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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푸색마-75화 (75/383)

밀푸색마 EP.75 식사 한 끼 하시죠 (2)

결국 오늘은 새벽까지 언소영의 보지에 정액을 진하게 싸질렀다.

사실 동틀 때까지 할 여력은 있었는데 언소영이 피로를 느끼는 것 같아서 재웠다.

운기행공이 체력회복에 만능이긴 해도 수면부족 자체를 완벽하게 해결해줄 수는 없다는 말이지.

나도 밤을 새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역시 한 시진 정도는 잠을 자주는 편이 더 개운하다.

"후우..."

새벽에 나와서 할 것도 없어서, 권장법을 한바탕 수련했다.

순서대로 초식을 풀어내며 수련을 하는 한편, 가상의 적을 머릿속에 그린다.

단전에서 웅혼한 내력이 수태음폐경을 따라 도도하게 흘러나오고, 그것은 장력이 되어 쏟아진다.

지풍이 뒤이어 허공을 가르고, 가상의 적이 회피할만한 자리를 모조리 점한다.

회피가 불가능해진 적은 지풍을 맞상대해서 막아냈고, 나를 노리고 지풍을 날려오기 때문에 회피하며 권풍을 날린다.

초식이라는 것의 구성은 본래 적과 맞서싸우는 것을 상정한 구성인 경우가 많다.

가령 십이 초로 구성된 본문의 장법, 현천장법의 경우에는 일 초식 현천건곤(玄天乾坤)이 가볍게 간을 보며 상대에게 좌우 중에 한 곳으로 이동을 강요한다.

이 초식 현천일추(玄天一鎚)는 그에 맞게 좀 더 좁은 범위로 강력한 공격을 가하도록 구성되어있고.

그렇게 순서대로 초식을 펼치면 상대를 제압하기 용이하도록 구성되어있는 것이다.

'애초에 일 초부터 정면에서 맞서면서 그대로 버티면 꼬이겠지만.'

그게 상대의 무공의 투로를 파악하고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점이다.

정파들끼리도 어느 정도 타 문파 무공에 대한 투로 정도는 연구한다.

체내의 내력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니까 흉내는 못 내더라도, 어떤 식으로 대응하면 상대의 흐름이 꼬이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내 무공은 어떨까?'

사부한테 개기면 죽고, 당연히 데이터는 못 남긴다. 친선비무라는 짓거리를 사부가 했을리도 없다.

검성한테 들키지만 않으면, 내 무공은 데이터가 없고 따라서 다른 경쟁자에 비해서 구룡쟁패에서 유리할 수 있다.

내 목표는 천하제일이니, 황보강한테는 꿀리고 싶지 않느니 하고 황보효선에게 입을 털었던 건 물론 구라 맞다.

'그래도 기왕이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면 더 좋겠지.'

아마 나와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면서 완벽한 절정고수를 찍은 놈들이 있긴 있을 거다. 늘 있다고 들었으니까.

그놈들을 이기는 건... 아마 어렵다.

'적어도 일류 상대로는 발라버려야지.'

새로 자리가 난 6명의 자리에서, 최소 3등, 적어도 4등 정도는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전의를 불태우며 무공을 수련하던 도중, 이제 슬슬 동이 터오는 것이 보인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무공수련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고르며 소모한 내력을 보충했다.

"역시 가봐야겠다."

스님이 머무는 객잔. 아마 목적지가 있다면 동이 트자마자 출발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붙잡아봐야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인사 정도는 해야지.

나는 신법을 섞어가면서 가볍게 달려 장원을 나섰다.

역시나.

스님은 아침부터 완벽하게 준비된 복장으로 길을 나서려고 하고 있었다.

구질구질하던 승복이 제법 깔끔해진 것을 보니 빨기는 한 모양인데, 그새 마른 것을 보니 내력이라도 써서 말린 건가?

"좋은 아침입니다, 스님. 편히 쉬셨습니까?"

고개를 꾸벅 숙여서 인사하자, 스님 역시 합장하며 그 인사를 받았다.

"좋은 아침입니다, 시주."

삿갓에 표정이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내가 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느낌이었다.

애초부터 항상 가라앉은 분위기였기 때문에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지금 길을 떠나십니까?"

"...예.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를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닙니다만... 아무튼 가시죠."

"...?"

스님은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었다.

"이대로 보내면 정이 없지 않습니까. 조금만 같이 걸으시죠."

간다고 하면 보내주는게 낫다. 원래 이렇게 기운없는 사람들이 가장 꺼리는 건 계속 억지로 붙들어놓고 기운을 내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이니까.

특히 '힘내라' 류의 말은 거의 폭탄 투척이나 다를바 없다.

단지 같이 붙어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면, 한마디라도 더 하겠지.

"...예, 시주. 뜻대로 하십시오."

길을 가다가 떡이나 찐 쌀을 사서 스님의 행랑에 넣었다.

배라도 불러야된다는 내 말에 스님은 거부하지 못하고 음식을 받았다.

다른 여행식이라도 더 넣어주고 싶지만 아쉽게도 다 고기가 포함되어있는 음식들 뿐이다.

스님한테 고기를 먹일 수는 없잖아.

[아이고, 아이고... 아버님...!]

그렇게 걷다보니 스님이 멈춰섰다. 가족을 잃었는지 어떤 집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고 아들인 듯한 아저씨가 통곡을 하고 있었다.

태연하게 볼 광경은 아니었기에 스님 쪽을 돌아보니, 표정이 무섭게 굳어있었다.

어쩐지 이 스님도 소중한 누군가를 잃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직감이 들었다.

스님은 내 시선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몸을 돌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저 그렇게 뒤를 따라 계속 걸었고, 곧 시전 바깥까지 갈 수 있었다.

"시주, 여기까지면 충분할 듯 싶습니다."

이렇게 선을 그어버리는 이상, 나는 더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렇군요."

그저 그렇게 말하면서 떠나갈 그녀를 조용히 지켜볼 뿐.

바로 떠나가지 않고 내 시선을 받으며 조용히 서있던 그녀가 문득 입을 열었다.

"시주는...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까 그 사람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모르겠군요. 저는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적이 없어서..."

이런 정답도 없는 문제에 답을 해주더라도 스님이 만족할만한 답을 해줄 수 있을리가 없다.

하지만 내 특별한 처지 덕분에 해줄 수 있는 말은 있었다.

"하지만 떠나간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아마 지금까지 중에 가장 격한 반응이었다. 스님의 눈에서 순간 열기가 치밀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마 평생 자신을 잊지 않기를 원할 겁니다."

"..."

"맛있는걸 먹어도, 새로운 사랑을 찾더라도, 그 어떤 멋진 경험을 하더라도, 자기를 기억하고 눈물지어주길 바랄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구요?"

"아뇨. 힘들게 살기를 원하는 것도, 죽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죠. 그냥 잊혀지기 싫을 겁니다."

적어도 나라면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 사람을 잊지 않았는데, 그 사람은 나를 잊어버린다는 건 너무 슬프지 않습니까."

"...그런 걸 어떻게 알죠?"

"제가 떠나온 사람이니까요. 부모님도, 저도 원하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여기에 있습니다."

"돌아갈 수 없습니까?"

"죽지 않는 한은, 아마도요."

대한민국에서 나는 대외적으로 실종되었거나 죽었다. 부모님은 아마 날 생각하면서 울면서 사시겠지.

하지만 난 부모님이 나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살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날 생각하면서 가끔 아파해주면 좋겠다.

"세상의 어떤 일도, 정답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그렇다는 말씀이죠."

스님은 내 말을 곱씹는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님."

스님은 내 목소리에 움찔했지만, 곧 차분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소협."

또 소협이다. 시주라고 했다가 소협이라고 했다가, 그 경계선이 뭔지를 잘 모르겠지만 나는 태연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제 생각을 말씀드렸을 뿐인데, 공치사는 조금 부끄럽군요."

내 말에 스님은 별 말이 없었다. 역시 깨달음을 얻고 단숨에 사람이 확 밝아지는 일은 없는 모양이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행랑이 잘 묶여있나 확인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소협."

"예."

"소협의 성명을 듣지 못했군요."

"강윤입니다. 아직 강호에 이름을 제대로 알려보지 못한 무명소졸입니다만..."

스님이 웃은 건가? 훗 소리가 났는데?

"이미 소협에겐 대협의 기질이 있습니다. 이대로 정진한다면 곧 강호는 소협의 이름을 알게 되겠지요."

사실 강호가 알든 말든 큰 상관이 없긴 한데... 결국 내 여자들이랑 살려면 이름값을 벌어야하긴 하니까, 덕담인 셈이다.

"빈니는 소림의 호연이라고 합니다."

"예, 호연 스님."

분명 내공이 느껴지지만 아미파랑은 복색이 달라서 다른 절일 거라고는 생각했는데 소림 출신이었다.

소림이란 이름을 듣고 보니 낡아서 여기저기 보풀이 일어난 승복도 어쩐지 범상치 않게 보였다.

"소협의 말은... 아주 인상깊었습니다. 언젠가 소림의 도움이 필요할 일이 있다면... 꼭 빈니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호연은 그렇게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기운이 넘친다고 보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했지만, 그래도 걸음에 조금이라도 힘이 들어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어떨지 모르겠네.'

만약 다 훌훌 털어내고 마음의 상처가 다 아물었다면... 그 때는 혹시 남자 한 명 사귀어볼 생각 없냐고 물어봐야겠다.

<남편도, 아이도 모두 자신을 잊기를 원할 것이니라.>

<호연이 네가 행복해지는 것만이 떠나간 가족을 성불하게 하는 길이다.>

"아니었습니다, 스승님..."

호연은 죽어간 남편과 아들을 떠올렸다.

지금까지는 떠올리는 것도 죄스러워서 떠올리지 않게 부처를 찾으며 기도만을 올렸다.

잊어버리고 행복해지자고 스스로를 다그친 횟수가 수만번은 될 것이었다.

돌림병에 걸려 죽어가는 남편과 아들이, 이윽고 물 한 모금 넘길 기력조차 잃어 차갑게 식어가는 모습.

소림사 속가제자 출신으로 내공을 익혔던 자신만이 살아남고, 문약한 남편과 어린 아들은 죽고 말았다.

그 어린 아들에게, 무공을 가르쳤더라면 살아남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던 시간.

스승의 말에 따라, 경전에 매몰되어 잊어버리려고 애써왔던 세월이 십수년.

"아들... 어미가 잊지 않길 바라지?"

잊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가끔씩 꺼내보면서 아파하기를 바랄 거라고 한다.

호연은 지금까지 억지로 덮어놓았던 감정의 뚜껑을 열었다.

"흐으으윽..."

지금까지 흘러나오지 않던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렀다.

"흐아아앙...!"

그녀는 길가에 혼자 웅크린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서럽게 울었다.

여보, 미안해요. 아들, 미안해. 나만 살아남아서 미안해.

그동안 참아왔던 것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눈물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억지로 머릿속에서 지워왔던 슬픈 기억 사이로, 행복한 추억 역시 피어올라 그녀를 어루만졌다.

그조차도 가슴이 아프지만, 역설적으로 그 아픔이 그녀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을 것이었다.

마음이 죽어 그 날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이제야 그녀의 어그러지고 금간 마음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아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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