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먹지 못했던 여사친들-260화 (260/295)

< 병원 >

나와 선미는 술집에 가서 모여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

선미는 어머님 일을 모두에게 이야기했고, 분위기는 철을 단것처럼 무거워졌다.

선미는 그런 분위기가 마음에 안 드는지, 모두에게 손사래를 쳤다.

"뭐. 그렇게 됐어.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

임석훈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입을 연다.

"야. 어떻게 걱정 안 하냐."

"별일이네? 네가 다 진지해지고."

"이런 일에 안 진지할 정도로 미친놈은 아니야. 하~~ 어떡하냐."

공기는 더 무거워졌고, 선미 얼굴도 더 어두워졌다.

이런 분위기를 바란 건 아닐 건데.

내가 정리를 해야겠다.

"다들. 마음은 알겠는데."

"선미야 나 아는 분이 병원에 있는데 부탁해볼까?"

응? 내 말을 자른 건 박호빈이였다.

"호빈아 괜찮아. 마음만 받을게. 우리 엄마 한국대 병원에 있어. 거기가 대한민국 최고잖아. 다른 곳 가도 마찬가지일 거야."

"아··· 한국대 병원에 계시는구나. 나는 혹시나 아는 사람이 의사로 있으면 편할 거 같아서 말한 거였어."

"어디 병원에 계시는데?"

"국군 수도병원에 계셔."

시불! 저 새끼는 저게 말이야 빵구야?

젠장, 진지하다는 게 더 골 때린다.

박호빈의 말에 임석훈은 끝내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미친 새끼야! 국군 수도병원에 일반인이 어떻게 들어가!"

"아씨! 혹시나 해서 그랬지."

선미도 어이없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미치겠다. 너 알티는 어떻게 하고 있냐? 안 봐도 뻔하다. 뻔해."

"내가 여기서는 이래도 학군단에서는 장난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 같은데."

"뭐? 야! 너!"

임석훈이 박호빈에게 어깨동무하면서 손으로 잡았다.

"호빈아 너는 그냥 가만히 있어라. 그게 도와주는 거야."

"··· 알았어."

짜슥. 그래도 나이를 헛먹은 건 아니네.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얌전해졌다.

그래도 박호빈이 잘한 건 하나 있다. 너무 어이없는 말 때문에, 다들 입이 가벼워졌고.

"선배. 저희 아버지가 의사인데 부탁해볼게요. 호빈 선배 말대로 그 병원에 아는 사람 있으면 생활하는데 도움 될 수도 있잖아요."

"언니! 나도 아빠 아는 의사 있는지 알아볼게요!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볼 수 있어서 답답함은 많이 풀릴 수도 있어요!"

진희와 세연이도 입을 열어서 선미를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다들 고마워. 나는 아는 의사 없나? 습자지 같은 인맥이 원망스럽다.

"다들 고마워. 그러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부탁 좀 할게."

어라? 거절할 줄 알았는데, 선미는 모두에게 고개를 숙였다.

처음 보는 모습에 다들 당황하는데, 이선미는 씩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우리 이렇게 다 모이는 거 정말 오래간만이네. 이러니깐 일학년 때 과 모임 하는 기분도 들고 좋다. 다들 오늘은 한잔하자. 어때 콜?"

모두를 돌아보며 웃었고, 이 모습을 본 이혜민은 선미 팔을 한대 찰싹 때렸다.

"야! 너는 빈혈로 쓰러진 애가 무슨 술을 마셔!"

"술에 철분 있지 않아? 원래 술 마시면 다 괜찮아지는 거야."

"그러다가 너마저 쓰러지면 진짜 큰일나. 어서 술잔 내려놔."

"혜민아 괜찮대도~"

"안된대도~"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

이거는 내가 나서야겠네.

나는 선미 손에서 술잔을 뺏었다.

"민현찬. 어서 원상복구 시켜라."

"네 누나. 대신 소주 말고 맥주 마셔요. 혜민아. 맥주 한잔 정도는 괜찮잖아?"

"··· 뭐. 그 정도는 괜찮지."

"자. 다들 우리가 걱정 가득하면 선미는 더욱 스트레스받아. 선미 성격 알잖아. 애가 배배 꼬여서 남한테 피해 주는 건 죽어도 싫어하는 거."

"배배 꼬인 성격처럼 뇌를 배배 꼬아줄까? 너 많이 컸다."

"선미 누나 죄송합니다. 여튼 우리 오늘은 오래간만에 만난 만큼 기쁘게 딱 한잔만 하자. 다들 어때 콜?"

나는 선미를 보며 찡긋 웃었다.

너와 내가 붙은 세월이 몇 년인데. 딱 보면 뭘 원하는지 알 수 있지.

부담스럽게 모두가 자기 걱정해주는 건, 선미 스타일상 안 맞다.

오늘 자리는 그냥 자기애기를 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 말이 마음에 드는지, 선미는 빈 맥주잔을 채워서 내가 든 술잔에 부딪혔다.

"그래. 현찬이 말대로 오늘은 한잔하자. 나도 오래간만에 마셔야겠어. 자 세연아 짠~"

"네. 그래요. 언니. 짠~"

"진희도 짠~"

"네 선배~ 짠~~"

다들 술잔을 부딪치며 한 잔씩 술을 입에 넣었다.

선미는 반가운 분위기에 잠시나마 어깨의 짐을 덜었는지 밝아 보인다.

다행이다.

전부 다 각자의 일학년 때로 돌아간 즐거운 술자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올라오는 술에 담배 하나를 피우러 나왔는데, 임석훈이 옆에 따라서 나왔다.

"현찬아 불 있냐?"

"여기."

"후~~ 담배가 오늘따라 쓰네. 선미는 담배 안 피운 데?"

"끊을 거래."

"좋은 일은 다행히 하나 일어났네. 이렇게 술 마시면서 담배 피우니 옛 생각 난다. 월드컵 때 생각나?"

"당연하지. 어느 미친놈이 집에서 티비 때웠잖아."

"으하하하. 그랬었지. 그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갑자기 웬 궁상이냐?"

"나이 먹을수록 걱정거리가 하나씩 느는 기분이 들어서. 너랑 선미는 이제 졸업반이잖아. 졸업하고 사회생활 하면 더 그럴 거 같아."

"네가 웬일이냐? 미래를 다 걱정하고."

"나도 동사무소에서 공익 하다 보니 느끼는 점이 많다.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특히 선미 어머님 아프니깐 더 그렇고. 뭐랄까?"

임석훈은 장초를 손으로 털다가 불을 꺼트려 버리더니, 땅에 떨어진 담뱃불을 보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좋은 날은 다 간 거 같은 기분이랄까?"

"야. 이제 우리 23살이다. 33살인 아저씨가 보면 바보 같은 소리로 들려."

"33살 아저씨처럼 말하지 마라."

"졸업도 안 하는 놈이 벌써 미래 걱정부터 하기는. 그래도 네 말 중에 하나 맞는 건 있다."

"뭔데?"

"오늘 진짜 일학년 때로 돌아간 거 같다. 여기의 한 명만 더 있으면 딱 일학년 때랑 똑같은데."

"은미? 양반은 못 되겠는걸."

"왜? 갑자기 내 뒤에 서 있기라도 하냐?"

"현찬아!!!!!"

"으악! 시발 깜짝이야!!!"

뒤에서 누가 나를 확 밀었고, 고개를 돌리자 은미가 서 있었다.

"너 방금 나한테 시발이라고 했어?"

"아니. 하···. 너무 놀라서 그랬어. 와씨 귀신인 줄 알았네. 그리고 얼굴은 진짜 왜 귀신 같아?"

"나 드라마 찍다가 바로 와서 그래."

"이번에는 무슨 배역인데?"

"공포영화에 귀신으로 나와. 앙~~ 무섭지?"

"하나도 안 무섭고 예쁘기만 하네."

"정말? 헤헤헤~ 역시 난 예쁜가 봐~ 아! 선미는 무슨 일이래? 들어가기 전에 먼저 듣는 게 괜찮을 거 같아."

"선미 어머님이 재발하셨대."

"진짜?"

우리는 은미에게 선미 이야기를 해줬고, 조금 전까지 밝았던 은미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아···. 어떡해. 선미야···."

"민현찬. 큰일 났다. 은미 울려고 한다. 네가 좀 막아봐라."

"은미야. 일단 진정해. 너 지금 울면 선미 멘탈 나갈 수도 있어."

"내 멘탈이 왜 나가?"

"시발!!! 또 깜짝이야!!! 뒤에서 좀 튀어나오지 마라."

"미친 새끼. 어디 누나한테 욕하고 있어? 어? 은미 왔네."

"선미야!!!!!"

"악! 얘가 왜 이래? 너 나보다 커서 무거워!"

은미는 선미에게 와락 안겼다.

그 상태로 둘은 한동안 가만히 서로를 쓰다듬었고, 임석훈은 나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미' 시스터스끼리 잠시 이야기하게 놔둘까?"

"그러자."

"그런데 넌 어디 가냐?"

"담배 하나 사러. 마침 다 떨어졌어."

"많이도 피웠나 보네."

"그러게 말이다. 갔다 올게."

임석훈은 술집으로 들어갔고, 나는 편의점에 가서 담배를 하나 샀다.

그리고 뜯어서 하나를 더 피우고 다시 술집에 돌아왔는데, 입구에는 선미만 서 있었다.

"선미야 안 들어가고 뭐 해? 은미는?"

"이야기 나누고 들어갔어. 화장 좀 지운데."

"담배 하나 줄까?"

"지랄. 끊었거든."

"알고 있어. 달라고 했으면 엉덩이를 걷어찼을 거야."

"만지는 거 좋아하는 놈이 잘도 걷어차겠다. 불 줘봐."

"왜?"

"내가 붙여줄게."

"땡큐~"

나는 담배를 물었고, 선미는 불을 붙여 줬다.

뿌연 연기가 하늘로 흩어지면서, 선미의 목소리도 같이 흩어졌다.

"그래도 다들 이렇게 와주니깐 고맙네. 쓸쓸하지는 않아."

"그래. 그러니깐 혼자 꿍해 있지 마. 은미는 뭐래?"

"발만 동동 굴리지. 촬영 마치고 와준 것만 해도 고마워. 현찬아. 너 내일 혹시 시간 돼?"

"내일? 당연하지."

"그럼 첫 부탁은 너에게 할게."

"뭔데? 말만 해."

"언니 나한테도 말만 해요."

"으악!!! 또 시발!!! 이번에는 누구야?"

"오빠! 왜 나한테 욕해요!!!"

시불. 너희가 임요환이니? 3연 벙도 아니고 왜 세 번이나 놀라게 하냐.

고개를 돌렸는데 이세연이 서 있었다.

"하···. 하···. 진짜 완전 놀랬네. 벌써 세 번이나 귀신 봐서 그래."

"하···. 나도 엄청나게 놀랐어. 민현찬 네가 나한테 욕한 이유를 알겠다."

"오빠 언니 엄살 부리기는. 선미 언니! 나한테도 말만 해요! 나도 무슨 부탁인지 들어줄게요."

"그래? 그럼 마침 잘됐다."

선미는 나와 세연이 손을 잡았다.

"내일 두 사람 안 바쁘면 나랑 같이 병원 좀 가줘. 챙겨가야 할 짐이 많아서 혼자 버스 타고 가기는 조금 서글퍼서 그래."

"난 또 무슨 큰 부탁이라고. 민현찬은 콜입니다. 이세연 너는?"

"오빠 그런 건 물어서 뭐 해요? 입만 아프지. 이세연도 콜입니다."

"선미야 봤나? 이게 바로 우리의 의리다."

"아하하. 민현찬 너는 항상 마지막 한마디 말 붙여서 멋대가리가 없어. 그래도 말야."

선미는 나와 세연이를 같이 안았다.

"두 사람 정말 고마워. 당분간 신세 질게."

"그래. 그러면 된 거야."

"네~ 언니~ 얼마 든지요."

2학년 3학년을 정말 가족처럼 보냈던 우리 세 명이다.

그런 만큼 선미도 우리에게는 부탁하기 편한가 보다.

네 일 내 일이 어딨어? 우리가 되어서 내일 같이 서울에 올라가자.

아침 일찍 서울에 같이 왔다.

같이 오자고 한 이유를 알겠네.

선미 짐은 한 보따리였다. 세연이가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들어갈 만한 캐리어에 겨우 쑤셔 들어갈 정도였다.

우리는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병실에 도착했고, 문을 열자 선미 어머님이 편안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엄마. 나 왔어. 친구들도 같이 왔어."

"왔니? 후훗. 두 사람 다 낯이 익은 사람들이네요."

"안녕하세요. 민현찬입니다. 오래간만에 인사드려요."

"안녕하세요. 선미 언니 친한 동생 이세연입니다."

"올라온다고 고생했어요. 어서 앉아요. 과일이 어딨더라."

"아. 어머님 저희는 괜찮습니다."

"진짜 괜찮아요."

"엄마 가만히 있어. 괜찮다잖아."

"그래도 손님을 그냥 두는 건 아니야. 먼 곳에서 왔는데. 내가 과일 깎아 줄게요."

"아 진짜. 오늘따라 왜 이래?"

선미는 엄마한테 투덜댄다.

흐음. 이거 괜히 도와주러 왔다가 짐만 되는 상황이네.

하지만, 나에게 이런 상황은 익숙하지. 전생에 부장님 부모님 병문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족 같은 회사라고 병수발까지 시킬 줄 몰랐었지.

여튼,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풀어야겠다.

"어머님. 그러면 제가 과일 하나 깎아 드릴게요."

"아니에요. 손님한테 그러면 안 돼요."

"에이, 우리가 무슨 손님이에요. 저랑 선미는 남매 같은 사이랍니다. 선미랑 세연이는 자매 같은 사이고요. 우리 둘도 자식이라 생각하시고 편하게 대해주세요."

- 부산에 너희 집에나 좀 가라.

호구신님 안 그래도 조만간 가야겠어요.

나는 넉살 좋게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서 깎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침대 근처에 앉으며 어머님께 드렸다.

"저 예쁘게 깎죠?"

"아하하. 우리 선미보다 훨씬 잘 깎네요."

"선미가 조금 선 머슴인 건 있어요."

"민현찬 너 죽을래?"

"오케이. 항복! 세연아 너도 가까이 와."

"네~ 오빠~"

우리는 가족처럼 오순도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선미 어릴 때 이야기를 전래동화처럼 듣는데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더니 간호사가 찾아왔다.

"보호자 계신가요?"

선미가 손을 들었다.

"네. 저인데요."

"잠시 총무과로 와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선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우리 둘을 봤다.

"세연아 현찬아 같이 갔다 오자."

그러자 어머님이 선미 등을 밀면서 핀잔을 줬다.

"애도 아니고. 두 사람은 놔두고 혼자 갔다 와."

"아씨. 심심한데. 알았어~ 애들아 나 잠시 갔다 올게."

선미는 병실을 나갔고, 나는 어머님을 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는가 보다.

조용히 기다리자 어머님은 나와 세연이 손을 꼭 잡았다.

"우리 선미 외롭지 않게 잘 부탁해요."

"어머님. 당연합니다."

"맞아요. 저희는 항상 붙어 다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없어도 잘 부탁해요."

"네? 저···. 어머님?"

"후훗. 선미는 외동에다가 가족도 많이 없어요. 나 가고 나면 이모 한 명밖에 없답니다. 현찬 군은 아버지가 없다는 말 이미 들었죠?"

"... 네 들었습니다."

"그만큼 외로운 아이예요. 항상 강한 척하지만, 오히려 약해서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애가 은근히 애정에 목말라 있기도 해요."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세연이는 놀랐고, 나는 숙연해졌다.

"선미가 혼자가 되지 않도록 두 사람에게 부탁할게요. 저 애가 처음으로 친구들 이야기를 한 게 두 사람이에요. 은미랑 혜민이도 들었는데, 그 애들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음에 제가 대리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어머님. 다 잘될 겁니다."

"나이가 드니 잘 될 때보다 잘 안 될 때가 더 걱정되네요."

선미 어머님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그런 어머님의 손을 꼭 잡아 드렸다.

"어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건강만 챙기세요. 다음에 퇴원하시면 학교 한번 놀러 오세요. 제가 선미가 자주 가는 술집에서 모시겠습니다."

"후후훗. 선미 술 많이 먹어요?"

"오빠! 그런 말 하면 어떡해요!"

"어머님도 알기는 아셔야 해. 선미가 얼마나 술을 많이 먹냐면요."

나는 이선미의 주량을 고자질하였고, 어머님은 처음 듣는 딸의 모습이 재밌는지 소리 내 웃으셨다.

이렇게라도 웃으시니 다행이네요. 꼭 건강하세요 어머님.

다음으로 수업 빠진 이야기를 하려는데, 뒤에서 무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민현찬. 너 지금 무슨 이야기 하고 있냐?"

"깜짝이야!!!"

"어제처럼 욕은 안 하네. 이래서 내가 병실을 못 비워요."

어느새 온 이선미가 나를 두드려 팼다.

우리의 모습이 재밌는지 어머님은 또다시 깔깔 웃으셨고,

얼굴은 아까보다 훨씬 편해 보였다.

세연이와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둘이서 내 빌라에 왔는데, 선미가 없어서 그런지 유난히 휑해 보인다.

우리는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말없이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피곤하지?"

"조금요. 역시 사람은 입장이 바꿔봐야지 이해되는 거 같아요. 막상 서울 갔다 오니 의외로 힘드네요."

"나도 그래. 애가 빈혈로 쓰러진 이유를 알겠다."

"... 나 너무 아쉬워요."

"뭐가?"

"내가 재수 안 하고 바로 의대에 들어갔으면, 언니에게 더 도움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 하니깐 진짜 아쉬워요."

"너 바보냐? 그러면 다른 학교 가서 우리 못 만났어."

"... 어? 그렇네?"

"하이고. 애가 의대 가더니 바보가 되었어."

"뭐래? 의대 입구 와보셨음?"

"거기에 내 동생 한 명 업어 키워서 보냈음."

"아씨. 이건 반박 못 하잖아. 인정."

"앞으로 더 잘해라."

"잘하기는. 오빠 나한테 관심 좀 가져줘요. 요즘 빠져서 어디 돌아다니는지도 모르겠어."

"그러고 보니 둘이 있는 것도 오래간만이네. 술이나 한잔할까?"

"그래요. 오늘은 나도 한 잔하고 싶네요. 술 한잔해요."

"그러자."

나와 세연이는 거실에 술판을 조촐하게 펼쳤다.

< 병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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