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연 >
타닥. 타닥.
이야기가 끝나가자 비가 그친다. 앞 유리창에는 햇빛이 들어온다.
소라는 햇빛 때문인지 우울한 모습은 사라지고 해맑은 아이가 되어서 창밖을 바라봤다.
"비 그쳤다."
"그러게. 소나기 맞나 보네."
"응. 그런가 봐. 나도 지금 소나기 맞고 있다고 생각해야겠어. 어? 오빠! 저기 무지개 떴어!"
산 아래쪽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펼쳐져 있다. 예쁘네.
"와~ 진짜 예쁘다~"
"소라야. 저 무지개처럼 네 삶도 이제 예뻐질 거야."
"오빠..."
"힘내."
"나 방금 닭살 돋았어. 오빠 자지 처음 들어 왔을 때랑 같은 기분이야."
...
망할 가시나. 멋있는 말 해줘도 지랄이야.
"됐다. 됐어. 여튼 내가 해결해줄게."
"오빠한테 돈 안 받는대도. 이 말 진심이야. 괜히 돈 때문에 어색해지지 말자."
"쓰읍. 너 스무 살 아니지? 보통 스무 살이면 좋다고 헤~ 거리는데."
"헤~ 벌려주겠지. 나는 아냐. 인생에 굴곡이 많아 닳고 닳았거든."
"어디? 거기가?"
"와... 진짜 쓰레기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야! 너는 섹드립 되고 나는 왜 안 돼?"
"킥킥. 내 맘이다. 그래도 기분 좋네. 확실히 누구한테 말하니깐 속 시원해지는 거 같아."
"그럼 뭐해. 이 산 내려가면 너는 다시 번뇌에 빠질 건데. 너 내가 해결해주면 뭐 해줄 건데?"
"아 진짜. 돈 안 받는데도."
"돈으로 해결해줄 거 아닌데?"
"그럼?"
"다 방법이 있어. 뭐 해줄 거야? 빨리 말해."
"흐음... 오빠 원하는 거 섹스밖에 없잖아. 뭐 특이하게 하고 싶은 거 있어? 딜도 사놓을까?"
...
됐다. 말을 말자.
"너 요리 잘하더라. 맛있는 밥이나 한 끼 해주라. 혹시 너희 아버지 어디서 돈 빌린 줄 알아? 사채업자 이름 같은 거 말야."
"음. 햇빛 대부라고 들은 거 같아. 한 번 찾아간 적 있어서 여기 명함 있을 거야. 뭐 할지는 몰라도 괜히 너무 애쓰지는 마."
응. 너무 애쓰지 않을 거야.
아니 정확하게는 다른 사람이 애써 줄 거야.
나는 소라와 같이 산에서 내려갔다.
*
동아리 모임이 끝났다.
학교에 돌아오니 저녁해가 다 졌다.
소라 원룸 앞에 도착해서 내려줬는데, 양팔을 머뭇거리며 나를 빤히 본다.
"오빠. 있잖아."
"안 자고 갈 거다. 가야 할 곳 있어."
"쳇. 귀여운 척했는데 안 통하네. 지금 내 외모면 통할 줄 알았는데."
"그거는 님 착각이고요. 오늘 일하러 안가?"
"이제 씻고 가야지. 나중에 심심하면 놀러 와."
"알았어. 좋은 소식 들고 갈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나는 간다."
"응."
소라는 원룸으로 들어갔고 나는 차에 올라탄 후 휴대전화를 들었다.
디리리링.
- 네 현찬 선배님.
"창민 형. 혹시 지금 시간 돼요?"
- 네 됩니다.
"그럼 지금 좀 뵙죠."
- 그럼 저번에 그 술집에서 뵙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안 궁금해요?"
- 만나보면 알겠죠.
거참 사람 시원시원하네.
나는 한창민 친구가 하는 술집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어라? 사람이 많다.
전설적임 김성원 형도 있고. 나한테 대들던 애들 다섯 명도 있고.
그런데 너희 맞았니? 왜 죽을상이 되어 있니?
"안녕하세요. 저 왔습니다."
"어이 동생. 왔어?"
"안녕하십니까!"
다섯 명의 남자애들이 나를 노려본다.
아... 얘네들 김성원한테 이름 팔았다고 맞았구나. 그러니깐 조심했어야지.
지금도 마찬가지야. 한창민이 너희 노려보고 있다.
그 눈빛을 읽은 다섯 명은 얌전해졌고, 그제야 한창민이 나에게 인사했다.
"선배님 오셨습니까. 어쩐 일이죠?"
"도움을 조금 요청하려고요. 괜찮을까요?"
"어떤 일이냐에 따라서 달라질 거 같습니다. 저에게 도움 요청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누구 때려달라는 건데. 선배님도 마찬가진가요?"
"그 정도는 아니고요. 대신 비슷할 수는 있을 거 같습니다."
"자세한 이야기 좀 해보시죠."
나는 한창민에게 다른 사람 일인 것처럼 소라 일을 말했다.
물론 이래도 눈치챌 거다.
그래도 과묵한 한창민이면 다른 사람에게 퍼트리지는 않겠지.
김성원과 다섯 동생들은 완전히 남이니깐 괜찮고.
내 이야기를 들은 한창민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흠..."
"저 혼자 가도 상관없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사람은 조금 더 필요하겠네요."
응? 누구를 부르려는 거야? 부담스러운데.
"여기서 더 부른다고요?"
"네. 이런 쪽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있습니다."
업계 사람을 부르려나 보다. 이씨. 그런 건 조금 무서운데.
내일 아침 뉴스에 뜨는 거 아냐? 조폭들의 항쟁 뭐 이런 거로.
"그런데 업체 이름은 아십니까? 여기가 좁아서 몇 군데밖에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돌아다니면서 찾을 수준은 아닙니다."
"햇빛 대부라고 들었습니다."
소라에게 받은 명함을 건네자, 김성원이 낚아채 갔다.
"어? 여기 우리 아가씨들 마이깡 해줬던 곳인데."
"아는 곳이에요?"
"이제는 거래 안 해서 몰라. 개새끼들 나 안 통하고 아가씨들한테 돈 장난쳐서 바로 잘라 버렸어."
"손가락 자른 건 아니죠?"
"으하하하하. 지금 농담이지?"
"네. 농담이에요. 그럼 위치 아시겠네요?"
"그럼. 노래방 바로 근처야. 창민아 그 사람 부를 거야?"
"...불러야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깐."
"누구 부르는 거예요?"
"이 동네에 나 김성원보다 더 전설적인 사람이 있지."
"그런 사람도 있어요?"
한창민이 나를 보면서 씩 웃었다.
"네. 제가 유일하게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저희 형입니다."
점점 판이 커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
낡아 보이는 건물 입구에 햇빛 대부라고 붙여져 있다.
딱 봐도 미등록 업체구먼.
지금 우리는 대충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김성원과 한창민은 익숙한지 무표정하고, 그 밑에 동생들은 오래간만에 몸푼 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어린 나이에 뭔가를 한다는 게 설레는지 어깨를 들썩거린다.
나는? 솔직히 무서워 뒤지겠다.
시불. 이런 걸 해봤어야지. 칼 맞으면 어쩌지?
긴장감에 오줌이 마려운데 골목에 두 사람이 들어 왔다.
그러자 모두가 긴장했다. 드디어 전쟁인가?
두 사람 중에서 조폭같이 생긴 사람이 우리 앞에 서더니 담배를 하나 물었다.
"후~~ 양아치들 많이 있네. 창민아 왜 불렀냐?"
"형. 부탁할 게 있어서 불렀어."
한창민의 형이구나. 키는 180 정도의 호리호리 한 몸인데, 동생이랑은 다르게 눈빛이 날카롭다. 배일 정도다.
"아까 전화로는 여기서 돈 장난 쳤다면서? 성원아 너희 가게 아가씨들한테 친 거냐? 그거 정리됐잖아."
"형님. 아닙니다. 이번에는 창민이네 아가씨한테 친 겁니다."
한창민 형의 눈빛이 더 매서워졌다.
"야. 한창민. 여자 장사하냐?"
"대학교 동창이야."
"지랄 까네. 어디서 아가리 놀리냐?"
"선배님 해명 좀 해주십시오."
한창민은 나를 봤고, 한창민의 형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본다.
그냥 태조태종처럼 너희들끼리 싸우세요. 겁나서 뒤지겠네.
"안녕하세요. 한창민 선배인데 동생인 민현찬입니다."
"넌 또 무슨 놈팽이 새끼냐?"
"형! 학교 선배님이야."
"지랄. 대학생 나부랭이가 선배는 무슨 선배."
우씨. 내 신분을 증명해야겠다.
나는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서 한창민의 형에게 내밀었다.
"지금 대학생이지만, PIH 엔터 주주이기도 한 민현찬입니다. 반갑습니다."
혹시나 해서 명함 받기를 잘했네.
"이거 여자 장사하는 회사 아냐? 야! 전화해봐."
한창민의 형은 내 명함을 뒤로 건넸고, 부하 같은 사람은 어딘가에 전화했다.
어... 그거는 좀 곤란한데...
조폭이랑 엮인 거 동네방네 소문 다 나겠네.
부하는 1분 정도 전화를 하더니 한창민의 형한테 뭐라고 했고, 그제야 얼굴을 풀며 나에게 손을 내민다.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유명한 회사네요. 저는 한창민 형 한상민입니다. 멀쩡한 분이 이런 일에는 왜 연루되었습니까?"
"뭐. 제 일은 아니고 아는 사람 일이라서요."
"창민이한테 들었는데 천만 원이 사천만 원 되었다면서요?"
"네. 간단하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쪽은 우리가 전문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준비되면 말해주십시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의외로 엄청 점잖고 친절하잖아. 무서운 사람이 다정해지니깐 마음이 뭉클해지네.
여튼 이제 들어가 보자.
한창민을 바라봤는데 고개를 끄덕인다. 가자는 신호다.
"창민 형. 가시죠."
"가자 성원아."
"애들아 가자!!!"
"네! 형님! 다들 들어가자!!!"
"양아치 새끼들 귀엽네. 우리도 가자."
"네! 선배님!"
나를 선두로 열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따라온다.
시불.
졸지에 조폭이 된 기분이 든다.
*
너희 뭐야! 이 새끼들!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 왔어!
라고 할 줄 알았다. 영화는 그렇잖아.
그런데 이 점잖은 분위기는 뭐야?
우선 사채업자는 내가 생각한 이미지가 아니다.
40대의 평범한 아저씨처럼 보이는 외모다.
처음에는 놀라더니 이제는 커피까지 우리에게 주며 껄껄 웃고 있다.
"많이도 오셨네요. 무슨 일로 오셨다고 하셨죠?"
"야! 너희가 돈 장난 쳤잖아!"
"성원 씨. 그 문제는 저번에 해결됐잖아요."
"또 쳤잖아!"
"네? 죄송한데 설명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친구가 설명해줄 거야. 동생. 설명 좀 해줘."
"형... 의외로 경박하시네요. 음음. 사장님. 일 년 전에 천만 원을 빌려준 뒤 사천만 원이 된 사람 있죠?"
"잘 모르겠습니다."
"시침 떼지 마세요. 다 알고 왔습니다."
"아니.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이쪽 업계 하시는 분이면 아시잖아요. 그런 일 흔하다는 거요. 이름을 말해주면 계약서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미안해요. 이쪽 업계가 아니어서 몰랐어요.
...
그런데 소라 아빠 이름이 뭐지?
나도 정말 대책 없이 왔구나.
"저 잠시만요. 전화 한 통화만 하고 오겠습니다."
나는 사무실을 나가서 소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오빠. 왜?
"아버지 성함 어떻게 되냐?"
- 우리 아빠 이름은 왜? 상견례 하려고?
"헛소리하지 말고."
- 유주승이야.
"그래 알았다."
나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유주승 아니. 유 주자 승자입니다."
"유주승... 유주승... 누구지? 김양아. 서류에 유주승 이름 있는지 찾아봐라."
김양이라는 30대 여자가 컴퓨터를 타닥타닥 치더니 한쪽에 있는 서류를 가지고 왔다.
사채업자는 서류를 보더니 씩 웃는다.
"네. 있네요. 지금 딱 3천 9백 되었습니다. 갚으려고 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계약서만 가지고 갈 겁니다."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아쉽게도 진담입니다. 천만 원으로 사천만 원을 만들어 놓고는 어떻게 뻔뻔하게 돈 달라고 하는 거죠?"
"그런 조건으로 계약 맺은 겁니다. 여기 도장도 있어요."
"그 어떠한 계약도 법을 어길 수는 없죠. 법정 최고 금리를 훨씬 넘은 계약입니다. 지금 대부업 기준으로 해도 금리는 49프로 밖에 안 됩니다. 일 년이면 천 오백만 원이 돼야죠."
"하. 그래서 사람들 많이 데리고 왔군요. 성원 씨. 사천만 원밖에 안 되는 돈으로 이거 너무 한데요?"
"아는 얼굴이라고 나한테 들러붙지 마. 그리고 내 일 아니야. 창민이 일이야."
"창민이가 누구죠?"
"아. 너 이 동네 사람 아니어서 모르지? 저기 키 작은 친구인데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나도 한방에 나가떨어졌거든."
"아씨. 이거 졷같네. 사천만 원 때문에 터지고 싸워봤자 남는 것도 없고. 애들 병원비만 더 들어 갈 거고. 이렇게 하시죠. 이천만 원에 퉁 치죠."
"법적으로 하시죠. 천 오백만 원. 그 이상은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응? 이렇게 쉽게 콜해 줘?
놀라서 쳐다보자 사채업자는 피식 웃었다.
"어차피 회수 불가능한 돈으로 보고 있었거든요. 악성 추심 채권으로 팔아봤자 십분의 일 가격인데 그럴 바에는 원금에 정상 이자라도 건지는 게 좋죠."
"방금 뭐라고 했죠?"
"원금에 정상 이자라고 했습니다."
"그럼 현재 계약서상 이자가 비정상이라는 말인가요?"
"하하하.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계약서상 이자는 비정상이 아니라 불법적인 이자죠. 우리는 고객이 고객이다 보니 돈 회수 못할 가망성이 워낙 커서 리스크 비용을 받는 겁니다."
"방금 본인이 불법이라 시인했으니 이자는 한 푼도 못 주겠습니다."
"뭐라고?"
"반말하지 마시고요. 본인 입으로 불법이라 했잖아요. 녹음도 다 했습니다."
"이 새끼가. 뭐? 천 오백에 마무리하자면서!"
"그거는 당신이 죄를 시인하기 전이지. 너도 똑같잖아. 돈 빌려줄 때랑 받을 때 다르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이렇게 나오면 나도 가만히 못 있어. 성원 씨. 이 친구 좀 말려봐."
"내가 무슨 힘이 있어. 나는 몰라."
"하... 꼭 피를 봐야겠어?"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그런데 나는 어디서 용기가 나오길래 이렇게 주둥이를 놀린 걸까?
시불 갑자기 긴장감이 확 몰려오는데.
짝! 짝! 짝!
그때 누군가 손뼉을 쳤다. 고개를 돌리자 한상민이 웃으며 손뼉을 치고 있다.
미친 거 아니시죠?
"아하하하. 이 새끼 된통 당했네. 이 친구 말이 맞아. 네가 불법임을 시인 했잖아. 이런 경우는 원금만 받아야 해. 계약 자체가 무효거든."
"어이 당신은 또 뭐야? 뭔데 설치고 지랄이야?"
"나? 형사야."
"뭐? 네? 형사라고요?"
"응. 너희들이 맨날 졷같다고 말하는 형사. 동생이 도와달라고 해서 왔더만 어린애 장난 같은 일이네. 너 둘 중 뭐 결정할래?"
"네? 둘 중이라면 어떤 거 말씀하시는 건지..."
"여기서 천만 원으로 마무리하고 적당히 마이깡 당겨 주면서 장사할래? 아니면 지금 당장 여기 뒤집어 줄까?"
"저기 형사님. 저 그게 아니라. 죄송한데 전화 한 통화만 하고 오겠습니다."
"너 이 좁은 동네에서 내 얼굴 모르는 거 보니깐 딴 동네 사람인가 본데, 와이로를 누구에게 쳐 먹여 놨는지 몰라도 나보다는 힘없을걸?"
"네?"
"이 새끼야~ 이 새끼야~ 이런 곳에서 장사하려면 토박이는 알아야지. 송사리는 될 줄 알았는데, 미토콘드리아도 안 되는 새끼네. 우리가 왜 너 안 잡는 줄 알아?
적당히 있어야지 더한 새끼가 안 와서 안 잡는 거야. 그래서 내가 지금 미친 듯이 고민 중이다. 너를 감방에 처넣을까 아니면 봐줄까. 2초 줄게 결정해. 2, 1,"
"한 번만 봐주십시오."
"그럼 천만 원 받고 땡 해라. 알겠냐?"
"네."
"이렇게 해결하면 되겠죠 민현찬씨?"
"네! 형님!"
"네?"
형사님이라면서요.
한창민의 형인데 형사라면 초 슈퍼 울트라 형님이시죠.
내 마음을 읽었는지 껄껄 웃는다.
"으하하. 그럼, 말 놓을게. 덕분에 재미난 친구 알게 됐네. 혹시나 여기서 문제 생기면 연락해. 내가 도와줄 테니까.
그럼 마무리하자. 계약은 무효기 때문에 천만 원 돌려주고 계약서 가져가면 돼. 돈은 언제 준비 할 수 있어?"
"지금 준비됐습니다. 천만 원 가져왔습니다."
가방에서 5만 원짜리 200장을 꺼내서 테이블 위에 올렸다.
"계약서 주시죠."
"여기 있습니다. 저 혹시."
"왜요?"
"같이 사업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네?
사채업자가 나에게서 돈 냄새를 맡았나 보다. 탐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본다.
이 양반아. 옆에 한창민의 형이 죽일 듯 노려보는 거 안 보이냐?
"됐습니다. 저는 깨끗하게 벌어서 깨끗하게 씁니다. 그럼 이제 끝났네요. 창민 형 이만 일어나시죠."
"네 알겠습니다. 성원아 가자."
"그래. 애들아 가자!!!!!"
"네 형님!"
"하여튼 양아치 새끼들. 졸라 시끄럽네. 이렇게 모였는데 오래간만에 술이나 먹자. 성원아 너희 가게 어때?"
"형님. 알겠습니다. 가게로 가시죠. 오래간만에 형님 뵙는데 제가 사겠습니다."
나는 한 손으로 성원형 어깨를 잡았다.
형. 이제 우리 이 정도는 괜찮죠?
"다들 저 때문에 고생했는데, 제가 사겠습니다."
"어? 으하하하. 동생 진짜야?"
"그럼요. 거기 너희들. 성원형 이름 팔아서 맞았지?"
"아. 아닙니다!"
"너희도 고생했는데 같이 술이나 먹자. 내가 살게. 신나게 놀아."
"가.. 감사합니다. 형님!"
자. 이제 가자.
사무실을 나오는데 한창민이 나에게 붙었다.
"역시 제가 사람 보는 눈을 틀리지 않았네요."
"네? 뭐가요?"
"훗. 현찬 선배님은 착한 사람이 맞습니다."
"제가요?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형이 착한 사람 같은데요."
"네?"
"그러니깐 이렇게 저 도와주시는 거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면 말이죠."
나는 씨익 웃으며 한창민을 봤다.
"뭔가를 부탁할 게 있을 수도 있고요."
"훗. 제가 소라를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죠."
"최근에 들은 농담 중에서 제일 재밌네요."
"하하하. 역시 거짓말은 안 통하네요. 다음에 둘이서만 한잔하시죠."
"알겠습니다."
여튼 사건은 다 정리됐다.
이제 소라와 아버지에게 천만 원 받으면 진짜 끝이다.
대충 성원이 형 이름으로 대출 돌려서 3프로 이자 정도로 마무리하자.
그럼 금방 갚겠지. 뭐.
어서 소라한테 좋은 소식을 전해 줘야겠다.
< 사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