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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푸색마-65화 (65/383)

밀푸색마 EP.65 걸림돌이 될 일은 없을 거라면서요? (1)

당혜원과 오랜만에 실컷 교미를 즐긴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이 말들은 군마로도 납품되는 수준의 말입니다. 체력은 물론이고 훈련도 잘 되어있어서..."

이재각, 그러니까 재정을 담당하는 곳에서 나온 사람의 말은 상당히 길게 이어졌다.

요점은 절대 그냥 주는거 아니고 빌려주는 거니까 조심히 타란 소리네.

"특히 말을 데리고 가기 어려운 특수한 경우에는 인근 마방에서 판매후 거래증서를 회수해주시면..."

"아니, 정없이 왜 그런 소릴 하고 있는가? 소협, 신경쓰지 마시게."

뭔가 엄청 속좁게 생긴 중늙은이가 갑자기 이재각 사람의 말을 끊었다.

"급한 상황이면 그런 것을 끊기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을! 자네 그러고도 이재각원인가?"

말하는걸 들어보니 아무래도 이 사람도 이재각, 그것도 꽤나 높은 사람인 것 같다.

[당가의 이재각주란다.]

어머니의 전음을 들어보니 원래 기술담당인 기묘각주와 재정담당인 이재각주는 가주 편이었단다.

그런데 이번에 가주 권한이 축소되고 나니까 이재각주가 말을 갈아타고 팽연화에게 딸랑이 노릇을 하기 시작한 것.

기묘각주는 아직도 당조명 코인에 매달리고 있는 모양이다. 차라리 이재각주가 현명할지도.

"각주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쪽 분의 말씀도 옳으니, 정말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최대한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이재각주는 찔끔한 표정이었고, 각원은 그것 보라는 표정이 되었다.

"그, 그렇지! 원칙을 고수하려는 노력의 귀중함을 알다니, 강 소협도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생각이 딱 잡혀있구먼!"

각주님 우디르급 태세전환 오졌고요.

아무튼 나와 어머니는 이재각의 배려로 말과, 갈아입을 옷, 비상식량으로 건포까지 제공받을 수 있었다.

어머니가 길을 아니까 건포 먹을 일은 없겠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팽연화가 가까이 와서 배웅하려는데, 갑자기 황보효선과 몽아가 황급히 달려오는 바람에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 가십니까?"

"...예. 무슨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황보효선은 본래 자기가 동행할 예정이었는데, 검성이 급하게 어떤 마두를 잡으러 갔다고 해서 본인도 따라가야한단다.

'동행할 예정이었어?'

나는 당황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래도 금시초문이었던 모양.

아무튼 사부의 유인에 쟤까지 따라간다면 크게 걱정할 일은 없...

"그래서 이쪽의 몽아사태께서 대신 동행해주기로 하셨습니다."

몽아는 썩 탐탁치않은 표정으로 앞으로 나와서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이 내 쪽을 힐끔대고 있는걸로 봐서 내가 문제겠지. 어머니랑만 동행했으면 머릿속에서 코사크 댄스라도 췄을지도.

"동행까지는 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만..."

"아니, 맹주의 지시로 소협에게 제의를 하러 온 것이 아닌가. 동행은 해주는 것이 옳지."

"어머니께서 동행해주시기로 하셨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입니까!?"

몽아가 갑자기 급발진하더니 어머니의 눈치를 슬쩍 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음, 소협? 내가 연장자니 말을 좀 편하게 해도 되겠지요?"

왜 이래, 시발. 불안하게. 너 인사한 거 이후로 나한테 말 거는 거 처음인거 알지?

"물론입니다, 사태."

"흠흠... 소협, 빈니는 본래 무림맹의 부탁을 받아 아미파에서 온 몸이지만..."

"..."

"무림맹에서 이렇게 다른 사정이 생겨 도움을 청한다면 거절하기가 어렵네."

여기 우디르가 하나 더 있었네. 태세전환 뭐냐고.

"제갈 여협께서도 어떠십니까? 빈니가 동행하며 여정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꿀이 떨어지는 눈으로 어머니를 보고 있는 몽아. 진짜 레즈 아냐 이거?

나만 동행하는줄 알고 표정이 개썩어있던 건가?

"몽아사태께서 동행해주신다면 든든하겠군요."

팽연화-!

몽아가 나한테 하는 짓거리를 못 봐서 그런가, 팽연화는 가벼운 마음으로 동행을 수락해주고 있었다.

당가 가솔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팽연화가 동의한 일을 나나 어머니가 걷어차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잘 부탁드립니다, 여협. 빈니가 여정에 걸림돌이 될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우리 여정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레즈 여승이 파티원으로 추가되게 되었다.

팽연화는 말을 타고 멀어져가는 세 사람을 보고 있자니,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동생, 세상이란 비정한 거야.'

강윤과 동행할 사람으로 제갈미령이 뽑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결론이었다.

당혜원은 애초에 임신중이니 말할 것도 없고, 스승 비슷한 위치인 팽연화로서는 의모인 제갈미령을 당해내기에 부족했던 것이다.

제자 비슷한 사람입니다, 라고 소개하는 것보다는 의붓아들입니다, 라고 소개하는 편이 더 매끄러우니까.

그것까진 불만이 없었지만, 셋이서 교접할 때의 제갈미령의 태도가 불만이었다.

슬금슬금 팽연화의 차례를 침범하는 것은 반칙이 아닌가. 하물며 몇 달간 만나지 못하는 쪽은 팽연화였다.

'몽아사태가 있으면 훨씬 하기 어렵겠지.'

강윤이라면 아마 갑자기 노상의 풀숲에서 하고 싶어할 수도 있지만, 몽아가 동행한다면 그게 원천봉쇄된다.

그게 아니더라도 객잔에서 몸을 섞기에도 눈치를 봐야하는 것은 당연지사.

팽연화는 자신의 판단력에 내심 축배를 들어올리고 있는데, 뒤에서 기척이 둘,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 어머니! 강 소협은...?"

"이미 출발했단다."

"씨잉...!"

울상이 된 딸 당영과, 그런 손윗누이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아들 당무혼이 있었다.

"출발을 하면 한다고 이야기나 해줄 것이지..."

"누님..."

팽연화는 배가 부르는 느낌이 서서히 속이 얹히는 느낌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딸이 좋아하는 남자와 붙어먹은 어미.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속이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강 소협, 돌아오겠죠? 거기서 삼봉 같은 여자라도 만나고 오는 건 아니겠죠?"

"...아마 강 소협은 별 관심이 없을 거다."

그 삼봉들의 어머니라면 혹시 몰라도.

강윤의 취향이 이미 결혼한 여자라는 것 정도는 팽연화도 진작에 알았다.

'화산의 매소향. 무당의 단유란.'

남궁세가의 남궁혜가 새로운 삼봉의 일인으로 꼽히고 있는 지금, 나머지 두 사람의 어머니는 그 둘이었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어머니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딸 앞에서, 팽연화는 그렇게 기도했다.

스스로도 강윤의 남근이 정조를 지킬 거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사태."

"왜 그러는가?"

"여정에 걸림돌이 될 일은 없을 거라면서요?"

"이 정도가 무슨 걸림돌이 되겠나? 이런 건 자갈이라고 하는 거라네, 자갈."

일정에 여유를 충분히 두었기에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이동하다가, 적당히 보이는 마을에 짐을 풀었다.

객잔에서 어머니의 추천에 따라 음식을 시켜먹고 있는데, 버섯요리를 집어먹던 몽아의 젓가락이 허공을 날았던 것이다.

"자갈이 아니라 모래일지도 모르지만."

"이 땡중 년! 드디어 찾았다!"

어디서 업보 스택을 쌓아둔 건지, 칼을 차고 있는 인상 더러운 남자들이 몇이나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빈니는 숨은 적이 없는데, 찾았다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시주는 누구시오?"

"이 개같은 년! 네 년이 나를 잊었단 말이냐?! 말 좀 걸었다고 팔다리를 분질러놓고!"

몽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팔다리가 분질러진 것치고는 멀쩡하신듯 한데...? 사람을 잘못 찾은듯 싶소."

"당연히 그동안 치료를 받..."

갑자기 떠들던 놈의 말이 끊어지고 털썩 쓰러졌다.

이... 미친 년!

'구슬을 날려서 턱을 때려 기절시켰어!'

나도 인식하기 어려울만큼 쾌속한 한 수였다. 몽아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아무래도 병이 깊은 시주인듯 하오. 그 쪽 시주들께서는 동료 되시오? 이 시주를..."

"씨발, 쳐!"

흥분한 남자들이 칼을 뽑아 달려들었고, 이미 슬슬 눈치를 보던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어 다들 도망을 쳤다.

어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내게는 나서지 말라는 듯 손짓을 했다.

사실 내가 나설 것도 없어보였다. 다들 기껏해야 이류.

딱히 실전공부가 될 것 같지도 않고, 이렇게 된 거 몽아 무공실력이나 구경해보기로 했다.

슈파팟

구경할 건덕지도 없었다. 소매에서 쏟아낸 나무구슬을 잡더니, 손가락으로 튕겨내자 우습게 제압되는 수준이었다.

'탄지공...?'

지법으로 날리는 지풍과는 달리, 실체가 있는 물건을 손가락으로 튕겨내어 공격하는 무공이었다.

구슬 같은 물건으로도 가능하지만, 물 같은 비정형의 물건으로도 가능한 무공.

실체가 있기 때문에 위력이 강력하지만, 한 방 날리는데 소모되는 내력이 상대적으로 크고 날릴 물건이 준비되어있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몽아는 그렇게 기절해버린 놈들을 일별하더니, 도로 앉아서 새 젓가락을 꺼내들고 다시 버섯요리를 우물대기 시작했다.

그 대수롭지 않은 태도에서, 나는 혹시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길함을 느꼈다.

"딸, 이거 마님께 가져다 올리거라."

"이게 뭔데요...?"

"아기씨하고, 산모가 건강해지는 탕약. 어미가 의방에 가서 지어왔다."

아현은 뜨끈한 열기가 올라오는 탕약을 떨떠름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어허, 왜 이러니. 너 낳을 때 어미도 이거 먹었어. 여자들이 애 낳을 때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니? 너도 나중에 이거 지어줄..."

"다녀올게요."

어머니의 잔소리가 이어지기 전에, 아현은 얼른 탕약이 든 그릇을 쟁반에 받쳐들고 나왔다.

마님이 남궁세가를 떠나 여기에 정착할 때, 아현은 어머니를 따라서 여기로 왔다.

어머니가 진주언가에서부터 마님을 모신 시비였기에, 어머니의 딸인 그녀도 여기로 오게 된 것이다.

자매처럼 자란 남궁혜와 떨어지는 것은 아쉬웠지만, 마님 역시 오랜 세월 그녀를 딸처럼 아껴주었기 때문에 아현은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기씨가 생기셨다니...!'

마님의 남편이었던 선대 가주, 남궁탄은 병치레를 자주 하다가 결국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타계했다.

그 사이에 방사는 물론 없었고. 그럼에도 아이가 생겼다는 것은 결국 외간 남자의 씨라는 뜻.

세가에 쉬쉬하고 여기로 온 것만 봐도 명확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다들 왜 아무렇지도 않은 분위기인 거지?'

모두가, 언가 출신 시비들과 그들의 딸들 모두가 오로지 마님의 순산과 아기씨의 건강만을 기원하고 있었다.

마님께서 외도를 하셨는데도.

'아가씨께서는 알고 계실까?'

적어도 세가에 있을 때, 누구도 마님이 아이를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비롯한 측근 몇은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남궁혜가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모르시겠지...'

선량하고 남을 속일 줄 모르는 성품의 아가씨가, 그런 것을 알고서 자신을 속일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현은 고민에 빠졌다. 남궁혜에게 진실을 전해야할 것인가?

이미 남궁세가의 직계들은 모두 성년이 되었거나, 거의 성년이 다 되어가는 나이.

'적어도 진실을 알고는 계셔야하는 것 아닐까?'

아현은 마님의 처소 앞에서, 그 앞을 지키고 있던 시비의 허락을 받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언소영이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아현아, 들고 온 것이 무엇이냐?"

"어머니가 마님께 올리라고 탕약을 보냈습니다."

완연하게 불러온 배. 배를 압박하지 않는 편안한 복장.

언소영이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탕약을 받아 단숨에 들이키는 모습을 보며, 아현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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