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105 취했으니까... 괜찮아 (4)
강윤이 양하정에게 어떻게든 우호적인 인상을 심어주려고 애를 쓰고 있을 때, 팽가에는 특별한 손님이 왔다.
제형안찰사사, 1개 성의 사법, 감찰 기관의 부사가 찾아온 것이다.
"팽가가 강호의 안녕을 지탱하는 한 축이라더니, 그 말에 그른 것이 없습니다. 가주 같은 분이 지키고 계신데, 어느 악도가 흉악한 짓을 벌일 수 있겠습니까?"
"과찬이십니다. 부사야말로 하북의 민생을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본가에서 그런 중임을 도울 수 있다니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제형안찰사사, 줄여서 안찰사사라고도 불리는 곳에서 부사의 위치는 낮지 않았다.
수장인 안찰사의 바로 아래, 한 개 부서를 총괄하는 벼슬이니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팽무도는 그런 부사와 시종일관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미 안찰사와는 이야기가 끝났으니...'
부사와는 적당히 대화를 나누고 선별한 무사들을 파견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이미 팽월이 무사들을 선별해서 대기시켜놓고 있을터. 이미 끝난 일이나 다름없었다.
'팽가가 황보세가를 넘어서는 것도 멀지 않았다...!'
당대 정파에서 유일하게, 절대고수를 둘이나 배출한 팽가였다.
비록 아버지의 실수로 동생, 팽연화를 당가의 머저리에게 시집보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녀 역시 팽가의 핏줄.
하지만 검성이라는 벽은 너무 높았다.
검성이 가주직을 내려놓고 무림맹주가 되었음에도 그 후광만으로 세인들은 황보세가를 천하제일세가로 친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었다.
무림세가로서 관부와 연결이 되었다고 해서 세인들이 손가락질하면 어떤가.
세력을 키운 다음 적절한 선에서 관부와 손을 끊었을 때, 팽가의 힘을 보고서도 그들이 과연 수군댈 수 있을 것인가.
절대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팽무도는 부사를 데리고 팽가 중앙에 있는 대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양하정과 가진 티타임은 나름 성공적으로 끝났다.
팽월과 양하정이 친모자 관계가 아니란 건 조금 의외였지만, 뭐 의부모를 모시고 있는 내 입장에선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마지막에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중까지 나와준걸 보면 분명 나에 대한 인식은 개선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풍운도법 제1식!"
또 다음에는 어떻게 꼬셔볼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큰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연무장에 팽가의 제자들이 여럿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군대 제식처럼 딱딱 맞춰진 동작으로 도법을 시연하는 모습이었다.
강호에서는 남이 수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금기라고 하던데, 이걸 봐도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야?
애매할 때는 피해가는 것이 상책이다. 연무장에서 고개를 부자연스럽게 돌린 채로 걷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가주, 평안하셨습니까."
"오, 강 소협이로군."
맞은편에서 팽무도가, 어떤 중년인을 데리고 마주 오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반가운 표정으로 내 인사를 받아준 팽무도는 옆의 중년인에게 나를 소개했다.
"부사, 이 쪽은 고가표국의 강윤 소협입니다. 강호에선 이 친구를 손룡이라고 부릅니다."
강호에선, 은 무슨. 그 별명 붙은지 이제 열흘 남짓 돼가는데.
하지만 머릿속 사정하고는 상관없이, 팽무도가 존대를 하는 상대였기에 나는 정중하게 포권을 하면서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부사 어른. 강윤이라 합니다."
"반갑네."
부사가 어떤 위치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 한마디로 끝내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높은 위치인 모양이었다.
팽무도는 내게 고개를 까딱여 다시 한 번 인사한 다음 부사를 데리고 지나쳐갔다.
근데 이상하다. 왜 이렇게 뒤통수가 간지럽지?
혹시나 싶어서 뒤를 돌아보았는데도, 두 사람 모두 딱히 내게 시선을 보내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도 그랬다.
묘하게 찜찜했지만 달리 수상한 부분을 발견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난 조용히 객관의 내 처소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뭐, 무슨 일 있겠어?
"아... 그걸 봤군."
도착한 날 실컷 마신 뒤, 이틀이 지난 밤에 다시 내게 술상을 들고 찾아온 팽월은 신나게 마시다가, 내 질문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말해주기 곤란한 내용이라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됩니다."
"음..."
팽월은 가만히 있다가 잔에 남은 술을 마저 들이켰다.
"별 일도 아니네. 아마 웬만한 곳에서는 다 냄새를 맡았을텐데, 못 알려줄 것도 없지."
팽월의 설명은 이러했다.
하북은 북경, 즉 수도가 있는 지역이었고, 팽가는 무엇을 하든 관부의 눈치를 살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팽가를 부흥시키는 일에 관심이 많은 팽무도로서는 그 사실이 꽤나 답답했을 거라고.
하지만 최근 들어서, 양하정의 친정인 산동양가를 통해서 한 가지 제안이 들어왔다고 한다.
"근래 들어 치안이 안 좋아졌으니, 팽가에서 무사를 파견해서 지원을 해준다면 팽가가 운영하는 상단에 국가사업에 참여할 우선권을 준다고 하더군."
상단은 많은 고객을 가질수록 좋지만, 고객 중에 으뜸은 국가다.
국가는 절대 사라지지도 않고, 덩치가 그 어느 곳보다도 크니까.
"돈이 있으면 세가의 규모도 확장할 수 있고, 고수를 초빙할 수도 있고, 하다못해 제자들을 수련시키는데 돈을 아낄 일도 없어지겠지."
팽월은 팔을 치켜올리고 만세를 외쳤다.
"이거야말로 천자 만세를 외칠 일이 아닌가? 나랏님 만세야..."
정말 별 일이 아닌게 맞는건가? 팽월의 얼굴은 웃고 있는데, 묘하게 일그러진 것처럼도 보였다.
"가주께서 명하셨는데, 소가주로서 그 명을 기꺼이 따라야하지 않겠나? 그래서 제자를 선별하고, 자네가 보았던 시연을 연습시킨걸세. 오늘 부사가 그걸 봤을 거고."
"..."
"어허, 표정이 왜 그런가? 그냥 딱, 그뿐인 이야기일세. 마시게, 마셔..."
내 표정도 말이 아니었나보다. 나는 내 손에 들린 잔을 꺾어들며 입 안에 모조리 내용물을 털어넣었다.
어쩐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내용을 말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술이라도 같이 마셔줘야겠다.
늦은 시간, 양하정은 등불에 의지하여 서류를 읽어내려갔다.
팽가에서 사람이 빠져나가는 이상, 남는 인력으로 세가의 경비를 완벽하게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아무리 내공을 익혔다고 한들 무림인 역시 사람이고, 잠은 자야하기 때문이었다.
'역시 낭인무사를 고용하는 편이...'
[마님,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세가 내부 경비는 제자들로 채우고, 외부 경비는 낭인들에게 맡기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던 양하정은 시비를 들여보냈다.
"무슨 일인가?"
"소가주께서..."
양하정은 미간을 짚었다. 또, 또 팽월이 강윤에게 술을 먹였다고 한다. 술에 심하게 취해서 일어날 수 없게 된 것은 기본이었다.
팽월은 외동아들이었다. 유일하게 팽가를 이어나갈 자격을 가진 직계의 인물.
다른 형제도 없는 상황에서, 하인이나 시비가 자기 판단으로 몸에 손댈 수 있을리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내게 찾아올 수밖에 없었겠지...'
그것까진 이해를 했다.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못났구나, 양하정아, 정말 못났어!'
다시 그녀의 마음속에 치미는 호기심이었다.
분명 강윤은 그녀에게 호감이 있어보였다.
남녀간의 호감은 틀림없이 아니겠지만, 아무튼 일부러 찾아와서 차를 마시자고 할 정도의 호감은 있는 것이다.
그 호감을 이유로 한 번 정도 더 가까이 가보는 것 정도는...
"마님...?"
시비가 의아한 얼굴로 붓을 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깨달은 양하정은, 급히 붓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얼굴 한 번 보는 정도는 큰일도 아니었다. 이상한 생각만 안 하면 된다.
이번에는 애초에 하인들을 불러모아서 객관으로 데려간 다음 똑같이 옮기도록 했다.
가슴을 만질 일조차 없게, 하인들에게 침상으로 옮기게 시키고, 하인들이 떠나 다시 둘만 남게 된 방.
이틀 전보다 더 심하게 취한 것 같은, 인사불성이 된 모습이 양하정의 나쁜 생각을 부추겼다.
'여, 역시 조금 정도라면...'
약간의 호기심을 해소하는 것뿐이었다.
그녀의 특수한 사정상, 남성에게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입장을 강윤이 알면 분명 이해해주지 않을까 싶었다.
'소, 소협이 먼저 만졌으니까... 괜찮겠지? 응?'
생각해보니 자신이 젖가슴을 내밀었다고는 해도 그걸 주무른 것은 강윤의 선택 아니었던가.
양하정은 침상에 누운 강윤에게 몸을 기울이며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만지는 것도 아니고 보는 것뿐이었다.
떡 벌어진 어깨, 든든한 팔, 거친 손가락...
평소에도 보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곳이었지만, 무방비 상태로 잠든 상태에서 유심히 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렇게 차츰차츰 아래로 내려가던 시선이, 바지에 도달할 무렵 양하정은 얼른 다시 시선을 올렸다.
"거, 거기까진 너무 파렴치하니까... 앗?!"
양하정은 갑자기 강한 힘에 이끌려 쓰러졌다.
강윤의 팔이 이번에도 움직여 양하정의 허리를 잡아채서 그녀를 자신의 곁에 눕힌 것이다.
마치 침구를 끌어안듯이, 옆에 엎어진 양하정에게 매달리고는, 입을 열었다.
"냄새 좋다..."
양하정은 강윤이 속삭이는 목소리에 혼비백산했다. 얼른 고개를 돌려 강윤의 얼굴을 보았지만 여전히 감고 있었다.
'자, 잠꼬대인가?'
강윤의 수혈을 짚어버릴까 잠깐 고민했지만 양하정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것이 음적이 하는 짓과 차이가 무엇이란 말인가.
자신은 어디까지나 호기심, 호기심 때문에 이런 것에 지나지 않았다.
"히익...!"
활발한 자기합리화도 잠시, 양하정은 배에 닿는 단단한 감촉에 기겁을 했다.
'야, 양물? 이거 양물이지?'
양하정의 생각보다 훨씬 크고 뜨거웠지만, 위치상 양물이 틀림없었다.
여체의 부드러운 감촉과 살냄새에 반응해서 자연스럽게 양물이 발기해서 일어난 것이다.
양하정은 잽싸게 강윤의 팔을 풀어내며 붙어있던 몸을 떼어냈다.
그 낯선 감촉에서 벗어나서, 강윤의 바지춤을 내려다보니 우람한 무언가가 바지를 뚫을듯이 부풀어있는 모양이 보였다.
'미쳤어, 미쳤어!'
육체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지만 엄연히 남편이 있는 자신이, 한참 젊은 남성의 품에 안겨 양물의 감촉을 느꼈다는 간단명료한 사실 앞에서 양하정은 더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여전히 바지를 뚫을듯이 치솟은 양물을 차마 직시하지 못하고, 양하정은 이불을 끌어다가 강윤의 몸 위에 덮어주며 방을 나섰다.
하지만 이불은 양하정의 눈은 가려주되, 기억까지 가려줄 재주는 없었다.
양하정은 당황해서 잽싸게 객관 바깥으로 빠져나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