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먹지 못했던 여사친들-158화 (158/295)

< 운동 >

학교 앞 흔한 술집. 우리는 북적북적하는 사람들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다희는 소민이에게 오늘 일을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김소민은 화를 못 참겠는지 씩씩거린다.

"미친년 아냐!"

김소민의 큰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소민아. 조용히 좀 해라. 사람들 다 보겠다."

"오빠 알았어요."

"여튼 나는 아무런 나쁜 짓도 안 했다. 네가 오해한 거다."

"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다희야 그래서? 가만히 놔뒀어? 머리카락을 뜯어버리지!"

"괜찮아. 다 지난 일이야. 그리고 나는 듣고 싶은 소리 이미 들었어."

"그게 뭔데?"

"글쎄. 후훗. 현찬 오빠한테 물어봐."

말을 끝낸 다희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눈에는 다정함이 가득하다.

너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 단 한 마디가 얼음 여왕 마음을 녹이다니.

이제 나와 다희 사이에 벽은 없다.

"너 웃으니 좋네. 다희야 오늘 내가 한 말 잊지 마."

"네. 오빠."

"아니. 두 사람 사겨요? 무슨 말인데요! 나도! 나도! 나도!"

"또 까분다. 이건 자전거 타러 온 사람만 알 수 있는 거야."

"씨! 나한테는 연락도 안 해놓고. 나 삐뚤어질 거야."

"너 이미 삐뚤하잖아. 거기서 어떻게 더 삐뚤어진다고?"

"와~ 이렇게 나를 왕따시키네. 다희 너도 섭섭해."

"훗. 그럼 너도 현찬 오빠랑 비밀 하나 만들어."

다희의 말에 김소민이 나를 보면서 씨익 웃는다.

"헤헤헤. 나도 사실 현찬 오빠랑 비밀 있지롱~ 민다희 궁금하지?"

"아니. 별로."

"아! 약 올라! 궁금해 해줘!"

투덜대는 김소민. 씩 웃으며 받아치는 민다희. 보기 좋네.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다희가 갑자기 내 눈을 바라봤다.

"오빠는 착한 사람 같아요."

"응? 갑자기?"

"네. 제 일도 그렇고, 소민이 일도 그렇고. 발 벗고 나서잖아요. 정말 고마워요. 소민아 너도 고맙다고 해."

"그건 인정. 헤헤헤. 나 요즘 오빠 덕분에 스트레스 안 받아서 너무 좋아요."

어라?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나는 술을 마시면서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나 마냥 착한 사람 아니다. 다희는 그냥 내가 열 받아서 화낸 거고, 소민이 너는 심심해서 축제 때 나선 거뿐이야.

그리고 세상에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어딨어? 천하의 나쁜 놈도 배부를 때는 좋은 사람이야. 너희들 나를 착한 사람으로 오해하지 마. 그러다 큰일 난다.

그리고 나는 착한 이미지가 싫어. 차라리 나쁜 이미지가 좋아."

전생에 착하게만 살았는데, 이번 삶마저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한 행동이 착한 행동인 건 상관없지만, 착한 사람이라는 의무감에 행동을 제약하는 건 반대다.

김소민은 그런 나를 보더니 실실 웃는다.

"히히히. 오빠 그거예요? 히키코모리인가?"

"츤데레 말하는 거겠지. 너는 은근히 무식하다. 하여튼 공대생들은."

"아씨! 잠시 헷갈렸어요! 그리고 사실 오빠 나쁜 사람인 거 알거든요."

"어떻게?"

"헤헤헤 알면서~"

나를 고혹적인 눈빛으로 본다. 자슥! 또 강제 플레이를 하고 싶나 보네. 너 계속 까불면 덮친다! 위에 올라타면 아무것도 못 하면서.

시불... 과몰입 하지 말자.

이제 이쪽은 정리되었고, 새로 생긴 궁금증 하나를 해결해야겠다. 아니! 술집에 왔는데? 왜 저 두 사람이 있어?

한창민과 유소라가 우리 대각선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술도 안 마시고 나만 보고 있다.

24살에 08학번으로 입학한 어둠의 베이비인 한창민

요부 그 자체인 유소라

두 사람이 웬일이지? 계속 쳐다보자 유소라가 오라고 손짓한다.

"다희야 소민아. 두 사람 이야기하고 있어. 잠시만 아는 사람한테 갔다 올게."

나는 테이블에서 일어서서 두 사람에게 갔다. 한창민 옆에 의자를 빼서 앉자 유소라가 씩 웃는다.

"어머~ 현찬 선배님. 안녕하세요! 그런데 너무하다! 우리랑은 술 안 드시면서~ 예쁜 사람들이랑은 술 마시네요."

"웃기네. 너... 아니다. 그런데 두 사람 어쩐 일이야? 창민... 아 어쩐 일이니?"

"킥킥. 오빠! 창민 오빠가 더 나이 많은데 반말해?"

응? 유소라 너 한창민 나이 아는 거야? 그런데 너는 왜 나한테 반말하냐? 평소 같으면 연기한다고 존댓말 하는 애가 말야.

그런 내 궁금증을 읽었는지 유소라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냥 원래대로 말해. 창민 오빠도 내 본 모습 아니깐."

"그래? 잘됐네. 창민씨. 아니 사석이니깐 형이라고 할게요. 창민 형 소라랑 어쩐 일이세요? 헉? 혹시 설마 두 사람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는 존나 유치하네."

"소라 너한테 말 안 했거든."

"나도 오빠한테 말한 거 아닌데? 운동 핑계로 사람 졸라 얼차려 시키는 사람한테 말한 건데?"

이놈의 기집애가!

나와 유소라의 눈에서 불꽃이 튀긴다. 가운데 철판 놔두면 자동으로 용접될 정도다.

한창민은 우리 둘을 보더니 껄껄 웃었다.

"하하하. 두 사람 친한가 보네요."

"형 오해입니다. 웬수 덩어리예요."

"졸라 매력적인 웬수여서 문제지."

"너 매력 전혀 없거든."

"그래? 정말?"

슬쩍 가슴골을 비추는데, 혼이 빠져나간다.

여튼 두 사람 호감으로 술 마시러 온 거는 아닌가 보네. 그랬다면 소라가 지금 나에게 저런 행동을 할 리는 없지.

"그런데 진짜 두 사람 어쩐 일이이에요?"

"소라가 저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만났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무조건 거부하세요. 쟤 부탁 들어주면 위험합니다."

"현찬 오빠! 알지도 못하면서 왜 간섭해?"

"그럼 이야기해봐 뭔데? 갑자기 궁금해지네."

"싫거든요!"

우리 둘은 다시 으르렁거리고 창민 형은 피식 웃는다.

"하하하. 두 사람 남매처럼 친하네요. 현찬 선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소라가 아르바이트 부탁해서 만난 겁니다."

"아르바이트요?"

잠시만. 한창민이면 어둠의 베이비인데?

"네. 제 친구가 이 술집 사장님이거든요."

색안경 끼고 봐서 죄송해요. 저는 어디에 팔려가는 줄 알았어요.

그러고 보니 한창민이 어둠의 베이비란 증거는 딱히 없다. 전생 졸업식 때 형님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온 거 그게 다다.

그 사람들 인상이 험악해도 착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말자.

아니, 그걸 떠나서 유소라가 뭘 하든 신경 쓸 이유는 없다. 요즘 오지랖 때문에 고생했는데 조금 절제하자.

생각이 정리되려는 찰나, 유소라가 나를 보며 웃었다.

"킥킥. 오빠~ 혹시 나 걱정된 거야? 감동했어~ 역시 우리 현찬 오빠가 최고야~"

"네 멋대로 해석하지 마라."

"하하하. 제가 보기에도 현찬 선배가 소라 많이 걱정하는 거 같은데요."

"두 사람 의외로 잘 맞네요. 여기 계속 있다가는 당하겠어요. 저는 이만 갑니다!"

이씨... 괜히 힘 뺐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소름 돋는 소리가 들렸다.

"본드걸!"

이 목소리는 그 어마무시한 쌍년인데?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술집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이 돌아갔고, 그 시선 끝에는 인상을 쓴 다희와 김소민, 그리고 다희 동창 박은영이 서 있다.

"야! 우리 여기서 또 보게 되네!"

"응."

"친한 척 좀 해라. 고등학교 때 네 응원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

"잘 지냈어? 아픈 데는 이제 괜찮아?"

저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민다희는 말없이 노려보는데, 옆에 있던 김소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네가 다희 동창이야?"

"응. 왜?"

"너 잘 만났다. 야! 그 이상한 별명 네가 지은 거라면서?"

"아~ 본드걸? 응. 그런데 왜?"

"왜라는 말이 나와? 다희가 너 때문에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

"정말? 나 몰랐어. 다희야 너 상처 받았었어? 아니. 나는 그냥 장난으로 한 건데."

"장난? 지울 수 없는 흉터 가지고 별명 짓는 게 장난이야?"

"응. 가리면 보이지도 않고, 다들 그렇구나 하고 넘기잖아. 내가 보기에는 다희가 별거 아닌 거로 짜증내는 거 같은데. 다희야 너는 어때? 본드걸이라는 별명 싫어?"

"응. 싫어. 나한테는 듣기 싫은 소리야."

"너 좀 이상하다. 너무 예민한 거 아냐? 예쁜 애들은 예민하다던데. 혹시 공주병인가?"

···

신이시여. 오늘 저년 죽이고 지옥 가겠습니다.

서둘러 가려는데 유소라가 내 팔을 잡았다.

"오빠. 가만히 있어."

"야. 놔라."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여자 싸움에 끼지 마. 그리고 승부는 나지 않았어."

저기. 혹시 토토 걸으셨어요?

"저기 외국인 같은 여자. 눈빛이 아직 살아있어."

틀린 말은 아니다.

김소민은 열불이 터져서 씩씩거리는데, 민다희는 가벼운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영아."

"다희야~ 본드걸이라고 놀리는 게 그렇게 기분 나빴어? 나는 네가 아무 말도 안 해서 몰랐어~"

"좀 닥쳐줄래?"

"뭐?"

"입 좀 닥치라고."

차갑다. 엘사가 왔나? 순간 술집 전체가 얼어붙었다.

"너... 어떻게 말을..."

"예전에는 내가 뭔가를 잘 못한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그냥 네가 미친년이라서 나한테 그런 거더라."

"야! 너 너무해! 아니... 지금 너무 당혹스러워.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심한 말을 해?"

"그래. 내가 나쁜 년 할게. 너도 그냥 미친년한테 물렸다고 생각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누는 대화일테니 잘 들어. 앞으로 살아가면서 나 아는 척하지 말고, 말도 걸지 마. 네가 뒤에서 뭐라 하던 그건 신경 안 써.

대신 내 앞에서는 지랄하지 마. 알았으면 꺼져."

캬! 이모 사이다 한잔요!

차디찬 얼음 여왕의 말에 박은영은 벙어리가 되어서 온몸을 부르르 떤다.

- 앞에 있는 사람이 뭘 잘못했나 봐.

- 보니깐 흉터 가지고 별명을 만들었나 본데.

- 개 쓰레기네.

술집의 사람들도 지저귀는 새처럼 추임새를 넣어준다. 좋구나 좋아~

그때 뒤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저기 말 좀 심하신 거 아니에요? 저 은영이 남자친군데, 듣기 좀 그렇네요."

"동창끼리 이야기니깐 끼어들지 마세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안 끼어듭니까. 그러지 말고 다 같이 술 한잔하면서 푸시죠."

"됐습니다."

"아! 거 너무하네. 그냥 같이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해요!"

측면에서 나온 남자 때문에 여자 전쟁이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너 왜 그 와중에 작업을 거냐? 진격전의 롬멜 장군이 살아있었으면 네놈 모가지 쳤겠다.

"민현찬 출동! 이제 남자 대 남자 싸움이야!"

뒤에서 유소라가 내 등을 밀었다. 그래. 이제 내가 나서서 정리하자.

···

"너 갔다 와서 보자."

"키키키 뭐래. 빨리 가기나 해."

시불 포켓몬이 된 건 기분 탓이겠지? 나는 박은영 남자친구 앞에 섰다.

"저기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 없는데요."

"누구세요?"

"자세한 건 알 필요 없고요. 다희가 불편해하잖아요."

"오빠!"

다희가 내 옆에 착 달라붙는다. 김소민도 달라붙고. 그 모습을 보자 남자의 눈빛에 분노가 이글거린다.

"아. 일행이 있으셨구나. 지금 그쪽 여자친구가 제 여자친구한테 욕했거든요. 좋은 말로 할 때 사과하세요."

"여자친구... 일단 그렇다 치고요. 우리가 사과를 왜 해요? 오늘 낮에는 당신 여자친구가 내... 여자친구에게 먼저 시비 걸었거든요."

"뭐? 와 이 새끼 싸가지없네."

"자기야. 그냥 가자."

"야! 박은영! 가만히 있어. 너 방금 뭐라고 했어?"

"귀 아프게 또 이야기해줘요?"

"참나. 너 몇 살이야?"

"스물두 살인데요."

"나이 많으면 다야? 와. 빡치네. 너 죽을래?"

"자기야 그냥 가재도."

"가만히 있어 봐. 너 이 동네 사람이야? 성원이 형 알아?"

"누군데요?"

"너 성원이 형도 모르는 근본 없는 놈이야? 성한 고등학교 나온 성원이 형 몰라?"

"모르는데요."

"와. 어이가 없네. 한산 중학교 나온 성원이 형을 정말 모른다고?"

"아니 그러니깐 누구냐고요?"

"미치겠네. 아니 어떻게 남현 초등학교 나온 성원이 형을 몰라?"

"제 지인 중에 성원이란 사람 없습니다."

"하! 내가 이런 병신이랑 지금 싸우고 있다니. 야! 너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진짜 몰라?"

모른 데도. 그 사람을 알아야 이 싸움을 끝낼 수 있나 보다. 모른다니 당황해한다.

그런데, 잠시만. 너 방금 병신이라고 했지?

욕은 너부터 했다. 나도 이제 존댓말 할 필요가 없다.

마산 수산시장에서 수많은 아저씨와 싸워 이긴 나의 이모님! 저에게 빙의해 주세요.

"빙다리 핫바지는 무슨. 봉다리 핫바같이 생긴 게 어따대고 병신이라 해?"

내가 한 말이 아니다. 유소라가 어느새 옆에 와서 노려보고 있다.

"뭐? 씨... 누구신데 그러세요?"

"지랄한다. 여자가 말 거니깐 좋다고 헤헤헤 쪼개는 새끼가."

"뭐! 뭐 이런 미친년이 다 있어?"

"너 같은 미친 새끼도 있는데 나 같은 미친년이 있는 게 어때서?"

"말하는 거 봐라. 존나 무식하네."

"무식한 나한테 발리는 네가 더 무식한 거 아니야?"

이모. 잘못 들어가셨어요. 그쪽 아니에요.

유소라는 주둥이 여포가 되어서 박은영 남자친구를 두드려 팼다.

그 정도는 감히 다희가 놀랄 정도였으며, 술집 사람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박은영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남자 팔을 잡고 당겼다.

"자기야 그냥 가재도!"

"가만히 있어 봐. 야! 너 밖으로 나와."

"그래 나가자. 안 그래도 민폐다."

나는 밖으로 나왔고, 뒤따라 소라, 소민, 다희도 나왔다.

"야 돌았냐? 어?"

남자는 가슴으로 말한다고 했나? 정말인지 가슴을 내 앞으로 민다.

이거 아무리 봐도 싸움 각인데, 1대1은 이기지. 지금 나의 피지컬은 장난 아니니깐.

"무슨 일인데 불렀어?"

"시비 붙었어?"

어라? 그런데 갑자기 네 명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너희들 잘 왔다. 와. 이 새끼가 존나 깝쳐."

"뭔데. 야. 너 뭐야? 성원이 형 알아?"

...그놈의 성원이 형 모른 데도!

아차차 이럴 때가 아니다. 분위기가 심상찮다. 5:1이라니. 죽도록 맞고 내일 아침 뉴스에 나올 각인데.

김소민 다희 심지어 소라마저도 얼굴에 걱정이 가득하다.

호구신님.

- 응 싸움기술 사라. 위급하니깐 일회용으로 수수료 없이 10크리스탈만 받을게.

알겠습니다. 싸움기술 구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싸워본 적은 없는데. 어라? 신기하게 무섭지가 않다.

싸움 실력 때문인가?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일단 웃통을 벗자.

손으로 상의 끝을 잡는 순간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성원이 잘 있냐?"

성원 씨. 어디에 계신지 꼭 보고 싶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익숙한 목소리인데. 고개를 돌리자 한창민 형이 서 있다.

"창민 형님 안녕하십니까!"

네 사람이 90도로 고개를 숙이고, 가장 문제인 박은영 남자친구는 당황해한다.

"너희들 여기서 뭐해?"

"아. 그게 시비 붙었다고 해서 왔습니다."

"여기? 현찬 선배랑?"

"선배라뇨? 아! 형님 학교 들어가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이분이?"

"그래. 학교에서 내 뒤봐주는 선배님이다. 어서 인사해."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다섯 명의 남자들이 나에게 90도로 인사한다.

···

이게 뭘까? 여기는 지방의 작은 도시니깐 청년회 그런 건가?

한창민은 입에 담배를 하나 물면서 남자들 앞에 섰다.

"너희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이제 21살 아니냐? 언제까지 사고 치고 살 건데?"

"죄송합니다. 형님."

"그리고 내가 대충 봤는데, 이거 너희들이 왜 끼어드냐? 고등학교 동창인 여자애들 싸움인데."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형님."

"두 사람 마지막 마무리하고 끝내자. 선배님 괜찮으시죠?"

한창민이 나를 보고, 나는 다희를 봤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민다희. 앞으로 나서더니 박은영 앞에 섰다.

"은영아."

"다... 다희야 미안. 그게 아니라."

"사과할 필요 없어. 그냥 하나만 알아줘."

"뭐."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누나 나이스 샷!

박은영은 똥 씹은 표정이 된 채 사람들과 돌아갔다.

여튼 이제 모든 게 끝났네. 속이 시원하다!

싸움이 끝나고 우리는 헤어졌다. 지금은 나와 다희만 같이 걷고 있다.

가는 방향에 둘밖에 남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지 뭐.

그나저나 벌써 새벽 두 시네. 이제 집에 들어가서 자자.

걷다 보니 우리 집 앞이다. 작별 인사를 하려는데, 다희가 나를 물끄러미 봤다.

"우리 맥주 한잔 더 안 할래요?"

"지금? 이 시간에? 어디서?"

"오빠 집에서요?"

응? 우리 집에서?

"뭐라고?"

"아까 여자친구라면서요. 저는 연애는 안 해봤지만, 여자친구랑 집에서 맥주 한잔하고 그러지 않아요?"

···

그건 분위기상 말한 거고.

"훗훗. 재밌다~ 농담이에요. 그냥 뭔가 오늘 홀가분한 기분에 맥주 한잔 더 먹고 싶네요."

"그럼 우리 집에서 맥주 한잔 더 먹자. 그런데 너 남자 집에 두 시에 들어가는 거 안 무서워?"

"괜찮아요. 오빠는 착한 사람이잖아요."

···

나는 분명히 말했다.

나 착한 사람 아니라고. 그러니 착한 사람으로 오해하지 말라고.

< 운동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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