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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푸색마-3화 (3/383)

밀푸색마 EP.3 천하제일고수(색마)로 만들어주마 (3)

이자성은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을 잡아먹을듯이 흡수하고 있는 제자를 보고 내심 흡족함을 느꼈다.

남궁세가의 가모인 언소영이 딸인 남궁혜를 데리고 아미파에 있는 친우를 만나기 위해 와있다는 정보를 얻은 것은 최근이었다.

그들이 돌아가는 때를 노릴 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그였다.

아니, 제자를 둔다는 발상 자체가 그에게는 불가능했다.

그는 그 자신이 스스로 등선공을 익혀봄을 통해 등선공 자체가 일종의 결함무공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인과의 방사를 통해 진기의 균형을 올바르게 유지하는 것이 등선공의 요체였지만, 막상 등선공을 완벽하게 발휘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여체에 대한 욕정을 바탕으로 하물(下物), 즉 성기의 기맥을 발달시켜야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했는데, 혈도가 완전히 굳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는 욕정을 가르칠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자성도 실패했고, 그의 스승도 실패했으며, 그의 선대 조사들이 모두 실패했다.

그의 무공이 천하에서 세 손가락에 꼽힌다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그의 하물의 경지는 기껏해야 일류에서 상위, 절정에서 초입 정도였다.

절정고수만 되어도 한 지역에서 이름을 날리는 고수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미 초절정의 극에 다다른 이자성으로서는 미미한 경지에 불과했다.

애초에 둘로 나뉘어서는 안 될 것이 둘로 나뉘어 경지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니, 등선공이 불완전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이치였다.

등선공이 나아갈 길은 앞으로 2가지였다.

색공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평범한 무공으로서 거듭나서 등선을 노리느냐.

아니면 불가능할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이 길을 밟아나가느냐.

이자성은 색천문의 역사를 자신의 대에서 끊을 것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등선하지 못할 것이 확정된 등선공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선대 조사들 중 어느 누구도 이자성만한 경지에 오른 자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게 색마 노릇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변질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복덩이는 다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성욕을 가진 온전한 성인의 몸이면서도, 어린아이보다도 깨끗한 혈도를 가진,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인재라니!

재능에 눈이 멀어 앞뒤 따지지 않고 제자로 들이고 말았지만, 이자성은 이 제자가 설령 정파를 비롯한 자신과 원수진 세력들의 끄나풀이라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스승은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어떻게든 색도시발을 개량할 생각을 했겠지만, 자신의 제자는 그런 안배가 필요없다는 사실이 이자성을 들뜨게 했다.

"모두 기억하였느냐?"

"예, 사부님."

기마자세를 비롯하여 총 8가지 자세로 구성된 색도시발은, 내공을 느끼지 못해도 올바른 자세를 취하면 자연스럽게 혈도를 튼튼하고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묘용이 있었다.

"사람에 따라 근골이 다르고, 기맥이 다르니 개인마다 올바른 자세가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지금은 어려울 것이나, 추후에 내공을 다룰 수 있게 된다면 그 감각을 알 수 있게 될 것이야. 혈도에 흐르는 진기의 흐름을 살피는 법은 그 때 알려주도록 하겠다."

"..."

꼬박꼬박 '예, 사부님' 하고 대답하던 녀석이 대답이 없었다. 이자성이 강윤을 돌아보니 고개를 숙이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냐? 힘이 들더라도 고개를 숙이지 말고 정면을 보아야 하느니라."

가르침을 받는 첫날이니 슬슬 힘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스승에게 배울 때는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쉽사리 집중을 하지 못하고 혼이 나기 일쑤였지만, 강윤은 어엿한 성인이었고 배움에 대한 열의도 높았다.

물론 강윤은 언제 머리가 날아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초인적인 집중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을 이자성은 생각할 수 없었다.

이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 될까 고민하고 있는 이자성의 귀에, 강윤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부님. 혹시..."

"무슨 일이냐?"

"그... 지금 제가 느끼는게, 진기가 맞을까요?"

기마자세를 여전히 유지하면서, 강윤은 조심스럽게 제 아랫배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은 정확히 건원혈, 색공을 사용함에 있어 기해혈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를 짚고 있었다.

이자성은 대체 몇 대 조사가 이런 제자가 들어올 수 있도록 공덕을 쌓았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으음..."

언소영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올렸다.

무공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이후부터는 이런 일이 없었지만,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끼기에 그녀의 머릿속은 뿌연 안개가 서린 것처럼 몽롱했다.

어쩐지 평소보다 기운이 없게 느껴지는 몸을 일으키고 보니, 자신이 누워있던 곳이 상당히 낯설다고 느껴졌다.

"흡!"

그 순간, 잠이 덜 깨서 흐릿하던 머릿속에 마치 뒤통수를 후려치듯 기억이 밀고 들어왔다.

믿을 수 없이 강력한 고수가 나타났고, 그들은 남궁세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무력한 패배를 당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저항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권은 상대에게 터럭만한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혜아, 혜아는?'

그 정도의 고수를 상대로 달아날 수 있었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언소영은 기대를 버리지 못했다.

그 자의 표적은 자신의 딸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그런 무도한 자에게 딸을 넘겨줄 수 없다는 생각만은 흔들림이 없었다.

'혜아를 잡지 못해서 나를 잡아온 것일까? 나는 인질?'

인질치고는 지키고 있는 사람도 없었고, 그녀를 구속해놓고 있는 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는 문조차, 손쉽게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 내력만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면.

손발을 움직이는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지만, 내력만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떤 수작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권에 바위마저 박살낼 수 있는 내력을 사용할 수 없으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아까부터 묘하게 기운이 없고 둔하게 느껴지던 것은 내력이 봉쇄되었기 때문인듯 했다.

문이라도 열어볼까 고민하던 그 때, 그녀의 귀를 울리는 음성이 있었다.

[정신이 들었나보군.]

이자성이 보낸 전음이었다. 강윤에게 등선공을 가르치면서도 그의 예민한 감각은 다른 곳에 지어둔 초막에서의 움직임까지 잡아내고 있었다.

[내력을 쓰지 못하니 전음을 보내지도 못하겠지. 그냥 말해도 들을 수 있으니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도 좋다.]

"당신은 누구죠?"

[아, 이름을 밝히지 않았군. 미리 알았더라면 순순히 남궁혜를 내놓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나 색혈마 이자성일세.]

쓸데없는 소리에 분기가 치미는 것도 잠시, 그가 밝힌 이름에 언소영은 경악했다.

"혈마! 당신이 혈마란 말인가요?"

[거참, 왜 다들 색(色)자는 빼버리는지 모르겠군. 그걸 뺀다고 자네들이 색마에게 두드려 맞았다는 과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이자성은 볼멘소리를 했지만 언소영은 그 말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천하에 손꼽히는 절대고수 열두사람 중에서도, 선두를 다투는 세 사람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정파 무림맹의 맹주 검성과 마교의 교주 신마와는 달리 어떠한 세력도 이끌고 있지 않기에,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다른 두 사람보다 한 수 위일 거라고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강자이기도 했다.

그는 정사를 가리지 않고 미색이 뛰어나기로 이름난 여고수들을 강제로 범하고 다니는 천하의 색마였기 때문이다.

무림 전체가 그를 두려워해서, 혼전의 여인들에게만 그 마수가 뻗친다는 점에 착안해 많은 무림의 여인들이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될 정도였다.

오로지 그를 피하기 위해서.

그런 고수에게 절정고수 셋 정도는 어린아이 셋과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을 깨달은 언소영은,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을 자책할 수 밖에 없었다.

"혜아는 어떻게 되었죠? 당신이 데리고 있는 건가요? 세가의 다른 가솔들은?"

[남궁혜는 내가 보호하고 있네. 몇몇 놈이 덤비기에 치우긴 했네만... 반항하지 않는 놈들은 고이 보냈으니 염려말고.]

언소영은 이를 악물었다. 꽃다운 나이에 음적에게 더럽혀진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분통이 터졌다.

"딸을... 만나게 해줘요. 무사한지라도 확인할 수 있게."

하지만 이렇게 잡혀서 내력마저 금제당한 이상,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이런 말뿐이었다.

[미안하지만 그건 어렵겠네. 이제 사정을 알만큼 알았다면 내 용건을 해결해야할 것 같아서.]

"이미 딸아이를 욕보이고도 부족한게 남았나요? 대체 뭘 더 원한단 말입니까?!"

[아, 남궁 부인. 뭔가 오해를 한 것 같군. 나는 남궁혜를 취하지 않았네.]

그 전음성에 언소영은 한가닥 기대를 품었지만, 이어지는 한마디에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은 말이야.]

"무슨 말이죠? 설마..."

[그래, 남궁 부인이 하기 나름이란 이야기지.]

이자성의 음성이 어쩐지 조금 느물대는 것처럼 들렸다. 언소영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제게... 딸을 대신하라는 말인가요?"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압도적 강자의 불합리한 요구를 반강제로 수용하는 수치심인가, 그 외의 다른 무엇인가.

[말귀를 잘 알아들으니 편하군.]

"파렴치하군요. 강호의 명사로서 부끄럽다는 생각도 없는 건가요?"

[글쎄, 할만한 제안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남궁세가주도 오늘내일 한다고 하던데, 내가 잘못 들었나?]

언소영은 말문이 막혔다. 자신도 세가의 절정고수가 급하게 달려와 알게 된 사실을 이 자가 어떻게?

[아마 서둘러서 간다고 해도 남편의 임종은 지키기 어려울 거고, 아니지, 지금은 벌써 운명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런 부인의 정절과 장차 구룡삼봉에 손꼽힐지도 모르는 여식의 순결이라...]

"..."

[부인은 어디에 더 가치를 매길텐가? 응?]

언소영은 마귀의 속살거림에서 귀를 막고 싶었다. 하지만 귀를 막아도 전음은 여전히 들려왔다.

[남궁세가의 가모 아닌가?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라네. 아! 당장 선택하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니까 걱정말고.]

"알겠...어요..."

이자성은 선심쓰듯이 말했지만 언소영은 그 유예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출입은 자유롭게 하게. 식사도 거기로 가져다줄 것이고, 필요하다면 씻을 준비도 해주지. 멀리만 나가지 않으면 별 일 없을 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어지던 전음성이 끊겼다. 언소영은 무릎에 머리를 묻었다.

제안이 나온 그 순간부터 언소영에게 선택지는 단 하나뿐이었다.

혈마의 마수에 당한 피해자는 모두 순결한 처녀들뿐이었고, 아무리 무림이 자유롭다고 해도 명문세가의 여식들에게 그것은 너무 커다란 인생의 장애물이었다.

만약 이미 그에게 욕을 본 피해자의 어미라면 언소영에게 '그런 기회가 있다면 즉시 잡겠다'고 말할 것이 뻔했다.

같은 입장이라면 언소영도 그랬을테니까.

그리고 그 사실이 그녀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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