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먹지 못했던 여사친들-168화 (168/295)

< 입원 >

무거워진 대화에 공찬혁 형이 소민이와 다희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현찬아. 우리는 이만 갈게. 뭔가 복잡한 이야기가 나오네."

"네? 조금 더 있다 가시죠."

"아니야. 다희야 소민아 가자."

"잠시만요 찬혁이 형. 우리 이것도 인연인데 사진 한 장 어때요?"

이대로 가는 건 너무 아쉽다. 사진 한 장이라도 남기자.

내 말에 민다희가 신난 얼굴을 들었다. 은미도 좋아하고, 박인혜는 곤란한 표정을 짓지만 어쩌겠어? 부탁하러 온 사람은 얌전히 있어야지.

나를 중심으로 은미, 박인혜, 소민, 공찬혁 형이 섰고, 다희가 찍사가 되어 필름 카메라로 우리를 겨냥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

야! 필름 카메라로 몇 장을 찍는 거야? 나 찍을 때는 한두 장 찍더니 연예인 봤다고 계속 셔터 누르네.

여튼 무진장 많이 찍었다.

이제, 김소민, 민다희, 공찬혁 형은 병실을 나갔고, 나와 박인혜, 하은미만 남았다.

은미는 가방을 들면서 나와 박인혜에게 말했다.

"대표님 저는 밖에서 기다릴게요. 현찬아 밖에 있을게."

"너 선미한테 가 있어. 이야기 끝나고 거기서 놀자. 오래간만인데 조금만 더 놀고 가."

"미안 현찬아. 나 마치고 바로 서울 가봐야 해서. 오늘 학교 앞에는 못 갈 거 같아."

"응? 선미 여기 입원해 있는데. 이야기 못 들었어?"

"뭐? 정말? 나 못 들었어! 너 교통사고 났다고만 이야기하던데?"

하이고. 선미야. 말 좀 해주라.

"옆 옆 병실 가봐. 맹장 수술하고 방귀 뀌었는지, 저녁 든든하게 먹고 배 두드리면서 만화책 보는 애 하나 있을 거다."

"맹장 수술? 이씨! 야! 이선미!"

하은미는 씩씩거리며 병실을 나갔다.

너 이 기회에 선미 좀 혼 내주라. 자기 아픈 건 이야기 안 하고 남 아픈 거만 말하고 있어.

은미가 가자 박인혜는 씨익 웃으며 나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아이들인데, 민현찬 씨와 돈 이야기를 해야 하다니. 신기하네요. 그럼 이야기 좀 해볼까요?"

"네. 그러시죠."

"지분을 다시 제가 샀으면 합니다."

"저는 팔기 싫은데요."

박인혜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딱히 경영권에 관심도 없으시잖아요. 그냥 파시는 게 어떤가요?"

"글쎄요. 주위에 경영권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나 봐요."

...

시불. 그렇게 보지 마요! 눈빛이 두 배는 날카로워졌다.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여튼 저는 팔 생각 없습니다. 지금 상황을 보니 곳간이 많이 좋아졌나 본데, 그렇다면 굳이 제가 팔 이유는 없죠. 앞으로 더 좋아질 수도 있으니깐요."

"팔 이유라. 솔직하게 말할게요. 들어보시고 팔 이유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이번에 합병한 후 상장 예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영권이 중요해졌어요,"

"합병요?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저도 나름의 주주인데 왜 저에게는 말 안 했죠?"

"우편으로 제가 10통 넘게 보낸 거로 아는데요. 혹시 주소를 어디로 하셨죠?"

이사하기 전 원룸요.

시불.

"음. 아직 합병은 안 됐으니깐, 넘어가죠. 어느 회사랑 합치는 거예요?"

"보아하니 우편은 못 받으신 거 같네요. 제작사 쪽 회사랑 합치기로 했어요. 표면적으로는 인수 합병당하는 거지만, 뭐 사실은 합치는 겁니다. 그쪽 재무제표가 상장 조건에 맞거든요.

은미도 그쪽이랑 이야기 나오다가 배우 쪽으로 옮긴 거예요. 여튼 그렇다 보니 현재 경영권이 조금 중요해졌습니다. 엔터 쪽은 제가 독립 경영을 하기로 했는데, 혹시 모르니깐요."

"비율은 얼마로 했죠?"

"1:2입니다. 우리가 2입니다."

그럼 내 지분은 전체 지분의 몇 프로가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민현찬씨 지분은 전체의 3.3% 수준입니다. 지금은 상대방을 믿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회사 지분을 미리 아는 사람에게 몰래 뿌려놓을 생각입니다."

"그런 이유라면 제가 들고 있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제가 민현찬 씨를 어떻게 믿죠?"

하긴. 가족도 배신하는 세상인데. 오죽하겠어.

게다가 도와주기는 했지만, 지분도 깡 뜯은 나다.

그만큼 나는 나쁜 놈이란 말이지. 응 절대 안 팔아.

"그렇다면 더 팔 필요 없죠. 합병하고 상장하면 가격이 얼마나 뛸지 모르는데요."

"3프로 해서 15억. 바로 현금으로 드리겠습니다."

거. 누나 화끈하시네.

3프로에 15억이라. 합병 회사의 시가총액을 대략 500억으로 계산 했나 보네.

여튼 미래는 바뀌나 보다. 적어도 내가 아는 엔터 회사 중에서는 이런 건 없었다.

박인혜 상당히 실력 있단 말이야. 운이 없어서 그렇지.

흐음 어떡한다. 고민이 되는데 박인혜가 짜증 나는 말을 한마디 던졌다.

"은미를 위해서도 좋은 선택을 하는 게 좋을 겁니다."

"네? 뭐라고요?"

입을 꼭 다물고는 한마디도 안 한다.

"혹시 지분을 안 넘기면 은미에게 불이익이 있단 말인가요?"

"그렇다고는 말 안 했습니다. 다만 다양한 경우를 생각해보라는 거죠."

"제가 사람 잘못 본 건가요? 은미에게 해를 끼칠 사람으로 안 봤었는데."

"정확하게 봤습니다. 제가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 회사가 문제죠."

시불. 하고 싶은 말은 정확하게 말하네.

결론적으로 경영에 자유권이 있어야지 자기 사람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이잖아.

은미와 15억이라...

잠시만.

...

"시발!"

"네?"

"아니요. 아니에요. 쓰레기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잠시 생겨서 그랬어요. 잠시만 시간을 주실 수 있나요?"

"네. 이달 안에 답변해주시면 됩니다. 아무쪼록 좋은 선택을 부탁드립니다. 모두를 위해서요."

"네. 팔겠습니다."

내 대답에 박인혜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정말요?"

"네. 대신 9월 말까지 상장한다는 전제에서만 팔 겁니다."

"잘됐네요. 저도 그쯤을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너무 쉽게 대답해 주시네요."

"뭐. 저야 원래 경영에 관심 없었으니깐요. 이제 돌려줄 때가 됐을 뿐입니다."

"훗 역시 민현찬 씨는 좋은 사람이네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박인혜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병실을 나갔다. 그러자 호구신님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 멍청한 놈아. 상장하면 얼마가 될 줄 알고 지분을 판다는 거냐?

15억이면 많이 벌잖아요.

- 그 상장회사가 시가총액이 1000억이 되면? 그럼 30억이 넘는 금액이 돼!

뭐. 언젠가는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올해는 안 돼요. 이번 가을과 겨울은 너무 춥거든요.

- 춥다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오잖아요. 그 전에 상장되면 룰라가 될 거예요.

- 무슨 말이야?

날개 잃은 천사가 되는 거죠. 주식은 아마존 익스프레스처럼 떨어질 겁니다.

물론 안 그럴 수도 있지만, 베팅은 해볼 만하다. 잘하면 같은 금액으로 지분을 더 늘릴 수도 있다.

그리고 나도 서브프라임 때를 대비하면 현금이 더 많을수록 좋다. 서로 이해타산이 맞아 버렸다.

- 그러면 이왕 할 거 한 30억 부르지 그랬어?

저 독사 성격상 15억이 커트라인이었을걸요? 절박했던 그때랑 달라요. 지금은 보험으로 내 지분을 가지고 싶은 거예요. 아마 내가 노 했으면 다른 사람 찾아가서 말했을 겁니다.

옵션이 있는 사람에게는 굳이 흥정할 필요 없다.

섹탐대실. 소탐대실.

돈이든 섹스든 더 많은 걸 탐하려 하면 항상 잃게 되어있다.

나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병실을 나갔다.

은미 선미 같이 있을 건데 어딨냐?

선미 병실에 들어가자 기가 차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얼씨구. 너희 뭐하냐? 나 순간 옛날 자취방 온줄 알았네. 그 좁은 병원 침대에 어떻게 두 사람이 누워있냐?"

만화책을 보는 선미. 그 옆에 은미가 딱 붙은 채 누워 있다.

선미는 나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옛날 생각나고 좋은데. 우리 옛날에 이렇게 많이 놀았잖아. 이제 은미가 바빠서 놀 수가 없네."

"후훗. 미안. 조만간 드라마 끝나면 놀러 갈게."

"응. 그러면 옛날처럼 민현찬 집에서 놀자. 뭐해? 어서 들어와."

"안 그래도 들어간다."

나는 간이침대에 앉아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문득 1학년 때 생각이 난다. 참,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옛날같이 느껴진다.

한참을 보는데 은미와 눈이 마주쳤다.

"민현찬 메롱~"

"풋. 너는 연예인이 이미지 관리해야지 메롱이 뭐냐? 은미야. 네가 연예인 안 한 평행 세계는 어떨가?"

"후훗. 글쎄? 이렇게 계속 같이 놀고 있었겠지? 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은미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선미는 '이 새끼가 교통사고 나서 드디어 머리가 돌았구나'라는 얼굴로 나를 보고.

은미는 기분이 좋은지 헤헤헤 웃는다.

"헤헤헤. 옛날에 이렇게 많이 쓰다듬어 줬는데."

"네가 내 얼굴에 화장도 많이 했었지."

"응. 맞아. 기억난다. 그런데 현찬아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조금 슬퍼 보여."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대표님이 이상한 이야기한 건 아니지?"

"전혀. 그냥 어른들의 대화를 나눴어."

"치. 우리 다 동갑인데 어른은 무슨."

"내가 진짜 어른이거든. 은미 너는 아직 애야."

"그것도 좋다. 난 계속 어리고 싶어."

은미는 선미 옆구리에 얼굴을 비볐고, 선미는 그런 은미를 쓰다듬어 줬다.

보기 좋네.

오래간만에 느끼는 1학년 때 생각에 마음이 설레기까지 한다.

그리고 마은 한쪽이 불편하다.

입원한 지 5일이 지났다. 참 마음 불편한 나날이다.

이제 선미는 내일이면 퇴원이다. 나는 밤 10시쯤 병실을 나와서 선미 병실에 갔다.

어라? 그런데 사람이 없다. 애 벌써 퇴원했나?

고개를 두리번거리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선미야. 너 어디 갔다 왔어? 아! 깜짝이야! 가시나! 물귀신이냐?"

"뭐? 씻고 왔는데 왜 지랄이야."

"어디서 씻었어?"

"여기 1인실에는 샤워 시설이 있더라고. 간호사 언니한테 부탁해서 쓰고 왔어."

너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겠다.

"그런데 샤워해도 돼? 수술한 부위는?"

"짜잔!"

선미가 환자복을 들었는데, 주택 옥상처럼 방수 처리가 쫙 되어있다. 그만큼 방수 테이프가 꼼꼼하게 발라져 있다.

"대단합니다."

"5일 동안 못 씻어서 그래. 얼마나 찝찝한데. 아 이제 개운하다. 그런데 여기 왜 왔어?"

"심란해서 놀러 왔다."

"심란은 무슨. 그래. 너 은미 오고 나서부터 얼굴 안 좋더라. 무슨 일 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어."

"이 새끼. 이럴 놈이 아닌데. 일단 들어와."

"큭큭. 좋네. 원룸에는 죽어도 못 들어갔는데, 병실은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고."

"변태 같은 놈. 어휴. 내가 어쩌다가 저런 걸 받아들여서."

나는 피식 웃는 선미를 따라 들어갔다.

선미는 침대 한쪽 귀퉁이에 앉더니 머리를 말리기 위해 헤어드라이어를 잡았다.

"내가 머리 말려줄게."

"괜찮아. 내가 말리면 돼."

"머리 말리는 거 구경하는 거 만큼 지루한 거 없어. 나한테 줘."

헤어드라이어를 잡자 선미 손에 힘이 풀리면서 넌지시 나에게 넘어왔다.

2인실인 병실. 선미는 침대에 앉아 있고, 나는 헤어드라이어를 손에 잡고 젖은 머리카락을 겨냥했다.

지이이이이잉.

뜨거운 바람이 이선미 머리카락을 휘날린다. 선미는 고개를 슬쩍 뒤로 돌리며 나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정수리에만 바람 쏘지 마라. 죽여버린다."

"네. 누나."

미안. 정수리가 과녁 같았어.

"내가 말려주니깐 좋지?"

"글쎄. 편하기는 하네. 근데 왜? 무슨 일 있어?"

"뭐가?"

"네가 이런 서비스도 다 해주고. 별일이네."

그러게 말야. 나는 머리를 말리면서 선미에게 물었다.

"선미아. 내가 만약 친구의 가치를 돈으로 매긴다면 어떻게 할 거야?"

"은미 일이야?"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박인혜 말을 들었을 때, 찰나였지만 나는 은미와 돈을 저울질했다.

젠장. 쓰레기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현실적이기도 하다. 20억이 넘는 돈인데.

은미고 나발이고 계속 들고 있으면 더 큰돈이 되지 않을까?

중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 고민은 더욱 깊어졌을 거다.

마음속 한쪽이 불편한데, 선미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툭 던졌다.

"어쩔 수 없지 뭐. 너한테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끝에 좀 꼼꼼하게 해줘."

"뭐? 진심이야? 근데 너 머릿결 많이 상했다."

"하도 자서 그런가 봐. 야! 민현찬!"

선미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눈동자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다.

"그래도 괜찮아.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게 삶 아니겠어?"

"만약 내가 너랑 돈을 저울질한다면?"

"흐음. 글쎄? 섭섭하기는 할 거야. 그래도 이해할게. 너라면 그 정도 자격은 있는 거 같아. 대신 나도 부탁 하나만 하자."

"뭐?"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나중에 꼭 나한테 설명해줘. 평생 너를 원망하며 살고 싶지는 않거든."

그리고는 씩 웃었다.

신기하다. 선미의 미소에 마음의 불편함이 한 번에 사라졌다.

괜찮다는 한마디가 나를 치유 해주는 기분이 든다.

나는 드라이기를 내려놓으며 침대 위에 엉덩이를 올렸다.

"처음으로 네가 어른 같이 느껴지네. 나 오늘 여기서 잘래!"

"야 비켜! 왜 침대 위에 올라가!"

"저번에 은미도 올라왔잖아!"

"너는 은미보다 크잖아! 침대 부서져!"

"그럼 물려주면 되지 뭐."

기어코 침대 위에 올라갔고, 선미는 투덜 대면서 비켜줬다.

"이렇게 같이 누워있으니깐 옛날 생각난다. 그때 기억나? 우리 부모님 사고당했을 때 네가 내 고향까지 내려왔었잖아."

"아. 그때? 축구 내기해서 이겼다고 강제로 오랄 시킨 날?"

"···가시나. 꼭 그렇게 말해야 하냐?"

선미는 몸을 돌려 나를 마주 봤다.

"사실이잖아. 이렇게 머리 잡고 흔들흔들~"

"그때는 철없어서 그랬어. 미안해."

"지금은 철들었어?"

"그럼. 나 옛날의 민현찬 아니야."

"그런데 가슴은 왜 만지냐 죽을래?"

와우! 내 손이 왜 선미 가슴에 있지?

당황해하는데, 선미가 나를 꼬옥 안아줬다.

"요즘 고민이 많이 있었나 보네. 만지고 싶으면 만져도 돼."

"정말?"

"응. 오늘은 너 하고 싶은 대로 나를 다뤄도 괜찮아."

두근두근.

따뜻한 선미의 체온이 내 몸에 느껴진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다니.

나는 선미의 하얀 뺨 위에 손을 올렸다.

"선미야."

"현찬아."

그리고 얼굴을 침대에 세게 눌렀다.

"아!!! 야! 뭐 하는 거야?"

"하이고. 잘도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겠다! 이게 어디서 낚으려고 해?"

"어쭈? 그렇다고 감히 누나 머리를 눌러?"

"웃기네. 즐이다! 보나 마나 섹스하자고 하면 '이 새끼 맹장 수술한 나한테 섹스하자고 졸랐대요~' 라면서 놀리려는 거잖아! 맞지?"

"아하하. 졸라 웃겨. 이제 안 속네?"

이선미는 깔깔 웃으며 내 팔을 치웠다.

하여튼. 귀신이란 말야. 조금만 정신 놓으면 혼이 홀라당 빠져나간다.

"아씨. 아쉽네. 민현찬 놀림거리 10년짜리 생길 수 있었는데."

"너한테 낚인 내 모습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첫 경험 하고 사귀자고 할 때가 엊그제인데. 많이 컸어. 이제 누나는 안심할 수 있겠어."

사락.

헉! 하얀 선미의 손이 내려오더니 고추 위에 올라왔다.

"야! 야! 이선미."

"왜?"

"계속 만져. 아 좋아."

"여기는 교통사고 안 났나 봐?"

"그러게 말이야."

사륵. 사륵.

고추에 따뜻한 손길이 느껴진다. 한참 동안 이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데,

주욱.

뭔가가 내 환자복 바지를 당겼고.

사락.

내 고추를 향해 훅 들어 왔다.

어. 이건 맨손인데?

고개를 아래로 조금 내리자, 선미가 내 고추를 만지면서 씨익 웃고 있다.

"입으로 해줄까?"

"이거는 낚시 아니지? 그럼 나 절교할지도 모른다."

"꺄하하. 네가 나 둘러업고 뛰었는데 보답은 해줘야지. 딱딱해진 거 봐봐. 병원에만 있었더니 많이 쌓였나 보네."

그래. 근본적으로 소라와 비슷한 성격이지. 분위기가 익었으면 깨작거리지 않고 상황을 자기가 주도하길 원하거든.

"그럼. 병원 나가고 나서 제대로 하면 안 될까? 키핑할게."

"미친놈아. 내가 양주냐? 둘 중 하나 택해. 여기서 입으로 할래? 아니면 없던 일로 할래?"

시불.

박인혜야. 협상은 이렇게 하는 거야.

선택권이 없네.

"입으로 해주세요."

"꺄하하! 이 새끼 졸라 간절해. 알았어. 그럼 침대 밖에 서봐. 나 배 아파서 이 자세로는 힘들어."

"나도 다리 아파서 서 있기는 힘든데."

"그래? 어떡하지?"

시불. 어쩐지 순탄하다 싶었다. 인체의 신비를 펼쳐야 할 판이다.

< 입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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