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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푸색마-19화 (19/383)

밀푸색마 EP.19 제 말이 맞지요? (1)

나는 멀어져가는 기척을 느끼면서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시발...'

용조각이 빗나가고 황보효선이 연검을 뽑아들었을 때부터 이미 글러먹은 상황이었다.

이미 그 시점부터 도주만을 염두에 두고 싸웠지만, 황보효선의 검이 너무 빨라져서 몸을 뺄 틈을 낼 수가 없었다.

검초가 눈에 익어서 그런지 나름 반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 엔딩일 것이 훤히 보였다.

그래서 황보효선을 도발하고, 돌을 던져서 황보효선 뒤쪽의 나무들을 꺾고, 최후의 순간에 바위를 폭발시켜 시야를 교란했다.

그리고 그나마 잘 닦인 길을 따라서 몸을 피하는 척하다가 교룡보로 다시 급격하게 몸을 돌려 쓰러진 나무들 밑으로 숨기.

다행히 먹혀들었는지 황보효선의 기척은 멀어져서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개같은 답정너 빡대가리년이 칼질은 존나 잘해서 하마터면 뒈질 뻔했다.

'그래도 젖탱이는 끝내줬는데...'

흔들리던 가슴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아랫도리가 발딱 서면서 피가 부족해진 머리가 띵했다.

큰 상처는 없었지만 여기저기서 피를 흘려대는데 당해낼 수가 있나.

나중에 황보효선을 만나면 화간 같은 강간을 하든 화간을 하든 일단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눈을 감고 운기를 시작하자, 음양의 두 기운이 외부의 기를 받아들여 덩치를 키우고 몸을 서서히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상된 기맥을 치유하며 신체 곳곳을 흐르던 천양지기와 현음지기가 독맥에 이르러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예상하던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를 악물고 충돌에서 비롯되는 아픔을 참았다.

'스컬그레이몬 진화였다니...'

천양지기와 현음지기가 싸워서 생겨나는 제3의 내력의 이름은 현천지기. 현재 사부가 사용하는 내력은 전부 이 현천지기로 구성되어있었다.

음양의 화합의 결과 생겨나는 이 내력은 음기로도 양기로도 전환할 수 있는 사기적인 내력이었다.

전환하지 않고 그 자체로 쓰더라도 같은 양의 다른 내력에 비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씹사기 에너지.

문제는 내가 이걸 깨달음을 얻어서 뽑아낸게 아니라 음양의 두 기운을 강제로 충돌시켜서 얻어냈다는 점이었다.

[무식한 놈... 그렇게 하고 싶었으면 정어법을 풀어달라고 말을 할 것이지...]

사부가 말하길 이런 식으로 절정의 경지에 올라가는 것은 이미 몇 대도 더 전에 사장된 방법이고, 더 안정적으로 음기와 양기가 충돌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다는데...

아니 그럼 그걸 좀 일찍 알려주던가!

현천지기를 곧바로 생산해낼 능력이 없으니, 현천지기를 소모하면 이렇게 두 기운을 충돌시켜서 현천지기를 얻어내야했다.

현천지기가 어느 정도 축적되기 전까지는 임독양맥을 사용해서 운기조차 할 수 없다.

즉, 나는 내가 메탈그레이몬인줄 알았는데 스컬그레이몬이었다, 그 말이다. 이미 이런 식으로 한 번 절정에 오른 이상, 무를 수도 없었다.

아쉽기는 했지만 이 길을 택한 덕분에 현천지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었고 덕택에 조금 전에도 위기를 넘겼다.

마지막 순간에 현천지기를 끌어올리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금이 간 바위라고 해도 지풍 한 방에 박살이 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현천지기가 갈무리되자, 다시 세 기운은 나란히 임독양맥을 따라 흐르며 전신 세맥까지 스며들어 육신을 치유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진기의 흐름에 의식을 맡기고, 무아지경에 빠져들어갔다.

"곧 당가에 도착하겠군요, 상공."

마차 바깥으로 지나치는 풍경을 보며 이지적인 인상의 여인이 말했다.

"그런가? 사천을 찾지 않은지 오래 되서 난 잘 모르겠구려."

맞은편에 앉은 중후한 인상의 사내의 대답에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겠군요. 그런데, 웬일로 당가를 찾자는 말씀을 다 하셨나요? 저야 좋지만..."

"팽 여협과 부인 사이가 돈독하지 않소? 내가 당 가주를 거북하게 여긴다고 부인까지 피할 필요는 없소."

"그런가요? 그것 참 반가운 소식이군요. 이참에 화 언니에게도 현이가 얼마나 컸는지 보여주고 싶었는데..."

여인은 웃으며 대답하는 듯했지만, 이어지는 말에 은근히 뼈가 담겨있었다.

사내가 찔끔한 얼굴로 딴청을 피웠다.

"그, 그게 말이오... 부인, 표국을 이어받으려면 표행 몇 번 정도는 해보지 않고서는..."

"아무렴요. 우리 대단하신 국주님께서 어련히 잘 판단하셨겠죠. 아, 우리 현이는 지금쯤 흙바람을 맞으면서..."

여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눈치를 줬지만 사내의 표정은 눈에 띄게 어두워져갔다.

[이 씨발놈이, 어디서 사람 뒤통수를 치려고 해!]

그 때, 어디선가 구수한 욕설이 들려왔다. 어떤 사내가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고함을 치고 있었다.

아내의 신경이 그 쪽으로 쏠리는 것 같아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사내는 곧 경악했다.

"부인! 어딜 가는 거요!"

"현아!"

여인은 아들의 이름을 외치며 달리는 마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신법을 전개해서 실랑이를 벌이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미친, 일은 시켜놓고 돈은 못 준다는게 말이나 되냐? 어?"

"자네가, 자네가 했다는 증거가 없지 않나?"

와, 이 새끼가 사람 놀리나? 잠깐 생활비라도 벌겠다고 일을 도왔더니 통수를 이렇게 치네?

"내가 했든 누가 했든 간에, 일을 의뢰한 건 너고 그 일은 끝났잖아! 왜 지랄인데!"

"어떻게 그 짧은 사이에 혼자 이 많은걸 다 옮긴다는 말인가? 자네 말고 이 일을 한 사람들을 모두 불러오게! 내 그럼 돈을 주지!"

"내가 했다고! 내가! 말귀 못 알아처먹어?"

"못 준다고 하지 않는가! 여럿이 일을 해놓고 자네 혼자 돈을 받고 도망간다면 그 자들이 돈이 없다고 내게 따질 때 난 뭐라 하면 된다는 말인가?"

"아니 이게 또 뭔 개... 소리는 아니네."

말이 된다는게 더 어이가 없다.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고 있는 내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현아."

"음?"

내 이름은 물론 현이가 아니었지만, 무심코 고개를 돌려본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를 보는 미인 아줌마를 보고 숨이 턱 막혔다.

물론 언소영, 황보효선에 못지 않은 꼴리는 밀프이긴 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던 건, 엄청나게 그리운 누군가와 재회한 것 같은 그 표정이었다.

그 여자가 느릿느릿 손을 뻗어 나를 여기저기 만져보는 상황에 적응이 되질 않아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누구도 내게 답을 주진 않았다.

"어떻게 이런, 이런 꼴로... 현아... 현아... 흐으윽..."

너무 분위기가 진지해서 '제 이름은 현이가 아니라 윤인데요?' 라고 하기가 매우매우 껄끄러웠다.

"이렇게 다쳤으면 얼른 집에 왔어야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게야... 화 숙모에게 찾아가기라도 할 것이지... 미련한 녀석아..."

"겨, 경황이 없어서..."

또 여기서 말을 맞춰주는 내가 레전드다...

"내 그러게 아직은 부족하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네 아버지가... 으흑..."

뭔가 숙모인지 아버지인지 가족관계가 계속 확장되는 이 상황이 심상치가 않아서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는데 이 아줌마 생각보다 힘이 세다.

역시 무공을 하는 사람 같은데?

"부인, 무슨 일이오."

"상공, 현이가, 현이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맞지요? 제 말이 맞지요? 현이는 분명히 살아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느새 어깨가 존나게 넓은 아저씨가 한 명 추가되었다. 상공이라는걸 보니, 설마 이 아저씨가 내 아버지(가칭)?

아저씨가 한숨을 푹 내쉬고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잠깐 안색이 변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뭔데? 뭐야?

당황하는 와중에 귓전을 묵직한 음성이 울렸다.

[이보게. 잠시 적당히 맞장구를 좀 쳐주겠나? 불쌍한 사람들 돕는다고 생각하고 한 번만. 눈앞의 여인을 어미라고 생각하고 말해주게.]

"...?"

[자, 말해보게. 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라고.]

"보, 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그렇게 말하자 조금씩 잦아들던 여인의 울음소리가 통곡처럼 커지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이봐, 거기 지나가는 양반, 이거 감동의 모자상봉 아니니까 눈물은 넣어둬, 넣어둬.

"이렇게 심하게 다치다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형산을 지나다 도적에게 습격당해 도망쳤다고 하게.]

"형산에서 도적들이 덮쳐와서 그만..."

나는 호화로운 디자인의 마차를 타고 두 사람 사이에 끼어있었다.

여자는 내 몸을 여기저기 만져보고 황보효선에게 당한 상처를 보며 눈물짓고 있었고, 남자는 내가 할 답변을 넌지시 전음으로 알려줬다.

"그러게 아직 현이는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쩌자고... 흐윽..."

"미안하오. 그래도 이리 무사히 돌아와주었으니 다행 아니오? 그러니 눈물을..."

"무사? 다행이요? 상공 눈에는 이게 무사한 것으로 보이십니까? 이 어린 것이 간악한 도적들을 보고 얼마나 두려워했을까 생각은 못하십니까?"

"그, 그러니까 다음에는 좀 더 제대로 준비를 시키겠다, 그 말이오. 내가 잘못했소."

[나는 고가표국의 국주, 고천이네. 여기 이 여인은 내 아내인 제갈미령. 잠시라도 좋으니 내 아들, 현이 노릇 좀 해주게]

고천은 자상한 남편 같았다. 계속해서 고천을 탓하는 제갈미령의 말에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받아주는 것을 보면.

그나저나 아무래도 대화의 흐름을 봐서 아들이 실종되었거나 죽은 것 같은데...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나는 고가..."

"나 제갈미령일세! 당 가주께는 죄송하지만 인사는 나중에 드리겠다고 말씀 올려주게! 그리고 깨끗한 옷 한 벌과 씻을 준비를 해줄 수 있겠나?"

이 아줌마에게서 뭔가 엄청난 치맛바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아들래미 존나 감싸면서 키워왔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당가의 문지기는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제갈미령의 이름값이 상당한 것이었는지 바로 숙소로 안내되었다.

정갈한 분위기의 숙소 한 켠에 있는 욕탕에는 이미 뜨거운 물이 담겨있었다. 이게 바로 당가 클라스...?

"어미와 같이 들어가자꾸나, 어디 다친 곳이 더 없나..."

아니, 아줌마! 미쳤어요?

아니 사실 나야 땡큐지만 저기 남편이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데!?

내가 잽싸게 고천에게 눈으로 구조신호를 보내자, 고천이 입을 열었다.

"내가 확인할테니 부인은 여기 계시구려. 벌써 약관이 넘었는데 어미와 함께 욕탕에 들어간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고천과 같이 들어가는 것도 여전히 껄끄럽기는 했지만, 제갈미령의 치맛바람으로 보아 절대 나 혼자 들어가서 씻게 둘 것 같지는 않았다.

에효, 그래, 웃자,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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