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62 이상한 사람이네? (1)
숭산.
천하에 이름난 명산 가운데 하나이지만, 무림인들에게 있어 이 산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숭산 소실봉을 낀 곳에 자리한 어느 절, 아니 절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해진, 너무 위대한 이름.
혹자는 무림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의 뿌리라고 떠드는 그 곳의 이름은 바로, 소림이었다.
본래의 소림이었다면 무공을 갈고 닦는 무승들의 기합 말고는 소음다운 소음이 없는 곳이었지만, 최근에는 조금 달랐다.
절에서는 금기시되다시피 하는 고기 냄새까지 풍겨오는 이 곳은, 마치 시장바닥처럼 번잡했다.
그 사이에,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던 중년의 승려가 한 사람.
"못할 짓이로다, 아미타불..."
습관처럼 불호를 외던 중년의 승려는, 산 속 깊은 곳의 참회동 근처에 있는 암자로 걸음을 옮겼다.
참회동은 죄를 지은 제자들을 가둬두는 곳이었다.
하지만 감정의 수양을 쌓는 것 역시 중요하게 여기는 소림승들답게 큰 죄를 짓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참회동은 거의 늘 비어있는 상태였다.
중년의 승려가 찾아가는 암자는 그런 참회동을 관리하는 제자가 머무는 처소.
방장 사형의 결정에 따라 열리게 된 구룡쟁패 때문에, 잠시 소림을 떠나기로 한 제자가 있는 곳이었다.
"호명 사형."
맑게 가라앉은 목소리.
시간을 잘 맞췄는지, 너무 늦은 것인지 중년의 승려, 호명이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행랑을 꾸려 떠나려는 모습이었다.
"호연 사매."
"인사를 드리고 갈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사형."
불자답지 않게 길게 기른 머리를 대충 묶은 그녀, 호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내가 오지 않았으면 그대로 가려했는가?"
"..."
무기력한 얼굴. 인세의 모든 삿된 감정을 비워내는 것이 진정한 해탈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해탈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감정을 잃은 사매의 얼굴에서는 어떤 평온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불안정하고 초췌한 얼굴을 한 그녀를, 잠깐이라고는 하지만 홀로 속세로 내보내도 되는 것인가.
"필요하다면 여기서 멀지 않은 백마사 쪽에 내 소개장을 써주겠네. 잠시 머무는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사형."
공허한 눈가에 애써 미소 비슷한 것이 맺히며, 호연은 고개를 저었다.
"불자된 몸으로 어리석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허락하신다면 남편과 아이가 묻힌 곳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사매..."
역시 그녀는 아직도 끊어내지 못했다. 남편과 아들의 죽음은 여전히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불사에서 수천, 수만번을 불경을 외우더라도 그녀의 오랜 상처는 나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부처시여...'
호명은 그저 부처를 찾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원망할 따름이었다.
"그럼 이만 떠나겠습니다, 사형. 보중하십시오."
"그래, 사매도 조심하고. 홀로 밖에 나가있는 동안은 무엇이든 조심해야하네."
"...예."
호명은 그렇게 멀어지는 호연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사매... 살아야하네. 분명 떠나간 부군도, 아들도 사매를 빨리 만나길 원하지 않을거야.'
사부는 죽는 날까지 사매를 걱정하셨다. 그녀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하고, 여승을 받지 않는 소림에 억지를 써서 입산시킨 사람이 사부였다.
호명은 호연이 그런 사부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겨주기를 바라며 불호를 읊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나를 찾아온 것은 웬 여승이었다. 아니 이걸 찾아왔다고 해야되나?
"저, 스님? 어쩐 일로 여길 찾아오셨는지...?"
"..."
묵묵무답이었다. 마치 내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엉뚱한 곳만 노려보고 있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얼굴은 예쁘다. 심술이 덕지덕지 묻은 것 같은 표정이 문제지.
승복에 가려진 몸도 야한 몸매일 것이 분명했다.
나이는 어머니랑 동년배로 보이는데, 스님인데도 촉이 왔다. 이 여자, 분명히 남편이 있었을 거다.
즉 일단 꼴리는 밀프는 맞다는 것. 두발 상태가 아쉽지만...
"스님...!"
하지만 꼴리는 밀프인가 아닌가와, 싸가지의 유무는 별도의 문제였다.
분명히 손님이 왔다고 해서 맞아들인 건데, 이렇게 쌩까면 어쩌란 거지?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차를 들이키며 참아낸 것이 몇 번이던가.
덜컥
그 때, 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좋다, 이 빌어먹을 년아. 어디 어머니 앞에서도...
"제갈 여협! 오랜만에 뵙습니다! 빈니를 기억하시는지요?"
"몽아사태 아니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머니가 아는 체를 하자 몽아인지 하는 땡중 년은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이렇게 제대로 보니까 예쁘긴 예쁘네.
"건강해보이시니 다행입니다, 사태.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빈니야 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부처님 말씀대로 하루하루 살아갈 뿐인 것을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어머니가 나를 소개했다.
"이 쪽은 제 아들입니다. 윤아, 인사 올리거라, 아미파의 몽아사태시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윤이라고 합니다."
"몽아라고 합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당조명도 날 보고 헌앙하니 뭐니 빈말이라도 날렸는데, 얘는 그런 것도 없었다.
개무시를 때린 것도 참고 이제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자 싶었는데 이렇게 나온다? 이런 개썅...
[아들, 조금 불편하더라도 참거라. 어차피 무림맹에서는 다른 분이 오셨다고 하니,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 된단다.]
짜증을 속으로만 누르던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차리신 건지, 어머니가 전음을 보내왔다.
어머니는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지만, 아무튼 얘랑 얘기 나누려고 애를 쓰면서 혈압 올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대화에는 어차피 끼지도 못할 거, 나는 내력을 끌어올려 주변의 기척을 탐색했다.
빨리 와라, 이상한 땡중 앞에 데려다놓지 말고 제대로 된 무림맹 손님 와라...!
내 기도가 닿았는지, 얼마 되지 않아서 팽연화와 또 다른 한 사람의 기척이 서서히 가까워져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이젠 좀 정상인이 왔겠구나 싶어 반갑게 사람을 맞이한 나는 필사적으로 표정이 찌그러지는 것을 막았다.
"만나서 반갑네. 무림맹 산하 백호단의 부단주, 황보효선일세."
니가 왜 거기서 나와?
황보효선은 아주 기분이 좋았다.
지난 사천 방문에서는 조부에게 휘둘리느라 미처 만나보지 못했던 여인을 만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화절, 철도후 팽연화.
정파 여인들 가운데 유일하게 초절정의 경지에 발을 들인 절대고수.
황보효선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조부라면, 가장 목표로 삼고 싶은 인물은 바로 그녀였다.
별 생각없이 조부의 부탁을 받아들였지만, 일단 도착해서 그녀를 만나고보니 마치 특별한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본래 배첩을 보냈던 상대보다도 그녀와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짧은 대화가 더욱 귀중하게 느껴질만큼.
하지만 결국 걸음은 무정하게도 그녀를 당가의 객관 앞까지 안내했고, 황보효선은 아쉬움을 누르며 일단 일을 하기로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윤이라고 합니다."
'제법인데?'
건장한 몸에 준수한 얼굴. 여유있으면서도 결코 방탕하지 않은 태도에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정광 어린 눈매는 그의 수양이 제법 깊다는 사실을 짐작케해주었다.
"자제분이 쌓은 수련이 예사롭지 않아보이는군요. 백호단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용이 숨어있었다니 놀랍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최근 많이 배우고 있지만 좀 더 수련해야 용이라 할만하겠지요."
말과는 달리 제갈미령은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들로 삼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럴만도 하군.'
마음의 병을 앓던 시기에 자신을 지탱해주고, 기어코 그것을 고쳐내기까지 한 아들이었다.
감정의 교류가 끈끈하지 않다면 그것 역시 이상했다.
잠시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고, 황보효선은 드디어 본론에 들어갔다.
"강 소협, 이미 배첩으로 짐작하고 있겠지만, 맹주께서는 소협이 가까워져오는 구룡쟁패에 참가하지 않는 것을 염려하고 계시네."
"..."
"소협은 실력을 좀 더 쌓고 도전하겠다고 했다지. 하지만 지금의 실력으로도 구룡의 일좌를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데 어째서인가?"
황보효선은 되도록 강요로 들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말을 꺼냈다.
정파제일인이 염려하고 있다는 말 자체가 굉장히 무거운 사안으로 들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황보세가에, 차기 천하제일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강이를 말하는 게로군."
"저와 같은 나이에, 압도적인 실력으로 구룡의 수좌를 차지했다지요."
"그랬던 것 같네."
"저도 남아로 태어난 이상, 언젠가는 천하제일이라는 이름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겨우 구룡쟁패에서 맥을 못 추는 모습을 보인다면, 세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
"봐라, 역시 황보강이다. 역시 천하제일은 다른 누구도 아닌 황보강이다. 아마 30년 정도 지나더라도 세인들은 똑같이 말하겠지요."
황보효선은 청년의 눈에서 엄청난 집착을 읽어냈다. 맙소사, 이 청년은 진정으로 천하제일만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 집착이 자신의 육체에 대한 음심임을 짐작할리 없는 황보효선은,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주께서 저 같은 말학을 배려해주신 점은 감사드립니다. 여기까지 굳이 걸음해주신 황보 여협께도, 함께 해주신 몽아사태께도 감사드립니다."
"...소협."
"하지만, 세인들이 저를 음해하는 것보다, 제겐 중요한 문제입니다. 부디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절대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을 굳건한 태도였다.
황보효선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조부에게는 자신만 믿으라고 큰소리를 치고 온 것이 후회될 지경이었다.
딴은 맞는 말이었다. 그런 세인들의 평판을 뒤집고 싶다면 비무를 벌이는 수밖에 없는데 비무를 벌여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황보세가와 적대관계가 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이런 패기 넘치는 후학과 안면을 트게 된 것도 인연. 황보효선은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어쩜... 우리 윤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어미는..."
아무래도 제갈미령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본심인듯했다. 제갈미령은 약간 익살스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아들, 그래도 마음 바뀌면 얼마든지 말하렴? 역시 구룡이란 이름은 일찍 얻어둘수록..."
"어머니!"
강윤이 얼굴을 붉히며 제갈미령을 비명처럼 부르는 광경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이것이 진정 피가 아닌 마음으로 이어진 모자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머니, 라고 부르는 그 목소리, 분명 들어본 것 같은데 어디서 들어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 황보효선이었다.
응, 일단 입은 잘 털었다.
천하제일은 무슨, 천하에서 가장 밀프를 잘 따먹는 걸로 천하제일이라면 관심이 있지만.
당장 절정고수만 되어도 무림 전체에서 수백명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숫자가 적다.
중세 중국이라고 해도 전체 인구가 대략 수천만은 될텐데, 그 중에 100분의 1만 무림인이라도 수십만명이다.
그 중에 몇백 등이면 충분히 금수저지, 암. 천하제일무공이 있는데 그래도 절정이야 찍을 거 아냐?
그나저나 황보효선이 날 못 알아봐서 다행이다.
그 때 어찌어찌 하다보니 끝까지 복면을 안 벗고 버티게 되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황보효선이랑 마주칠 줄은 몰랐지.
'들켰으면 또 지랄을 하다가 일이 틀어졌을지도.'
아마 검성도 똑같이 지랄해서 사부를 고생시킨게 아닐까 하는 킹리적 갓심이 든다. 미친개랑 미친년. 딱 맞네, 조손간에.
꼴리긴 여전히 꼴리게 생겼던데.
'일단 그 생각은 그만하자.'
이제 슬슬 밤도 깊어오고, 나는 이제 팽연화의 처소에 찾아갈 준비를 했다.
원래는 어머니를 따먹을 시간이지만, 오후에 섹스해야할 팽연화가 내내 그 무림맹에서 온 두 웬수한테 붙잡혀버렸으니...
[이따가 밤에 어머니랑 찾아갈게요, 연화. 기다리고 있어요.]
몰래 전음으로 그렇게 알려줬더니 팽연화의 얼굴이 화색이 되었다.
못 하는 것보다야 쓰리썸이 나을테니까. 반면 어머니는 원래 둘이 할 수 있던 상황에서 쓰리썸으로 강등이 된 셈이라 약간 토라진 것 같았다.
그만큼 더 신경써서 박아줘야지.
아, 자지가 뿌듯하다. 해피 섹스 라이프!
이제 해시 초(밤 9시경) 정도가 되었다.
슬슬 어머니를 모시고 가모 처소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창문을 열고 거기에 다리를 걸친 순간, 뭔가 부자연스러운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아니, 이건 바람이 아니었다.
"사부님."
"어서 창문 닫거라."
제법 오랜 시간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부가, 어느새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선수끼리 섹스할 타이밍에 방해하면 씁니까?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