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57 어머니, 무슨 일이십니까? (1)
서안의 무림맹 본부, 맹주 집무실.
검성은 쏟아지는 서류더미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보게, 청량. 내가 꼭 이런 것까지 일일이 결재를 해야하나?"
"제 권한으로 결재할 수 없는 사안만 추려 올려드린 겁니다만?"
도복을 입은 노인은 멋지게 기른 흰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당이 아니라 소림에서 구룡쟁패를 개최하기로 해서 기분이 상한 건 아니고?"
"허, 그깟 구룡쟁패가 다 무어랍니까. 온갖 조무래기가 몰려들어서 산문이 소란스럽기만 할텐데 도리어 잘된 일이지요."
"이해하게. 이번에 급하게 개최 일정을 당겨버리는 바람에 소림밖에 준비된 곳이 없다는데 어쩌겠나."
노인, 무당의 도장이자 무림맹의 부맹주인 청량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저야 아무 상관없습니다. 말코라면 제 한 몸 누일 바닥과 배를 채울 음식만 있으면 만족할 수 있다는 간단한 이치를 모르는 머저리가 장문인을 하고 있는게 문제지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한 거라고 무당의 장문인에게는 꼭 말해두겠네."
"믿겠습니다. 이 나이가 되니 귀찮은게 싫더군요."
"그래서 이 서류 결재는-"
"그야 맹주께서 하셔야죠."
검성의 인상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이게 전부 혈마를 쫓아 사천까지 달려간 업보와, 급하게 행사 일정을 당긴 결정에서 비롯된 고생이었으니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이 검성은 인장을 찍어댔다.
"아, 일정을 당긴다고 하니 말입니다만, 혈마의 피해자 중에 한 명이 구룡쟁패에 불참할 뜻을 알려왔더군요."
"뭐라? 어째서?"
그 고생을 하는 와중에 자신의 수고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자가 나타났다고 하니, 검성의 눈이 순간 뒤집혔다.
"아직 자신의 재주가 부족하니, 좀 더 준비하고 싶답니다."
"아니, 내가 쓴 서신을 읽어보지 않은 것인가? 그 자가 대체 누구기에?"
노골적으로 적지는 않았지만, 인재들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구룡쟁패에 참가 바란다는 행간을 읽을 수 있게끔 작성한 서신이었다.
"강윤이라는 젊은이입니다만... 사연이 약간 복잡합니다."
도문의 일맥을 이은 은거기인의 제자. 과거 삼봉이었던 제갈미령의 아들과 흡사한 외모.
그녀의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주변의 묵인하에 이루어진 아들 노릇.
"나쁜 청년은 아닌가보구먼... 사정은 알고서 거절했다고 하던가?"
"당가 쪽에서 보내온 회신에 따르면 충분히 설명은 했다고 하더군요."
쳐없애야할 악한도 아니고, 제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지만 검성은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역시 내가 직접 가봐야겠네. 아마 젊은 패기에 잘못된 선택을..."
"다녀오시죠. 결재받지 못한 서류 때문에 소림사에 몰린 사람들은 미흡한 준비에 시달리게 되겠지만 그게 뭐가 대수겠습니까."
분연히 떨쳐일어난 검성을 단숨에 도로 앉힌 청량자는, 맹주 집무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기척을 느꼈다.
벌컥
"할아버...!"
"부단주, 여긴 무림맹입니다. 사적인 호칭은 자제해주십시오."
청량자는 한숨을 쉬며 망아지 같은 맹주의 손녀를 향해 지적했다.
"부맹주, 여긴 어쩐 일로..."
"부단주보다야 제가 맹주 집무실을 찾을 일이 더 많지 않겠습니까?"
맹주의 손녀이면서, 무림맹의 무력집단 중 하나인 백호단의 부단주인 황보효선은 조부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양새로 쭈그러들었다.
"호칭 문제를 명확히 해두는 것은 좋네만, 너무 그렇게 사람을 타박하지는 말게. 부단주, 무슨 일인가?"
"예, 다름이 아니라..."
황보효선이 가져온 이야기는 놀라운 것이었다.
마교라니! 그리 다수는 아니었다지만 마교의 일부 세력이 사천을 시작으로 일부 지역에서 암약했다는 정보가 올라왔다는 것이다.
"그 중 한 놈은 아예 백주대낮에 시전에서 사람을 습격했다? 이놈들이..."
조금 전까지 청량자의 닦달에 맥을 못 추던 검성이었지만, 마교의 준동에 대한 소식을 듣자 그 기세가 일변했다.
"자세한 정보는 아직입니다만, 우선 보고 올리는 것이 시급하다 판단하여..."
"그래, 잘했네."
검성은 잠시 눈을 감고 기세를 가라앉혔다. 흥분해봐야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도 남을 나이가 아닌가.
"우선 파악된 정보로만 얘기해보지. 단주의 판단은 어떻다고 하던가?"
"그들의 활동이 사천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점, 한 명을 제외하면 돌출된 행동을 보이지 않는 점을 보아..."
"또 혈마인가..."
검성의 말에 황보효선의 입이 다물어졌다. 결국 마교도 혈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라서 뒷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는 말이었다.
혈마도 사파로 분류되기에 마교와의 연결이 끈끈할 것 같지만, 검성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놈은 죽을 때까지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다 죽겠지.'
후인을 키울 의사조차도 보이지 않던 인간이었다.
그 자만 죽으면 강호는 평안해진다. 그 자를 죽일 수 없는 이상, 세월이 그 자를 죽이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검성은 그것만을 소원하고 있었다.
"아직 정보가 부족하기도 하고, 언제 무력을 쓰기 시작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속단은 어렵습니다만..."
"그럼 돌발사태에는 어떻게 대처할 예정입니까?"
"이미 백호단에서 파악된 모든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교 쪽 문제는 그리 시급하지 않겠다. 절대 놓치지 않고 주시하되, 수상한 행적이 보일 경우 제압할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겠어."
백호단은 정면에서 벌이는 전투보다는 정보임무에 특화된 집단. 혹시나 무력이 부족할 수도 있다.
검성은 주작단에도 정보를 공유하고 비상시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할 것을 명한 다음, 물러나는 황보효선을 붙잡았다.
"효선아."
"예, 할아버님."
이미 보고가 끝났다면, 조손간의 사적인 대화로 여기는지 청량자로부터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할아비가 부탁이 있는데 말이다..."
검성은 마침 나타난 손녀를 사천으로 보내기로 했다.
지나가던 여인의 딱한 사정 때문에 거짓으로나마 아들 노릇을 해주는 선한 청년인데, 한 번 정도는 더 설득해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당혜원과 팽연화가 나란히 있는 모습을 보니 자지가 뻐근하다.
둘 다 내 자지를 아주 좋아하는 내 여자들이라는 사실에 자지가 뻐근해지지 않을 수가 있나?
하지만 팽연화의 입이 열리자, 내 자지는 단숨에 꼬무룩에 들어갔다.
"령 동생에게 어떻게 사실을 털어놓을지 생각은 해보았나?"
내 밀프를 한 명 줄이려는 이 사악한 계획에 치를 떨지 않을 수가 있겠냐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네가 말하지 않으면 내가 직접 말하러 갈 것일세."
"새언니, 너무 급하게 몰아세우지 마시고..."
"아가씨, 내가 나중에 끼어든 입장이라서 이렇게 말하기는 참 그렇지만, 이런 관계는 정상이 아닐세."
남편이 있는 여자 셋이 외간 남자 하나와 동시에 관계하고 있다. 사실 정상이 아니긴 하지.
"특히 아가씨는 아, 아이까지 가진 몸이 아닌가. 이런 부분을 애매하게 해두고 넘기면 나중에 더 큰 난리를 일으킬 것이 뻔해."
팽연화의 눈이 당혜원의 배를 힐끔거렸다.
당혜원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이 아기는 제가 가지고 싶어서 가진걸요. 문제될 일이 아니에요."
"혜원..."
눈물이 날 것 같다... 역시 절대적인 내 아군...
"물론 절 소홀하게 여긴다면 저도 참 슬플 것 같지만..."
"절대! 절대 그럴 일 없어요!"
눈이 급속도로 썩어들어가는 것을 허둥지둥 막았다. 당혜원도 방심은 할 수 없구나, 시발.
"아무튼 령 동생과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건 자유야. 하지만 이대로 사실을 감춘채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은 허락할 수 없네."
어떻게 할까? 무지성으로 매달려서 자지를 박아봐? 혼을 쏙 빼놓고 그냥 넘어가달라고 해?
하지만 자지가 들어가기 전의 팽연화는 자제력이 제법 있다. 보지에 물은 줄줄 흘리겠지만 결국 어떻게든 참아내겠지.
팽연화가 허락하지 않으면 내 능력으로는 절대 팽연화한테 자지를 넣을 수 없다.
'무공 수련... 열심히 해야겠다...'
언젠가 저항하는 팽연화한테 억지로 자지를 넣을 수 있는 그 날까지...!
"어찌하겠나? 자네가 어떻게 할지 정해둔게 없다면 그냥 내가 가서 직접 말하겠네."
아니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해?
"혹시... 밝히기 전까지는 못하니까 빨리 하고 싶어서 그러는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팽연화가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본다. 팩트인가?
"미뤄봐야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는 것뿐일세."
"제가 잘못 알았나보네요. 연화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사실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미련없이 팽연화의 말에 동의한 다음 계속 머리를 굴렸지만 뾰족한 방법이 나오질 않는다.
여자의 심리는 그나마 안다고 쳐도 아들한테 따먹히는 어머니의 심리까지는 모른단 말이지...!
[윤.]
그 때, 당혜원으로부터 전음이 들려왔다.
[저도 나름대로 생각해봤는데, 다른 문제에 대해서 굳이 지금 밝힐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당혜원이 알고 있는, 하지만 팽연화가 모르는 비밀 두 가지.
언소영의 존재와, 내가 혈마의 제자라는 사실.
이 부분을 덮으면 쓸만한 방법이 있는건가?
[뭔가 방법이 있는 건가요?]
[그러니까...]
팽연화의 설교가 이어지는 사이에도 당혜원은 나에게 계속해서 전음을 보내왔고, 그 계획을 들은 나는 자지가 불끈 서는 것을 느꼈다.
아, 이거면 된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제갈미령은 아들과 저녁을 먹으며 아들의 눈치를 계속 살폈다.
요 며칠, 아들이 자신에게 손을 대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까닭이었다.
'하루만 쉬어도 달라붙더니...?'
팽연화에 의해 저지당한 것을 모르고 있는 제갈미령은 아들의 갑작스러운 무관심이 궁금했다.
무공수련이 너무 힘이 들어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고...
'화 언니가 뭔가 알아차린 건 아니겠지...?'
정확히 그녀를 손대지 않기 시작한 것이 하필 팽연화가 제갈미령의 처소를 찾은 날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것도 의심해보았지만, 아닐 것 같았다.
침구류는 모조리 세탁해서 그 자리에서 말렸고, 냄새도 완벽하게 지우지 않았던가.
애초에 단서가 있어야 알아차릴 여지라도 있는 법. 절대 그럴리가 없었다.
"어머니, 많이 드셔야죠."
어느새 손이 멎은 것을 아들이 보았는지, 걱정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생각할 것이 있어서 그랬던 것뿐이란다. 걱정할 것 없어요."
아들은 안심한듯 다시 손을 움직여 식사를 계속했다.
'그래, 나에게 관심이 없어졌다면 잘 된 거야.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어미랑 몸을 섞는 일이 좋을게 뭐가 있겠어.'
제갈미령은 그렇게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아쉬움을 애써 억누르고 화기애애한 식사를 즐겼다.
근질거리는 아랫도리는 곧 진정되리라 믿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