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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푸색마-44화 (44/383)

밀푸색마 EP.44 그럴 리가 없는데...? (2)

임신이라니! 임신이라니!

물론 임신은 좋다. 누구랑 섹스를 하든, 내 최종 목적은 임신이니까.

언소영부터 제갈미령까지, 누구랑 섹스하면서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단지 중요한 건...

"시발,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야!"

당혜원이 울면서 나갔는데 상황 분석이나 하던 나 자신을 자책하며, 나는 바로 처소를 뛰쳐나갔다.

일단 대화다. 뭔가 대화가 제대로 안 된 거다.

붙잡아서 대화를 해야되는데...

'저기 있다!'

의외로 당혜원은 멀리 나가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걷고 있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당혜원을 즉시 안아들었다.

누가 볼지도 모르지만, 보면 어때? 지금은 당혜원을 챙기는게 우선이었다.

당혜원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놔줘요, 제발... 날 더 비참하게 만들지 말아요..."

상처를 받은 거다. 내 아기를 가졌다고 기뻐하면서 말했을텐데, 그럴 리가 없다고 지껄인 내가 병신이다.

뭔가 말을 해야한다, 말을...

"고마워요."

나는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을 아무거나 꺼냈다.

오답은 아니었는지 당혜원이 나를 밀어내는 손이 멈춘다.

나는 떠오르는대로 즉흥적으로 입을 움직였다.

"기뻤어요. 혜원이 말해줬던거. 나도 우리 아기 만나보고 싶었으니까."

잠시 멍한 얼굴이 된 당혜원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더니, 결국 내 목을 끌어안으며 소리 죽여 울었다.

"윤... 윤..."

내 이름을 부르며 울먹대는 그 목소리가 너무 애달프게 울렸다.

정말 미안해요. 내가 배려심이 없었어.

당혜원의 울음이 잦아들고, 나는 다시 당혜원을 안고 내 처소로 돌아왔다.

나도 약간 정신이 없기는 했지만 아마 주변에 아무도 못 봤겠지? 일단 내력을 끌어올려 주변을 수색했지만 지나가는 사람은 감지되지 않았다.

제발 못 봤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나는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당혜원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자, 흥! 해요. 흥!"

"흐으으응!"

너무 울어서 토끼처럼 되어버린 눈을 닦아주고, 콧물을 흥 풀어주고 나니 어쩐지 어린 딸 같다.

최근에는 피부가 고와진 탓인가 더 그랬다.

"왜 웃어요?"

"귀여워서 웃었어요~ 화내지 말아요~"

이번에는 잔뜩 골이 난 표정. 아가가 따로 없네, 아가가 따로 없어.

나는 슬슬 놀리는 것을 그만두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음, 먼저. 우선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나도 정말 혜원과 아이를 낳고 싶기는 했어요."

그리고 하나하나 설명을 시작했다.

당혜원은 엄연히 남편을 가지고 있는 여자고, 관계를 갖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생기면 곤란할 거라는 점.

그렇다고 앞뒤를 맞추기 위해 당혜원에게 남편과 자도록 시키고 싶지도 않았다는 점.

"그래서 내 무공 중에 정어법이라는게 있는데..."

정액에 애초에 아기씨가 섞이지 않도록 하는 특수한 대법을 걸어둔 상태라는 점.

그 말에 당혜원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변했다.

"아니, 아니에요. 이 아이는 정말 윤의 아기에요... 믿어줘요 제발..."

"믿어요. 나 말고 다른 남자랑 잤다는 의심은 손톱만큼도 안 했으니까 안심해요."

사실 나랑 잔 것 자체가 불륜이지만 그건 넘어가자. 당혜원은 이제 내 여자다.

"아무튼 일단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는 부분은, 나는 혜원과 아기를 갖는게 싫었던게 아니에요."

"그럼...?"

"혜원이 각오를 다지고, 준비를 한 다음 진심으로 아기를 가져도 된다고 허락하면 대법을 풀고 관계를 가질 생각이었어요."

말장난인줄 알았던 '임신하겠다' 라는 말이, 설마 정말로 임신하겠다는 의사표시인지 몰랐던 내 실책이다.

애초에 그런 부분을 제대로 설명 안 했던 잘못도 있고.

"아이를 가지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요?"

"어차피 은비대는 제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조직이에요. 저는 어디까지나 오라버니의 의중에 따라 그들을 제어하는 존재였을 뿐이죠."

딸도 이미 혼자서 잘 살고 있겠다, 남편은 아무래도 상관없겠다, 이대로 따로 나가서 살 계획이었다고 했다.

"당 가주가 방해를 하진 않을까요?"

"..."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니, 당 가주가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남편의 본가가 전장이라고 했죠? 그 쪽이랑 관계가 많이 불편해질까요?"

"그 쪽은 걱정없어요."

당가가 어려울 때나 아쉬워서 손을 잡았던 거지, 당가가 세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지금에 와서는 손을 끊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한다.

즉 문제는 당 가주 뿐이라는 건데...

나는 어느새 걱정이 내려앉은 당혜원의 얼굴을 보고, 두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일단 같이 고민해봐요. 우리 아기가 생겼으니까,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줘야죠."

"윤..."

일은 벌어졌다. 아마 아이를 지우는 방법도 있겠지만 이미 들어선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는 없다.

"임신한지는 얼마나 됐다고 해요?"

"대충 2개월 정도일 거라고 했어요..."

사천에서도 꽤 이름이 난, 부인과로는 특히 더 유명한 여자 의원이라고 한다.

아마 거의 틀리지 않을터. 즉, 안정기인 5개월까지는 앞으로 약 3달이 남았다.

'보테배 섹스는 못 참지!'

지금은 쏙 들어간 이 배가 자라나는 내 아이를 품고 부풀어오르는 상상만 해도 자지가 미쳐버릴 것 같다.

물론 보테배 섹스만 생각하고 안 지운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당혜원의 배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자, 어쩐지 친숙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아직 얼마 자라지도 않아서 아무 느낌도 없을텐데, 기분 탓인가?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희미하지만 틀림없이 느껴진다. 꼭 등선공의 내력이랑 닮은 것 같은 이 존재감.

물론 내 내력이 자주 드나들기는 했지만, 매번 전부 내 몸으로 돌아오고, 당혜원의 몸에는 그 내력이 남아있을리가...?

'있다.'

당혜원에게 몽환초로 중독당했던 두번째 날, 내가 정신을 차렸던 그 순간.

분명 등선공의 내력이 정액에 실려서 당혜원의 몸 속으로 들어갔었다.

그 정자가 만약에 살아남았다면? 어쩌면 그 정액에 실린 내력이 정자가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그 잔재가 지금 느껴지는 내력이라면?

일단 논리적으로 앞뒤는 맞는다.

"윤... 무슨 일 있어요...?"

내가 손을 배에 얹은 상태로 표정이 심각해지자 다시 불안해진 모양인지 당혜원이 우물쭈물 물어왔다.

"별 일 아니에요. 우리 아가가 어떤 경위로 생겼는지 짐작가는 곳이 생겼거든요."

그러자 당혜원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역시 내가 믿는다고 해도 바람 의혹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보다.

"나도 내가 배운 무공에 대해서 완벽하게 안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아무래도 사부님께 확인을 받아야할 것 같아요."

"그럼 사부님을 즉시 당가로...!"

당혜원은 그렇게 말하다가 사부가 누군지 생각이 난 듯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나는 그 미간을 살살 만져주면서 도로 폈다.

어허, 사부 생각은 태교에 안 좋아요.

"사부님이 그렇게 싫어요?"

"윤은 몰라서 그래요..."

알고보니 사부는 옛날에 전 무림을 아우르는 처녀 킬러였다는 모양이다.

정사파를 가리지 않고 예쁜 처녀를 노리는 사부를 막아낼 방법이 없어서, 당시에 조혼이 유행했다고 하니 말 다한 셈.

몸가짐이 단정하지 못한 처자에게는 마치 호환마마마냥 혈마라는 이름이 입에 오르내렸다고 한다.

사부님... 제자가 부끄럽습니다...

"제가 나중에 적당히... 기회가 되면 사부님께 물어볼게요. 어차피 급한 일도 아니니까..."

당혜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에요. 저는 윤이 싫어하는 줄 알고... 첫 아이인데..."

"..."

"왜 그래요?"

그러고보니까 이것도 말을 안 했었지.

"혜원, 놀라지 말고 들어요, 실은 이미..."

언소영도 임신 했으려나?

언소영은 남편과 같이 쓰던 침실에 혼자 누워서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세가의 가솔들 몰래 찾은 의원에게 임신이 분명하다고 답을 받은 뒤로는 하루에 몇 번씩 시간을 내서 이렇게 휴식을 취해주고는 했다.

이제 1달 정도 더 있으면 서서히 배가 두드러지게 불러올 터.

나가서 살 장원도 이미 구해두었고, 그녀의 뒤를 따를 시비들도 업무를 서서히 넘기고 있었으니, 순조롭게 떠날 준비가 되고 있었다.

다행히 며느리인 종리소소는 제법 일을 배우는 속도가 빨랐고, 앞으로 보름 정도만 더 가르치면 문제없이 안주인 노릇을 맡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며느리가 가모로서 식솔들을 통솔하고 있는 덕분에, 그녀가 편히 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아직 한창 일할 나이인 그녀였지만, 지난번 사천에서의 사건 이후로 가솔들은 언소영이 휴식을 취하면 그러려니 하고 굳이 그녀를 찾지 않았다.

사고뭉치인 그녀의 두 아들을 제외하면.

"어머니!"

"이 멍청아, 어머니 쉬고 계신데!"

쌍둥이인 두 아들은 이제 곧 스물이 가까운데도 하는 행동이 아직도 아이 같았다.

듬직하게 자란 큰아들과는 많이 달랐다. 막내들이라고 응석을 받아주면서 키운 것이 잘못일까?

언소영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창아, 홍아. 무슨 일이냐?"

"어머니, 들어보십시오. 무림맹에서 서신이 왔는데 말입니다..."

겨우 일 각 늦게 햇빛을 봤다는 이유로 동생이 된 남궁홍이 구겨진 서신을 내밀었다.

"구룡쟁패... 초대장...?"

"무림맹에서 직접 초대장이 왔답니다! 그것도 저만 빼놓고! 창 형님에게만 말이죠!"

"그러니까 이 형님이 너보다 더 잘나서 무림맹에서 와달라고 청한 것 아니겠느냐!"

옥신각신 다투는 두 아들의 다툼이야 늘 있던 일이고, 언소영은 구깃구깃한 서신을 펴들고 내용을 꼼꼼히 읽었다.

'최근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태와 관련하여...'

본래 구룡쟁패는 특별히 초대장을 발부하는 일이 없었다.

구룡이라는 명예를 원하는 사람은 많았고, 주최를 맡은 무림맹에서는 일시, 장소 등을 고지하는 것으로 끝날 뿐 따로 출석을 요구하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남궁창을 비롯한 일부 후기지수에게는 참석을 권고하는 것으로 보아, 무림맹은 지난 혈마지재 사태를 염두에 두고 있는 듯했다.

서신을 읽어본 언소영은 무림맹의 노림수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남궁창은 혈마지재 가운데 한 사람.

당장은 혈마의 천하제일고수라는 면모가 강조되며 혈마가 기재라고 인정한 이들에게 선망의 시선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의심의 시선이 싹트기 시작할 것이 분명했다.

[왜 저 녀석들을 무사히 돌려보낸 거지? 혈마는 사파 중에서도 악질이 아닌가?]

[혈마에게 충성이라도 맹세한 것 아니겠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사악한 금제라도 걸어서 되돌려보냈을지도 모르네!]

의심이야 하자면 끝도 없는 것. 이대로 방치해서 득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혈마지재라는 것 자체가 세인들의 추측의 영역이고, 혈마 본인은 그들에게 그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 불확실한 것보다, 새롭게 뽑히는 구룡의 이름으로 그들의 존재를 덮어버리는 것이 목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기혼자이거나, 불혹(40세)이 될 경우 기존에 있던 구룡이 빠지고, 새롭게 구룡쟁패에서 비무를 벌여 구룡을 뽑는다.

지금 구룡의 빈자리는 총 여섯.

세인들의 시선을 돌리는데는 충분한 숫자였다.

'상공...'

어쩌면 강윤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엄청난 기세로 실력을 늘려나가고 있던 강윤이었으니, 어쩌면 지금쯤 구룡을 노려볼만한 실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그녀 쪽에서 강윤을 만나러 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금방 깨달아야만 했다.

남편을 잃은지 꽤나 시간이 지난 남궁 대부인이 부풀어오른 배를 안고 구룡쟁패에 참석한다?

세인들의 입방아에 시달릴 각오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아가... 아빠 보고 싶다, 그렇지?'

여전히 눈앞에서 다투고 있는 아들들에게는 들키지 않도록, 언소영은 애정담긴 손길로 자신의 배를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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