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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푸색마-18화 (18/383)

밀푸색마 EP.18 뒈져라, 이 미친년아! (4)

"그래서, 나더러 그 말을 믿으란 거요? 절정고수 둘을 죽이고 납치해온 사람들을 한 달이나 감금해놓고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고?"

"본인들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 아닌가?"

"...본인들도 잊었을지 모르는 일 아니오."

"내가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사건을 은폐한 적이 있어야 말이지."

검성은 할 말이 없었다.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검성은 혈마가 섭혼술의 대가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섭혼술은 무서운 술법이었다. 정신력이 약하거나 내력이 약한 사람은 하루아침에 머릿속을 개조당하고 시전자의 꼭두각시가 되니까.

색마의 손에 들린 섭혼술이라니, 이보다 무서운 것이 없을 것 같지만, 괴상하게도 혈마에게는 나름의 미학이 있었다.

"아우도 익혀보면 알겠지만, 그런 식으로 여자를 범해봐야 재미가 없다네."

"알고 싶지도 않소."

만약 혈마가 적극적으로 섭혼술을 써서 무림일통을 노린다거나 했다면 맹세코 검성은 정파의 전력을 기울여 그를 추살했을 것이었다.

성공하긴 어렵겠지만.

"기억을 통째로 고쳐써서 본인이 범해진지도 모른다니, 그게 무슨 재미..."

"더 할 말이 없다면 난 이만 가보겠소."

검성은 몸을 일으켰다. 혈마와 대화를 나눠봐야 결국 자신의 쾌락적인 삶을 정당화하려는 궤변만 나올 뿐이었다.

"어째, 이번에도 어려울 것 같은 모양이지?"

"팔 하나라도 가져갈 수 있을 것 같으면 시도해봤겠지만 어려울 것 같구려. 이 형, 제발 몸은 함부로 다루고 빨리 죽으시오."

"어허, 악담을 찰지게도 하는구먼. 잘 가시게, 아우님. 아, 하오문 애들이 불안해하니까 괜히 힘자랑할 생각은 말고."

"...그들이 순순히 협조한다면 앞으로도 내 검이 그들을 겨눌 일은 없을 거라고 전해주시구려."

그 말을 끝으로 검성은 이를 악물고 문을 닫고 초가를 나섰다.

또, 또 닿지 않는다.

이런 식의 숨바꼭질은 벌써 수십번이나 반복되고 있었다.

혈마가 일을 저지른 정황이 포착될 때마다 그의 손발이 되어주는 하오문을 찾아가면, 하오문에서는 미리 지시라도 받은 것처럼 혈마의 행방을 알려준다.

하오문을 소탕하지 않고 존속시키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혈마에게로 인도해주는 가장 확실한 정보통이라는 사실.

혈마를 찾을 때마다 반드시 죽이겠노라고 칼을 갈고 찾아가도, 역량 차이만 절감하고 물러나는 것이 반복되었다.

지금보다 더 젊었을 시절에는 힘이 부족해도 일전을 결하고 나서야 물러섰지만,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는 격차에는 그도 속수무책이었다.

오늘은 일검을 막힌 순간부터 알았다. 둘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교 교주 신마를 상대로도 확실히 우위를 점할 자신이 없는데 혈마와의 차이는 대체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당금 무림은 사파가 정파를 일부러 살려두고 있는 모양새라는 사실을 절감할 수 밖에 없는 격차였다.

절망감에 몸을 떨던 검성은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두 여인을 보고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대부인, 남궁 소저. 안심하시오. 이 황보모가 안휘까지 동행하리다."

"감사합니다, 맹주."

언소영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검성은 그런 언소영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었다.

애초에 오대세가로서의 교류에 큰 비중을 두지 않던 검성이었지만, 일전에 만나보았을 때보다 더 뭐랄까...

더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이다.

'감금생활을 겪으면서 얼굴이 상했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기이한 일이로다...'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을 털어버린 검성은 앞장서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아미산 반대쪽으로 유인한 손녀가 떠올랐다.

'별 일은 없겠지?'

까가가강

그 시각, 황보효선은 총력을 다해 강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상대의 경신법에 바짝 긴장했던 것도 잠시, 그녀는 점차 상대의 실력이 예상했던 것만 못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일류조차도 되지 않는 실력으로 미루어보아, 뛰어난 신법 실력은 운이 좋았거나 그의 신법이 가진 독특한 효과가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런 방심을 정통으로 찔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이후, 그녀는 결코 상대를 경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상대를 압박해들어갔다.

하지만 황보효선은 곧 새롭게 자신을 덮쳐오는 공포를 맞이해야했다.

'검격에, 반응하고 있다?'

처음에는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대단한 영약이라도 먹은 것인지 나이에 비해 상당한 내공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초식 운용은 한참 부족했다.

이 정도 실력만 되어도 젊은 층에서는 적수가 흔치 않겠지만 자신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있었다. 상대는 서서히 그녀의 검격의 움직임을 따라잡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가 쥔 검은 연검. 원래 사용하던 거검에 비하면 무게가 훨씬 가벼워 경쾌하게 초식을 풀어나가고 있는데도 상대는 치명상을 간신히 피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 돼.'

대등한 수준까지 올라오기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지만, 급속도로 올라오는 실력에 황보효선은 발 밑을 잡아채이는 것 같은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 살초를 동원해서 상대를 죽여야하는가.

상대가 정말 무고한 사람일 가능성을 지워내지 못했기 때문에 황보효선은 갈등했다.

'응?'

그 때, 당연히 걷어낼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격이 상대의 허리를 옅게 스쳤다.

극한의 상황에서 한없이 고양되었던 집중력이 무너진 듯했다.

'역시, 절정 수준까지 실력을 따라잡기에는 모자람이 있었나?'

상대의 눈이 검의 움직임에 집중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마치 그녀의 가슴팍을 보느라 정신없는 듯한...

"어, 어딜, 보는 것이냐 이 악적!"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황보효선은 검에 힘껏 체중을 실어 상대를 뒤로 튕겨냈다.

급히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니 커다란 유방이 젖가리개도 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나마 유륜까지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천만다행일 지경으로 크게 뜯어져 있었다.

"생사가 걸린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여, 여인을 희롱하다니!"

"아니, 여협. 제가 보고 싶어서 본 것도 아니고 왜 그러십니까."

곧 능글맞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름다운 여인의 가슴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남자가 있습니까? 아니, 보기 싫더라도 결국 눈길이 가는게 사내란 말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 노골적으로 옷 안쪽까지 훔쳐볼 듯 목을 쭉 빼자, 황보효선은 왼손으로 얼른 뜯어진 가슴팍을 가렸다.

"연검을 뽑고 허리끈이 없어진 외투 앞이 벌어지니까, 눌려있던 커다란 가슴이 출렁출렁 움직이는데..."

"다, 닥쳐라, 이놈!"

"조금씩 조금씩 옷이 출렁이는 가슴에 밀려서 구멍이 커지는 광경을 다른 남자 앞에서 보여줘보십쇼. 누가 눈이 안 가나."

"닥치라 하지 않았느냐!"

노성을 지르며 검풍을 날렸지만 상대는 잽싸게 나무 뒤로 숨어서 피했다.

"구경 잘했습니다 여협! 솔직히 남편한테만 보여주기에는 아까운..."

"시끄럽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황보효선은 숨어있는 적을 향해 급하게 몸을 날렸다.

깡!

그러다 빠르게 날아오는 물체의 기척을 감지하고 검을 수직으로 세워 막아냈다.

"돌...? 잔재주를 부려야할 정도로 몰렸다는 뜻으로 이해하겠네."

상대가 돌팔매를 날리는 것을 깨닫고 황보효선은 오히려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일반적으로 무림의 고수가 돌팔매 따위를 하지는 않는다. 괜히 기력을 소모할 뿐더러 상대에게 타격을 주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투척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고수가 아니라면 상대에게 타격을 주기는 어렵고, 그런 고수라면 미리 암기를 준비하는 것이 상례.

내력이 조금 실려있기는 했지만 궤적의 변화도 크지 않고 거의 직선으로만 날아오는 이런 돌멩이 따위를 날린다는 것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내력이 부족하구나!'

젊은 나이치고는 내력이 많은 편이었지만 황보효선과 겨루기에는 내력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한 손이 봉쇄된 상태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 잔재주를 못 당할 그녀가 아니었다.

상대는 위치를 바꿔가면서 쉬지 않고 돌을 날렸지만 검으로 막을 필요도 없었다.

보법만으로 모조리 회피해내는데 성공한 황보효선은, 곧 돌팔매가 잦아드는 것을 확인하고 서서히 상대에게 접근했다.

상대의 기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판단하기는 했지만, 혹시나 감춰둔 한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에서였다.

그의 등 뒤에 그녀의 검이 꽂힌 바위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만 포기하게. 혹여 할아버님께 죄가 밝혀진다고 해도, 죄가 무겁지 않다면 개과천선하겠다고 약속하고 무림맹에 소속된다는 조건으로 내가 최대한 힘을 써주겠네."

"지랄하지 말고, 좆이나 까잡수십쇼."

상대의 천박한 언행에 황보효선은 눈살을 찌푸렸다. 중지를 바짝 세운 것도 어쩐지 불쾌했다.

"어디 한 곳 잘못 잘려나가도 원망말게!"

경고한 황보효선은 은하검법 중에 은하만천을 펼쳤다. 사방 천지가 하얗게 빛나는 검기에 휩싸여 도망칠 곳이 없을 듯했다.

아마도 상대는 팔이나 다리 중에 하나는 내놓아야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상대가 바위를 들고 돌진해오는 것이 아닌가?

'그럴 기력이 남아있었나?'

황보효선 본인도 조금 지친 상황인데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력이었다. 하지만 방심해서 검을 잃은 아까와는 달랐다.

사방을 뒤덮은 은하만천의 검기가 바위를 일점으로 노리고 들어갔다. 바위를 박살내고도 남을 위력.

그 남은 위력은 모조리 상대를 덮칠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황보효선의 판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대는 바위를 황보효선을 향해 던졌다.

이 또한 조금만 몸을 옮겨도 회피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그 때.

바위가 폭발하고 사방으로 돌조각이 비산했다. 하나하나가 내력이 실려있어 우습게 볼 수 없었다.

어느 것 하나 처음 날아온 돌멩이보다 약한 것이 없었다.

적을 공격해들어가던 은하만천의 검기를 끌어당겨 모조리 방어에 동원하고 나서야, 간신히 비산하는 돌조각을 막아낼 수 있었다.

또다시 상대에게 속았다는 분노가 머리를 지배한 황보효선은, 곧 그녀가 산을 올라온 길을 향해 몸을 날리는 상대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놈! 어딜 달아나느냐!"

바닥을 구르는 거검을 잽싸게 회수한 다음 황보효선은 상대의 뒤를 쫓아 경신법을 펼쳤다.

이 고생을 하고서도 상대를 놓치는 것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보다 고수도 아니고 몇 수는 아래인 상대 아닌가.

하지만 길을 따라서 아무리 내달려도 황보효선은 상대의 그림자조차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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