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푸색마 EP.15 뒈져라, 이 미친년아! (1)
하늘 저편이 다시 어슴푸레하게 밝아온다.
나는 언소영을 가볍게 안고 누워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포근하게 안고만 있던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안고 있으면 꼴리고, 꼴리면 바로 섹슨데 그럴 이유가 없기는 했다.
섹스하면서 졸려서 잠들 일도 없었다.
등선공으로 운기행공을 하니까 피로할 일도 없고, 그나마 언소영은 낮잠으로 부족한 잠을 채우는 듯했다.
나는 1시진만 자도 멀쩡하던데.
아무튼 그런데도 지금 조용히 안고 있는 것은...
"그래서 떠나야한다는 거군요..."
내가 떠난다는 사실과 그 제반 사정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언소영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찔렸다.
말해놓고보니 어쩐지 내가 먹고 버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매우매우 불편했다.
"미안해요... 나중에 상황이 안정되면 또 찾아갈게요."
"네?"
생각도 못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되묻는 목소리였다. 내가 무슨 말실수를 했나?
"음, 숨어서 찾아갈게요. 아, 남궁세가면 숨어서 들어가기 힘들지도...? 소영, 우리 무슨 신호라도..."
"또 만날 거에요...?"
"...싫어요?"
"...싫지 않아요."
아무래도 언소영은 당연히 먹버가 기본값인줄 알고 있었던 듯했다. 하긴, 색마가 다 그렇지.
"우리 아기 태어나기 전에 꼭 한 번 찾아갈게요."
배가 불룩해진 언소영과 보테배 섹스라니 상상만 해도 자지가 웅장해진다.
안정기가 대충 언제부터더라...?
"아기가 힘들어하니까... 살살 해야돼요...?"
만나면 그 날은 섹스할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바로 간파하다니. 이 여자, 강윤학(學) 학사 과정은 마친듯?
"당연하죠..."
나는 언소영의 머리를 잡아당겨 내 가슴에 가져다대면서 등선공으로 아기를 보호하면서 파워섹스가 가능하지 않을까 고민해보았다.
근데 가만 있어봐, 정말 임신은 했겠지?
나는 아까부터 계속 전시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자지를 내려다보면서 잠시 시간을 가늠했다.
응, 확률을 조금만 더 높여놓자.
그로부터 다시 1시진 남짓한 시간동안 언소영을 보테배로 만들기 위한 나의 작업이 이어지고 나서야, 언소영은 씻고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사부에게 인사를 올리고 산을 내려갔다.
사천당가.
사천당문이라고도 불리는 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가문은 드문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허어, 좀 더 오래 머무르실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을..."
"나도 아쉽소, 가주. 내가 이래뵈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라서 말이오. 갑자기 들이닥친 이 황보모의 무례를 환대로 받아주어 고마울 따름이오."
"맹주께서 찾아주셨는데 무례라니요. 이런 무례는 얼마든지 환영이니 언제든지 찾아주셔도 좋습니다."
천외삼존의 일인이자 정파제일검인 검성 황보운검이 사천당가를 찾은 것이다.
사천당가의 가주 당조명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헌데, 혹시 무슨 일로 사천을 찾으셨는지..."
"아, 별 일 아니오. 염왕도(閻王刀)라는 사파 고수가 이 일대를 어지럽히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잡으러 왔을 뿐이니."
"그렇습니까...?"
당조명은 이상함을 느꼈다. 염왕도라면 자신도 들어본 이름이었지만, 맹주가 찾아올 정도의 고수는 아닐텐데...?
"그 자가 아미산에서 남궁세가의 가솔들과 충돌했다는 증언이 있었소. 남궁 부인... 대부인이 그 자를 유인해갔다고 하오. 그리고 아직도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지."
"도와야겠군요."
같은 정파라고 불리지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사이에는 어느 정도 알력이 있었다.
무공을 스스로를 갈고닦기 위한 길로 정의한 구파일방과, 애초부터 무공을 가문의 번영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온 오대세가는 근본적인 부분에서 엇갈릴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는 구파일방이 서서히 세속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고 하고 있기에, 종종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같은 오대세가의 사람들끼리 힘을 보태줘야한다고 생각하는 당조명의 생각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마음만 받도록 하겠소. 아미산은 엄연히 아미파의 구역. 숫자가 많아봐야 경계를 당하기 십상이니."
당조명은 검성의 말에 '그것도 모르느냐' 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처럼 들렸지만 애써 찌푸려지는 미간을 폈다.
"하루 휴식으로 넘치도록 감사할 따름이오. 그럼 나는 이만 가보리다."
"살펴가십시오. 부디 남궁 대부인을 꼭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물론이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서 대문을 나서는 검성을 배웅한 당조명은 뒤에 시립해있던 여동생 당혜원을 불렀다.
"혜원아."
"예, 오라버니."
"맹주가 아미산에서 정확히 무엇을 하는지 알아올 수 있겠느냐?"
"그건 어렵습니다."
당혜원은 면목이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저 정도 되는 초고수의 이목을 속이고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가모를 상대로도 어려운 일인데 천외삼존이라면..."
"쯧..."
당조명은 불쾌한듯 혀를 찼다.
분명히 뭔가가 있다. 맹주는 오대세가의 일원이지만, 오대세가를 특별시하는 행보를 보인 적이 없다.
산하 무력집단을 하나 보내면 될 일인데, 하다못해 기라성 같은 고수들 중에 두셋만 보내도 충분할텐데 직접 왔다?
절정에 불과한 사파 고수 한 명을 잡기 위해서?
뭔가 냄새가 나는데, 그걸 캐내기 위한 시도조차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애초에 사천에서 일어난 일을 외부인인 맹주가 먼저 파악하고 도우러 왔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가 아니던가.
이것이 당금 오대세가의 말석, 사천당가의 현실이었다.
검성은 등을 향해 꽂히는 시선이 잡힐듯이 느껴졌다.
'허어, 어찌...'
마교의 습격을 받아 주요 인물들을 참살당한지 20년이 채 되지 않은 당가였다.
은인자중하며 다시 세력을 정비하는 것만 해도 바쁠텐데 자꾸 한눈을 파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조명... 가주의 그릇은 아니군.'
오대세가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무림맹주로서 정파무림의 한 축인 당가를 보전하기 위해 무림맹은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런 고민을 하려는 찰나,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가 상념을 깨뜨렸다.
"할아버님."
간편한 경장 차림에 큰 검을 등에 찬, 시원스러운 인상의 미녀가 검성의 앞에 마주섰다.
"효선아, 예는 어찌 왔느냐? 내 분명 맹으로 돌아가라 하였을텐데?"
"저도 귀가 있답니다. 할아버님께서 마두를 처단하러 가신다는데 손녀된 몸으로 마땅히 거들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돌아가거라.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니라."
이제 나이가 마흔이 넘어 차분해질 나이에도 여전히 정의감이 들끓는 손녀를 보고 검성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정의가 살아있지 않은 무림이란 그저 무법천지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가르치신 것은 할아버님입니다."
"효선아."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도 손녀, 황보효선이 물러갈 기색이 보이지 않자 검성은 생각을 바꾸었다.
황보세가의 비전신공인 성천신공이 발바닥의 용천혈로 몰렸고, 폭발적인 속도를 내며 검성의 육체를 이끌었다.
이것이 삼십육계 가운데 마지막이자 으뜸.
주위상계(=줄행랑)였다.
"할아버니이이이이이임!"
비명처럼 울리는 목소리가 서서히 멀어지고 있는 것을 느끼며 검성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 철부지를 어찌하면 좋을꼬...'
집요한 손녀의 성정으로 보아, 기어코 따라올 것이 분명하니 검성은 약간의 꼼수를 부렸다.
아예 목표의 반대쪽을 올라가는 척하면서 풀숲 사이로 숨어서 다시 몰래 방향을 바꾸면 황보효선은 헛걸음만 할 것이다.
생사대적인 혈마와의 일전을 앞둔 자신을 가만히 두지 않는 주변이 원망스러울 뿐인 검성이었다.
언소영과 영혼을 태운 임신섹스를 즐기고 나서 3일이 지났다.
나는 산을 내려가는 길이었다. 좀 멀리 돌아서.
사천 성내 쪽에서 올라오는 길은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다는 사부의 말에 따라서 빙 둘러서 가는 중이었다.
예상 밖으로 빠르게 온 검성에게 걸리면 동강동강 열매를 먹지 않고서야 분명히 뒈질테니까, 나도 찬성이었다.
아, 찬성이'었'다고.
"씨발 목말라 뒤지겠네..."
사천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도 많은데, 여기는 삼국지의 유비가 촉나라를 세운 근거지이기도 하다.
그 산이 많아서 지키기 좋다는 촉나라.
얼마나 산이 많으면 산에서 붙으면 촉나라 병사들이 위나라 병사들을 쳐발랐다고 연의에서 몇 번이나 언급하겠나.
아, 가정 전투는 인간적으로 빼자. 그건 마속의 잘못이지 군사들의 잘못이 아니잖아.
아무튼 너무 거지같이 험해서 무공을 익힌 사람한테도 쉽지가 않다는 점이 문제였다.
사천 쪽에서 올라오는 쪽이야 길을 닦아놨지만 이 쪽은 산이 아니라 무슨 정글이야, 정글.
그나마 사람이 아무리 용을 써도 건너가지 못할만한 지형에는 다리 같은 것이 설치되어있는 것이 불행중 다행이었다.
하지만 산에서 도통 내려가질 못하고 있으니 물도 곧 바닥이 나려고 하고 있었다.
"어디 물 흐르는 곳 진짜 없나...?"
나는 복면을 둘렀다. 입을 가리고 있으면 답답해지는 대신에 입 안에 있는 습기가 잘 날아가지 않는다.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 끼다가 알게된 건데 와 이게 시발 와...
쏴아아아아
뭐? 쏴아아?
"씨발 이건 100퍼 물이다! 물일 수밖에 없다!"
나는 환호하며 신법까지 쓰면서 소리를 향해 달렸다. 지금까지 계곡에 부는 바람소리에 농락당한 것이 얼마던가.
이번만큼은 물이 틀림없다고 자신하면서 달려간 그 곳에는, 물이 있기는 있었다.
"절벽 실화냐...?"
문제는 절벽 아래를 흐르는 물이라는 거지. 대충 10층 건물 높이가 될락말락해보이는 절벽은 그야말로 짱깨의 기상이었다.
"이 새끼들은 하여간 뭐든지 크네 시발 것들..."
내려갈 방법이 있나 주변을 둘러봐도 길은커녕 발 디딜 곳조차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절벽을 내려갈 궁리를 하는 것보다는 그냥 빨리 산을 내려가는게 낫겠네.
나는 흔들다리 위를 천천히 걸었다. 내력을 눈에 집중해서 멀리까지 봤는데 허술하게 만들어진 다리는 아닌 것 같았다.
사부는 능공허도로 휙휙 가겠지만 나는 절벽에서 떨어지면 죽는 비루한 실력이었다. 천천히 가는 수밖에.
그렇게 조심스럽게 절반 정도 갔을 때, 다리 맞은편에 사람이 나타났다.
혹시나 해서 자세히 보니 남자도 아니고 노인도 아닌, 끝내주게 예쁜 여자였다.
풍만한 몸매에 등에 큰 검을 찬, 활달해보이는 인상의 미녀.
언소영이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느낌이라면, 이쪽은 주말에 아들이랑 야구하러 나가게 생긴 엄마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다, 아마도 밀프. 마음 같아서는 말 한마디라도 걸어보고 싶지만 여기는 흔들다리였다.
일단 딴 거 다 필요없고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마찬가지로 천천히 나를 향해 다가오는 여자에게 최대한 시선을 주지 않게 주의하면서 걷고 있는데...
"서라."
여자가 나를 불러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