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먹지 못했던 여사친들-215화 (215/295)

< 결정 >

일 년 연장을 해주고 안 해주고는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내가 돈에 악착같이 매달릴 수 있냐가 중요하다.

그 첫 경험이 지금이다. 왠지 이번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면, 앞으로 평생 돈과 사람 사이에서 휘둘릴 거 같다. 오늘은 어쩌면 나에게 분기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아다를 뗄 때만큼이나 진지하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박인혜 오빠는 전혀 정신 못 차리고 있다.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도 잠시였다. 조금 있자 다시 피식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꺼냈다.

"에이. 말 너무 심하게 하네. 무슨 15억 밖에 안 되는 돈으로 압류까지 이야기해. 야! 너 내 재산이 얼만 줄 알아?"

"얼마예요?"

"100억 정도는 충분히 돼 인마. 어때? 이제 좀 사람이 달라 보이지 않아?"

달라 보이네요.

예상보다 훨씬 개념 없는 사람으로요.

"100억이나 있으면, 15억밖에 안 되는 돈 어서 주지 왜 그러세요?"

"그러지 말고 연장 좀 해줘."

"그러면 일 년 후에 20억으로 줄 수 있으세요?"

"일 년 후에 20억? 흠... 보자... 건물값이 다시 오르고, 주식이 오르면 가능하겠는데? 그럼 그렇게 하자. 일 년만 연장해줘. 20억으로 돌려줄게."

하이고. 잘도 그러겠다.

몇 달만 기다려봐 이자 더 쳐서 갚아줄게.

빚쟁이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자 그때 뿐인 공염불이지.

이런 사람들은 돈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다. 그냥 돈에 대한 개념이 없는 거다.

박인혜 오빠는 자기 손으로 돈을 번 적이 없나 보다. 그러니깐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오케이. 머릿속에 박인혜 오빠 캐릭터가 잡혔다. 부모 잘 만난 졸부. 딱 그 모습이다.

"됐습니다. 그냥 던져본 말입니다. 저는 이번 달 말로 기한을 못 박았습니다. 부자라는 부모님께 다시 손을 벌리든지, 아니면 건물을 내놓든지 알아서 하세요."

"어이 잠시만."

"저는 잠시도 시간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더 구차해지는 것도 보기 싫고요."

"뭐라고? 이 새끼가. 말하는 게 왜 이리 싸가지가 없어."

"싸가지 참 없죠? 그런데 세상살이 참 웃기죠. 얼마 전, 12월에 돈 줘도 된다고 할 때는 그렇게 착하다고 하더니, 이제는 싸가지 없다고 욕하고. 역시 인생은 길게 살아봐야 하나 봅니다.

더 할 말 없으니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돈은 알아서 구하시고, 없으면 압류 들어갈 줄 아세요. 그리고 본가에도 알리겠습니다."

"이... 시발! 쓰레기 같은 주식 괜히 사서 이게 뭔 지랄이야! 야! 박인혜! 너희 회사 주식 때문에 생긴 일이니 절반은 네가 내!"

"뭐?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리고 부동산 몇 개 더 있잖아. 거기서 대출받으면 되지. 손님한테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

저기요. 왜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돼서 아무 말도 안 하세요?

박인혜는 화들짝 놀라더니 도끼눈으로 오빠를 노려봤다.

"야. 너 설마 그 돈 다 날린 거야? 또 도박했어?"

도박도 했었어요? 이거 완전 망나니잖아.

가까운 친척 한 명이 떠오르는구나. 그 많던 재산 다 날리고, 부모님이 돈을 더는 안 주자 열받는다고 찾아가서 현관 앞에 참기름 뿌렸는데. 넘어지라고 말야.

참 성질머리만 더러운 쪼잔한 사람이었지.

지금 앞에 있는 박인혜 오빠도 비슷한 사람인지,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는 오히려 버럭 화를 낸다.

"뭔 헛소리야! 하나도 안 날렸어! 그냥 묶여 있을 뿐이야!"

"어디에?"

"주식에."

"아니 그러니깐 무슨 주식? 삼성전자?"

"...그냥 중소기업 몇 개야."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

오래간만에 스펀지밥 노래가 귀에 맴돈다.

왜 돈을 안 주냐 했더니, 주식에 돈이 묶여 있나 보네.

하이고. 간수만 잘해도 부자로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왜 그러는지 몰라.

도박에 미친 사람이 주식에 미치면 답 없는데.

까딱 잘못하다가는 진짜 돈을 못 받을 수도 있겠다.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이야기를 이었다.

"하... 주식 지금 똥값 되어 있겠네요. 그거 때문에 돈이 없는 거군요. 언제 들어갔어요?"

"작년에 주식 한참 올라가서 코스닥 700포인트 할 때쯤에 들어갔어."

"지금이 300포인트 정도니깐 개차반 되었겠네요. 대단하십니다."

"이 새끼가. 말하는 하나하나가 다 시비야?"

"돈 안 주니깐 시비 거는 거죠. 여튼 12월 안에는 건물이든 돈이든 주셔야 할 겁니다. 그때는 주둥이로 시비 거는 게 아니라 법적으로 시비 걸 거니깐요."

"...현찬 씨. 그러지 말고. 딱 일 년만 참아줘.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소름 돋으니깐 그러지 마세요. 대신 말이에요."

나는 박인혜 오빠를 보며 빙긋 웃었다.

"제가 주식을 좀 볼 줄 압니다. 어쩌면 그 주식 중에서 가져가야 할 거 한두 개는 있을지 모르겠네요."

내 말이 끝나자 박인혜 오빠는 얼굴이 밝아졌다.

미안. 내가 말해주는 건 '고객님 오를 거니깐 걱정하지 마세요~' 이 정도가 다야.

내가 무슨 주식의 신도 아니고 쪽 짚을 줄 알겠어?

박인혜 오빠 스타일 보니 잘못 걸렸다. 결국은 돈도 건물도 안 주고 막무가내로 버틸 거 같다.

법정 압류란 게 말처럼 착착 되는 게 아니다. 이의 신청도 할 수 있고, 일부 상환을 전제로 중재를 요청할 수도 있다.

아오. 그거 언제 다 신경 쓰고 살아? 소송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고.

돈 빌려준 게 죄인이라더니. 그 말이 맞네. 괜히 힘쓸 바에는 살살 달래서 빨리 정리하자.

"정말이야?"

"훗. 제가 무슨 재능이 있어서 부자가 되었겠습니까? 얼마 전 루X 사태 아시죠? 그때 제대로 단물 빨아서 부자 된 겁니다."

"뭐? 너. 그 전설의 사건 수혜자였어?"

네. 개이득 취했었죠.

"뭐.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혹시?"

"그 사태를 주도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 인맥도 재능도 없고요."

"젠장. 운 좋았나 보네. 나는 그거 배 아파서 주식에 들어간 건데."

"대기업 들어가시지 그러셨어요?"

"일 년에 10~20프로씩 먹어서 언제 배불러? 두 세배는 넘게 벌어야지."

"그래서 지금 이렇게 쪽박 차시는 겁니다. 여튼, 한두 개 정도는 볼 수 있으니 조만간 통화나 한 번 하시죠."

"그럼 현찬 씨가 내 애널리스트 되어 주는 거야?"

"그런 거창한 거 아닙니다. 떨어지면 저보고 책임지라고 할거잖아요. 그냥 대략적인 큰 흐름만 봐 드리는 겁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12월 말까지, 돈이든 건물이든 뭐든 주셔야 합니다. 법정 싸움 가면 치고받고 싸울 건데, 하하 호호거리며 주식 이야기 할 수는 없잖아요."

내 돈 내놔 이 새끼야!

제발 주식 볼 줄 안다는 말에 혹해서 돈을 주기를...

그냥 대학생이 말하면 개소리지만, 돈 많은 대학생이 말하면 다르지.

박인혜 오빠는 나를 주식의 신인 것처럼 보더니, 고개를 숙이면서 고민에 빠졌다.

조금 있자, 깊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일단 시간을 조금만 줘."

"12월 30일이 돈 받는 날이니 그때까지는 기다릴게요. 동생분은 많이 답답하겠네요."

나는 박인혜를 보며 빙긋 웃었고, 박인혜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 너희 오빠 때문이야.

"여튼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박 대표님은 더 있다가 가실 건가요?"

"하...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오빠. 본가에서 알기 전에 잘 정리해. 갈게."

나와 박인혜는 커피숍을 나왔다.

한겨울이라서 그런가? 날씨가 많이 춥다.

박인혜는 나보다 더 추운지 양손을 호주머니에 찔러넣고 바닥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억울하시죠? 나는 받은 게 없어서,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데, 오빠는 많이 받아서 배부르게 살아도 되고."

"억울하지는 않아요. 그건 이미 넘어섰어요. 그냥 기분 졷같네요."

"후~ 박 대표님이 험한 소리를 하다니. 별일이 다 있네요. 좋은 소식도 하나 있습니다."

"뭐예요?"

"은미요. 오디션 보러 간다고 합니다."

"정말요? 은미가 정말 간다고 했어요?"

"네.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하~ 다행이다. 은미는 재능있어요. 이상하게 아직 운이 닿지 않아서 꽃을 못 피우는 거지."

"운을 최대한 끌어당겨서 은미 등에 붙여보세요. 은미가 오디션에 합격하면 저는 매우 긍정적으로 검토 하겠습니다."

"훗. 그럼 뭐하나요. 저 인간이 돈 안 주면 말짱 도루묵인데."

"돈은 어떻게든 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산은 많은데 빚은 없거든요."

"네? 그게 무슨?"

"그거는 제가 알아서 할 거니 신경 쓰지 마시고 소속사 사람들 행운을 다 모아서 은미 등에나 붙여 놓으세요. 우리 뭐든지 결과로만 이야기합시다. 이때까지 은미 오디션 보고 오면 그런가 보다 했었죠?"

"네..."

"이제 대표잖아요. 얼굴도 비추고 인사도 좀 하고 그러세요. 없는 떡도 만들어지는 게 인맥입니다."

"...현찬 씨 몇 살이세요?"

"서른 스물두 살입니다."

"네?"

"그렇게만 아세요. 여튼 저는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연말에는 같이 웃으면서 술 한잔했으면 좋겠네요."

나는 손을 흔들고 박인혜와 헤어졌다.

이제 나도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30억은 매우 큰 돈이지만, 그렇다고 못 구할 돈은 아니다.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지만, 아직 뜻을 정하지 못했으니, 머리가 많이 복잡하다.

학교 앞 조그마한 술집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있다.

벌써 한 병을 비웠지만, 약속된 사람은 오지 않았다.

조금 있자 술집 문이 열렸고, 짧은 치마를 입은 유소라가 생글생글 웃으며 들어왔다.

"오라버니~ 소라 왔어요~"

"귀여운 척하지 마라. 대가리 빠아 뿐다."

"뭐래. 애교부리면 좀 받아 줘. 그런데 무슨 일이길래 나를 불렀어? 피시방 알바 칼같이 끝내고 겨우 왔네."

"글쎄. 믿기지 않겠지만 고민 상담 때문이야."

내 말에 유소라가 화들짝 놀랐다.

"왜? 먹으려는데 안 넘어오는 여자가 있어?"

"...그런 거 아니거든."

돈 이야기야.

사실 이런 이야기는 선미랑 하는 게 제일 좋은데.

선미는 은미랑 친하잖아. 시시콜콜 다 이야기할 게 뻔하다.

이세연은 은미를 경계해서 말하기 부담스럽고.

그래서 부른 게 유소라다.

물론 빡 대가리라면 임석훈과 원투 펀치를 다루는 애라서 크게 도움 될 리는 없겠지만,

세상에는 초심자의 행운이란 게 존재하잖아. 모르는 게 오히려 더 도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소라는 어릴 때부터 알바하면서 돈을 차곡차곡 모았을 정도로 돈에 대한 개념이 있다.

너무 있어서 남자들 돈을 뺏어 먹어서 문제지.

여튼 나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유소라를 불렀는데, 왜 짧은 치마 밑으로 하얀 허벅지만 보이는 걸까?

시불. 돈 때문에 스트레스받았더니, 성욕이 폭발하네.

소라는 팬티가 보일 듯 말 듯 하게 내 앞에 앉았고,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빈 잔에 소주를 부어서 건네줬다.

"오빠. 무슨 일인데?"

"소라야. 네가 만약 돈이 많다면 30억을 투자할 수 있겠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자지도 최소한 침은 발라야지 보지에 잘 들어가는 거야. 애무도 없이 너무 본론부터 말하는 거 아냐?"

"...비교하는 대상이 왜 하필 섹스냐?"

"오빠랑 하고 싶으니까~"

"됐거든요. 자. 다시. 그럼 이해하기 쉽게 네 기준으로 말해볼게. 너 지금 1,000만 원 정도 있냐?"

"응. 그 정도 있어."

"너도 참 열심히 산다. 진심으로 대단하네. 그렇다면 너 500만 원을 투자할 수 있겠어?"

"어디에?"

"음... 회사 같은 곳에. 그런데 그 회사가 뜰 확률이 꽤 높은 편이야. 네 친구도 거기서 일하고 있고."

"잠시만."

소라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말을 이었다.

"오빠. 내가 클리를 빨아달라고는 말 안 할게. 그래도 최소한 가슴은 빨아줘야지. 지금은 딱 키스만 하고 삽입하려는 거잖아. 그러면 뻑뻑해서 여기가 아파. 내가 지금 딱 그 상황이야. 무슨 말인지 전혀 귀에 안 들어오고 답답하기만 해.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이야기해봐."

"흐음. 말하기 조금 애매한데."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알잖아. 나 거짓말 못 하는 거."

소라는 엄지로 이마를 찍었다.

그래, 유소라 거짓말 못 하지.

네가 내 대나무 숲이 되어라.

나는 소라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고, 소라는 소주잔에 술을 부으며 피식 웃었다.

"뭐야. 결국, 여자를 위해서 투자를 하려는데, 손해 볼까 봐 겁난다는 거 아냐? 오빠 의외로 속물이다."

"속물은 무슨. 현실적인 거지. 그런데, 말하고 보니 그렇게 되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그 언니 오디션 본다면서. 그 오디션 붙으면 투자해."

"왜?"

"그게 행운의 상징일 수도 있잖아. 그리고 보통 처음에 잘 되면 한동안은 잘 돼."

"초심자의 행운 말하는 거야? 야. 돈은 그렇게 투자하는 게 아니야. 면밀한 분석과 확신이 있을 때 하는 거야."

"웃기네. 언제부터 그렇게 했다고. 오빠 그러려면 저축을 해야지. 투자를 하는 게 아니고."

"뭐?"

"그렇잖아. 안전하게 이것저것 재보고 하는 거면 저축이 최고야. 오빠는 투자한다는 사람이 너무 겁먹은 거 아니야?"

"내가 얼마 전에 어떠한 사람을 봤거든. 그 사람이 태생이 엄청 부자인데 돈을 갉아먹는 스타일인가 보더라고. 100억이 있다는 사람이 돈이 다 묶여 있는지 15억이 없어서 쩔쩔매더라. 그 모습을 보고 좀 느낀 게 많아서 그래. 막 투자하다가 나도 그렇게

될까 봐 겁나."

시불. 나도 차라리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과감하게 결정했을 건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섹스해서 번 돈인데! 흘린 정액이 아까워서라도 투자에 실패해서는 안 된다.

술을 한잔 더 마시는데 소라가 잔을 마주쳐줬다.

"30억이면 오빠 총 돈의 얼마 정도야?"

"삼 분의 일 정도 될 거야."

"시발. 개 부자네. 존나 부러워. 아 생각할수록 처음에 대준 게 너무 아까워."

"헛소리하지 말고. 왜 돈 많다고 하니깐 오빠가 좀 달라 보이냐?"

"그냥 세상 불공평하다는 생각만 들어. 얼굴 잘생겨 고추도 커 돈도 많아."

"너도 예쁘고 가슴 크잖아. 자기도 가진 사람이면서."

"나는 돈은 없거든."

"이제 네 나이 때에서는 제법 부자 될 거거든."

"그래? 주식 떨어지기만 해봐라. 홀쭉해질 때까지 오빠 먹을 거야."

SX엔터가 떨어지길 빌어야 하나? 소라한테 죽을 때까지 빨리는 것도 괜찮은 거 같은데.

고민하는데 소라가 안주 하나를 내 숟가락에 올려줬다.

"오빠. 그냥 투자해봐. 까짓거 날리면 뭐 어때."

"너 돈 아니니깐 그러지. 30억이야 30억."

"오빠 돈 삼 분의 일이라면서. 그 정도 잃고 인생 경험해보는 거잖아. 나쁘지 않은 거 아냐?"

"그건 네가 어려서 그런 말 하는 거고."

"자기도 어리면서. 누가 보면 30살 넘는 줄 알겠네. 오빠는 그 아저씨랑 다르게 20대잖아. 한 번쯤 실패해도 되지 않을까?"

···

번개가 머릿속을 때리고 지나갔다.

맞아. 나 22살이었지! 그래, 어쩌면 나는 30대의 마음으로 너무 겁먹고 있는 게 아닐까?

소라 말대로 삼 분의 일이다. 날려도 내 자산의 삼분 일만 날아간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방법이 없나? 그것도 아니다.

땅에 투자한 돈은 몇 년만 지나면 수십 배가 되어서 들어오고, 주식도 마찬가지다.

빼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 돈은 걔들을 담보로 구하면 된다.

이자가 부담되냐? 그것도 아니다. 맥시멈 이자 5%를 매겨도 일 년 이자는 8,000만 원 정도밖에 안 된다.

섹스만 열심히 하면 충분히 채울 수 있는 돈이다.

"으하하하."

돈이 많으면 뭐 해. 마인드가 옛날처럼 소금쟁이인데. 내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소라는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봤다.

"미쳤어? 갑자기 왜 그렇게 웃어?"

"아하하하. 아니야. 그냥. 하하하. 참.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게 새삼 느껴지네."

"뭔 소리래? 지금 나 비웃은 거지?"

"아니야. 고마워 소라야. 내가 보답으로 너 섹스 판타지 찾아줄게."

"미친 거 맞네. 훗. 그래도 기분은 좋아졌나 봐? 얼굴이 편해졌어. 짠 이나 하자."

소라야 고마워. 덕분에 고민 해결되었어.

다시 태어나고 100% 확신이 있는 것에만 돈을 투자했다.

뭐, 그것도 좋지만 때로는 마음 가는 대로 투자를 해봐도 괜찮다.

지금 나에게는 '아프니깐 청춘이다' 할 재력도 여유도 있으니깐.

대신 박인혜는 고생 좀 하겠다.

이번에는 보고만 있지 않겠다. 꼬장꼬장한 부장이 되어서 매달 보고를 받아야겠다.

까짓거 한 번 해보자.

< 결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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