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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못했던 여사친들-218화 (218/295)

< 마무리 >

은미는 빌라로 오는 중이다.

아직 합격 불합격이 나온 건 아니지만, 박인혜와 잠시 통화했는데 담당자들이 화들짝 놀랬다고 한다.

박인혜 본인도 놀랐고.

연기력이 늘었다기 보다는, 눈빛에 감정이 더해지면서 몰입감이 높아졌단다.

못 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차에서 내가 느꼈던 기분과 비슷한 거겠지.

여튼 다행이네. 오늘 축하 파티 하자.

우리는 분주하게 파티를 준비했다. 선미랑 세연이는 음식을 준비했고, 나는 테이블에 술이랑 잔, 접시 등을 세팅했다.

준비가 다 될 때쯤 현관문 소리가 들렸고, 문을 열자 은미와 박인혜와 웃는 얼굴로 서 있었다.

"애들아 나왔어~"

선미는 은미를 보자마자 한걸음에 달려갔다.

"은미야! 어떻게 됐어? 진짜 잘 됐어?"

"헤헤헤. 응! 선미야! 나 이번에는 잘 본 거 같아~"

"뭐라고 하던데?"

"저번에 봤을 때랑 사람이 완전히 달라진 거 같대. 오디션 보는 내내 몰입해서 그만이라는 말을 차마 못 했대. 헤헤헤. 나 실제로 오디션 엄청 오랫동안 봤어."

"진짜? 아구구. 내 새끼 잘했어! 잘했어!"

선미는 은미 엉덩이를 토닥거려줬다.

나도! 나도!

앞으로 나가서 엉덩이를 토닥거리려는데, 뒷덜미가 뻐근하다.

어쌔신크리드가 숨어 있나?

고개를 솩 돌리자 이세연이 도끼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너 뭐하냐?

세연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도둑질하다 걸린 아이처럼 화들짝 놀라더니, 서둘러 먼 산 바라보듯이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훗. 질투하면서도 안 하는 척하는 게 귀엽네. 놀리고 싶지만,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은미를 축하해주자.

나는 은미 머리만 쓰다듬으며 축하의 말을 날렸다.

"수고했어. 것봐. 너는 연기가 맞대도. 댄스 가수 했으면 개그맨 지망생인 줄 알았을 거야."

"헤헤헤. 고마워 현찬아. 이게 다 네 덕분이야. 정말 고마워."

"고마우면 어서 들어와. 맛있는 거 해 놨으니 파티하자. 임석훈도 조금 있으면 온대. 그런데 이혜민은 연락 안 돼? 요즘 코빼기도 안 보이네."

"혜민이 바쁘다고 했어. 나도 못 본 지 오래됐네. 선미야 너는 혜민이 봤어?"

"나도 두 달 전에 본 거 같은데. 뭐 한가해지면 오겠지. 어서 파티나 하자."

선미는 은미 팔짱을 끼고 빌라 안으로 끌고 갔다.

그런데 은미 봐라? 자신감이 붙어서 그런가?

이제 걸음걸이에 불안감이 없이 당당하다. 오늘 잘 보기는 어지간히 잘 봤나 보다.

은미는 빌라에 들어오자마자 세연이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 세연아~"

"안녕하세요. 언니. 잘 보셨다면서요? 다행이에요."

"아니야. 응원해줘서 고마워. 선배라고 해도 밥도 한 번 못 샀는데. 오늘 축하해준다고 와 주고. 정말 고마워. 그러고 보니 세연이 너도 축하해! 수능 대박 났다면서?"

"감사해요. 언니. 그런데 아직 붙은 건 아니에요."

"후훗. 그 점수면 백 퍼센트 합격이지. 축하해 세연아. 우리 중에서 이렇게 예쁘면서 똑똑한 후배가 있다니. 나 자랑해도 돼?"

"부끄러운데. 자랑은 조금만 해주세요~ 아! 저도 나중에 의대 가면 언니 자랑해도 돼요? 저 티비에 나오는 사람이 내 선배라고 자랑하고 싶어요."

"아하하. 그럼. 그럼. 우리 둘 다 잘 돼서 서로 자랑하면 진짜 좋겠다~"

은미는 세연이 하고도 반갑게 대화를 나눴다.

그전에 잘 안될 때, 은근히 세연이를 멀리하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역시 사람은 등이 따뜻해야 마음도 따뜻해지나 보네.

뭐. 여튼 잘 지내니 보기 좋다.

이제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과 이야기를 해 보자.

나는 현관문 앞에 서 있는 박인혜를 봤다.

"대표님도 파티 같이하고 가시죠?"

"저는 올라가 보겠습니다. 친구들 모임에 제가 끼어드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네요."

"은미가 연기가 늘었다지만, 그렇다고 심사위원들이 바로 앞에서 연기 잘한다는 칭찬은 안 해주죠. 아무래도 박 대표님이 인사 좀 하고 다니셨나 봐요?"

"네. 현찬 씨 말 듣고 느낀 바가 좀 있어서 여기저기 인사하고 다녔습니다. 이상하게도 다들 제가 인사하니깐 좋아하더라고요."

평소에 '나는 나야' 하면서 콧대 들고 다니던 사람이 고개 숙이니깐 다들 좋아하지.

"박 대표님은 부드러워지면 매력이 넘치는 사람인가 보네요. 여튼, 은미가 잘 된 거는 박 대표님 덕도 있는 거 같으니, 오늘 같이 파티하시죠. 그리고 이야기도 좀 할 게 있고요."

이야기라는 말에 박인혜의 붉은 입술이 실룩거렸다.

"이야기라는 게?"

"저번에 말했던 투자 말이에요. 결정 내렸습니다."

"정말이에요? 어떻게 내렸죠?"

"오늘 한잔하면서 천천히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매번 양주 얻어먹기만 하는 것도 민망합니다. 한 번 정도는 같이 먹어야지 제 마음이 편할 거 같아요."

나는 박인혜 손에 들려 있는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박인혜는 잠시 고민하더니, 미소와 함께 한 손에 들고 있던 상자를 위로 들었다.

"오늘은 샴페인으로 준비해왔어요."

"샴페인을 준비해왔다면, 백프로 합격인가 봐요?"

"네. 은미한테는 말 안 했지만, 따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투자 이야기가 나오니 술술 불어주네.

"그럼 오늘은 마음껏 파티하시죠. 아. 혹시 집에는..."

박인혜는 구두를 벗으며 빌라 안으로 들어왔다.

"저 혼자예요."

"아...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대표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32살이에요."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

생각해보니 박인혜도 대단한 사람이네.

32살에 소속사 대표까지 하다니. 전생이었으면 나와는 레벨이 다른 사람이었겠다.

파티는 흥겹게 진행됐다.

은미가 너무 기뻐서 축하 기념 댄스까지 췄는데, 우리는 다시 한번 댄스 가수를 말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미 축하가 끝났을 때, 나는 한 손에 숟가락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축하할 사람은 이세연입니다."

"오빠! 나는 괜찮아요!"

"너도 수능 대박 했잖아! 어디 그냥 넘어가려고 해? 여러분 그렇죠?"

"맞아요! 세연아 너도 축하해~"

"우~~ 의대생 얼굴 좀 보자~~"

"아... 민망한데. 다들 감사해요."

선미가 피식 웃으며 얼굴이 붉어진 이세연에게 어깨동무했다.

"에휴. 내가 밥 해먹인 게 몇 번인데. 너는 우리가 업어 키운 거야."

"그럼. 선미 말이 맞아. 우리가 이세연 뒷바라지 다 했지. 나중에 늙으면 기저귀 채워주라."

"아! 오빠! 진짜 최악이다! 재미없고 더럽기만 해!"

"으하하하. 민현찬 갈굼 당하는 거 봐. 존나 웃겨."

"임석훈 늦게 왔으면 좀 닥쳐!"

이번에는 다 같이 이세연을 축하했다.

별로 안 친한 은미도 진심으로 축하해줬고, 박인혜도 세연 씨 축하한다면서 의사하면서 모델 할 생각 없냐고 집요하게 꼬셨다.

...

아줌마 아차차. 아줌마 아니지. 박 누나 여기서도 열일 하시네.

한 번 찌릿 노려보자, 박인혜는 겁먹은 강아지가 되어서 얌전해진다.

이제 눈치도 늘고 말도 잘 듣네. 같이 일해도 되겠다.

나는 박인혜에게 테라스를 가리키며 눈을 찡긋했다. 박인혜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같이 테라스로 나왔다.

담배를 하나 물자, 박인혜가 옆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입을 열었다.

"보기 좋네요."

"뭐가요?"

"다 같이 축하해주는 모습이요. 다들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게 느껴져요."

"진짜 친구들이니깐요. 박 대표님은 대학교 동기들 없어요?"

"몇 명 있는데, 한 명은 저에게 사기를 쳤죠."

"2년 전에 제가 돈 빌려줬을 때, 그 사기 말씀하시는 거죠?"

"네. 그 후로는 대학교 친구들은 안 만나요. 현찬 씨 학교에서 교수하는 친구도 고등학교 친구입니다."

"뭐. 나름의 사연은 이해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좀 만나세요. 실력만으로 세상 살 수는 없습니다. 여튼,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죠. 저번에 말씀했던 투자 건 있잖아요."

박인혜 눈빛이 초롱초롱 빛난다.

나는 담배 연기를 한쪽으로 뿜으며 말했다.

"투자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인가요?"

"네. 3자 배정 유증 금액이 30억이었죠? 그럼 저한테 오는 지분은 어느 정도죠?"

"현재 시총이 300억 정도이니깐, 할인율 10% 적용해서 13% 정도가 현찬 씨에게 가게 됩니다."

"대표님 너무 딱딱하게 말씀하시네요.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해주실 수 없나요?"

"네?"

"20살 때처럼 가벼운 말로 돈 빌려 드리는 거 아닙니다. 저도 그때처럼 빚쟁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주주가 되는 거고요. 말투에 구리스를 조금 바르셨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애교를 조금 섞는다든지요."

내 말에 박인혜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야. 한두 푼도 아니고 30억이야. 내가 갑질 하려는 건 아니고, 얼마만큼 각오가 되어있는지 시험해 봐야지.

저번처럼 호구가 되어서 투자해주지 않을 거야. 내가 시키면 할 수 있는지 태도를 꼭 확인해야겠어.

박인혜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눈을 질근 감았다.

3초 정도 지났나? 다시 눈을 떴을 때는 30살의 신입사원 얼굴이었다.

"현찬 씨~ 현재 시총이 300억 정도이구요오~ 할인율 10% 정도 해서 13% 정도 될 거예요오~"

"풉. 푸.... 으하하!"

"웃지 마세요!"

"아하하. 죄송합니다. 아하하."

으하하하하. 진짜 애교를 부릴 줄이야.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나에게 고개 숙인 모습이 통쾌해서가 아니다. 너무 어색해서 빵 터졌다.

나는 미친놈처럼 웃었고, 박인혜는 눈을 다시 감고 '자기가 무슨 짓을 했나'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 아 눈물 나. 이제 좀 웃음이 그치네요. 여튼, 박 대표님 각오는 잘 봤습니다. 투자는 하도록 하겠습니다."

"휴... 그 어느 때 보다 오늘이 힘드네요. 감사합니다."

"원래 돈이란 거 그렇게 무거운 거죠. 아. 그리고 안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네? 어떤 거죠?"

"10억. 이번에는 연장해주지 않겠습니다."

박인혜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박 대표님을 곤란하게 할 생각은 있지만, 망하게 할 생각은 없으니깐요."

"저... 하... 지금 제정신이 안들 정도로 아니... 잠시만요... 하... 차근히 설명 좀 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유가 궁금하시죠? 제가 돈을 빌려준 지가 2년이 지났는데, 빚이 아예 없듯이 생활하셨습니다. 은행보다 낮은 이자에 빚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뭐, 물론 이자는 꼬박꼬박 내셨지만요."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솔직한 모습은 좋네요. 그래서 저는 약간의 긴장감을 박 대표님에게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번에 아무렇지 않게 저에게 돈 이야기를 꺼낸 모습을 보고 실망을 좀 했습니다. 제가 박 대표님의 키다리 아저씨는 아니잖아요."

"...네."

"그리고 오빠분을 보고 걱정도 되었고요. 가족 욕해서 죄송하지만, 박 대표님도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어서요."

"...현찬 씨.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지금 10억을 갚을 능력이 안 됩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냉정한 거 같고. 이건 어때요? 박 대표님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저에게 넘겨주세요."

박인혜 얼굴은 아까보다 더 굳었다.

"혹시 경영에 직접 참여할 생각인가요?"

"에이. 왜 이렇게 돌려서 말하세요. 진짜 궁금한 거는 회사를 먹을 생각이 있냐 없냐 아니에요? 열심히 일한 회사에서 쫓겨나는 대표. 많이 본 풍경이잖아요."

"맞습니다. 그래서 인베스트먼트 회사 쪽을 배제한 건데..."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마음은 없으니깐요. 그냥 지분만 가져갈 겁니다. 그리고 10억을 건네주면 다시 돌려줄 겁니다. 잠시 지분과 10억을 스왑 하는 거죠."

"...제가 현찬 씨를 어떻게 믿죠?"

"박 대표님 애교 부려주세요."

"이... 하... 제가 현찬 씨를 어떻게 믿죠오~?"

"으하하하! 계속 보니깐 귀여운데요? 이런 제 모습을 보고 믿어주세요. 저는 경영권 관심 없어요. 그러니깐 애교 부려 달라는 부탁이나 하는 거죠.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쁜 건 아닐 겁니다."

"왜죠?"

"삼국지 아시죠? 그거처럼 지분을 3등분으로 나누는 거죠. 재무제표를 봤는데, 유증이랑 10억 만큼 지분이 저에게 들어오는 걸 계산해 보니 민 대표, 박 대표님, 제가 각각 38% 25% 15% 정도 되더라고요.

이 정도면 밸런스가 좋지 않나요? 그리고 말이에요. 저는 박 대표님 우호 지분입니다. 우리 둘이 합치면 40%여서 민 대표를 견제하기도 좋아요."

박인혜는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내가 노리는 건 박인혜가 아니라 민 대표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잖아.

15% 정도 지분은 돼야지 호구 잡히지 않고 큰소리는 칠 수 있을 거 같다.

경영에 참여할 마음은 없지만, 구석에 찌그러져 있을 마음도 없어.

15%라는 어디에 붙어도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애매한 지분으로, 두 사람 다 내 눈치 정도는 보게 만들자.

"알겠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선택권이 없네요."

"그렇죠. 이거는 권유가 아니라 통보니깐요.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애교만 시키지 말아 주세요. 그거는 죽어도 못 하겠어요."

"네. 그냥 테스트 한번 해본 거니 너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불쾌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아 오빠 분은 어떻죠?"

"돈은 끝내 마련 못한 거 같습니다. 건물을 넘길 생각이더라고요. 주식은 지금 팔면 손해가 막심하다나."

"건물이라. 뭐, 건물보다 주식이 더 가치 있다면 그것도 좋죠. 조만간 오빠 분을 만나서 정리를 해야겠네요."

"안 그래도 먼저 만나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주식을 보여주고 싶다던데, 돈부터 해결하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잘했네요. 그럼 조만간에 오라고 하세요. 한 번 보도록 할게요."

박인혜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서히 정리되어 가는구나.

이제 마무리하자.

< 마무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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