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30 쉿... 가만히 있어요... (1)
붉은 강기를 머금은 도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팽연화 이외의 사람이 이런걸 날렸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소름돋을 정도의 존재감을 뿜어내는 그 도를 막아내는 사람이 사부가 아니었더라면 난 즉시 오줌을 지렸을테니까.
도는 마치 빨려들듯이 사부의 손 안에 잡혔다.
사부의 손 역시 시린 하얀색의 강기로 빛나고 있었다.
"쯧, 이기어도(以氣御刀)라... 솜씨가 제법이야."
솜씨가 제법이라고 한 것치고는 사부는 한 손으로 도를 잡아내고 있었다.
어쩌면 사부의 손에 빨려들어간 것이 아니라 나름 피해보려고 애를 썼는데도 사부한테 투로를 모조리 읽히고 잡힌 건지도 모른다.
그저 추측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한 수의 교환은 내 수준과는 너무 큰 차이가 났다.
붉게 빛나는 강기가 서서히 명멸하더니 곧 빛을 잃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평범한 도.
"주운 물건은 임자에게 돌려줘야겠지?"
사부가 손을 털어내자 도가 빠른 속도로 폭사해 날아갔다.
마치 엉겨오는 강아지를 상대한 것처럼 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사부도 한순간 몸을 경직시킨 걸로 봐서는 나름 집중해서 대응한 것이 확실했다.
"사부님..."
"미안하다, 제자야. 이거 들켰을 것 같은데."
아.
이제 난리나고 뒤집어지면 다들 알겠구나. 내가 없어졌다는거.
"...어떻게 합니까?"
"...모르겠다."
아잇, 싯팔.
"일단 여길 벗어나고 보자꾸나. 지금 바로 돌아가는건 분명히 악수다."
하긴, 팽연화도 사부를 어떻게 못했는데 여기서 뜬금없이 내가 돌아가면 부자연스럽긴 하겠지.
나는 한숨을 쉬고 능공허도로 하늘을 달리는 사부의 옆구리에 얌전히 매달려있었다.
고천은 순간적으로 주변을 휩쓴 강렬한 존재감을 느끼고 일어나자마자 무심결에 검을 쥐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자신 이상의 절대고수가 뿜어낸 기파의 존재감.
아마도 팽연화가 틀림없었다.
당가 내의 무공을 익힌 이들은 모두 그것을 느꼈는지, 여기저기서 우왕좌왕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인! 괜찮소!?"
바로 옆에 붙어있는 건물에서 제갈미령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황급히 제갈미령의 처소와 연결된 문을 열어보았지만, 이미 텅 빈 상태였다.
고천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제갈미령은 곧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단, 제갈미령 본인에게는 그리 달갑지 못한 형태로.
"현아, 현아! 어디 있니! 현아!"
넋이 나간 것처럼 아들을 찾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 고천은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데려다 놓은 아들의 대역까지 어미의 가슴을 찢어놓고 있다니.
아내가 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고천은 제갈미령에게 나는듯이 달려갔다.
"부인, 부인! 진정하시오!"
"상공... 우리 현이가, 또 사라졌습니다! 우리 현이가... 흐윽...!"
"진정하시오. 괜찮을거요. 납치한 자도 죽일 생각은 없으니 납치한 것 아니겠소? 우선 침착합시다. 당신이 침착해야하오."
고천은 최선을 다해 제갈미령을 달랬지만, 제갈미령의 눈물은 그치질 않았다.
무의식중에 진짜 고현의 죽음의 기억이 일어나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고천은 알리가 없었고, 그저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이상의 일을 할 수 없었다.
그 때, 세가 전체를 잠에서 깨운 장본인, 팽연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팽 여협! 무슨 일입니까?"
"나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괴인과 멀리서라도 교전을 벌인 팽연화가 그나마 가장 정보가 많았기 때문에, 고천은 우선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능공허도를 쓰는 괴인이란 말입니까?"
"틀림없습니다. 내가 이기어도로 공격해도 허공에 꼿꼿이 서서 막아내더군요. 대략 10장은 되는 높이였습니다."
능공허도는 세인들의 입으로나 전해들을 수 있는, 장삼봉이나 달마 같은 전설적 인물들이나 쓸법한 기예였다.
눈앞의 팽연화 역시 능공허도는 꿈도 못 꾸는 처지.
"그렇다면...?"
"적어도 삼존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현승대사는 아마 어렵겠지요."
오절의 수좌(首座)인 소림의 고승, 현승이 어렵다면 삼존 이외에는 가능성이 없다.
"혈마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합니다."
마교의 주인, 신마가 갑자기 이런 곳에 나타날 가능성은 희박하고, 검성이 갑자기 미치지 않고서야 당가에 침입해서 사람을 납치할리도 없다.
"혀, 혈마...?"
팽연화는 창백한 얼굴로 중얼대는 제갈미령을 보고 아차 싶었다.
"서, 설마 남... 남색..."
혈마라는 이름에 납치라는 단어가 붙으면 자연스럽게 범해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제갈미령조차 금방 도출해내는 답이 아닌가.
팽연화는 아무래도 고현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외부에 함구해두는 편이 좋겠다고 결론지었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혈마를 상대로도 어느 정도 맞설 수 있을만큼 강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날린 한 수라고 해도 그녀의 진력을 담은 이기어도가 단숨에 패퇴하지 않았더라면.
팽연화의 애도(愛刀)를 감아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파르르 떨렸다.
평야에 도착한 나는, 우선 기수식부터 취했다.
사부도 본인 실수로 일이 꼬여버린 것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았고, 이런 일은 굳이 왈가왈부해봐야 좋을 것이 없다.
어차피 벌어진 일로 입씨름을 해봐야 감정만 상하지. 감정이 상하면 손해를 보는 건 100% 나고.
사부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자잘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오너라."
그저, 선공을 종용할 뿐.
나는 보법을 밟으며 사부에게 접근해들어갔다.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자 즉시 일보삼권.
빠르게 날린 세 개의 권격을 사부가 손을 들어 막을 것 같자 바로 권을 회수해서 왼손으로 장력을 날렸다.
칼처럼 손에 날을 세운 사부가 장력을 갈라내는 사이, 몸을 바짝 숙여 접근해서 권을 올려친다.
뒤로 몸을 빼서 회피한 사부에게 바로 각법을 날렸지만 사부는 내 다리를 잡아서 그대로 던져버렸다.
사부는 대체로 방어에 전념했고, 지풍이나 장력을 간간이 쏘기는 했지만 충분히 내 수준에서 방어하거나 회피할 정도의 위력이었다.
알겠다.
황보효선과 싸운 이후 제대로 몸을 써볼 기회가 없어서 몰랐지만, 이제 분명히 알았다.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이게 내 뇌피셜이 아닌가 고민도 했지만, 난 분명히 강해졌다.
좀 더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형태로 무공이 전개되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게 일류고수가 무(武)를 바라보는 지평이었다.
이런 환희가 겉으로 드러났는지, 사부가 내가 날린 권을 그대로 받아서 여력을 흩어버리더니 씨익 웃었다.
"많이 늘었구나."
"감사합니다. 사부님 덕분입니다."
"흥, 어디 엉뚱한 곳에서 늘려온 실력으로 공치사할 것 없다."
"어차피 사부님이 아니었으면 산을 내려오기도 전에 어떤 식으로든 죽었을 겁니다."
황보효선이 나한테서 킬을 딸뻔한게 몇 번인데.
"네 생각이야 네 마음이지. 어찌 되었든 많이 늘었다는 건 사실이다."
"..."
"고천에게 무공을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드디어!
당가 체류의 허가가 떨어지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부의 말은 듣기 썩 달가운 말은 아니었다.
"문제는... 어떻게 돌아가느냐다만..."
지금 사부와 나의 힘 차이는 개미와 사람만큼 차이가 난다. 물론 개미가 나.
그런 사부에게서 어떻게 벗어났느냐는 의혹을 잠재울만한 개연성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재수없으면 제자라는걸 들키는 수가 있는데...'
들키면? 동네방네 소문은 다 나고 정파 무림의 모든 인간들이 달려들어서 나를 죽이려고 들겠지.
색혈마 시즌2를 누가 반기겠어. 아마 검성은 황보효선을 데리고 와서 신나게 칼춤을 출지도 모른다.
1편만한 2편이 드물다고 아무리 외쳐봤자 아무도 안 들어줄 거고.
하오문을 총동원해도 소문이 나는 것은 절대 막을 수 없...
"아, 하오문!"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겨야지!
나는 혈마의 제자라는 누명(정보-팩트다)을 피할 방법을 사부에게 설명했고, 사부는 귀찮지만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일 거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난 만약을 대비해서 인근 하오문 거점의 위치를 사부로부터 전달받고 혼자서 신법을 펼쳐 다시 당가를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사부는 고작 이 각만에 도착한 거리였지만, 내 발로 가려면 적어도 한나절은 걸릴 것이었다.
밤도 깊었기 때문에 솔직히 발 밑도 불안정해서 그보다 더 지체될 가능성도 있었다.
나는 발 밑을 유심히 보고 달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행복의 총량이라...'
내가 오늘 사부에게 묻고 싶은 것은 무공에 관한 것도 있었지만, 또 하나가 있었다.
이대로 밀프 섹스를 계속해나가도 될 것인가.
그녀들을 아내, 어머니에서 여인으로 만드는 이 생활을 계속해나갈 방향성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결코 그만둘 생각은 없었지만, 밀프 섹스로 불행해지는 여자는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언소영은 남편이 이미 죽었고, 당혜원은 남편과 애초부터 소원한 사이였다.
근데 만약, 제갈미령처럼 정말 따먹고 싶은데 남편과 금슬이 괜찮은 여자는 어떻게 하지?
[나는 지금까지 하룻밤을 보낸 여자들을 두 번 안은 적이 없다. 그래서 잘 모르겠구나.]
처녀막 킬러답게 처녀막을 관통하고 섹스를 충분히 가르쳐준 다음 버렸다고 한다.
솔직히 나보다는 사부가 더 쓰레기지수가 높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언소영은 네게 단순한 쾌락이 아닌, 애정을 느끼고 있더구나.]
사부의 의견은 이랬다.
밀프 섹스의 결과 그 밀프가 내게 애정을 느끼고 남편과의 사랑에서보다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된 것 아니냐고.
꼬추 새끼들이야 조금 고통받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알 바 아니라고. 나도 그 부분은 완벽하게 동감이었다.
[색천문의 오랜 역사 속에서, 모든 조사들이 색마의 길을 택하지는 않았다]
등선공은 섹스로 강해지는 부분을 거르더라도 충분히 천하에서 손꼽히는 심법이었다.
평생 혼자서 살거나 아내와만 잤던 조사들도 제법 있었다는 모양이었으니까.
처녀에 환장하는 사부와 밀프에 환장하는 내가 사제지간으로 만난 것도 굉장히 낮은 확률이었을 것이다.
[그런 조사들처럼, 색천문의 후계인 네게 등선을 추구하는 것 이외에 내가 원하는 것은 없다.]
[단 그 밀프...? 라는 부류들을 안고 싶다면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듯 싶구나.]
그래도 사부의 조언 덕분에 방향성은 잡았다.
요점은 내가 꼴리는 밀프들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주면 되는 거다.
그 밀프들이 내 자지에 사랑받는 생활을 스스로 원할 수 있도록.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나니 한결 가슴 속이 편해졌다.
'돌아가면 상황 정리되는대로 당혜원한테 자지 박아줘야지.'
생각한대로 굴러가기만 하면 별 문제는 없을 거고... 금방 관심은 거둬지고 당혜원이랑 섹스각을 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졸졸졸졸
아랫도리가 뻐근해진 감각이 불편해져서 느릿느릿 가는데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잘 생각해보니 사부가 날아올 때 아래쪽에 개천이 있었던 것 같다.
"혹시 모르니까 물이나 먹고 가자..."
아미산을 내려오다 겪은 트라우마가 다시 생각났다. 개좆같은 물부족.
소리를 따라 수풀을 헤치며 들어가보니 역시 내 기억이 맞는지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손을 모아서 물을 몇 번 떠 마시고 가려는데, 조금 먼 곳에서 물이 첨벙이는 소리가 났다.
'짐승인가?'
이 시대는 성 밖으로 조금만 멀리 나와도 심심찮게 동물들이 서식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시대였다.
나름 무공의 고수가 되었기 때문에 짐승의 습격 따위는 딱히 걱정할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안력을 집중하고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오우야..."
하느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야한 굴곡을 자랑하는 새하얀 여체였다.
방석이 필요없을 정도로 투실하게 살이 붙은 엉덩이.
미끈하게 빠진 허리, 약간의 애교뱃살.
손가락이 파묻힐 것 같이 부드럽게 생긴 칠칠맞은 젖탱이까지.
거뭇거뭇하게 털이 난 계곡까지 눈에 담고 나니 안 그래도 당혜원 생각으로 살짝 힘이 들어갔던 자지가 불끈 치솟았다.
얼굴은 어떤가... 몸에서 얼굴로 시선을 옮기는 그 순간,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져서 생각할 것도 없이 옆으로 몸을 굴렸다.
다음 순간, 내 바로 뒤에 있던 아름드리나무에 동전만한 구멍 대여섯개가 뚫리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한 나는, 즉시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을 뒤로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