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먹지 못했던 여사친들-225화 (225/295)

< 부산 >

황예슬. 키 167에 동글동글한 얼굴의 밝은 누나다.

전생에 나와의 사이는 조금 애매하다.

나는 별로 안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황예슬은 친하다고 생각했을 가망성이 크다.

태생이 인싸 그 자체인 사람이니깐.

두루두루 친하고 활발한 성격이라, 나에게도 먼저 말을 걸었고 손길에 이끌려 밥도 같이 먹었다.

그래서 혹시 나를 좋아하나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모두와 그렇게 지내는 사람이었다.

"현찬아 왜? 누나 얼굴에 뭐 묻었어?"

그 친화력 있는 성격은 지금도 여전하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지났는데, 생글거리는 얼굴로 우리에게 말을 편하게 하고 있다.

나는 테이블 안에서 누나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니요. 그냥 봤어요."

"누나 얼굴이 너무 예뻐서 봤구나?"

"세연이가 더 예쁜데요?"

"윽. 그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걸. 그런데 너희 둘은 무슨 모델이야? 어쩜 그렇게 예쁘고 잘 생겼어?"

"우리 둘요? 에이~ 경기도에 우리보다 외모 좋은 애도 침대에 박혀 있는데. 그치 세연아?"

"아하하. 선미 언니 말이에요? 맞아요. 이번에 같이 왔으면 좋았을 건데 아쉽다. 그런데, 예슬 언니는 전공이 뭐예요?"

"전공? 흐음. 비밀인데. 왜?"

"이런 행사 진행 같은 건 어느 과 졸업해야 하는지 궁금해서요. 레크레이션 학과인가?"

"호호호~ 그런 이야기 많이 듣는데, 아니야. 언니는 체대 나왔어."

황예슬은 나와 이세연 앞에 서더니 해맑게 웃었다.

"내가 지금 옷을 두껍게 입어서 그렇지 종아리에 근육이 장난 아니야. 나한테 로우킥 맞으면 현찬이도 못 버틸걸?"

"에이~ 현찬 오빠는 운동 많이 해서 충분히 버틸걸요? 맞지 오빠?"

"진짜 맞을 거 같으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네 누나. 못 버티는 거로 해요."

"아니야. 여기 과학 놀이잖아. 우리 시험 해 보자."

"필요 없거든요."

"오빠! 한 번 맞아봐요!"

고향이니깐 본토 발음할게.

이 가시나들이 미칬나?

황급히 도망가려는데, 이세연과 다른 조원들이 따라붙었다.

"너희들, 왜 이래!"

"아하하. 오빠 한 대만 맞아봐요!"

"현찬아 한 대만 맞아봐!"

이게 집단 광기라는 건가?

나는 사람들 손에 붙잡혀 테이블 밖으로 끌려나갔다.

"아씨. 잠시만요! 이거 맞으면 뭐 해줄 건데요? 다들 조건 하나 걸어요! 이세연 너부터 말해."

"맛있는 거 사줄게요!"

"됐거든. 어차피 도시락 먹는데 의미 없거든. 전부 다 쉬는 시간 한 타임 나에게 넘겨. 예슬 누나도 마찬가지예요!"

"오호. 요거 센 거로 딜하네. 콜! 버티면 넘겨줄게."

훗. 그래? 그렇다면 할만하지.

옛날의 민현찬이 아니다. 여자 로우킥에 무너질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

나는 테이블을 잡고 자세를 취했다.

- 쟤네 뭐해?"

- 예슬이한테 걸렸대.

- 저 조는 벌써 친해졌나 봐.

고개를 돌리자 사람들이 어느새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자존심이 달린 거니 꼭 버티자!

빡!!!

으악!!!!! 다리에 해머로 가격한 듯한 거센 충격이 느껴졌고, 나는 바람빠진 풍선인형처럼 주저앉았다.

레미 본야스키세요?

- 아하하하.

- 또 한 명 당했네.

주위 사람들은 웃었고, 예슬 누나와 이세연은 화들짝 놀라면서 쓰러진 나를 부축 해줬다.

"현찬아 괜찮아?"

"누나. 일단 경찰서 가서 이야기해요. 미안한데, 이건 법적 조치가 들어가야겠어요."

"오빠 괜찮아요?"

"세연아. 다 너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공평하게 한 대만 맞자."

"아하하. 저는 싫거든요~"

"싫은 건 둘째치고 좀 일으켜줘라. 뒤질 거 같아."

두 사람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양쪽 팔꿈치에 뭉클함이 느껴진다.

한쪽은 이세연 C컵 가슴인데, 다른 한쪽은...

띠리리리링.

측정 불가 입니다!

이 가슴은 D컵 이상이다. 운동하는 여자인데 측정이 안 된다고? 한 번도 경험 못 해본 가슴이다.

성적 호기심이 아니라 순수한 과학적 호기심으로, 흉부 스캐닝을 하려는데, 예슬 누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시불. 뻘쭘하네. 말 돌리자.

"누나. 미란다 고지 알죠? 변호사를 부를 수 없고요, 묵비권 행사 못 하니깐, 그냥 잘 못 했다고 하세요."

"아하하. 그러게 왜 맞는다고 했어?"

"안 맞는다는 거 누나가 때린 거잖아요!"

"오빠 그런데 진짜 아파요?"

"이세연 너도 경찰서 같이 가자. 너도 공범이야. 아씨. 일어서 있지를 못하겠네. 나 첫 타임 휴식할 겁니다."

"그런 게 어딨어요!"

"경찰서 가기 전에 조용히 해. 누나 첫 타임 쉬어도 되죠?"

"미안한데 첫 타임은 안 돼. 누나 하는 거 보고 배워야 하거든."

"저는 안 배워도 잘하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러다가 막상 사람들 오면 버벅댄다."

"저를 뭐로 보시고. 누나, 이건 어때요? 내가 잘하면 이번에는 누나가 나한테 맞아요."

"아하하. 야! 누나 여자야."

"아니요. 누나의 강함은 여자가 아니었어요. 사람 대 사람으로 도전합니다. 어때요 콜?"

"어쭈. 자신 있나본데? 또 체대 자존심이 있는데 질 수는 없지. 콜."

"오케이 내기 성립된 겁니다. 그럼 일단 쉬고 올게요."

나는 세연이랑 예슬 누나에게 손을 흔들고 자리를 떴다.

그때 뒤에서 이세연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같이 가요."

"너는 옆에서 배워."

"화장실 가는 거거든요."

우리는 나란히 서서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는데, 이세연이 뭐가 재밌는지 계속 킥킥 웃었다.

"진짜 아팠어요?"

"진짜 소송 걸 거다. 너 그런데 신발 그거 말고 다른 거 없어?"

"왜요? 이거 예쁘잖아요."

"구두잖아. 세 시간만 서 있으면 발바닥 아파서 기어 다닐걸?"

"여자들은 힐 신고도 종일 다니잖아요. 괜찮아요."

쓰읍. 아닌데. 다리 진짜 아플 건데.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는데, 이세연은 화장실로 쫄래쫄래 걸어 들어갔다.

나도 담배나 하나 피우러 가자.

부스를 빠져나와 흡연 구역으로 갔는데, 김민우 형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민우 형? 아니 민우 대표님? 여튼 안녕하세요."

"하하하. 편하게 형이라 불러요. 엉덩이 괜찮아요?"

"형도 말 편하게 해주세요. 엉덩이는 아직도 조금 아프네요."

"그럼, 말 편하게 할게. 예슬이 보통 아니지?"

"네. 괜히 맞는다고 했어요. 아씨. 민우 형! 예슬 누나 콩밥 먹여도 되죠?"

"아하하. 가능하면 해봐. 아마 너 죽이고 빵에 들어갈걸? 저 왈가닥 아무도 못 이겨. 우리 중에서도 이기는 사람이 없어."

"형들도 누나한테 당했어요?"

"다 한 대씩 맞았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들이 됐다가 두 대 맞고 뻗었어."

김민우 형은 피식 웃으며 담배 연기를 내 뿜었다.

"그래도 네 덕분에 분위기 밝아졌다. 확실히 너 같은 사람 한 명 있으면 일하기 편해."

"잠시만요. 혹시 바보가 필요한 건 아니죠?"

"그런 거 아니야. 원래 행사는 시작하기 직전이 제일 얼어 있거든. 그 시간에 사람들이 너 구경하면서 기분 좋게 웃었잖아. 긴장도 풀고. 돌아갈 때 다른 조들 한번 살펴봐. 한층 더 부드러워져 있을 거야."

"예슬 누나가 그래서 나 때렸나 보네요. 반드시 콩밥 먹여야겠어요."

"속없는 말 하기는. 예슬이 예쁘지?"

"예쁜 건 모르겠는데, 폭력적인 건 확실하네요. 예슬 누나 인기 많아요?"

"왜? 마음에 들어? 대쉬 해보게?"

"그럼 끔찍한 소리는 하지도 마요. 형 말대로 사람은 예쁘잖아요."

"먼저 다가오고 재밌기도 하고. 그래서 인기 엄청 많았지. 우리 메인 스텝들 남자 중에서 안 들이댄 사람이 없을 정도야. 그런데 아무도 성공 못 했어."

"진짜요? 의외네. 행사하면서 붙어 다니면 사귀기 쉬울 텐데."

"자기 로우킥을 다섯 대 견디는 사람과 사귈 거래. 내가 그 말 듣고 두 대까지는 버텼는데, 더는 못 하겠더라."

그래요? 다들 포기할만하네.

민우 형은 재떨이에 담배를 껐다.

"다 폈으면 들어가자. 어! 잠시만. 그러고 보니 너 여기 왜 나와 있어?"

"왜요?"

"아씨. 하도 자연스러워서 너도 메인 스텝인 줄 알았다. 너 보조 스텝이잖아! 오늘 첫날인데 가서 배워야지."

나도 담배를 재떨이에 버린 후, 씨익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안 배워도 잘하니깐요."

"뭐?"

"정 궁금하면 잘하는지 한 번 보세요."

나 경력 있는 신입이야!

솜씨 좀 보여줘야겠다.

나와 김민우는 우리 부스에 돌아왔는데, 이세연이 초등학생들한테 둘러싸여서 쩔쩔매고 있는 게 보였다.

- 여러분 전자레인지에서는 마이크로웨이브가 물 분자를 진동시켜줘요. 그래서 물 분자는 증발하게 됩니다.

- 누나~ 마이크로웨이브가 뭐예요?

- 전자파라고 생각하면 돼요!

- 분자는 뭐예요?

- 하... 분자는 물질을 이루는 작은 단위인데.

- 에이~ 누나 재미없어요!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어요~ 재밌는 이야기 해줘요.

- 으... 그래도 설명 들어야만 해요~

- 싫은데~ 메롱!

으하하하. 이세연, 초등학생의 도발에 머리가 폭발하기 직전이다.

낄낄거리며 구경하는데, 옆에서 김민우가 내 팔을 툭 쳤다.

"저것 봐. 처음에 하면 다들 저렇게 헤매. 너도 빨리 배우는 게 좋을 거야."

"보고 놀라지나 마세요."

나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 뒤로 가는데 황예슬 누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야! 왜 이렇게 늦었어!"

"민우 형이랑 누나 뒷담화 까다가 늦었어요."

"뭐? 오케이. 일단 그 제보 덕분에 네 목숨은 살려줄게. 늦었으니깐 뒤에서 구경 좀 하고 있어."

"괜찮습니다. 제 옆에 있어 주기나 해요."

"막상 하려니 떨리나 보다."

"아니요. 누나를 활용 좀 해야 하거든요."

테이블에 섰는데, 어느새 많은 초등학생이 몰려와서 나를 보고 있었다.

자~ 시작해보자.

"여러분~ 오늘은 압화라는 걸 만들 거예요! 압화가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

초등학생 중에서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압정 아니에요?"

"아니지롱~~ 너희들 이것도 모르니? 맞추는 사람에게는 형이 선물 줄게!"

"정말요?"

"거짓말인데~"

"아~ 뭐예요!!"

"거짓말쟁이다!!"

아이들이 투덜거리는데, 확실한 건 나에게 집중이 확 됐다.

"그럼 이제 거짓말 말고 제대로 이야기해줄 게~ 압화라는 건 꽃을 말리는 거야. 모두 다 여기를 봐요~ 이렇게 예쁜 꽃을 말려서 코팅하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어."

"형! 잘 안 보여요!"

"나도 볼래!"

"그럼 다 같이 뒤로 손!"

아이들을 손을 뒤로하고 눈을 말똥말똥 떴다.

말 잘 듣네.

나는 손을 앞으로 쭉 뻗어서 압화를 구경시켜줬다.

남자애들은 고작 이거라는 표정이고, 여자애들은 예쁘다고 난리다.

"이런 압화를 만들어 볼 거야. 그러려면 원리를 알아야겠지. 다들 이게 뭐게요~"

"전자레인지요~"

"그래. 이 전자레인지에 꽃을 넣고 돌리면 물이 다 사라져서 바짝 마르게 되는 거야~ 다들 알겠지?"

"모르겠어요!"

"내가 설명 잘해줄게. 숙달된 조교 옆으로 오세요."

황예슬 누나에게 눈짓하자 내 옆에 섰다.

"친구들~ 이 누나가 꽃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누나 예쁘죠?"

"아니요~~~!!"

남자아이들이 짓궂게 답했다.

"맞아요. 전혀 안 예쁘죠. 그래도 꽃이라고 생각해 악!"

"죽는다."

"누나. 애들 보는데 폭력 자제요. 자 여러분 안 예쁘다 하면 우린 죽으니깐 예쁘다고 할게요~"

"아하하하! 저 형 불쌍해! 네! 예쁘다고 할게요!"

"그래요. 이 누나가 이제 전자레인지에 들어갑니다."

나는 황예슬 누나를 쳐다봤다.

"누나 뭐해요? 전자레인지 안에 들어가야지. 어서 문 열고 들어가요."

"뭐?"

"애들이 기대하고 있잖아요! 빨리요."

"뭘 어떻게 하라고?"

"하이고. 아마추어도 아니고, 전자레인지 들어가는 척 연기하세요. 판토마임 처럼요."

내 재촉에 예슬 누나는 문을 여는 판토마임을 하면서 한 걸음 옆으로 갔다.

개꿀잼. 조금 더 놀려 먹자.

"이제 전자레인지가 돕니다. 뚜루루루."

예슬 누나 머리를 잡고 돌렸다.

애들이 보는데 별수 있나? 누나는 내 손길에 맞춰서 천천히 돌았다.

"여기에 전자파가 쏘여집니다. 지리리리링! 누나 뛰어요."

"뭐라고?"

"제자리 뛰기 하면서 돌라고요."

"아하하. 너! 끝나고 보자."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뱅뱅 도는 예슬 누나.

나는 그런 누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아이들에게 설명해줬다.

"여러분~ 전자레인지에 들어간 꽃은 이 누나처럼 막 뛰면서 운동하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더워서 땀 나요!"

"정답! 굉장히 똑똑한 대답이었어요. 이렇게 움직이면 땀이 나게 됩니다. 전자레인지에 들어간 꽃도 마찬가지예요. 계속 돌면서 전자파를 맞으면 땀이 나와서 결국 바싹 마르게 되는 겁니다. 다들 알겠죠?"

"우와~~ 신기하다!"

"오오~~~"

아이들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예슬 누나는 계속 돌았다.

체대생이라 그런지 안 넘어지고 잘 도네.

더 구경하고 싶지만, 여기서 멈추자.

"자~ 친구들~ 이제 다 같이 우리 한 번 만들어 봐요~ 여기 옆에 있는 누나가 도와줄 거예요."

"현찬아?"

"누나. 미안요. 나는 설명만 잘해서요. 파이팅."

내 말에 예슬 누나는 도는 걸 멈춘 후, 갑자기 웃었다.

"아하하. 하하하."

웃음에서 분노가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농담이에요 누나. 빨리 애들 도와줘서 같이 만들어요."

누나의 살기에 나는 초등학생들이 압화를 만드는 걸 도와줬다.

씨... 이세연 쪽 가봐야 하는데.

이번 애들 정리하고 어서 이세연 도와주러 가야겠다.

이세연도 똑같은 방법으로 설명법을 가르쳐 줬고, 이제 우리 조는 2인 1조로 한 명은 돌고 다른 한 명은 설명하는 거로 바뀌었다.

이게 호응이 좋다나 어떻다나.

결국, 나도 몇 바퀴 돌았고, 지금은 점심시간이다.

나와 세연이는 부스 뒤에 텅 빈 공간에서 양반 자세로 퍼질러 앉아 밥을 먹고 있다.

"하도 움직였더니 배고프네. 세연아 어때? 재밌지?"

"처음에는 애들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짜증 났었는데, 오빠처럼 설명하니 애들이 알아들어서 재밌어졌어요. 어떻게 그렇게 설명할 생각을 했어요?"

"다시는 문과를 무시하지 마라.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이런 거야."

"확실히 오빠는 은근히 똑똑하단 말야."

"의대생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는 않거든. 거기 고기 안 먹을 거면 나 하나만 줘라."

"싫거든요. 아껴먹고 있거든요."

"나 주려고 아끼는 거잖아."

"젓가락 치워요! 아니래도요!"

나와 이세연은 반찬을 가지고 티격태격했다.

그때 뒤에서 남자 여자 웃음소리가 들렸다.

"너희 둘은 친한 거야 안 친한 거야?"

"둘이 사귀는 사이 맞대도."

고개를 돌리자 김민우 형과 예슬 누나가 도시락을 들고 서 있다.

두 사람도 밥 타임인가 보다. 우리 맞은편에 앉더니 도시락을 오픈했다.

"누나. 나 떡갈비 하나만요."

"누나 체대생이다."

"닥치고 있을게요."

떡갈비 하나에 엉덩이를 걸 수는 없지.

얌전히 밥을 먹는데 김민우 형이 껄껄 거리며 웃었다.

"으하하하."

"형. 뭐가 재밌어요?"

"친화력 하면 예슬이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너도 대박이다."

"뭐가요?"

"반나절도 안 돼서 모두랑 친해졌잖아."

···

그렇네요?

어느새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익숙해진 나다.

나는 반찬을 하나 입에 넣으면서 예슬 누나에게 말했다.

"우리 내기한 거는 어떻게 됐어요?"

"어머? 너 가녀린 누나를 때릴 거야?"

"내가 보기에 누나는 천진반은 가볍게 이기고 최소 피콜로 정도는 해볼 만합니다."

"야! 너 죽을래?"

예슬 누나가 나에게 달려든다.

달덩이 두 개가 나에게 달려든... 정신 차리자.

나는 재빨리 피하면서 이세연을 봤는데, 입이 툭 튀어나와 있다.

"여튼 내기는 했으니깐 지켜야죠. 그렇다고 누나를 때릴 수는 없고.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옆에 있던 민우 형이 내 편을 들어줬다.

"그래. 예슬아 부탁 하나 들어줘. 사무국에서 너희 조 설명 재밌게 잘한다고 칭찬이 자자 하더라."

"그럼 민우 형이 들어줘요. 사실 예슬 누나보다 민우 형이 할 수 있는 거거든요."

"내가? 무슨 부탁이길래 그래?"

"신발 하나만 구해줘요. 편한 거로요. 발 아파서 도저히 못 서 있겠어요."

"신발? 비용 처리해서 하나 사 오지 뭐. 사이즈 얼만데?"

나는 이세연을 바라봤다.

"너 발 사이즈 얼마야?"

"네? 나요?"

"그래. 다리 아파서 종일 절뚝거렸잖아. 구두 말고 운동화로 바꿔 신어."

"아... 괜찮은."

"괜찮기는. 240 맞지?"

"어떻게 알았어요?"

"네 사이즈는 뭐든지 다... 이건 아닌 거 같고. 여튼 민우 형, 예슬 누나. 240 사이즈 운동화 하나만 구해주세요."

이세연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졌고, 나는 노란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줬다.

"아프면 말해라."

"뭐지? 왜 이렇게 상냥하면서도 재수가 없지?"

"오빠. 부산 싸나이 아이가."

···

시불 마지막 말은 괜히 했네.

세 사람 다 큰 소리로 웃었다.

여튼 첫날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 부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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