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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푸색마-1화 (1/383)

밀푸색마 EP.1 천하제일고수(색마)로 만들어주마 (1)

어딜 봐도 오두막이지만 상당히 깔끔한 방에서,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꼴깍

"어, 그러니까... 어르신 말씀은..."

"사부라고 부르거라."

그리고 내 맞은편에는 기막히게 잘생긴 미노년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열기를 머금고.

"예, 사부님. 그러니까, 제가... 무공을 익히기에 최적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최적?"

아니었어?

"아니, 최적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지! 네 몸은 있을 수 없을만큼 깨끗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 그... 갓난아기보다... 깨끗하다고..."

"그래, 갓난아기보다도 깨끗하다는 말이다! 무공도 익히지 않은 자가 약관이 되도록 그런 깨끗한 육신을 유지한다고? 그야말로 물과 공기만 마시고 살아도 불가능한 일이야!"

아, 그렇군요.

나는 굉장히 납득이 간다는 생각을 얼굴 전체로 표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이 할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잊어버리기에 내 뇌는 아직 쌩쌩한걸?

"다른 잡스러운 무공을 익히더라도 큰 진전을 볼 수 있겠지만, 거목이 자랄 곳에 굳이 잡풀을 심을 까닭이 있겠느냐? 우리 색천문(色天門)의 무공이야말로 너라는 그릇을 온전히 빚어낼 수 있음이 틀림없거늘!"

손가락 한 번 튕기니까 사람 대가리가 수박처럼 퍽퍽 터져나가더만.

"자, 이해했으면 어서 구배를 올리고 나 색혈마(色血魔) 이자성의 진전을 잇도록 하거라!"

어, 근데 저한테 선택권이 있기는 한가요?

물론 내 입을 통과한 것은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제자 강윤, 사부님께 예를 올립니다!"

괜히 헛짓거리하다가 대가리 터질 수는 없잖아, 안 그래?

잠깐 시간을 되감아보자.

많이 감을 것도 없고 하루만.

'축하한다! 당신은(는) <이세카이>에 도착했다!'

는 X랄, 처음에는 여기가 어딘지도 알 수 없었다.

누가 보냈는지는 몰라도 안내문구 정도는 제대로 써주길 바랐지만, 생각해보면 내 마지막 기억이 트럭(이세계 배달 전문)에 치이는 것이었으니 살려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피투성이거나, 현대복장이거나, 그런 것도 없이 말끔하게 중국풍스러운 옷을 입고 있으니 대략 견적이 나왔다. 아하! 무림이구나!

사실 이세계물 초반부를 볼 때마다 '와 이세계 가느니 그냥 지구에서 환생함. 가봤자 존나 센 놈들이랑 박터지게 싸우거나(용사루트) 인권이란 단어가 뭔지도 모르는 곳에서 X뺑이(모험자루트)밖에 더 침?' 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야! 사는게 더 좋아! 지구가 더 좋지만 아무튼 지구에서 못 산다면 이세계에서라도 살아있는게 좋아!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진리를 이렇게 몸으로 체험하게 된 셈이었다.

이제 확인해볼 것은 단 하나.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깔끔한 목소리를 낼 준비를 했다.

하지만 내 목에서 나온 소리는 굉장히 작았다.

"...태창."

어라?

"상태창..."

어랍쇼?

"상태창! 상태창! 안내창! 스탯창! 스테이터스창!"

안 나온다. 왜지?

"스아아아아아앙트애애애애애애애츠아아아아아아앙!!!!!!!!!!!!!!!!!"

파드드드득

고개를 돌려보니 뭔가 날렵하게 생긴 새가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맹금류인가?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상태창..."

응, 없어.

잠깐 눈에 힘을 풀고 어떻게든 환각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눈꼽만큼도 안 보였다.

"이세계로 가면 상태창부터 외쳐보라고 한 새끼 누구야..."

아, 그러고보니 걔들도 안 가봤겠구나. 그럼 무죄.

하지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외쳐보자.

"사...!"

"뭐하는 놈이냐!"

어딘가에서 두레박 깨지는 소리가 난다 싶더니 어느새 바닥을 구르고 있네? 넌 뭐하는 프렌즈니?

"방금 뭐라 외친 거지? 마교의 끄나풀이냐?"

"아, 잠깐, 뼈 맞았어요, 뼈, 아..."

"대답해라!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것이냐!"

좋은 질문이야. 방금 이세계로 왔다고 자각한 사람한테 건네는 질문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지.

흐트러진 초점이 점차 맞춰지자 내 얼굴이 비벼지고 있는 흙이 제대로 시야에 들어왔다. 에페페.

"아니 그게 말이죠, 형님? 제가 지금 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상태라서..."

나는 어떻게든 변명을 해보려고 했지만 다시 한 번 흙에 얼굴을 처박힐 뿐이었다.

"거짓말마라! 이런 산 속 깊은 곳까지 숨어들어온 자가 모른다고 해서 속아넘어갈줄 아느냐!"

열불이 치밀어올랐지만 어딜 어떻게 제압당한건지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참아야했다. 그래, 참자. 아니, 즐기자.

흙에 얼굴을 대고 있으니까 생각보다 시원하다는 생각에 도달할 때쯤, 죽으란 법은 없는지 청량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만해요, 아현."

"하지만, 아가씨!"

아가씨?

"그의 몸에서는 어떤 내력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해코지를 할 생각이었다면 적어도 달아날 능력은 있었겠죠. 풀어주세요, 아현."

"...네."

볼멘소리를 내는 것치고는 순순히 풀어주자, 그제야 팔다리가 움직였다.

안녕, 팔다리야? 반가워, 난 머리라고 해!

"으윽..."

"괜찮나요, 소... 공자? 일어날 수 있겠어요?"

그렇게 오래 잡혀있던 것 같지도 않은데 온몸이 저려왔지만, 해양심층수보다 깨끗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신음을 도로 삼켰다.

그 아가씨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와, 미쳤다.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는 그 얼굴은, 나 같은 새끼가 흑심을 품고 보는 것 자체가 잘못이 아닌가 싶을만큼 예뻤다.

뭔가 많이 놀란 것 같지만, 뭐 그럴 수 있어요. 길바닥에서 상태창이라고 죽어라고 외치는 사람을 보면 놀랄 수도 있는 거죠. 그쵸?

"일어... 나셨네요?"

"...그렇죠?"

설마 일어났다고 놀라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

훌륭해! 드디어 사지를 올바르게 활용해서 일어나는데 성공했어! 난 오늘부터 인간이야!

"아현의 점혈은 난폭해서, 일반인은 점혈을 풀어도 금방은 일어나기 어렵거든요. 진정시켜드리려고 했는데, 필요없게 되었네요."

"그렇군요. 수고를 끼치지 않게 되어 다행입니다."

나는 최대한 무난하게 웃어보이면서 말했다. 스마일, 스마일.

아가씨라고 불릴 정도면 어떻게든 이 갓-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도움이 될 거라는 통밥은 다행히 먹혀들 것 같았다.

"공자께선 이 아미산 깊은 곳에 어쩐 일이신가요?"

"그게 저기..."

뭐라고 설명해야될지는 이미 정해뒀다.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제가 누구인지도... 여기가 어디인지도..."

응, 기억상실로 밀어붙이면 뭐든지 다 되게 되어있어~

"이놈, 또 거짓말을!"

"아현!"

갈색 무복을 입은 여자가 검의 손잡이로 나를 겨누었다. 어, 너 여자였니?

"아가씨, 이 자는 아무리 봐도 수상합니다! 이런 곳에 사내가, 그것도 이렇게 깨끗한 복장을 하고 있는 자가 내력도 없이 올라올 수 있다니요! 게다가 기억이 없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

앗, 마지막에 하나는 구라가 맞는데.

"내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살수무공을 익힌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내력을 익힌 흔적이 없는 것도 설명이 됩니다! 세가로 압송해서 배후를 파악해야 합니다!"

"아현...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건가요? 그에게선 내력도, 내공을 익힌 흔적도 발견할 수 없어요."

"그럼 아가씨께서도 알지 못하는 살수무공을..."

살수무공이 무안단물이냐? 나는 이쯤에서 상황을 중재해보기로 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시..."

"넌 빠져있어!"

졸지에 상전의 말을 끊어버린 꼴이 된 아현이 찔끔해서 눈치를 보는 모습이 보였다. 꼴좋다.

"지금 상황은, 제 신원이 불분명하다는 점이 문제인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저도 이런 곳에 계속 있는 것은 곤란하니, 어딘가 마을... 하다못해 민가가 있는 곳까지는 갈 수 있으면 좋겠군요. 다소 신변이 억류되더라도 좋으니, 동행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저는 기억이 없으니 어디든지 적당히 데려다주시면, 그 다음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래도 중국어가 되는게 어디냐.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거지처럼 구르는 상황이라도 피할 수 있으면 된거지.

아가씨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라면 어렵지 않아요."

"아가씨!"

아현이 씩씩대며 나를 노려보았지만, 느그 아가씨가 된다는데 어쩔래? 어쩔래?

"아현, 그만해요. 우린 갈 길이 급합니다. 세가의 일원으로서 도움을 거절할 수도 없으니, 지금 바로 이동하겠어요."

"...알겠습니다."

아현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상을 쓰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눈가가 쳐지니까 조금 귀엽네.

"공자, 경공에는 조예가 없어보입니다. 그렇죠?"

"네, 면목없습니다만..."

"그럼 잠시만 참아주시겠어요?"

"예?"

"아현, 출발해요."

뭐야, 뭘 참으라는...

"흐억!"

씨발, 씨발!

아현이 갑자기 나를 짐짝처럼 들어올리더니 어깨에 걸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아가씨가 따라왔다.

야! 니들 정파라며! 이렇게 사람을 짐짝처럼 다뤄도 되는 거야?

"미안해요, 공자. 세가의 사정상 급하게 움직여야하는 상황입니다. 잠시만, 일행과 합류할 때까지만 참아주세요."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아가씨가 나를 달랬다.

"알겠... 습니다..."

한편 나는 죽을 맛이었다.

아현의 다리가 빠르게 바닥을 박찰 때마다 시야가 휙휙 바뀌었다. 높이도 상당히 높은지 착지할 때마다 혀를 깨물 것 같아 입을 열기도 어려웠다.

눈앞에 달덩이 같은 엉덩이가 흔들거리고 있는데도 마음껏 보기는커녕 위장이 뒤집히는 것을 억누르기 바빴으니 원통한 일이었다.

"거의 다 왔다. 엄살 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아현은 내가 힘든 것을 알아차렸는지 기세등등하게 지껄였지만, 막상 나는 대답할 기력도 없었다.

꺄아아아아악!

그 때,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거의 다 왔다는 아현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는지 제법 가까이서 들리는듯 했지만, 예삿일로 지르는 비명은 아닌 것 같았다.

시발, 도착하면 무슨 사파 고수라도 있는거 아냐?

고개를 들어 내려놓고 먼저 가달라고 말하려는데, 아가씨는 아현과 시선을 맞추는 듯 하더니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여 비명이 울리는 진원지 바로 옆까지 순식간에 도착했다.

"혜아야, 달아나거라! 어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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