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80 강 소협...! (2)
자, 정리해보자.
남궁혜는 내가 사부의 제자라는 것을 안다. 당시엔 사부가 누군지 몰랐지만 검성이 알려줬을테니까.
즉, 남궁혜의 관점에서는 '어머니가 사악한 색마에게 속아 몸도 마음도 다 내준 상황'이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남궁혜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와 언소영, 남궁혜는 언소영의 방에서 모였다. 어머니도 상황을 알고 오셨지만 기다려달라고 전음으로 부탁했다.
분명 시비들이 내온 차에서 따뜻한 김이 올라오고 있는데도, 어깨가 오슬오슬 떨려온다.
달칵
남궁혜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있다가 찻잔을 집어들었다.
펑펑 운 것이 뻔히 보이는데, 떨리는 눈동자를 감추고 애써 태연한 척 차를 마시는 것을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이제... 설명해주세요."
언소영과 말을 맞춘 것은 하나도 없다.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보는게 맞다.
뭐라고 노선을 꺾어도 결국 누군가는 비난을 받아야하니까.
나는 적어도 아미산에서 있었던 일은 완전히 사실대로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소저도 알겠지만 저는 그 당시 무공을 익히지 못했고, 사부님의 제자가 되어..."
"저는 소저를 미끼로 남궁 대부인을 범했고..."
"...그 결과, 그, 이렇게, 되었습니다."
다른 여자들의 존재까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도 이미 위험한데 정말 남궁세가에서 추살령이 떨어지는 수가 있었다.
내 설명이 끝나자마자 남궁혜의 눈초리가 언소영의 배를 향했다.
내 아기가 들어있는 배. 정말 아기에게도 언소영에게도 미안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숨기고 싶은 저 배.
"저를 범하는 대신에 어머니를 범하셨다구요."
"네, 네... 소저, 하지만 결코 그것이 정당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왜요?"
"네...?"
"왜 절 범하지 않고 어머니를 범하셨나요?"
남궁혜는 억울한 표정이었다.
짐작이 간다. 결과적으로 어머니를 더럽히고 자신이 살아남은 모양새가 되는 이야기였으니까.
"널 위해서 한 일이다, 하면 제가 고맙다고 할 줄 알았어요?"
"..."
"저를 위해서 어머니가 평생 지켜오신 청명을 저버렸다면, 정말로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할 줄 알았냔 말이에요."
"저... 남궁 소저."
하지만 이건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겠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듯 합니다."
"...무슨 말이죠?"
"저는 소저를 미끼로 대부인을 범했다고 했지, 소저를 위해 대부인을 범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
남궁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저는 대부인이 좋아서 범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남궁 소저보다 대부인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구요."
언소영의 목이 살짝 붉어진 것이 보인다. 나도 솔직히 다른 사람 앞에서 이런 말 하는 거 부끄러워요, 조금만 참아줘요.
"예쁜 여자가 있었고, 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 기회를 사양않고 넙죽 받은 파렴치한일 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소저가 결코..."
"그러니까, 어머니를 사랑한다구요?"
"네."
즉답.
남궁혜의 기습적인 질문에, 나도 감탄스러울 정도로 즉시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그 대답에 남궁혜가 납득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자기보다 스무 살 이상 많은 여자를요?"
아니, 언소영이 상처입잖아. 표정 확 어두워진거 안 보이냐? 응?
남궁혜는 언소영의 얼굴이 보이는 건지 아닌지, 계속해서 딜을 박아댔다.
"제가 남자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남성분들은 어린 여성분을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대체로, 맞습니다."
"그럼 강 소협은 예외란 말이군요. 하지만 말해봐요. 어머니는 강 소협보다 훨씬 먼저 아름다움을 잃을 거에요."
"..."
"예쁘고 매력적이라서 사랑한다구요? 그럼 아름답지 않으면요? 그럼 어머니를 버리겠다는 뜻인가요?"
언소영은 남궁혜의 질문에 서서히 몰입되기 시작하는 기색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인 이상 세월은 피하지 못하고, 언소영은 나보다 20년 이상 먼저 태어났다.
아마 내게 따져물은 적이 없다 뿐이지, 자기도 생각해본 문제였을 것이기 때문에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계속 아름답게 만들 겁니다."
"무슨 수로요?"
"환골탈태."
나는 최대한의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이보다 쉬운 방법이 없다는 듯한 태도에, 잠시 남궁혜와 언소영은 환골탈태가 뭐였는지 머릿속을 뒤져보는 듯했다.
"환골탈태요?!"
그리고 뒤늦은 경악성이 방 전체를 울렸다.
환골탈태, 즉 초절정이 된다는 소리다. 육체가 재구성되고, 육신의 연령이 고정되어 노화를 거부하는 경지.
천하에서는 주로 삼존, 오절, 사패로 구성된 열두명의 절대고수만이 이룩했다고 알려진 경지.
일부 숨겨진 고수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천하에 알려진 이름은 그들 뿐이었다.
"어떻게,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언소영은 오히려 납득이 되는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남궁혜는 나를 기막힌 사기꾼 대하듯 했다.
"강 소협이 스스로 된다면 차라리 납득을 하겠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을 어떻게...!"
"소영."
남궁혜는 내가 언소영의 이름을 대놓고 부르는 것을 기가 찬 눈으로 보았지만, 곧 언소영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침을 꿀꺽 삼켰다.
'남궁혜의 입장은 대강 알았다.'
남궁혜의 태도를 보고 알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나를 단죄하는 것이 아니다.
이 착한 아가씨는 어머니가 불륜을 했는데도 어머니가 행복해지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같이 있어서 불행해진다면 나를 쳐내려고 각을 재고 있는 거고.
"정말...? 정말 그런게 가능하다구요?"
"물론입니다."
"말도 안 돼...!"
남궁혜의 실력으로는 언소영의 맥문을 짚어보더라도 알 방법이 없다. 정확히는 이전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 판별할 방법이 없다.
자기 수준 이상의 내력이 어떤 수준인지, 감지해도 애초에 기준이 잡혀있지 않으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단지 나를 만나기 전과 비교해서 대략 절정 상급 수준에 도달했을 거라고 보고 있을 뿐이다.
"제 사부가 누구신지는 알겠죠. 그런 사부의 무공에, 다른 사람의 내력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그리 이상합니까?"
사부의 무공이 색공일 거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에, 남궁혜는 얼굴을 붉혔다.
"...채음보양을 하는게 아닌가요?"
"어리석은 질문이라는걸 아실 겁니다. 타인의 내력을 잡스럽게 갈취한다고 해서 그런 고수가 될 수 있다구요?"
"...아니요."
남궁혜는 수긍했다. 그게 가능하다면 절대고수의 자리는 모두 흡정술을 익힌 마두가 차지하고 있을테니까.
이로써 남궁혜가 적어도 언소영과의 나이차를 이유로 나를 의심하는 길은 봉쇄되었다.
나도 환골탈태가 무조건 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남궁혜 역시 무조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도 없게 되었으니까.
갈팡질팡 뭐라고 해야할지 고민하는 남궁혜에게, 나는 일어나서 천천히 다가갔다.
"무, 무슨 짓을... 어?"
털썩
나는 무릎을 꿇었다.
"남궁 소저, 저는 소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왜 이러시는 거죠? 당신이 무슨 염치로..."
"소영을 지켜주세요. 저는 다시 곧 이 곳을 떠나야합니다."
"..."
"언제고 다시 돌아와서 소영을 데려갈 거지만, 언제 또 남궁세가에서 사람이 나와서 소영을 힘들게 할지 몰라요."
한 번 구멍이 뚫린 이상, 두 번 뚫리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언소영은 시비 모두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확신했지만, 결국 아현이 바깥으로 소식을 옮겨나르지 않았던가.
언소영을, 남궁혜를 염려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해도 나는 더 믿을 수가 없었다.
"소영은 어차피 이미 은퇴한 몸이지 않습니까. 남궁세가 말고 다른 곳에서 소영을 찾을 일은 좀처럼 없겠죠."
"..."
"소영을 찾는 사람이 오지 못하게 소저가 막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남궁혜는 그냥 일류고수가 아니다. 언제든 남궁세가에서 버스터콜을 때릴 수 있는 남궁세가의 직계.
그녀가 묵인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한 편으로 끌어들여야했다.
"그 말은, 오라버니나 동생들도..."
"...예, 이목을 가려주십시오."
남궁혜는 기가 막히다는듯 입을 뻐끔거렸다. 아마 모르긴 해도 쌍욕을 퍼붓고 싶을 수도 있다.
어머니의 내연남이 자기 남매들을 속이라고 하면 나라도 화를 낸다.
하지만 내게는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른 것이다. 남궁혜는 언소영을 그만큼 좋아한다.
언소영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기가 마음이 아프더라도 참고 남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 당신을 믿을 수 없어요."
"..."
"어머니를 사랑해서 아이를 갖게 했다는 것보다, 어머니를 이용해서 무슨 짓을 해보려는 사악한 계획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앞뒤가 맞아요."
"이해합니다."
근 한 달 동안 얼굴을 보면서도 본 적이 없는 남궁혜의 다양한 표정을 오늘 참 많이 보게 된다.
남궁혜는 이해한다면서 왜 그랬냐는 표정을 지었다.
"저는 여인의 내면보다는 외모가 중요한 불한당입니다. 소영을 사랑한다고 해도, 저는 소영에 대한 사랑을 안아주는 것으로밖에 증명할 수 없습니다."
"..."
"하지만 남궁 소저 앞에서 소영을 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저로서는..."
"...해봐요."
"그저 남궁 소저께 믿어달라는 말밖에는... 예?"
지금 뭐라고 했지?
"해보라구요, 증명. 제 앞에서."
언소영의 안색이 하얗게 뜨는 와중에, 남궁혜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꿋꿋하게 말했다.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제 앞에서 안아서 증명해요."
어어, 그러니까 지금 댁 앞에서 떡을 치라, 그 말입니까?
[소영, 정말 해요?]
[...안 하면 혜아가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죠...?]
남궁혜는 막무가내였다. 우리가 쉬지않고 밤을 보낸 것을 증명할 증인들이 있다면서 시비들을 불러오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거절했다.
<당신이 불러온다는 증인이, 지금껏 어머니에 대한 소식을 감춰온 사람들을 말하는 거라면 거절하겠어요.>
그나마 남궁혜가 유일하게 믿을만한 아현은 하필 어머니와 함께 부엌에서 일하는 시비였기 때문에 목격한 적이 없단다.
사실 관심이 있다면 얼씬대면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겠지만 더럽다는 이유로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고.
'하여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년.'
몽아보다 더한 년! 정보유출을 할 거면 차라리 좀 더 완벽하게 하라고!
아무튼 결국 우리는 머뭇머뭇 침상에 앉아서, 도끼눈을 뜨고 있는 남궁혜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딸이라서 그런가, 저번에 언소영이 열받았을 때 얼굴이랑 판박이였다.
정작 그 때 부동명왕의 포스를 뽐내던 언소영은 한 마리 토끼처럼 내 옆에서 같이 떨고 있었지만.
"왜요, 못하겠나요? 어머니, 이런 남자는 역시..."
아니, 지금 니가 뭐라고 하는지는 아니?
너 지금 니 앞에서 니 엄마 보지 까라고 하는 거야! 알아, 몰라? 어?
나도 다 알아! 너 이거 지금 못할 거라는 거 알고서 지르는 뻥카 맞지?
"어억!"
한편 남궁혜가 을러대는 모습에 언소영은 마음을 다졌는지 내 바지를 내려버렸다.
이미 남에게 보이는 상황에 묘하게 흥분하고 있던 내 자지가 반쯤 발기된 모습을 웅장하게 드러냈다.
'시발, 이제 이판사판이다.'
나 역시 언소영에게 입힌 침의를 벗겨버리며 허리에 시동을 걸었다.
이렇게 된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똑똑히 보여주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