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106 와, 이런 짓을 한다고? (1)
하남의 어느 객잔.
검을 찬 남자들에게 보호받는, 얼핏 보아도 심상치 않아보이는 귀부인이 앉아서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들의 모습에 겁을 먹고 태반이 주문을 하기도 전에 나가버리는데, 객잔 주인은 그들을 썩 내쫓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도 없어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다음에 문이 열리면 그 손님은 나갈까, 앉을까를 생각하던 주인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문을 열어젖힌 노인이, 남자들의 모습에도 아랑곳않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어서 오십...!"
펴졌던 주인의 얼굴이 다시 찌푸려졌다. 노인은 귀부인에게 인사를 건네더니 맞은편에 앉은 것이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 주인은 신경을 끊어버렸지만, 자세히 들어보았다면 그들의 대화가 바깥으로 새어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 이 바깥으로 우리의 대화가 새어나갈 일은 없네."
"강기막을 이렇게 다룰 수 있게 되시다니... 모르는 사이에 한 단계 더 발전하셨군요."
"발전은 무슨... 잔재주가 늘었을 뿐이야."
빈 찻잔에 차를 따라주며, 여인, 영호경은 입을 열었다.
"그래, 이장로,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온 것인가?"
"후우..."
노인, 마교의 이장로는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소교주께서도 아시겠지만, 교주께서는 정파와 무의미한 충돌을 엄히 금하고 계십니다."
"그렇지."
지금까지는 영호경으로서도 굉장히 불만스럽게 생각하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하북에 심어놓은 자들 중에 일부가, 그 방침에 불만을 품고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듯합니다."
"뭐?"
영호경이 쌍심지를 켜고 되물었다.
명교도에게 있어서 교주란 하늘, 설령 그 뜻에 불만이 있더라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정 불만이라면 정면에서 도전하여 그 뜻을 꺾는 것이 올바른 일일진대...
"멀리서 내리는 명령으로는 그 자들이 말을 듣지 않을 것 같더군요. 제가 직접 통제하려는데 마침 소교주께서 하남에 계시니 죄송하지만..."
"아니, 잘 와주었네. 그런 자들은 내 손으로 처단해야하니까."
명교는 상명하복.
교주의 뜻에 따르지 않는 교도라는 사실 자체가 죽어도 할 말이 없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교를 나가거나, 교주에게 도전을 해서 이기지 않는 한,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마침 이 곳에서도 더 볼 것은 없었으니, 기꺼이 동행하겠네."
"감사드립니다, 소교주."
남의 시선을 의식한 이장로는 고개를 숙이지는 않았지만,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사람좋은 미소가 걸린 주름진 얼굴 너머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누구도 모를 일이었지만.
역시 뭔가 이상하다.
어젯밤에도 뭔가 기분좋은 느낌을 받았는데, 도통 기억은 없는 것이다.
뭔가 기분좋은 향이 났던 기억은 분명히 있는데, 시비들에게 물어보니 딱히 그런 것을 둔 적은 없다고.
'그리고 또 하나.'
별로 관심도 없던 부사라는 중년인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묘하게 뒤통수가 간지럽던 그 느낌이 하루가 지나도록 사라지질 않는 것이다.
팽월에게 들은 설명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결국 내 위화감을 설명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안찰사사라는 곳의 부서의 장이라고 하니까, 지방경찰청 고위간부 정도 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관심끊고 싶은데, 자꾸 관심이 가네.'
팽월의 설명으로는 분명히 양하정의 친정 쪽에서 들어온 이야기라고 하니, 양하정이 더 잘 알고 있을까?
양하정이랑 티타임을 갖는 것 자체는 좋은데, 괜히 껄끄러운 화제를 들고 갔다가 날 더 피하게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에이, 일단 만나러는 가보자.
"죄송합니다, 소협. 마님께서는 가주님과 함께 출타하셨습니다."
실화냐...
나는 미안하다는 듯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시비에게 뭐라 말을 하지도 못하고 가모의 처소를 물러나왔다.
대충 검성과 절대 마주칠 일이 없는 시일을 나는 1주일 정도로 잡았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뭔가 협박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1주일 안에 남편 있는 여자를 따먹기는 어려운 노릇.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밑작업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고, 또 그게 맞지만...'
어째 마음이 급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머무는 날짜를 마냥 늘릴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아무튼 당혜원의 출산 일자는 하루가 다르게 가까워져오는 것이다.
언소영이야 애초에 남들 눈에 띌 수는 없으니 못 간다고 쳐도, 당혜원이 출산할 때는 꼭 곁에 있어주고 있었다.
예정일까지는 제법 남아있지만 조산의 가능성도 있으니...
"강 아우, 여기서 뭐하는가?"
팽월이었다. 가모의 처소 앞에서 어슬렁대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아, 예. 다른게 아니라 팽 부인을 뵐까 해서 와봤는데, 부재중이시더군요."
설마 꼴릿한 밀프라서 작업치고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팽월은 납득하는 기색이었다.
"아마 아버지와 출타하셨겠지. 군부에 계신 외숙부를 찾는다고 하셨던 것 같네."
"시비도 가주와 같이 나가셨을 거라고 하더군요."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어머니를 찾아뵌 거라면,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거나 구경할텐가?"
"...그거 제가 봐도 되는 겁니까? 남이 수련하는걸 함부로 못 보는게..."
"수련은 무슨. 그냥 교육이네, 교육. 진법을 익히는 일부 제자들을 제외하면 도통 손발이 맞아야말이지."
파견나갈 예정인 제자들이 익히는 풍운도법도 기초 수준의 도법이라고 하니 보여줘도 크게 상관이 없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팽월을 따라나서면서 물었다.
"역시, 다들 파견되는 제자분들이겠죠?"
"그렇지. 일류 수준까지 되는 제자들 중에, 절반 정도는 보낼 예정이니까 말이야."
나는 심법을 익힌지 1주일만에 일류 수준 내공을 찍었으니까 알기 어렵지만 이류만 해도 내공으로 신체를 강화시키는 수준이다.
절정고수 클래스는 애초에 세가의 핵심전력이니 논외고, 일반적인 수준의 전력의 절반이나 외부로 내보낸다니 팽가의 각오를 알 것 같다.
"부사 어른, 또 뵙습니다."
대연무장에서 수련을 참관하던 부사는 싸가지없게 고개를 까딱거린 다음 다시 팽가의 제자들이 손발을 맞추는 장면을 구경했다.
...싸가지가 없다?
'난 이놈이 싫은 건가?'
물론 딱히 좋아할만한 요소가 없는 사람이기는 하다. 태도도 거만하고. 하지만 그럴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방경찰청 고위간부 정도 되는 사람이, 대충 대기업 사회초년생 정도 되는 나한테 그 정도 태도를 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왜 싫지?'
그 정도도 이해못할 정도로 내가 속좁은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하앗!"
나는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총 8초로 이루어졌다는 풍운도법이 시연되는 모습을 구경했다.
확실히 오호단문도법하고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하위의 도법이었다.
이 정도라면 어지간히 대단한 고수가 펼치지 않고서야 전부 피하거나 막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탁, 탁, 탁.
부사는 손가락을 탁탁 두드리면서 팽월이 제자들을 통솔하는 모습을 내 옆에서 지켜보았다.
'근데 뭔가 묘하게... 박자가 맞다?'
내가 전개되는 풍운도법을 회피한다는 상상을 할 때마다, 회피 동작이 끝나는 타이밍에 탁, 탁 하고 손가락이 울린다.
진짜 이 새끼 뭐지? 겉으로 보기에는 무공 익힌 티가 안 나는데?
나는 꼴리는 밀프한테 관심쏟기도 바쁜 사람인데, 왜 자꾸 아무 상관없는 아재나 의심하고 있는 건지.
'아, 양하정이라도 보고 싶다.'
아재를 의심하느라 더럽혀진 뇌를 밀프로 정화하고 싶다.
"고맙소, 처남. 이 은혜는 꼭 갚으리다."
팽무도와 양하정은 하북에서 군관 노릇을 하고 있는 양하정의 남동생에게 이번 관부와의 연계에 대한 공치사를 겸해 방문한 참이었다.
이제 용건을 마치고 물러나오는데, 양하정의 눈에 제법 고가의 명주를 동생이 챙겨주는 것이 보였다.
양하정은 그것을 잘 받아두기로 했다.
"별일이구려. 부인이 술에 관심이 있었소?"
없었다. 팽월이 과한 음주를 즐기게 되고부터, 그들 부부 사이에서는 음주는 일종의 악으로 분류되기도 했고.
팽무도 역시 적당한 수준의 반주는 즐기는 편이었지만 과한 음주는 삼가는 편이었다.
"동생이 챙겨준 선물이잖아요."
"그렇소? 하긴 그렇군."
양하정의 대수롭지 않은 대답에, 팽무도 역시 그런가보다 할 뿐이었다.
부부를 태운 마차는 오래지 않아 팽가에 도착했고, 그들 부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의 처소로 각각 흩어졌다.
늘 그랬다. 그들의 결혼은 정략적이었고, 젊었을 때부터 팽무도는 양하정을 통해서 팽가를 얽어맨 관부의 손길을 풀어내는데만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별로 관심이 없던 주류를 고이 챙겨서 자신의 처소로 가지고 온 것은.
굉장히 독한 명주, 누군가에게 굉장히 쓸모있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예를 들면, 바쁘기 그지없어 손님을 사양하고 있는 팽가에서 유일하게 객관을 차지하고 있는 청년이라던가.
"저 말씀입니까?"
"그렇다네, 혹시나 관심이 있을까 싶어서 가져와봤네만..."
양하정은 처소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처소를 담당한 시비로부터 강윤이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역시 그도 자신에게 호의가 있는 것이다. 대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호의가 있으니까 용건도 없이 다녀가지 않았겠는가.
팽월은 오늘 늦게까지 바쁠 예정이었다. 소가주로서, 제자들을 총괄하고 있으니 오죽하랴.
오히려 이틀이나 시간을 내서 강윤에게 술을 퍼먹여댈 시간을 낸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역시 이, 이상하게 보일까?'
호의를 품고 있다는 것과,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몸이 달았던 양하정은 어쩔 수 없었다.
'마지막, 마지막이야... 양물을, 보기만, 보기만 하면...!'
정말 보기만 할 생각이었다. 호기심을 채우기만 하면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었다.
며칠 전에 볼 기회가 있었는데도, 그 때 꼬리를 말고 도망친 것이 잘못이었다.
"저야 감사하죠. 잘 마시겠습니다, 부인."
강윤이 고맙다는듯 고개를 꾸벅이자 양하정은 내심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깥에 불러들여둔 시비들에게 술상을 마련해올 것을 지시한 양하정은 상기된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 내력을 끌어올려 열기를 가라앉혔다.
양하정은 이미 예상했던 가능성을, 강윤이 당장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자마자 잊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강윤이 몰래 수상쩍다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만큼, 깨끗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