기를 배가시켰다.

오늘 이 곳에서, 오절은 사절로 그 숫자가 줄어든다.

이장로, 황두명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두 젊은이를 바라보며 이채어린 시선을 보냈다.

"허어, 관부에서 이런 소란을 피우다니. 그대들은 대체 누군가?"

말장난이었다. 강렬한 도문의 내공이 피어오르는 저 청년이 아니더라도, 진한 마기는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을 메우고 있었으니까.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의 굉룡, 팽월과는 달리 손룡, 강윤은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이죽거렸다.

"귀교는 나랏일에 관심이 참 많은가봅니다. 무려 1개 성의 안찰사사를 마교도로 채워놓다니, 언제부터 마교가 이런 애국집단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장로는 그의 흔들리는 두 눈을 보고 감정 상태를 손에 잡힐듯이 느낄 수 있었다.

끓어오르는 살의가, 얄팍한 얼음장 같은 이성으로 간신히 제어되고 있는 상태.

'팽가와 이 정도로 연이 깊었던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고수, 사문이 어딘지도 알 수 없으나 심후한 내공을 자랑하며 구룡의 일인으로 이름을 알린 신진.

팽월과 제법 교분을 쌓았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의 반응은 이상했다.

"자네는, 손룡이로군? 자네가 관여할 일이 아닌듯한데, 웬만하면 물러나는 것이..."

"어르신, 어르신 정도 나이가 되었으면 편히 관 속에서 쉬시지 왜 이리 번잡스러운 곳에 계십니까? 아, 혹시 관뚜껑을 덮어주실 자녀분이 안 계십니까?"

"뭐라...?"

여전히 능글맞은 태도를 유지한채 강윤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우연히도 이장로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렸다.

머리에 피가 끓는 것 같은 노여움을 억지로 가라앉히면서, 이장로는 차가운 이성을 불러일으켰다.

"그래, 둘이 덤비면 잘 될 수도 있지. 어디 한 번 덤벼보게."

"..."

"아, 거기 누운 계집만큼만, 죽지 않게 손봐줄테니 안심하고."

이장로는 강윤의 내력이 완전히 개방되어 풍겨나오는 청량한 기운에 눈살을 찌푸리며, 왼손에 역수로 단검을 쥐고 기수식을 취했다.

두 사내의 뒤에 쓰러진채 팽가 제자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양하정이 팽월만이 아니라 강윤에게도 역린일 줄은 짐작도 하지 못한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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