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
내 달력은 끝이 아니라고~ 32일이라고~ 33일이라고~
별의 12월 32일이 차 안에 울려 퍼진다.
새해 첫날 여사친과 동해 바다 여행이라니.
노래도 달달하고 모든 게 완벽하다. 딱 하나만 빼고...
운전하면서 고개를 살짝 돌리자, 입을 벌린 채 자는 이선미가 눈에 들어온다.
운전하신다면서요.
뭐 그래도 한 시간 정도는 선미가 운전했다. 사고 날뻔했던 게 문제지.
그 후로는 내가 운전대를 잡았고, 이제 어느덧 강원도에 거의 다 왔다.
그런데, 선미 진짜 자고 있을까? 어디 한 번 확인해 보자.
나는 슬쩍 선미의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코.... 코...."
진짜 자고 있나 보다. 허벅지를 만져도 아무 반응이 없다.
두근. 두근.
아니! 이게 뭐라고 심장이 두근거려!
...
조금만 더 만져 볼까? 나는 손을 천천히 계곡 부위로 옮겨 갔다.
"안 잔다."
"깜짝이야!!! 하! 놀래라!"
"내가 더 놀랐다. 이 새끼야! 뭔가 싶었네. 민현찬! 감히 자는 친구를 따먹으려고 해? 그러고 보니 처음 할 때도 나 자고 있을 때 네가 덮쳤었지?"
"하... 잠시만 선미야. 일단 마음 좀 진정시키자. 와... 방금 너무 놀라서 사고 날뻔했어."
"그러게 왜 도둑질을 하려고 해?"
"도둑질 아니거든요. 자는 거 깨우려고 한 거거든요."
"웃기네. 손이 계속 올라오더만. 하으응~~ 어디쯤이야? 이제 운전 바꿀까?"
"됐어. 거의 다 왔어. 너는 당당하게 가자고 할 때는 언제고 하루종일 잠만 자냐?"
"우쭈쭈~ 우리 동생 그래서 화났어요? 미안해~ 헤헤헤. 현찬아~ 미안해~"
"됐거든. 사과 받아주면 동생이라 할 거고, 아니라고 하면 소심하다고 할 거면서."
"꺄하하! 들켰네~ 옛날의 민현찬은 잘 속아 넘어가서 재밌었는데. 요즘은 눈치가 빨라져서 재미없어졌어."
그럼. 나 이제 옛날의 민현찬 아니야.
그런데 여기는 어디냐? 이상하다. 네비랑 길이 안 맞다.
...
시불. 지금 2008년이지! 간혹 네비가 맛 가는데, 왜 하필 지금이냐?
"선미야. 큰일 났다."
"왜? 뭐 설마 길을 잃었다 이런 건 아니겠지?"
"비슷한데 약간 틀려."
"뭔데 말 해봐?"
"어딘지 하나도 모르겠어."
"...코...."
"야! 자는 척하지 말고! 이러다가 해 뜨는 거 못 봐!"
"...음냐... 음냐..."
"아이! 그럼 잔다고 생각하고 만진다."
"잠시만, 방금 잠에서 깼어! 음... 일단 쭉 직진해보자. 그럼 바다가 나오지 않을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표지판이나 봐. 어디 해수욕장 쓰여 있으면 거기로 바로 가게."
"치. 민현찬 나이 먹더니 로망이 없어졌어."
"현실적인 거거든. 무슨 영화도 아니고 직진한다고... 바다가 나왔다!!!"
"어? 진짜 바다야!!!!!"
뭐, 이게 된다고? 저 멀리 검은 바다가 울렁이는 게 보인다.
선미는 내 어깨를 팡팡 치며 깔깔 웃었다.
"아하하! 내 말 맞지. 누나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거야."
"너 그 말 명심해라. 특히 마지막에 한 말."
"뭐? 떡이 생긴다고? 하... 이 새끼가!"
"야!!! 귀 떨어지겠다."
"자는 여자 놔두고 축구 보려고 했던 놈이 변해도 너무 변했어!"
"그때의 민현찬은 이제 없거든. 참나, 거기 작다고 헤어진 사람이 누군데."
"아하하.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그건 미안하데도~ 오늘 누나가 쏠 테니까 맛있는 회 먹고 풀어요~"
"됐어. 내가 살게. 회 몇 푼이나 한다고. 어. 저쪽으로 가면 되나 보다."
한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자 백사장이 나왔다.
여기가 어디야?
잘은 모르겠지만, 아예 시골은 아닌가 보다.
한쪽에 횟집 몇 군데가 불 켜져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숙박업소는 없나? 횟집으로 차를 몰고 가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렸는데, 호텔이나 모텔이 안 보인다.
우리는 한 횟집 앞에 차를 주차했다.
선미는 기지개를 한 번 켜더니 횟집에 들어가려고 했고, 나는 그런 선미 팔을 잡았다.
"선미야. 여기 근처에 펜션 있는지 먼저 찾아보자."
"펜션은 왜?"
"술 먹고 자고 갈 거 아니야?"
"아닌데. 나는 술 안 먹을 건데? 늑대 같은 놈 옆에서 어떻게 술을 먹어?"
꼬무룩.
"민현찬 하여튼 음흉하기는. 어? 저기 민박집도 하나 있다. 안 되면 저기서 자고 가자."
"이왕이면 저런 싸구려 말고 좋은 데서 자자. 둘 다 편하고 좋잖아."
"나는 괜찮거든요. 민현찬 요즘 너무 고급이야. 어서 회나 먹으러 가자."
이선미는 총총걸음으로 횟집으로 들어갔다.
선미야. 내 편해지자고 하는 거냐? 너 편히 자라고 하는 거지.
하여튼 저 털털이. 분명히 네가 그냥 아무 데서나 자자고 했다. 나중에 구시렁거렸다간 봐라.
나도 선미를 따라 횟집으로 들어갔다.
새벽 네 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지만, 횟집에는 의외로 몇 명의 사람들이 술을 먹고 있었다.
"두 분이세요? 뭐 주문하시겠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주인아주머니가 오셨고, 선미는 해맑게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 이 시간에도 원래 문 열어요? 저희 문 연 집 없을까 봐 엄청 걱정했거든요."
"아유. 새해잖아요. 이렇게 늦깎이 손님들이 많이 와요."
"아하하. 진짜 다행이다. 저희 그냥 광어회 하나 주세요."
"선미야. 비싼 거 먹자. 여기 뭐가 제일 비싸요?"
"우리 집 모둠회가 맛있어요."
"킹크랩 같은 거는 없나 보네. 그럼 모둠회랑 낙지 주시고요. 선미야 너 소주 먹을 거야?"
"나는 안 먹을 겁니다."
"그럼 소주 하나만 주세요. 나는 먹어야지. 올라갈 때는 네가 운전해라."
"알았어."
"그럼 준비해 드릴게요."
아주머니는 주방으로 갔다. 그러자 선미가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너 로또 당첨됐어? 말에 부티가 섞여 있다."
"뭐. 비슷한 게 일어나기는 했어. 로또 당첨보다 더 클 수도 있고. 여튼 형편이 많이 좋아질 예정이야."
"진짜? 축하합니다. 민현찬 씨. 이제 나이키 안 입겠네."
"나이키는 누구 덕분에 뗀 지 오래되었습니다. 너 그런데 왜 갑자기 해 보러 가자고 한 거야? 할 말 있어?"
"있는데 말해도 될지 안 될지 모르겠어."
"뭔데 말해봐."
"지금의 너한테는 말 못 하겠어."
"그러니깐 더 궁금하잖아. 뭔데?"
"조금 더 고민해 볼게. 어 회 왔다."
아주머니가 커다란 회 접시와 이것저것 반찬들을 낑낑거리며 가지고 온다.
쓰읍. 너무 많이 들고 오시는 거 아니에요?
하나씩 테이블에 툭툭 놓는데, 불안 불안하다.
"꺄악"
"선미야!"
아니나 다를까, 쌈장과 간 마늘이 발라져 있는 종지가 쟁반에서 사르륵 미끄러지더니, 선미 청바지 위에 떨어졌다.
"아이고. 어떡해! 학생 미안해요."
"아하하하. 아주머니 괜찮아요. 새해인데 액땜했다 생각하면 돼요."
"저기요. 아주머니. 조심 좀 하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현찬아 괜찮아."
"아니, 새해에 여행 왔는데 이게 뭐야. 너 옷도 없잖아. 저기요 아주머니!"
"현찬아 괜찮대도. 아주머니 저희 진짜 괜찮아요."
선미는 웃으면서 아주머니에게 계속 괜찮다고 했다.
으그. 이 착해빠진 것아. 내가 호구 탈출했더니 네가 호구가 되었네.
하... 선미가 저렇게 말리니 화낼 수도 없고. 오늘은 참고 넘어가자.
이제 테이블 위에 회랑 안주, 소주가 전부 놓였다.
한 병 정도 마셨을 때쯤, 선미가 깊은 한숨과 함께 붉은 입술을 살짝 열었다.
"현찬아. 요즘 너 좀 불편해진 거 알아?"
"내가 불편하다고? 설마. 천하의 이선미가 나를 불편해한다고? 으하하. 야. 농담도 심하다."
"농담 아니야. 진짜로 조금 불편해. 아니, 솔직히 말하면 조금 무서워."
"아하하하. 이선미가 날 무서워 한대. 아하하하."
선미는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진짜야? 진짜 내가 무섭다고?"
"응. 이제 예전처럼 이 새끼, 저 새끼, 미친 새끼 못 하겠어."
"그건 옛날이 조금 이상했던 거고. 아니, 그런데 진짜야?"
"그럼 진짜지 가짜겠냐? 나도 너를 무서워할 일이 생길 줄 몰랐다. 에이씨. 나도 술이나 먹어야겠다. 술 따라줘."
나는 선미에게 술을 따라줬고, 선미는 원샷을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잔이 돌았고, 이제 우리는 둘이서 네 병 정도의 술을 마신 상태다.
알딸딸한 상태지. 그러자 선미가 회를 한 점 입에 넣으면서 속마음을 꺼내 나에게 보여줬다.
"너 아까 빌라에서 나한테 옷 사준다고 했었잖아."
"응. 그랬지. 그게 왜?"
"나 너랑 3년 동안 친구로 지내면서 그런 이야기 처음 들어 봤어."
"그래서 놀란 거야?"
"응 되게 어색하더라. 무엇보다 뉘앙스가 조금 이상했어."
"어떻게?"
"돈으로 사람 꼬시는 느낌? 그런 게 들었어. 내가 아는 민현찬은 돈이 많아도, 돈으로는 사람 안 꼬시거든. 마음으로 꼬시지."
"내가 그랬어? 잘 모르겠다."
"조금 전에도 왜 그렇게 아주머니에게 화를 낸 거야?"
"그거는 네가 피해를 입으니깐 화가 나서 그랬지."
"어머 정말? 그건 좀 고맙다. 오케이 친구 인정! 악수 한 번 하자."
"...하이고. 이러면서 뭐가 무섭다는 거야. 그런데 불편하다는 게 무슨 뜻이야? 네가 그냥 말할 애는 아니잖아."
"우리 병원 입원했을 때 생각나? 그때 느낌이 났어."
"병원... 아. 그때 병원에서 섹스했을 때? 악!!!"
선미가 상추로 나를 때렸다.
무섭기는 개뿔.
"이 미친 새끼야. 사람들 다 있는데 크게 이야기할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여튼 그때 기분이 났다고?"
"응. 그때 너 되게 무서웠거든. 돈에 미친놈 같아서. 지금도 그래. 최근에 돈 가지고 무슨 일 있었어?"
"...약간은 있었는데. 그래. 이제 다 끝난 일이니깐 말해줄게."
참. 이선미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불알을 비빌 친구였을 거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모든 일을 털어놓게 된다.
나는 최근 한 달 동안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선미에게 이야기해줬다.
"그랬구나. 고생했네. 그래서 날카로워져 있었구만."
"너는 안 놀라? 네 친구가 몇십 억을 가지고 왔다 갔다 했는데."
"나 줄 거 아니잖아. 그리고 돈은 먹고살 만큼만 있으면 돼. 나는 예쁘잖아."
...
네. 인정합니다.
"여튼. 한 달 동안 그런 일이 있었어. 그래서인가?... 선미야. 진짜 내가 변한 거 같아?"
"조금? 약간 갑질하는 느낌은 확실히 생겼어. 너 그때 병원에서 나한테 했던 말 기억나?"
"...그때 키핑한 거 우리가 했었나?"
"지랄하지 마시고요. 네가 돈에 잡아 먹힌다 싶으면 말해달라고 했었잖아."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응. 기억 안 나는 거 보니깐 이미 잡아 먹혔네. 눈에 웬 독기가 있나 싶었더니 돈독이 오른 거였어."
선미는 내 잔에 술을 채워줬다.
"눈으로 마셔라. 소독하게. 너 뭐해? 왜 갑자기 멍하니 있어?"
"...진짜 기억이 안 나서. 왜 내 머릿속에 그 기억이 없는 거지?"
"너는 뭐 하나 꽂히면 앞만 보고 달리잖아. 나에게 꽂혔을 때도 투투라고 반지 사 오고."
"쓰읍. 너는 한참 진지한데. 제발 선미야."
"아하하. 알았다. 알았어. 안 놀릴게. 현찬아."
선미는 내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잖아. 그래서 네가 성격이 괴팍해지든, 돈 지랄을 하는 사람으로 변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아."
"그 말이 더 섭섭하다."
"여튼! 나는 그래. 그런데, 그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이 어려워하고 이유를 몰라 힘들어하는 건 보기 싫어."
"...잘 이해가 안 돼."
"박인혜 대표한테 애교 부려 보라고 했다면서. 우리 담배 하나 피자."
"이 타이밍에? 그래 일단 하나 피우자."
아직은 실내 흡연이 가능한 시대지. 좋네.
우리는 담배를 하나씩 물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사람은 너를 어떻게 생각할까? 정말 무서워할까?"
"그럼 당연하지. 내가 목줄 꽉 쥐고 있는데."
"목줄이 물린 개는 그 목줄이 풀리는 순간 주인을 물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해. 무엇보다 그렇게 돈으로 사람 누르는 거 너답지 않아."
그렇게 돈으로 사람 누르는 거 너답지 않아.
쾅!!!
선미의 한마디가 망치가 되어 내 머릿속을 때렸다.
"우리 엄마가 그랬어. 세상살이에 적은 만들지 말라고. 졷같은 쌍년이 있으면 그냥 안 친한 사람으로 지내면 그만이래. 괜히 감정 소비할 필요 없대.
그러다가 그 사람이 필요하면 다시 친해지면 되는 거고. 안 친한 사람은 친해지면 그만이지만, 적으로 만든 사람은 친해지기가 어렵대."
"...너 몇 살이냐? 혹시 너도 환생했냐?"
"환생은 무슨. 이렇게 예쁜데 환생을 왜 해?"
인정합니다.
아차차. 이게 아니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고 보니 요즘 쓸데없이 감정을 난사한 거 같기는 하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아직도 박인혜와 주변 인물들에게 했던 내 행동이 필요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하지는 않았나? 한 번쯤 돌아봐야 할 필요는 있다.
어쩌면 나도 좀 가졌다고 그 사람들을 닮아 가는 건 아닐까?
스르륵.
술이 갑자기 머리끝까지 올라온다. 이건 술인가? 아니면 부끄러움인가?
잘 모르겠다.
"선미야. 나 술 취한 거 같은데, 정신 차리게 뺨 한 데만 때려주라."
"미친 새끼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너도 술 취한 거 같은데 우리 한 데씩 때릴래?"
"턱 돌아가도록 때려줄게. 옆으로 와봐."
나는 선미 옆에 앉았다.
"어금니 꽉 깨물어라."
"...잠시만 취소할게."
"이미 늦었어."
짝.
시불. 이선미야! 나 무섭다면서! 이거 또 말려든 거 아니야?
선미는 양손으로 내 양쪽 뺨을 동시에 찰싹 때렸다. 아니 때렸다기보다는 붙였다는 게 더 맞다.
나는 지금 선미 양손에 금붕어처럼 볼이 눌러져 있다.
선미는 나를 보며 쌩긋 웃었다.
"이제 좀 정신 차려져?"
"아으으. 정신 차려지니깐 그만 놓아주지 그래? 이러다가 찐빵 되겠다."
"아직 정신 못 차렸네. 더 차리게 해줄게."
헉. 너 뭐 하려고 하는 거니? 혹시 박치기하려는 거니?
선미의 하얀 얼굴이 나에게 다가왔고,
쪽.
입술과 입술이 맞붙었다.
- 오~~~~
- 청춘이다~~~
- 보기 좋다~~~
주위 사람들의 환호도 내 귀에 들려온다.
10초 정도의 짧은 뽀뽀가 끝나자 선미는 입술을 떼고 배시시 웃었다.
...
선미 술 취했네.
"헤헤헤. 이제 정신 좀 차려지지?"
"...아니 다시 한번만 더 해줘."
"하여튼. 넌 미친놈이야."
쪽.
그걸 다시 해주는 너도 미친년이야.
다시 시작된 키스. 이번에는 서로에게 혀와 혀를 집어넣으며 돌렸고, 주위 사람들의 환호는 더욱 커졌다.
키스를 끝낸 선미는 입술을 떼고 씩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이제는 확실히 정신 차려지지?"
"네. 누나."
"아하하. 누나라고 하는 거 보니깐 정신 차렸네. 아~ 이제 좀 편하다."
선미는 기분 좋은지 웃으면서 나에게 헤드락을 걸고 흔들었다.
고마워. 진짜 정신 차려졌어.
아니, 팽팽했던 선 하나가 끊어진 기분이다.
솔직히, 말단 회사원에서 처음으로 주주가 돼서 너무 신나기는 했다.
그래. 나도 업 된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자.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위해서도 그게 필요하다.
나는 내 머리를 흔드는 이선미 허리를 살짝 감았다.
"선미야. 고마워."
"소름 돋으니깐 그딴소리 하지 말아줄래?"
"그럼 안 고마워. 그런데 우리, 나가야 하지 않을까?"
"왜?"
"우리 키스하는 거 주위 사람들이 다 봤거든."
"뭐 무슨 소리... 시발. 망했네."
- 멋있어요.
- 부럽다!
- 우리도 저랬는데.
이제야 눈에 들어오니? 사람들이 우리 둘만 보고 있어.
이 눈총을 받으면서 회를 먹을 수는 없지.
그때 주인아주머니가 나에게 왔다.
"...아주머니. 아까는 제가 너무 무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오호호. 아니에요. 내가 실수한 건데요 뭘. 학생 이거 필요할 거 같아서 주고 갈게. 계산해줄까?"
"네. 계산 부탁드릴게요."
이게 뭔데요?
아주머니는 나에게 명함을 줬고, 자세히 보니 여관 전화번호와 약도가 그려져 있다.
"여기 근처에서 제일 좋은 곳이야. 젊은 친구들이 자기는 여기가 더 좋을 거야."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저런 좋은 분한테 화를 내다니. 나는 쓰레기였어!
이 은혜 꼭 갚을게요.
위대하시고 존경스러운 아주머니께서는 곧 계산을 해주셨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미야. 어서 가자."
"잠시만 현찬아. 여기 포장... 씨. 안 되겠네. 그냥 가자."
그래. 그러기에는 우리 지금 너무 민망해.
어서 도망가자.
나와 선미는 서둘러 횟집을 나왔다.
< 새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