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이세연은 내 위에 올라탄 채, 가만히 있다.
“세연아. 안 자는 거 알아.”
“코....”
“아니, 자더라도 일어나야 해. 너 이렇게 자는 거 반칙이야.”
“코... 으응....”
진짜 잠들었네?
아무리 가슴을 만져도 계속 잔다.
...
어쩔 수 없지. 일단 침대에 눕히자.
이세연을 들어서 침대로 옮겼는데, 몸에 술이랑 하얀 액체가 묻어있다.
좀 닦아야겠네.
수건을 가져와서 온몸을 닦았다.
“아!!! 힘들어! 너 진짜 자고 있어?”
마지막으로 확인하기 위해 양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으응....”
“… 그래. 잘 자라.”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이대로 자다니.
너무하네.
나는 뒷정리를 마무리하고 이불까지 덮어준 뒤 창가를 보며 앉았다.
치익.
담배에 불을 붙이고 뉴욕의 야경을 보는데 많은 생각이 머리를 휘감는다.
행복한 섹스였어.
이세연이랑 몇 번의 섹스를 했는데, 오늘이 제일 행복했어.
아니, 섹스가 중요한 게 아니다.
굳이 섹스를 안 했더라도 이 기분을 느꼈을 거 같다.
치이이익.
나는 담배를 끄고 침대에 갔다.
- 한 번 더 하려고?
...
호구신님 지금 중요한 순간이거든요.
손을 뻗어서 세연이의 하얀 뺨과 노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훑었다.
“예쁘네.”
“....으응...”
“너 이렇게 예뻤었어?”
“코....”
“세연아. 예전에 너 유럽 갔을 때 사진 찍어서 나한테 보냈었잖아. 그때 내 가슴이 두근거렸었거든.”
“... 코...”
“지금도 그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려.”
이런 내 마음을 알려나.
멈춰 있던 시계가 다시 커진 기분이다.
*
몇 시지?
어제 그대로 잠들었는데.
눈을 떴는데 새하얀 이세연 등이 보인다.
아직 자나 보다.
이불을 슬쩍 들었는데 알몸의 탱탱한 엉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
연인끼리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한 번 더하는데 국룰인데.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건 아니지만, 거의 연인이나 다름없으니 하자.
슬쩍 세연이의 하얀 허벅지를 든 후, 구멍 입구에 막대기를 붙였는데.
“아응~ 오빠 나 머리 아파요. 그런데 너 뭐하냐?”
“아? 일어났어? 잠시만 더 자.”
“잡아먹으려는데 어떻게 자! 잠시만!”
“아니야. 지금 멈출 수 없어. 악!!!”
이세연이 화들짝 일어나더니 베개를 내 얼굴에 던졌다.
“야이! 오빠는 여기까지 와서 섹스 밖에 생각 안 해요?”
“...잠시만. 지금 그 멘트는 반칙이야. 우리는 어제 섹스를 했었고, 게다가 네가 나를 덮쳤었어.”
“응? 정말요?”
“너 어제 어디까지 기억나?”
“화장하고 둘이서 창가 보면서 술을 마시고 춤추다가…. 거기까지?”
“네가 나를 의자에 앉히고 올라탔던 건?”
“내가 그랬다고요?”
“기억 안 나나 보네. 재현해 보자! 여기로 와봐!”
“됐거든요! 야! 야!”
“악!!!”
망할. 이세연은 장거리 비행의 피로와 술 때문에 정말 기억 못 하나 보다.
C컵 가슴을 출렁이면서 나를 때리는 모습이 평소의 까칠한 고양이다.
“으악! 나 지금 너무 억울해! 어제 너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뭐래! 무슨 최선을 다했어요?”
“너 어제 그럼 네가 한 말도 기억 안 나겠네?”
“무슨 말 했어요? 쓰읍 불안한데. 혹시 오빠 잡고 개새끼니, 변태라니 그런 말 한 건 아니죠?”
“그렇게 말 하고 싶으면 차라리 대놓고 해라.”
“아하하! 들켰어! 그런데 진짜 무슨 말 했어요?”
“별말 안 했어.”
“아앙~ 왜요~ 말해줘요! 무슨 말 했는데요?”
“나한테 사랑한다 했다.”
“으왝! 설마? 진짜요?”
“글쎄? 진짤까 가짤까?”
“가짜겠죠. 내가 설마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했겠어요.”
꼬무룩.
얘는 진짜 모르는 거야? 아니면 아는데 민망해서 모르는 척하는 거야.
...
잠시만! 세 번째 경우도 있잖아!
이야기를 전부 다 듣고 내 마음을 알아서 자신만만해진 거 아냐?
“아악!!! 머리 아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이세연 상태가 너무 안 좋다.
머리를 잡고 침대에 눕더니 발버둥을 친다.
고백이고 사랑이고 간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해장이다.
“나도 머리 아파! 와인, 맥주, 양주 먹었더니 정신이 없네. 우리 오늘 뭐 하기로 했었지?”
“오늘 계획은 쇼핑하러 갔다가 센트럴 파크 구경하고.”
“오케이 거기까지. 다 할 수 있겠어?”
“...아니요. 그냥 호텔에서 쉬고 싶어요.”
“그럼 오늘은 호텔에서 쉬자.”
“여기까지 왔는데 안 아쉬워요? 내일이면 칸쿤으로 가야잖아요.”
“뭐가 아쉬워?”
나는 침대에 누운 이세연을 뒤에서 앉았다.
“언제든지 또 오면 돼.”
“...가슴에서 손 떼라.”
“그럼, 여기.”
“아! 진짜! 왜 이래요.”
“너야말로 왜 안 거부해? 아까랑 다른데.”
“지금 뿌리치려고 하거든! 여튼 그럼 오늘은 호텔에서 쉬어요. 내가 죽겠어.”
“그래 해장이나 하자. 룸서비스 뭐 있는지 볼게.”
계곡에서 손을 뗀 후, 룸서비스 메뉴를 봤다.
“심각하네.”
“왜요?”
“한인타운 가야겠다.”
이세연에게 건네자 나와 같은 표정으로 한숨을 쉰다.
“맞네요. 메뉴만 봐도 토할 거 같아!!!”
양놈들은 뭐로 해장하는 거야?
온통 기름진 스파게티나, 스테이크, 햄버거다. 우리는 대충 씻고 한인타운으로 출발했다.
*
한인타운에 가서 김치찌개로 해장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가만히 빈둥댔는데 사람 심리가 살만하니 또 돌아다니고 싶어지네. 우리 둘은 다시 밖으로 나왔고, 지금은 센트럴 파크에 와 있다.
“와~ 여기 생각보다 엄청 큰데?”
“오빠! 진짜예요! 한강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런데 너무 추워!!!”
젠장. 겨울에 올 곳은 아니네. 푸른 센트럴 파크 대신에 칼바람이 우리를 맞이해 준다.
“세연아. 날씨가 추우니깐 확실히 술은 깨네.”
“그렇긴 한데. 아! 손 시려!”
“손? 자 여기로 줘.”
“네?”
“빨리! 너 이러다가 손 얼겠다.”
나는 이세연 손을 잡아서 내 호주머니에 넣었다.
“아하하하! 고마워요. 오빠.”
“너는 언제까지 높임말 할 거야?”
“이게 편해져서 반말하면 어색할 거 같아요. 한 번 해볼까? 야! 민현찬!”
“그냥 높임말 계속해. 반말하면 옛날 미친년 트라우마 생겨서 안 되겠다.”
“뭐래? 그런데 도저히 안 되겠어요. 우리 다시 들어가요.”
“아니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야경 보러 갈까? 나왔는데 그냥 들어가기는 심심하잖아.”
“그럴까요? 오케이 콜!!! 아아악! 진짜 추워! 빨리 가요!”
세연이는 내 호주머니에서 손을 뺀 뒤 팔짱을 끼고 벌벌 떨었다.
옷을 얇게 입고 나왔네. 저러다가는 감기 걸리겠다.
나는 외투를 벗었다. 그러자 이세연이 화들짝 놀라면서 양손으로 나를 말린다.
“나 괜찮아요! 오빠 춥잖아요. 저 진짜 괜찮아요!”
“너 말투 한번 따라 할게. 뭐래? 옷 고쳐 입으려는 건데.”
“...야이!! 하... 그럼 그렇지. 오빠가 추울까 봐 외투를 줄 리가 없지.”
삐졌는지 나보다 두 걸음 앞서서 걸어간다.
귀엽네.
나는 외투를 든 채, 그런 이세연 옆에 섰다.
“...나 필요 없어요. 외투 덮어주려는 거면 됐어요.”
“삐졌어? 덮어주려는 거 아닌데.”
“안 삐졌어요. 그럼요?”
“감싸주려는 거야.”
외투로 이세연 등을 덮는 게 아니라 앞을 감싸줬다.
가만히 놔두면 떨어지니 양손으로 세연이 어깨를 감싸면서 외투를 잡았다. 찬바람이 앞에서 불어온다.
하지만, 이세연은 춥지 않다. 내가 외투를 벗어서 앞을 감싸주고 있으니.
훗. 나란 남자. 멋진 남자.
- 지랄하지 말고 이세연 반응이나 봐라.
네! 호구신님!
사실, 지금 민망해서 앞만 보고 있는데, 세연이는 과연 어떠려나.
고개를 슬쩍 옆으로 봤는데, 입꼬리가 올라간 게 눈에 들어왔다.
“좋아?”
“응? 아하하~ 오빠~ 이게 뭐예요~~ 못 살아~”
“못 살면 안 돼. 이렇게 따뜻하게 해줬는데 오래 살아야지. 이제 안 춥지?”
“네. 헤헤헤~ 하나도 안 추워요. 고마워요 오빠~ 나도 우리 오빠 안 춥게 해줄래!”
세연이는 양손으로 내 허리를 감으면서 매달렸고,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미국 한가운데서 애정행각이라니. 지나가는 사람이 흘깃흘깃 보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더욱 나에게 매달렸다.
“이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가요!”
“이렇게 계속 가자고?”
“네~ 따뜻하고 좋잖아요. 설마 부끄러운 건 아니죠?”
“부끄럽기는. 어차피 오늘 지나면 다시 안 올 곳인데. 가자!”
“헤헤헤! 좋아! 오빠랑 여행 오기 정말 잘한 거 같아.”
“나 의외로 잘해주지?”
“응! 그리고 정말 행복하게 해줘요. 나 이번 여행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어제도 오늘도 너무 행복했어요.”
정말로 행복한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그래. 그거면 된 거야.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나는 어느새 토이 좋은 사람이 되어 있다.
...
잠시만! 어제도 행복했다고?
“너…. 어제 기억나?”
“그럼요. 다 기억나죠! 내가 어제 오빠한테. 아!”
“솔직히 말해라. 어제 너 뭐 했는데?”
“뭐래? 아무것도 없거든요. 빨리 가요. 그냥 조금 고마워서 립서비스해준 거뿐이에요. 아 몰라! 빨리 가요!”
내 옆구리를 잡고 끌고 간다.
너 어제 필름 끊긴 거 거짓말이구나.
그 증거로 계속 이야기를 꺼내려 하면, 진희 이야기, 선미 이야기를 하면서 말을 돌린다.
그래. 본인이 이야기하기 싫으면 덮어두자.
평소라면 이랬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언제까지 질질 끌 수 없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모든 것을 결정 짓겠다.
*
엠파이어... 엠스 빌딩 전망대에 올라왔다.
야경을 보는 나와 이세연.
어색한 공기가 우리를 감돌고 있다.
세연이는 어제 나에게 본심을 말한 게 들켜서 민망한지, 곁다리 이야기만 계속했다.
“오빠는 취업 안 해요?”
“내가 가려는 회사가 올해는 채용이 없어. 그래서 내년에 취직하게.”
“그럼 일 년 동안은 뭐 할 거예요?”
“글쎄? 빈둥빈둥 보내려고. 눈 감았다 뜨면 일 년 지나가잖아. 바로 내년이 될 거야.”
“그래요? 야경 예쁘다.”
“그렇네. 정말 야경 예쁘네.”
“진짜 야경 예뻐요.”
이놈의 야경 예쁘다는 말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
그래. 내가 그냥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자.
“세연아.”
“오빠!”
“나 어제 너한테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 오빠 사랑해요!”
“...응? 뭐라고?”
“네?”
우리는 갑자기 돌직구를 서로에게 던졌다.
다시 돌직구를 날리려는데, 이세연이 더 빨랐다.
“저 어제 사실 다 기억나요. 오빠랑 섹... 아니다. 밤에 하면서 제 진심을 말한 것도 다 기억나요. 생각해보면 오빠랑 할 때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 들어 본 적 없잖아요 ”
야경을 보는 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가고, 그 사이에 우리만 시간이 멈춘 것처럼 정지해 있다.
“해외 와서 그런지 이번에는 꼭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제 술에 취한 것도 있고 해서 사랑한다고 말한 거예요. 아!! 나 뭐라는 거야. 하…. 모르겠다.”
“뭘 모르겠어?”
“그냥 지금 잠시 멘탈이 나간 거 같아요. 그런데 어제 오빠는 어제 저한테 사랑한다는 말 하지 않았잖아요. 어? 잠시만. 사랑한다고 말했었어요?”
“너 어제 전부 다 기억나는 건 아니지?”
“...한 90프로?”
“제일 중요한 10프로가 빠졌네. 나도 어제 너한테 사랑한다 했었어.”
놀라는 세연이 손을 잡았다.
“맨정신에 눈 보고 이야기해 줄게. 사랑해 세연아. 나랑 사귀자.”
“네? 어…. 싫어!!! 아니 이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운. 좋아요! 당연히 좋은데 왜요?”
“일단 정신 좀 차려. 왜기는, 사실 지금도 늦었지. 한동안 연애할 마음 자체가 없었어. 사람에 대해 아쉬움이 없었거든. 특히 너는 항상 내 옆에 있었잖아. 소중한 걸 몰랐던 거지. 그런데 너 얼마 전에 아프고나서 깨달았어.”
놀라서 금붕어처럼 눈만 깜빡이는 이세연.
나는 꼭 안았고, 세연이는 돌처럼 멈췄다.
“네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말야.”
“...아! 오글거려.”
“민망하지?”
“네... 그런데 어... 진심이에요?”
“진심이야. 이번 여행 와서 깨달았어. 너는 이미 나의 삶 속에 많이 녹아있어. 아니, 이런 거 다 헛된 말이고 이유는 딱 하나야.”
“뭔데요?”
“가슴이 두근거려. 너를 보면 심장이 터질 듯이 가슴이 두근거려.”
포옹을 풀고 살짝 떨어진 뒤 세연이 뺨을 양손으로 잡고 눈을 마주쳤다.
“오빠...”
“이때까지 마음고생 많이 했지? 나랑 사... 사...”
“킥킥킥. 아하하하! 멋있게 하다가 왜 갑자기 바보처럼 버벅대요!”
“으악!!! 갑자기 민망해. 아! 그게 말이야.”
“내가 대신 말할게요~ 오빠~ 고마워요~ 우리 사귀어요!”
쪽
이세연은 나에게 매달리면서 키스했다.
- 짝짝짝
주위에 지나가는 외국인들 몇 명이 재밌는지 박수를 쳤다.
아. 여기 사람들 속 한가운데였지?
길 막으면서 키스하고 있었네.
“아... 세연아?”
“어... 오빠?”
“일단 도망가자.”
“아하하. 네! 빨리 나가요!”
“가자! 자기야!”
“꺄아아악! 오빠 자기야라고는 하지 마요! 손발 다 사라질 거 같아!”
“왜 좋잖아.”
“좋기는 한데. 아!! 나 어떡해!”
“어서 가자 자기야~”
“아하하하. 미치겠네. 네~~ 여보야~~”
“으악!! 이런 기분이었어? 내 손발!”
“킥킥킥. 어서 도망가요!”
우리는 황급히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갔다.
조용한 곳에서 숨을 돌리는데, 이세연은 부끄러운지 나를 못 보고 있다.
“너 뭐해? 왜 등 돌리고 있어.”
“민망해!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평소랑 똑같이 하면 돼. 손 줘. 연인끼리는 손잡아야지.”
“...네. 여기 손~ 이제 호텔로 돌아가요.”
“그래. 우리 호텔가서 연인 된 기념으로 밤새. 악!!!”
“뭐라고? 다시 말해봐.”
“밤새 같이 끌어안고만 있자고. 하여튼 매섭기는.”
“헤헤헤 ~ 매서운 게 좋을걸요~ 내가 애교 부리면 오빠 손발 사라질 거 같은데~”
“한 번 해줘! 어떤지 궁금해~”
“오빠아~ 아니 여보야~~ 우리 호텔로 가요~~”
“으아아아악! 내 손!!!”
“뭐래. 네 손 내가 잡고 있거든. 이제 안 놓을 거야! 내 거야!”
세연이는 손을 꽉 잡은채,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도 닭살 돋게 해야지. 아기야~~”
“아! 오빠 제발 하지 마요! 제발! 킥킥킥! 미치겠어~ 내 손발!”
우리는 같이 환히 웃은 채, 티격태격하면서 호텔로 걸어갔다.
사귄다고 많은 게 변할 줄 알았는데, 크게 달라진 건 없네.
하나 있다면 세연이 얼굴이 예전보다 훨씬 예쁘게 느껴진다. 나도 이제 정착할 때가 되었나 보다.
<해외여행>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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