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29 안고 싶어요... (3)
잠깐 이상한 여자가 다녀가서 머리가 아팠지만,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에 일단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밤에 사부가 오고, 추후 어떻게 하자는 얘기가 반드시 오갈 것이다.
한동안 여기에 있으면서 고천에게 무공을 배운다거나.
다 내려놓고 사부를 따라가서 다시 산 속 어딘가에서 수련을 한다거나.
참고로 후자는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었다.
어차피 등선공의 수련에는 섹스가 필수. 기왕이면 내가 안고 싶은 여자들이 있는 곳에 머무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아직 당혜원밖에 못 먹었어...'
당혜원은 물론 매력적인 여자였다. 하지만 나머지 두 명을 못 먹은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애초에 당혜원은 이틀, 혹은 사흘에 한 번 올 뿐이라서 안 오는 날에는 베개를 눈물로 적시고 있단 말이다.
'아니, 눈물은 사실 뻥이고.'
아무튼 여기에 남기 위해서는 사부에게 여기에 있으면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어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황보효선과 겪은 실전은 굉장한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생사를 넘나드는 싸움 속에서 얻어진 경험은 사부와 몇 번이나 벌였던 대련보다 질적으로 나았다.
사부가 알려준 반쪽짜리 이론이 실제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되고 변형되는지 몸으로 체험한 셈.
'중간에 검이 바뀐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호재였어.'
거검을 쥐고 있을 때는 강검의 고수처럼, 연검을 쥐고 있을 때는 쾌검의 고수처럼 황보효선은 나를 몰아붙였다.
덕분에 질뿐만 아니라 양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용조각이 빗나간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다 추억이라, 그 말이다.
'하지만 역시 빡치니까 다음에 만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따먹어야지.'
사실 안 빡쳐도 따먹을 거지만. 그 젖탱이를 보고 안 따먹을 수가 있겠냐고.
아무튼 그렇게 초식 쪽에서는 나름 진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내공이 말썽이었다.
일신우일신하며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던 내공이 요즘 들어서 그 성장세가 10분의 1이하로 둔화되어버린 것이다.
당혜원 왈 이 정도 성장도 엄청난 거라고 하지만...
'절정고수가 되서 그런가?'
사부가 말하기로는 내 육체는 내공이 없을 때도 절정고수와 맞먹을 정도로 혈도가 활짝 열려있는 상태라고 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절정고수가 된 다음에는 남들과의 차별점이 없어진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는 것.
결국 답을 줄 사람은 사부 뿐이었다.
사부에게 올바른 성장 방향을 조언받기 위해서는, 그리고 내 해피 섹스 라이프를 지키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 최대한 내가 가진 것을 정리해둬야한다.
사천당가 가주 집무실.
당가의 가주인 당조명은 당혜원에게 받은 서류의 내용을 잡아먹을 듯이 읽고 있었다.
"이름 강윤, 나이 스물둘, 출신 불명, 무공수위 불명..."
아무리 잡아먹을듯이 읽어봐도 불명이라는 글자가 다른 글자로 변할 일은 없었다.
당조명은 서류를 내리며 당혜원에게 도끼눈을 떴다.
"이게 전부냐?"
"네, 오라버니."
당혜원은 냉큼 대답했다.
"본명과 나이, 그 외에는 아무 정보도 없는 것이, 정말 은비대의 결과물이냐고 물었다."
"죄송하지만, 맞아요."
당조명은 미간을 짚었다. 울화가 치미는 것을 참고 또 참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노성을 토해내고 말았다.
"참 훌륭한 조사 결과로구나! 내가 지시한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생각하느냐? 열흘이다, 열흘!"
당혜원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 정도면 그냥 물어봐도 알려주겠구나! 이따위 결과물을 들고와서 정보를 책임진다고 할 수 있겠느냐?"
"...면목이 없어요. 하지만 고천이 생각보다 뛰어난 고수였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뭐라?"
고천, 고천! 그 자가 뭐기에!
알량한 무공 몇 수를 믿고 감히 사천당가의 가주인 자신을 기세로 겁박한 고천을 떠올리니 천불이 일었다.
"그 대역에게 접근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어요. 죄송하지만 오라버니, 그 대역에게 더는 시간낭비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좋지 않다?"
"고천은 그나마 괜찮지만, 제갈미령이 알아차리면 일이 까다로워집니다. 잘못하면 제갈세가가 엮일 수도 있어요."
지금은 조용히 살고 있지만, 옛날의 제갈미령은 삼봉의 일인이자, 그 중에 으뜸으로 평가받았다.
그 미모는 물론이고, 뛰어난 지략과 무공을 한몸에 갖춘 일대 재녀였다.
명문가의 자손이 아닌 고천과 결혼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탓에 가문과 소원해지기는 했지만...
'아들이 얽히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아들의 죽음으로 반쯤 제정신이 아니게 된 여자였다. 아들의 뒷조사를 한다고 알게 된다면 친정의 힘을 빌려 압력을 넣을 가능성도 상당했다.
그리고 제갈세가는 엄연히 당가보다 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렇게 당조명이 납득하는 기색을 보이자, 당혜원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는 고가표국을 파보는 편이 더 확실하지 않을까요?"
고가표국, 고천이 맨손으로 일구어낸 터전.
정확히 어떻게 할지는 알 수 없어도 그 고천의 터전을 헤집는다는 것은 매우 매력적으로 들렸다.
평소답지 않게 적극적으로 방향성을 제시하는 당혜원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당조명은 동생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기로 했다.
당혜원은 가주 집무실을 물러나오면서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윤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겠지?'
고가표국을 파본다는 얘기는 적당히 갖다붙인 이야기였다. 이대로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보면 또 덮어버릴 방법이 나올 터.
사실 이제 그 따위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혜원은 더는 오라비에게 시달릴 생각이 없었다.
최우선순위는 강윤의 안위.
그 다음이 자신이나 딸, 당가의 안위였고 당조명이나 남편에게는 관심을 끊을 작정이었다.
그녀가 지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는 강윤에게 사랑받는 것을 제외한다면 단 하나였다.
가모, 팽연화를 어떻게 하면 강윤이 자빠뜨릴 수 있을까?
처음에 강윤이 다른 여자까지 탐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섭섭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강윤을 상대할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은 이삼일에 한 번.
강윤에게 그 정도의 방사는 너무 부족한 듯했으니, 비는 시간에 팽연화를 안는다고 해서 자신에게 손해될 것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팽연화에게는 호감을 품고 있기도 했고, 치졸한 성격의 오라버니에게 고통받는 것을 측은하게 여기고 있기도 했으니까.
'새언니라면, 괜찮을지도...?'
자신처럼 강윤의 여인이 되어 사랑하는 사내에게 안기는 행복을 깨닫는다면, 팽연화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당혜원은 자신의 단전에 꿈틀대는 내력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윤과 방사를 할수록 내력이 정순해지고 커지고 있어...'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원래 그런 특성을 가진 무공이라고 했다.
방사를 통해 강해지는 무공이라니, 마치 마공 같았지만 그녀의 단전에서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당가 비전신공의 내력뿐이었다.
다른게 있다면 예전보다 눈에 띄게 강력해졌다는 사실뿐.
'이걸 어떻게 새언니한테 써먹을 방법은 없을까?'
가문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가진 팽연화.
강윤이 사용하는 신비로운 무공.
이 두 가지를 잘 엮을 방법이 생각날 것도 같은데, 쉽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당혜원은 길 한복판에서 머리를 싸맸다.
어둠이 깊어오고, 달도 뜨지 않은 칠흑 같은 밤이 왔다.
이제 곧 사부가 오겠지.
당혜원에게는 혹시나 찾아올까봐 오늘은 조금 쉴테니 안 와도 된다고 얘기해두었다.
뭔가 길에서 끙끙대고 있던데 괜찮으려나...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나 싶었지만 말을 안 해주는데는 도리가 없었다.
딱
창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열어주자마자 사부는 마치 밤바람이 스며드는 것처럼 안으로 들어왔다.
이 정도 실력이 되려면 앞으로 얼마나 걸릴까.
무림에서 무공이라는 건 일종의 기업 핵심역량 같은 거라서 키워두는 편이 여자 꼬시기도 편할 것 같은데.
사부는 당영이 앉았던 의자에 앉았다.
"오셨습니까, 사부님."
"오냐."
가벼운 인사가 오고가고 곧 본론에 들어갔다. 먼저 무공 문제부터.
"흠, 고천이라..."
고천은 의외로 굉장한 고수였다는 모양이다. 초절정을 넘보는 최상위 절정고수 중에 한 명.
상당한 수준일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그 정도로 탑티어인줄은 몰랐는데.
사부는 우선 내 내공에 대한 문제부터 명확히 했다.
"네 내공이 늘지 않는 이유는 제대로 보았다. 절정고수에 올랐으니 이제 더는 내력 성장에 있어서 다른 고수에 비해 차별화되는 장점이 사라진 거지."
역시 그랬나.
"하지만 초식을 숙달하기 위해 고천에게 배움을 청한다... 이건 잘 모르겠구나."
"예?"
사부는 손짓을 휘휘 보여주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네가 내려간 다음, 내 나름대로 고민을 해보았다. 어떻게 하면 네 초식 운용을 빠르게 숙달시킬 수 있을지..."
초식이란 간결한 동작들이 모여서 복잡한 투로를 만들어낸 것.
"네가 어릴 적에 무공을 따로 배우지 않고 남들은 근골이 다 굳어버릴 시점에 무공을 시작했다는 점이 장애가 될 수도 있겠더구나."
간략한 동작이야 보통의 무림인은 어릴 적에 수련한 습관 덕분에 무의식중에 펼치는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뒤늦게 시작해서 무공에 습관이 덜 든 나는 쉬운 동작을 펼치는데도 생각을 기울이고 집중을 해야하니 반사적인 운용이 뒤떨어진다는 것이 사부의 추측이었다.
"생사투를 겪으면서 그런 얽매임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 수도 있다."
즉, 죽을둥 살둥 손발을 놀리다보니 무의식중에 습관이 빠르게 정착되었을 거란 말이었다.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오히려 나보다는 고천이 좋은 스승이 될 수도 있다. 그나마 경지가 비슷할테니."
경지가 비슷한 놈들끼리 비교적 진심으로 투닥대는 편이 숙달이 빠를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도달한듯한 사부는, 갑자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가자꾸나."
"예...?"
아니 여기까지 설득했는데 왜 나가...? 어디로 나가...?
"잠시 나가서 확인을 해보자는 말이다. 여기서 푸닥거리를 하다 다른 놈들 눈에도 띌 생각이냐?"
"아..."
아니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하던가.
내 불만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사부는 마치 짐짝처럼 나를 옆구리에 꼈다.
"능공허도로 갑니까?"
"그래, 성 바깥 남쪽에 평야가 있더구나. 거기서 한 번 얼마나 늘었는지 봐야 결정을 할 수 있겠다."
말이 성 바깥이지 거리가 상당할텐데, 사부는 옆집에 떡이라도 돌리러 가자는 듯이 가볍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사실 꽤 기분이 좋았다.
바람을 직접 쐬면서 하늘을 나는 체험이 재미없는 사람이 현대인 중에 얼마나 되겠는가.
안전만 보장된다면.
한편 내 표정을 알아본 사부는 기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부를 숫제 목마 취급하는구나."
"어떻게 사부님을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그저 이런 절세의 신법까지 쓰시는 사부님이 존경스러울 따름입니다."
이거 봐, 이거 봐, 이 양반 입꼬리 은근히 올라가는 거 보라고.
'칭찬 은근히 좋아한다니까...'
"이제 간다."
입꼬리가 올라간 사부는 발을 박찼고, 몸이 빠른 속도로 치솟기 시작했다.
어, 근데 조금 빠른 것도 같은데? 기분 탓인가?
"쯧."
바람소리를 뚫고 선명하게 사부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방심했구나."
사부의 불길한 소리와 함께, 저 멀리 지면에서 막대한 내력이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팽연화가 알아차렸다."
다음 순간 사부를 노리고 붉은 강기가 덧씌워진 도가 쏜살같이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