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먹지 못했던 여사친들-293화 (293/295)

<칸쿤>

뉴욕에서 비행기를 타고 칸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밖을 나가자마자 우리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세연아.”

“네. 오빠.”

“아!!! 졸라 더워!!!”

“으아아악!!!”

시불. 그래 여기는 위도가 낮은 휴양지였지.

이렇게 더울 줄이야!

대충 온도가 30도는 되는 거 같은데, 우리는 한겨울이다.

둘 다 얼마 못 버티고 외투를 벗었는데, 이세연 셔츠에 땀이 차 있었다.

“잠시만 검문이 있겠습니다. 앞에서 조금 봐도 될까요?”

“이 오빠가 또 무슨 생각을 머리에 담고 있는 걸까?”

“별거 아니야. 여자친구 더울까봐 그래.”

나는 세연이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고, 그러자 윗가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너 지금 이거 보고 싶어서 내 앞에 선거야?”

“...서기는 섰는데. 두 개가 섰거든.”

“죽어! 인간아! 죽어!!!”

나를 팡팡 치는 이세연.

사실 말은 이렇게 했어도 이미 부채를 준비해 왔지.

몇 대 맞고 부채를 부쳐주자 고양이는 어디 가고 강아지가 되어서 헤~ 웃고 있다.

“아~ 시원해~ 고마워요. 오빠~”

“때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고맙다고 함? 나 마음 상했어.”

“아하하~ 오빠가 상하는 거보다는 낫잖아요.”

“으악! 너 이제 말 무섭게 한다? 동네 사람들! 아 여기 우리 동네 아니지.”

“뭐래? 재미없어. 어서 가요~ 이제 내가 선풍기 할게요. 슈웅~~”

생글생글 웃으면서 부채를 뺏더니 내 얼굴에 파닥파닥 흔들면서 걸어간다.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보면 볼수록 예쁘네.

우리는 택시를 타고 리조트로 갔다.

가는 내내 보이는 풍경이 제법 이국적이다.

미국이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면, 칸쿤은 리조트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여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세연아. 너는 미국이 좋아? 여기가 좋아?”

“음... 저는 미국이 더 좋은 거 같아요.”

“그래? 왜?”

“사실 겉은 여기가 더 좋거든요. 미국은 뭐랄까 빡빡한 느낌이었는데, 여기는 여유가 있잖아요. 그런데 휴양지여서 그런지 약간 심심해 보이기는 해요.”

그래? 너 여기 리조트 안에 들어가 보고도 같은 마음인지 보자.

이세연은 리조트가 궁금한지 나에게 물었다.

“우리 가는 리조트는 어떤 곳이에요?”

“올 인클루시브라고 전부 다 포함되어 있어. 거기서 먹는 밥도, 룸서비스도 다 공짜야. 게다가 어덜트 온리라서 애들이 없거든. 그래서 시끄러울 일 없이 조용해.”

“그거 좋다! 애들 너무 돌아다니면 정신없더라고요.”

“그렇지. 성인들만 있어야지 많은 걸 할 수 있잖아.”

“뭐 하려고요~? 우리 오빠 뭐 하려고 하는 걸까?”

“... 수영! 수영 말하는 거야! 나 전투 수영 할거거든. 부딪히면 애들이 다쳐.”

“아하하. 웃기시네! 수영복은 챙겨 왔어요?”

“당연하지. 너는?”

“킥킥. 저는 비키니 챙겨 왔어요. 그런데 이럴 줄 알았으면 커플로 맞출 걸 그랬어요.”

“아니면 미국에서라도 살 걸 그랬어. 어! 다 와 간다. 저기야! 인터넷에서 봤어!”

“와…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네. 여기 리조트예요? 궁전이에요?”

이세연 말대로 택시가 멈춘 곳에는 궁전 같은 건물이 서 있었다.

우리는 안에 들어가서 접수한 후,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방으로 걸었다.

복도도 고급스럽네.

모던한 한국 리조트와는 다르게, 화려한 모습인데 이세연은 퍽 마음에 드나 보다.

“여기 아주 마음에 든다~ 너무 좋아!!”

“그렇게 좋아? 오빠 잘했지?”

“헤헤헤! 네! 미국이 좋다는 말 취소! 오빠 고마워요~ 이렇게까지 준비 많이 할 줄은 몰랐어요.”

“그럼 봇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이 잠시만. 방금 앞에 말실수한 거 아니지?”

“...아닙니다! 오해입니다!”

“하여튼 진짜, 보상은 없는 줄 알아요.”

꼬무룩.

호텔 직원이 방 앞에 서더니 뭐라고 했고, 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이세연은 양손을 뺨에 붙이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바다가 보여!!!”

“와... 직이네!”

커다란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한쪽에는 월풀 욕조도 있다. 그리고 무제한 양주도 있고, 샤워용품도 이름만 들으면 아는 유명한 브랜드다.

크흑. 민현찬 많이 성공했다. 이런 곳에 여자친구랑 놀러 오다니.

나는 에어컨을 튼 뒤, 바다를 보는 세연이를 뒤에서 안았다.

“어때? 마음에 들어?”

“네! 나 이런 곳 처음이야! 너무 예뻐요.”

“오빠밖에 없지?”

“진짜 인정! 와!!! 오빠 봇상이든 보상이든 제가 다 해줄게요!”

“괜찮아. 지금 네가 웃는 게 나에게는 제일 큰 보상이야.”

“...우리 차라리 손발 자르고 다닐까요?”

“오케이. 이제 느끼한 멘트하지 않을게.”

“아하하~ 그래도 너무 좋아! 오빠~~”

나에게 매달리더니 가슴을 부비부비했다.

“여기서는 뭐든지 오빠 마음대로 해요!”

“정말?”

“네~ 진짜 뭐든지 괜찮아요.”

나는 한걸음 떨어진 뒤 이세연 팔을 잡았다.

“세연아...”

“오빠...”

“그럼 액티비티 졸라 조지자. 우선 스노클링 한 번 하고, 그다음에 동굴도 있어. 거기서 카트도 타고 수영도 할 수 있거든. 거기 가자. 그리고 그다음에 마야 문명 알지? 그 유적지가 있는데 또 어마어마하대. 거기 갔다가 밤에는 여기 유명한 나이트클럽도 있다고 하거든. 거기 가자. 그리고 또.’’

“우리 언제 쉬어요?”

“이런 데 왔으면 쉬면 안 되지. 부지런히 돌아다녀야지. 아! 아!!!”

“야! 그러려면 스리랑카를 가지 여기 왜 왔어!!!”

이세연이 내 귀를 잡아 뜯는다.

“오케이! 오케이! 알았어. 그럼, 여기서 푹 쉬는 거로 하자. 방금 계획 바꿨어!”

“...그래도 돼? 오빠는 가고 싶은 거 아냐?”

“무슨 소리. 네가 원한다면 나는 리조트에 틀어박혀 있어도 상관없어. 밤에 나이트는 가보고.”

“킥킥. 그럼 일단 조금만 쉬고 나중에 나이트만 가봐요.”

“나이트 전에 리조트 수영장 갈까? 거기 선베드에 누워서 칵테일이나 마시는 거야. 어때 콜?”

“콜~~ 그럼 수영복 갈아입어야겠네요.”

세연이는 캐리어를 열었다.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미안하지만, 뉴욕 여행으로 너의 여행패턴을 파악했지.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더군.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휴양지 와서는 좀 쉬고 싶다.

분명 네 입으로 쉬자고 했어.

리조트에서 쉬고 놀고 쉬고 놀고 너무 좋아!!! 이게 힐링이다.

만족스러움에 고개를 끄덕거렸는데, 세연이가 나를 불렀다.

“흐음. 이 표정은 뭔가 꿍꿍이가 성공했을 때 표정인데.”

“아닙니다. 그런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상한데... 수영복 입고 올게요~”

“여기서 안 갈아입어?”

“늑대 앞에서는 안 갈아입을 겁니다!”

이세연은 수영복을 들고 고급스러운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왔는데,

“너... 수영복 모델을 해도 되겠다.”

“헤헤헤. 예쁘죠?”

찐한 초록색 비키니가 이세연의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었다.

비키니 끈은 어깨를 감싸지 않고 목을 교차해서 가슴이 더 모였고, 그 결과 엄청나게 커졌다.

아래는 손바닥만 하고.

“예쁘긴 예쁜데. 너무 야해. 잠시만.”

나는 미리 준비해 온 얇은 카디건으로 이세연을 덮어줬다.

“네가 짧은 옷 입을 줄 알고 미리 준비했어. 이제 너무 과한 노출은 하지마. 질투 나니깐.”

“어? 아하하하~ 왜 이리 기분 좋지. 우리 오빠 질투했어요?”

“그래. 남자라면 당연한 거야.”

“헤헤헤. 알았어요~”

웃으면서 내가 준 여름용 카디건으로 가슴을 가렸다.

저래야지 만져도 안 보이지.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 모든 게 완벽하다.

*

수영복을 입은 이세연을 물속에서 만지는 나의 계획!!!

실현하기에는 여기 너무 평화롭다.

와~~ 천국이 따로 없네.

리조트 안 수영장에 왔는데, 일단 엄청 넓다. 그리고 멀리는 해변도 보인다.

이런 풍경도 좋지만, 더 좋은 건 서비스다.

2인용 선베드에 세연이와 둘이서 누워있는데,

“우주~~~ 섬싱~~ 드링크?”

직원들이 돌아다니면서 마시고 싶은게 있는지 물어보고.

“아이 앰~~ 마티니~~”

주문하면 내가 누워 있는 선베드까지 가져다준다. 게다가 이게 다 공짜다.

벌써 몇 잔을 마셨지?

새로 온 마티니 잔을 잡자 엎드려 있는 이세연이 고개만 돌린 채 나를 바라봤다.

“아이 앰 마티니는 나는 마티니다 라는 뜻입니다.”

“맞어. 마티니 많이 마셨더니 지금 마티니 됐어. 와~ 여기 너무 좋아. 날씨도 좋고 여유롭고. 하… 바쁘게 살아온 삶이 보상받는 기분이야. 너는 어때?”

“나는 음… 사실 반반이에요.”

“그래? 왜~ 뭐가 맘에 안 들어 세연아~”

나는 마티니 잔을 놓고 옆에 있던 이세연에게 매달렸다.

“마음에 안들지는 않은데... 아 몰라!”

“지금 나는 너를 위해 잉카 보물도 훔쳐 올 수도 있어. 뭐든지 말해. 내가 다 해결해줄게.”

“킥킥킥. 잉카유적지 되게 가고 싶나 봐~ 그런 건 아니고 조금 아쉬워서요. 그런데 배 안 고파요?”

“조금? 밥 먹으러 가자! 여기 유럽식 레스토랑이랑 멕시코식 뷔페 있는데 다 공짜야. 뭐 먹으러 갈래?”

“음... 멕시코 콜?”

“콜! 가자!”

나는 이세연을 일으켜 세운 뒤, 잘록한 허리를 감고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얘 무슨 일 있나?

선베드 눕기 전까지는 신나 있었는데, 갑자기 기운이 없어 보이네.

멕시코식 요리가 있는 뷔페에 간 우리는, 음식을 담은 뒤 자리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저도 잘 먹겠습니다!”

둘이서 한참 밥을 먹었는데, 세연이는 여전히 텐션이 다운되어 있다.

나는 숟가락을 놓고 진지한 얼굴로 바라봤다.

“세연아. 무슨 일 있어?”

“네? 어? 아하하하! 오빠!!!”

“어떤 일이든 다 오빠한테 말해봐. 내가 해결해 줄게.”

“졸라 웃겨!!! 술에 취해서 얼굴 빨간색이니깐 술주정 같아! 눈도 풀려있어!”

아! 내가 술을 좀 많이 먹기는 했지?

“혹시 술 많이 먹어서 마음이 안 좋은 거야?”

“그런 거 아녜요. 사실은요 오빠랑 행복한데 믿기지 않아서요.”

“응? 무슨 말이지?”

이세연은 먹던 밥 대신 음료수를 한잔 마시더니 나를 그윽 하게 바라봤다.

“진작 오빠 꼬셔서 아니, 내가 준비해서라도 놀러 갈 걸 그랬나 봐요. 그리고 내 마음 더 빨리 말할 걸 이런 생각도 들고요. 지금 같이 있으니 이렇게 행복한데, 나중에 오빠 졸업하고 학교에 혼자 있으면 어떡하냐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요. 헤헤헤. 시간이 너무 아까워. 나 큰일 났어! 이제 오빠 없이는 못 사나 봐!”

“… 혹시 이거 말.”

“그거 아니다 이 새끼야.”

“네. 알겠습니다.”

막대기 아니었어? 여자친구 생겼으니 히토미 그만 봐야겠네.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

졸업하고 백수로 논다지만,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할 곳이 많다. 그러다 보면 며칠씩 학교에 못 있을 때도 많고.

그리고 취직하면 학교가 아니라 멀리 갈지도 모르고.

이세연은 장거리 연애가 겁나나 보다.

전형적인 남자를 좋아하는 어린 여자의 심리다. 매 순간을 함께 하고 싶은 거지.

- 꼴에 여자친구 생겼다고 심리 파악하기는.

호구신님 이거 엄청 중요한거예요. 그러니깐 모태솔로 호구신이 되었지. 님 연최몇? 연애 최대 몇 번 해봤어요? 짝사랑은 인정 안 해줌.

“아!!!!!”

“왜요? 어디 아파요?”

“아니. 갑자기 정전기가 왔어. 아오...”

망할 호구신님. 아픈데 때렸다고 괴롭히기는.

여튼 이세연의 불안함을 달래주자.

“세연아. 너는 항상 걱정을 사서 하는 게 있어. 잔소리 아니야. 그냥 보다보면 안타까워서.”

“네?”

“고등학교 때도 너 괴롭혔던 애들 때문에 지레 겁먹고, 다른 사람도 그럴까 봐 멀리했었지?”

“...네.”

“수능도 재수 안 한 이유가 다시 한번 망할까 봐 걱정되서였지?”

“...응!”

“이번엔 왜 반말이야?”

“아하하하. 그때 오빠가 챙겨준 게 생각나서 기분 좋아졌어!”

“단순해서 좋다. 너무 빨리 겁먹지 마. 세상은 수많은 일이 예상 못 하게 일어나는 곳이야. 그거 하나하나 전부 다 신경을 쓰면 스트레스 받아서 탈모 온다. 그렇게 힘들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지금, 이 순간을 신나게 즐기며 살자. 자 여기 파인애플. 아~~”

“아~~~~ 음~ 음~ 이거 엄청 달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고요?”

“그래. 미래 걱정 때문에 행복한 순간을 놓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야. 너무 아깝잖아. 이 좋은 곳에서 말이야.”

“그건 그래요… 쓰읍 나 생각이 너무 많아졌어!!!”

“우리 세연이 또 걱정 속에 파묻혔네.”

나는 이세연 옆에 앉은 뒤 어깨를 감싸줬다.

“결론은 모든 걱정은 달나라로 날려버리고 꿈꾸듯이 여기서 놀다 가자. 그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어?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유럽 여행도 다녀온 사람이. 그리고 나는 언제나 네 옆에 있어. 이렇게 딱 달라붙어서 말야.”

“헤헤헤. 오빠 말 들으니 마음이 편해지지만, 허벅지에서 손은 떼지 그래요? 아하하하~ 다시 텐션 업 되고 있어! 신나~ 신나~ 신나~”

“나도 신나~ 신나~ 신나~”

“그만. 술 취한 거 같다.”

“오케이 그건 인정하는 부분이고요. 그럼 이제 밥도 다 먹었으니 뭐 할래? 하고 싶은 거 있어?”

“늦어서 나가기는 좀 그렇고. 방에 들어가서 쉴까요?”

“아니면 마사지하러 갈래? 여기 마사지하는 곳 있더라고.”

“마사지요? 괜찮다! 갈래요! 가요!!!”

뛸 듯이 좋아한다.

팁 주고 마사지사 밖으로 내보내도 되겠지?

내가 너를 마사지 해주마!

<칸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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