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먹지 못했던 여사친들-196화 (196/295)

< 봉사활동 >

금요일.

아침 이른 시간에 학교 근처의 산 아래에 도착했다.

여기서 임석훈 만나기로 했는데, 어딨냐?

한참을 기다리자 산에서 임석훈이 내려왔다.

"역시 내 친구 민현찬! 너밖에 없다. 아침부터 온다고 고생했어."

"고마우면 밥 사라."

"여기 사찰 밥 진짜 맛있는데, 딱 하나 단점이 있어."

"뭔데?"

"고기가 없다는 거야."

"너무 큰 단점이다. 나 돌아갈게."

"으하하하. 그럴 줄 알고 아빠한테 말해서 솥뚜껑 구해놨다.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삼겹살 구워 먹자."

"사찰에서 고기 먹어도 돼?"

"당연히 안 되지. 절 근처에 취사 가능한 곳 알아봐 놨어. 그런데 너 혼자 왔어? 두 명 더 데리고 온다고 했잖아."

"데리고 왔어. 지금 차에서 자고 있다."

"뭐야? 얼마나 예쁘길래 차에서 자고 있는 거야?"

"미친놈아! 네가 30분이나 늦게 쳐 내려왔잖아."

"아. 그랬지. 아하하. 어서 나오라고 해. 다른 사람들은 이미 도착했어."

나는 차에 가서 문을 열었다.

"코~~"

"쌔근~ 쌔근~"

김소민과 민다희는 자고 있다. 아침부터 움직인다고 바빴으니 어쩔 수 없지.

"애들아. 이제 가자. 일어나."

"하윽~ 오빠. 갑자기 가기 싫어졌어요."

"김소민 그럼 너 버리고 간다."

"악! 그건 싫어요! 으차차차! 어서 일어나야지! 다희야 일어나."

"하으응~ 오빠 친구분 왔어요?"

"방금 왔어. 어서 올라가자."

김소민과 민다희는 겨우 잠에서 깨더니 차에서 내렸다.

이제 봉사활동 하러 가 보자.

우리 넷은 임석훈을 따라서 조용한 산길을 올라갔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절이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석훈아. 우리 언제 도착하냐?"

"조금만 더 가면 돼."

산행에서 조금만이란 단어는, 이번 위기만 극복하면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말과 똑같다.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지.

시불. 우리는 끝없이 올라갔고, 20분을 더 걷고 나서야 사찰에 도착했다.

그리고 앞에 펼쳐진 풍경에 깜짝 놀랐다.

"와···."

"이야! 진짜 예뻐!"

"와~~ 예쁘다~~"

힐링이 된다.

나는 사찰이라길래 현대식 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오래되었는지, 건물은 전부 다 나무로 되어있는데, 산등성이와 하나로 합쳐지자 조화로운 풍경을 자아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단풍이다.

고즈넉한 절 주변을 색종이 같은 단풍이 감싸고 있는데, 입구에 서 있기만 해도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그래서인가? 종교적인 장소보다는 관광지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입을 헤 벌리며 절을 구경하자, 임석훈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민현찬. 어때?"

"진짜 오기 잘했다. 여기 너무 멋있다."

"이 형님 따라다니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대도. 여기가 단풍 명소야. 이번에 하는 행사도 단풍 축제고."

"우리는 뭐 하면 돼?"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아빠가 설명해줄 거야. 다들 저 따라오세요."

우리는 손짓하는 임석훈을 따라 유치원생처럼 절 안으로 들어갔다.

절 내부는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크다. 흙길을 걸으며 건물 두 개쯤을 지나자, 족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곳이 나왔고, 거기에는 대학생 여섯 명과 50대의 어른 한 명이 서 있었다.

저분이 임석훈 아버님인가 보다. 실제로는 처음 뵙네.

임석훈은 아버지에게 가더니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쯧쯧쯧... 이거 또 지랄병이 도졌나? 갑자기 왜 90도로 인사하고 지랄이야?"

"허허허. 아버님. 여기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체통을 지키십시오."

"뭘 잘못 처먹은 게 확실하네."

"하하하. 아버님께서 사람들이 많다 보니 부끄러우신가 봅니다."

...

석훈아. 아니야. 전부 다 너를 미친놈으로 보고 있어.

아버님은 사뿐히 임석훈을 무시한 뒤 우리에게 왔다.

"다들 반갑습니다. 임존일 이라고 합니다."

흐음. 이것이 부자로 산 어른의 위엄인가. 말투가 부드러운데, 권위 있다.

아버님은 한동안 우리가 해야 할 활동에 관해 이야기하셨다.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행사 진행 준비, 다른 하나는 기념품 판매다.

뭔가를 판다는 말에 살짝 놀랐는데, 수익금을 기부하는 바자회 같은 거였다.

"이상입니다. 혹시나 궁금한 점 있나요?"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우선 저는 김소민이라고 합니다!"

"하하하. 선생님은 아닙니다. 소민 양 질문이 뭐죠?"

"질문보다는 건의 사항인데요, 각 조에 조장이 한 명씩 있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추천할 사람이 있나요?"

"네! 민현찬 학생을 추천합니다."

내 이름이 여기서 왜 나와?

김소민은 재밌는지 키득키득하며 웃었고, 다른 사람들은 민현찬이 궁금해서인지 나를 바라봤다.

흠. 그래. 친구 아버님 도와드리는 건데 뒤에서 숨어 있을 수만은 없지. 임석훈과 몰래 훔쳐먹은 양주값을 오늘 치루자.

나는 사람들 가운데 선 후 아버님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 선생님. 아니, 아버님. 이것도 아닌데. 여튼 선생님. 제가 조장하는 건 상관없는데, 혹시나 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에게 한 번 물어보고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혹시 조장 하고 싶은 분들 계신가요?"

사찰 내에는 정적이 가득 찼다.

"...네. 없네요. 그럼 제가 조장 하겠습니다. 다른 조 조장은 임석훈이 했으면 합니다. 우리 중에서 가장 절을 많이 알고 있고, 저랑 친구기 때문에 봉사활동 하다가 문제 생기면 같이 연락하면서 대응하기 쉬울 거 같습니다."

"민현찬 씨바! 잠시만요! 저는 프리롤로 뛰어다니는 게 좋습니다. 그러니깐 파브레가스 같은 존재인 거죠. 아!!!"

아버님이 임석훈 귀를 잡아 뜯었다.

"파뿌리 같은 놈이 프리는 무슨. 너도 조장해! 그럼 민현찬 군과 임석훈이 조장 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다들 불만 없죠?"

"네!"

"그럼 조장 두 명은 나를 따라와 주세요."

아버님은 조금 위쪽에 있는 건물로 걸어가셨고, 우리는 졸졸 따라갔는데, 건물 입구에 도착하자 갑자기 고개를 훽 돌리더니 나를 보며 웃었다.

"네가. 현찬이냐?"

"아! 아버님! 안녕하십니까! 민현찬 입니다!"

"방금 전에 의외였어. 석훈이랑 놀아서 놈팽이인 줄 알았는데 한 번에 사람들 정리하고. 잘했어."

"아닙니다. 아버님. 제가 얻어 마신 양주가 몇 병인데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죠."

"와~ 민현찬. 이 새끼 가식적인 거 봐라."

"인마! 너도 사람들 앞에서 가식 좀 부려! 현찬아. 이번에 좀 잘 부탁한다. 열심히 할 필요는 없고 사람들끼리 싸움만 안 나게 해라."

"알겠습니다. 저... 혹시 만약에 잘하면 양주를..."

"하하하. 그래. 끝나고 원하는 대로 양주 줄게."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으하하하. 군납 양주를 또 얻어먹는구나!

내 돈으로 사 먹어도 되지만, 그럼 맛이 없지.

그리고 최고 절친 아버님인데, 도와드리는 건 당연한 거고.

우리는 아버님에게 설명을 들은 후 조를 나눴다.

절 곳곳을 알고 있는 임석훈은 행사 보조팀 조장이 되었고, 나는 기념품 판매 조장이 되었다.

"현찬아. 조원은 어떻게 할 거야?"

"너는 아버지가 하는 말 좀 들어라. 이미 정해놓으셨다고 했잖아."

"그랬나? 이 새끼. 아빠는 우리 아빠인데 효도는 왜 네가 해? 다음에 너희 아빠 봤을 때 두고 보자. 이제 내려가자."

나와 임석훈은 다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방금 전 공터에 도착하자 단풍나무 아래에 여덟 명의 대학생들이 구경하고 있는데, 소풍 나온 어린아이들 같다.

즐거운 건 즐거운 거고 일은 해야지.

우리는 조별로 사람을 나눈 다음에 각자 자기 조끼리 모였다.

자! 이제 우리 조 사람들 한번 보자.

조원은 나를 포함해서 남자 두 명에 여자 세 명인데, 다들 처음 본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어색해한다.

행사를 하도 많이 해서 그런지 분위기를 풀 방법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일단 말을 많이 하자.

나는 사람들을 향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조장 민현찬입니다. 조장이라고 해서 특별한 사람은 아니고요, 여러분들의 행사 요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혹시나 힘들거나 불만 사항이 생기면 바로 저에게 이야기해주세요.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짝! 짝! 짝!

뭘 이런 거로 손뼉까지 쳐주세요. 에헴. 기분 좋네.

"그럼. 간단하게 자기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우선 거기 계신 남자분부터 하시죠."

"안녕하세요. 24살 김두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형도 저에게 말 놓아주세요. 아니다. 3일 동안 같이 일할 건데 우리 전부 다 나이대로 말 편하게 해요."

"어? 응. 알았어. 말 편하게 할게."

"형 혹시 담배 피우시나요?"

"어. 너도 피워?"

"네. 하하하. 잘됐네요. 조금 있다가 같이 가요."

흡연 친구 한 명 구했고. 다음은 여자 두 명인데, 쌍둥이다.

"안녕하세요. 언니 진시은 입니다. 20살입니다."

"안녕하세요. 동생 진시하 입니다. 20살입니다."

쟤네 구분할 수 있을까? 보통은 조금씩 다른데, 이 둘은 완전 똑같이 생겼다.

앞으로 이름 많이 헷갈리겠다.

- 예쁘냐?

호구신님 보고 있으면서 왜 물어보는 거예요? 두 사람 다 착하게 생겼네요.

- 못생겼다는 말을 돌려서 말하네.

못생겼다고 안 했거든요!

둘 다 못생긴 건 절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예쁜 편이다. 다만 내 주위에 워낙 예쁜 사람이 많아서 평범하게 느껴질 뿐이지.

이제 마지막 여자 한 명이 남았는데, 바로 김소민이다.

소민이는 자기 차례가 되자 카메라를 들면서 환히 웃었다.

"안녕하세요. 김소민입니다! 다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틈날 때마다 우리 조 사진 찍을 건데 괜찮죠?"

"나는 초상권 있어서 반대입니다."

"현찬 오빠는 안 찍을 거거든요."

"너 찍으면 한 장당 열대씩이다."

"히히히~ 카메라 안 보여줄 건데~"

"조장의 권한으로 뺏어서 볼 건데~"

"그런 게 어딨어요!"

우리 둘이 티격태격하자, 진시은 진시하 자매가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며 소민이에게 물었다.

"언니. 두 사람 아는 사이예요?"

"현찬 오빠? 같은 동아리 사람이야."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나도 오빠 모르거든요!"

"방금 이름 이야기했잖아."

"그거는 아까 들은 건데요."

하여튼. 기집애. 한 번을 안 져요. 사찰에서 괴롭힐 수도 없고.

그대 옆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고개를 돌리자 으르렁대는 우리 둘이 재밌는지 김두호, 진시은, 진시하가 웃고 있다.

"오빠 언니들 너무 재밌어요. 두 분 혹시 얼레리 꼴레리 아니에요?"

"시은 씨. 아니. 시은아. 너 방금 말실수한 거다."

"전 시하예요."

"제가 시은입니다."

···

헷갈린다. 얘네들한테 말 걸지 말자.

여튼 분위기는 편해졌고, 우리는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조금 알아갔다.

다들 성격이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하네.

이번 봉사활동은 사람 때문에 힘들지는 않겠다.

기념품 판매.

사찰의 넓은 공터 한쪽에 가판대를 차리고 글귀가 적힌 종이, 염주, 연등 장식 등을 파는 건데, 내가 불교가 아니라 기념품이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오전에는 사람이 거의 안 왔고, 오후쯤 되자 서서히 사람들이 왔다.

대부분 단풍 구경하러 온 어르신들이다. 다들 하하호호하면서 절을 구경하는데, 50대로 보이는 중년 부부가 인자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학생들. 이거 얼마 해요?"

남편으로 보이는 분은 글귀가 적힌 종이를 잡았고, 김소민은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네~ 오천 원입니다. 여기 예쁜 문구 많으니 한 번 보세요~"

"혹시 응원해주는 글은 없어요?"

"여보. 어차피 연등 달 건데 이거는 왜 사려고?"

"수능 날 아침에 소연이한테 주면 기분 좋잖아."

갑자기 절에서 웬 행사 하나 싶었는데, 수능 기원이랑 겸사겸사하는 거구나. 이제 수능이 50일 정도밖에 안 남았으니 할 때가 되긴 했네.

그런데 김소민 너 뭐하냐? 애가 갑자기 방문 판매원이 되어서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 염주는 어떠세요? 수능 칠 때 돌리면 마음이 진정돼요. 그리고 이거는 집에 장식으로 걸어놓는 연등인데요. 너무 예쁘죠."

"허허허. 네 예쁘네요."

"그리고 다른 것도 있는데요."

소민아. 그만해. 여기는 그런 곳 아냐.

오전에 한 바퀴를 돌면서 대충 분위기를 파악했는데, 돈에 아득바득하는 곳이 아니다.

임석훈 아버님이 돈이 많다 보니 수익보다는 봉사에 초점을 맞춘 곳이다.

그래서 봉사활동 하러 온 우리가 애써서 기념품을 팔 필요는 없다. 그냥 찾아오는 사람들 기분 좋게 해드리는 게 최고다.

실제로 글귀를 사러 온 중년 부부는, 적극적인 김소민 모습이 부담스러운지 조금씩 인상이 구겨지고 있다.

어서 말리자.

나는 소민이를 슬쩍 뒤로 당기며 앞으로 나갔다.

"안녕하세요. 따님이 수능 치시나 봐요? 고3이에요?"

"허허허. 재수생입니다. 이번에는 잘 쳐야 할 건데."

옆에 있던 부인이 남편 팔을 꼬집었다.

"당신은. 재수생 이런 거는 왜 이야기해요!"

"뭐 큰 거 말했다고 그래."

"자랑은 아니잖아요."

이러다가 두 사람 싸우겠다. 기분 좋게 보내드리자.

"어머님. 사실, 제 동생이 지금 재수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남 일 같지 않아서 물어봤습니다."

"그래요?"

"네. 기숙학원에 들어갔는데, 잘하려나 모르겠어요."

"우리 딸은 집에서 하고 있는데. 아우. 그쪽도 신경 많이 쓰겠어요."

"수험생 가족들이 다 그렇죠. 여기 글귀에 추가로 두 분이 글 적을 수 있는데, 따님에게 응원 문구 하나 적는 건 어때요? 직접 적으시면 됩니다."

부부는 고민하더니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소연아 수능 잘 쳐. 아빠가.' 이렇게 적으려고 하는데. 학생 어때요?"

"괜찮은 거 같아요. 아니면, 이건 어때요? '소연아 수능 친다고 수고했어.' 수능 전에는 사실 예민하잖아요. 괜히 건드리지 말고 이렇게 적은 다음에 수능 끝나고 주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특히 말이에요."

나는 부인을 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어머님. 여자들 아시잖아요. 사소한 거에도 얼마나 예민한지. 괜히 수능 전에 잘 치라는 말 들었다가 우울해할 수도 있어요."

"맞아! 맞아! 어머! 나는 생각도 못 했네. 그래 여보! 이 학생 말대로 수능 끝나고 줘요! 수능 전에 줬다가 괜히 애 부담될 수도 있어요"

"으음. 그것도 그렇네. 그럼 학생이 좀 적어줘요."

갑자기?

"제가요?"

"허허허. 뭔가 학생한테서 좋은 기운이 느껴져서 그래요."

"그러고 보니 얼굴도 잘생기고 기운이 좋네! 학생! 학생이 좀 적어줘요. 부탁할게요."

두 사람은 간절히 나를 바라봤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인가 보다. 작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거지.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나는 글귀가 적힌 종이 뒷면에 글을 적었다.

- 사랑해~ 수능 친다고 수고했어 소연아. 아빠가

- 사랑해~ 수능 본다고 수고했어 소연아. 엄마가

종이 두 장을 건네자 부부는 신줏단지 보듯이 봤다.

"두 분 종이를 한 번 이어보세요. 그러면 한 문장이 됩니다. '사랑해 수능 친다고 수고했어~ 아빠가 사랑해~ 이렇게 바로 이어지는 거죠. 뭐 별거는 아닌데, 이러면 조금 더 기분 좋을 거 같아서 해봤습니다."

"오~ 괜찮네. 나는 괜찮아. 당신은 어때?"

"여보. 저도 마음에 들어요. 학생 보기와는 다르게 세심하네."

"아닙니다. 그냥 따님이 보고 더욱 기분 좋았으면 하는 생각에 적은 겁니다."

"그럼 우리 딸 줄 거 몇 개 더 골라줄래요?"

응? 아내분은 갑자기 테이블 위에 있는 기념품을 손으로 골랐다.

"당신은 아까 내가 산다고 할 때는 뭐라 하면서."

"여보. 그때는 이 학생이 신기 있는 줄 몰랐죠."

저. 신기 없어요.

"어서 골라주세요. 여기 있는 거 하나씩 다 사야겠어요. 여보 괜찮죠?"

"이상하게 이 학생이랑 이야기하니 기분이 좋아지네. 그렇게 해. 학생 어서 골라줘."

"저... 제가 경영 과인데, 합리적이지 않은 구매입니다."

"허허허. 딸 생각에 합리가 어딨겠어. 어서 골라줘."

···

별수 없지. 나는 기념품을 종류별로 하나씩 골라줬다.

"...전부 다 합쳐서 10만 8천 원입니다."

"그렇게나 많이 나왔어?"

"당신! 그냥 사요. 여기 어차피 수익금 절반은 기부한대요."

"그래? 그럼 어차피 좋은 일이잖아. 허허허. 여기 카드 있네."

절반은 기부하는 건 사실인데요. 굳이 이렇게 다 사셔야 할 필요는 없어요.

에라 모르겠다. 기분 좋아지면 그걸로 된 거지.

결제한 후 카드를 돌려주자 부부는 싱글벙글거리며 떠났다.

짝! 짝! 짝! 짝!

그때 뒤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조원 네 명이 다 같이 모여서 손뼉을 치고 자빠져있다.

첫 번째로 입을 연 건 김두호다.

"대단해. 경영과는 다르구나."

"그런 거 아니거든요."

다음은 시은, 시하 자매가 입을 열었다.

"오빠. 진짜 대단한 거 같아요. 어떻게 어른들이랑 그렇게 편하게 말하세요?"

"세 사람 원래부터 아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회사 짬밥이 4년 있는데, 이 정도는 당연하지.

다음은 김소민인데, 너 미쳤니?

손이 터질 정도로 박수 치는데, 얼굴은 감동에 벅차 있다.

"오빠. 저는 아직 멀었나 봐요. 처음에는 제가 너무 오바해서 오빠가 뒤로 당긴 줄 알았어요."

그게 맞아.

"그런데 오빠가 파는 거 보고 깨달았어요. 아!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마음을 파는 거구나!"

그건 내가 영업일을 해봐서 그러는 거고.

"오빠! 방금 배운 거 써먹어야겠어요! 뭔가 조금 깨달았어요! 비켜봐요!"

"나도! 나도 해볼게!"

"우리도 해볼게요!"

다들 미쳤어? 여기 그런 분위기 아냐!!!!

네 사람은 정말 열과 성의를 다해서 기념품을 팔았다.

제발 우리 봉사활동인 거 잊지 말아줘.

정신없이 팔다 보니 기왓장 끝에 해가 걸렸고, 열정적인 첫날이 끝났다.

시불... 내일이 본 행사인데. 첫날부터 너무 열심히 해버렸다.

< 봉사활동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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