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 >
"두 사람 어쩐 일이에요?"
다희가 자전거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더니, 퉁명스럽게 나와 세연이를 바라본다.
그나저나 너 혹시 선수니? 딱 달라붙는 츄리닝을 입었는데, 딴딴한 허벅지만 눈에 들어오네.
"우리 자전거 사러 왔어. 현찬 오빠랑 자전거 타려고. 너는?"
"나는 자전거 고장 나서."
"그렇구나. 아 오빠! 잠시만요 왜 밀어요? 그리고 왜 뒤에 숨어요!"
구몬 수학 선생님 오셨잖아. 도망가야지.
- 그러게 미리 글 좀 쓰지 그랬냐?
호구신님. 제가 글 써본 적이 있어야지 쓰죠. 반성문 말고는 써본 적 없어요. 게다가 다희가 글 안 썼다고 할 때마다 차가운 얼굴로 나를 보잖아요. 말도 차갑게 하고. 무서워서 못 쓰겠어요.
지금 저 눈빛! 저 눈빛이다! 다희는 세연이 뒤에 숨은 나를 차갑게 바라봤다.
"오빠 뭐해요?"
"어? 아. 다희야 여기 자전거 좀 본다고. 하하하."
"혹시?"
"미안! 진짜 미안해! 오늘까지 꼭 글 적어서 보여줄게!"
제발 그만! 나를 놓아줘! 앞으로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자.
나는 양손을 모은 채 다희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제 시베리아 바람이 불어오겠지?
"아... 오빠 미안해요."
응? 바람은 바람인데, 봄바람이다.
"다희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스트레스를 준거 같네요. 그럼 더 안 써지는데. 미안해요."
찰랑. 다희는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나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야. 내가 약속 못 지킨 거지 뭐."
"아니에요. 오빠."
머쓱하네.
이세연은 우리 둘을 보더니 가운데 툭 들어 왔다.
"두 사람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예요? 둘이 싸웠어요?"
싸웠냐고?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저기 학생들. 미안한데, 이야기는 밖에서 해주면 안 될까? 나 자전거 고쳐야 해."
"아. 사장님. 알겠습니다."
일단 나가자. 우리는 다희의 자전거를 맡겨 놓고 밖으로 나왔다.
*
근처 공원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뭐 처음부터 다 이야기했다. 사실은 글을 잘 못 적는다는 거부터, 아마도 내 글은 다음 생에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사실 숨길 것도 없는 이야기잖아? 모든 걸 말해주자 이세연이 깔깔 웃는다.
"아하하! 뭐야 오빠! 와! 다희한테 꼼짝 못 하네."
"그런 거 아니다. 내가 한다고 해놓고 안 했으니 미안해서 그러지."
"난 또 뭐라고. 둘이 돈 때문에 싸웠는지 알았잖아요."
돈은 전생이고.
하~ 여튼 모든 걸 털어놓으니 편하구나.
민다희는 미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오빠. 미안해요. 그렇게 스트레스 많이 받는 줄 몰랐어요."
"아니야. 내 잘못이지. 너 인정한다. 진짜 대단하다."
"훗. 그래도 알아봐 줘서 고마워요. 글은 혹시라도 쓰면 보여주세요. 잊고 있을게요."
이렇게 일단락되는구나. 아 급 행복해졌어. 연체된 만화책을 반납 통에 넣은 기분이다.
홀가분하게 있는데, 다희가 우리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두 사람 갑자기 무슨 자전거예요?"
"우리? 이세연한테 물어봐."
"운동하려고 샀어. 너무 집에만 있는 거 같아서. 다희야 너는?"
"나는 취미가 자전거 타기여서."
"정말? 그럼 여기 근처에 자전거 탈 만한 곳 알고 있겠다."
"음. 개천도 괜찮고, 조금 멀리 갈 거면 종합 운동장도 괜찮아."
"거기 멀어? 어떻게 가야 해?"
갑자기 먼 곳을 보는 민다희. 손을 휙휙 저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가다가 하천에서 요렇게 올라온 후 도랑에서 이렇게 훽 꺾어서 가면 돼."
너 앞으로 길 안내는 하지 마라. 네 손짓 따라가다가는 요단강 가겠다.
다희는 우리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다시 설명해줄까?"
"어? 아니. 그러지 말고 너 자전거 언제 탈 거야? 지금 탈 거면 같이 타자."
"지금? 응. 현찬 오빠 괜찮죠?"
어라. 이렇게 자전거 멤버가 추가되는 건가?
"나야 괜찮지. 그런데 왜 나에게 물어봐?"
"오빠는 나 불편해하잖아요."
"아니. 글 때문에 그랬다는 거지. 너 뒤끝 있다."
"방금 농담한 거예요."
네가 웬일이래. 농담도 다 하고. 다음부터는 좀 웃으면서 해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전거를 잡았다. 보자, 지금 시각은 오후 네 시. 덥지 않고 딱 좋네. 날씨도 5월 중순이니 따뜻하고, 바람은 신선하다.
자전거를 타기에 최고의 날씨다.
"자. 그럼 오늘이 우리 자전거 동호회 첫 출범이네. 오늘 딱 한 시간만 타고 오자."
"참나. 오빠가 더 신난 거 같은데요?"
"그렇네요."
원래 번개가 재밌잖아.
우리 셋은 자전거 가게에서 다희 자전거를 받은 후 출발했다.
*
사라락~~
자전거로 시골 논길을 달리는데,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따스한 햇볕이 등을 포근하게 한다.
아 좋구나~ 자전거 타는 게 이렇게 재밌는 거였어? 괜히 안 탄다고 했나 보다. 학교 근처에 산지가 별로 없어서 힘들지도 않다.
가장 좋은 것은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이다. 이세연과 민다희는 나란히 붙어서 가고, 나는 뒤에서 따라가는데, 안장에 앉은 두 사람의 엉덩이가 실룩샐룩한다.
이건 어쩔 수 없이 보는 거다. 경운기가 박아도 오빠가 다치라면서 뒤에 세운 쟤네 잘못이다.
"오빠 잘 따라오고 있어요?"
"응. 걱정하지 말고 가~"
"쓰읍. 왜 이리 목소리가 기분 좋아 보이지?"
이세연은 앞만 보며 말했다.
그에 비해 다희는 자주 탔는지 고개를 슬쩍 돌려서 나를 봤다.
"이제 다 왔어요."
"빨리 왔네. 어 보인다!"
논길이 끝나는 부분에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경기장이 보인다.
축구장같이 커다란 경기장은 아니다. 농구나 배구 정도 할 수 있는 경기장인데, 주변이 잘 꾸며져 있다.
우리는 경기장에 들어와서 자판기 앞에 자전거를 세웠고, 세연이는 바람막이 잠바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자판기에 동전을 넣었다.
"아! 개운해. 오래간만에 운동하니깐 좋다. 오빠 뭐 먹을래요?"
"나는 이프로 부족할 때 뽑아줘."
"나도 그거 먹어야겠다. 다희 너는?"
"나도 같은 거로 할게."
캉! 캉! 캉!
우리는 떨어진 음료수를 들고 벤치에 앉았다.
그나저나 여기 시설 엄청 좋네. 경기장 안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좋다. 공원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고, 자전거 도로도 있다.
경기장을 쭉 훑어보는데, 커다란 버스가 한 데 들어왔다.
"오늘 시합 있나 봐. 다희야 여기 뭐 하는 곳이야?"
"배구 경기장이에요."
"아! 너 배구 선수 했다고 했지. 혹시 여기서 뛴 적 있어?"
"다희 너 배구 선수 했었어?"
"응. 예전에 잠시."
"멋있다. 어땠어?"
"힘들기만 했어."
두 사람은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너희 둘 친해지는 게 보기는 좋은데, 나 좀 따돌리지 말아 줄래?
나도 어서 대화에 끼어들자.
"너 그러면 저기 버스에 아는 사람도 있겠다."
"없어요. 그만둔 지도 오래되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고등학교 일학년 때, 잠시 경기 뛴 게 다예요."
그래? 아쉽네. 운동선수 아는 사람 있으면 좋은데.
그나저나 화장실은 어디 있을까? 마렵다.
화장실을 찾기 위해서 경기장을 훑어보는데, 여자 한 명이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느낌이 관계자 같아 보이는데, 왜 오지? 나 담배도 안 피웠는데?
조금 있자 다희 앞에 섰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모르는 사람이다. 고개를 숙여서 다희를 보더니 조심히 말을 걸었다.
"저. 혹시 다희 아니야?"
"어? 안녕."
"맞네! 다희 맞네! 반가워!"
갑자기 동창회가 펼쳐졌다.
예전에 같이 뛴 선수인가? 그런 것 치고는 키가 조금 작은데.
발랄해 보이는 여자는 다희에게 반갑게 달라붙는데, 다희는 무뚝뚝하게 받는다.
야. 그래도 동창이면 반가운 척은 좀 해라.
"어떻게 지냈어?"
"그냥."
"옆에 사람들은 누구야? 두 사람 모델이야?"
여자애가 우리를 바라본다.
아. 그냥 긴 츄리닝 입은 다희에 비해 우리 둘은 꽃단장을 했지. 이세연도 여자인지, 운동 전에 운동복부터 비싼 거로 샀다. '누가 보면 스포츠웨어 모델인 줄 알겠다'고 장난삼아 말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여튼 다희 친군가 보네. 인사나 하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저는 PIH 엔터 소속입니다. 요즘은 조금 쉬고 있죠. 다희 동창인가 봐요?"
"어머 어머. 정말 모델이에요?
"그럼요. 활발히 활동은 안 하지만, 화보집도 낸 적 있어요. 사실, 다희가 너무 예뻐서 모델 하자고 우리가 쫓아왔어요."
이세연이 내 말에 고개를 절래절래 젖는다.
야! 그냥 다희 기 세워주려는 거야.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구먼. PIH엔터 주주니깐 소속 맞고, 싸이월드에 피팅모델 사진 올렸으니 화보집도 낸 거 맞다.
다희 동창은 신기한지 나를 빤히 본다.
"신기하다~ 그런데 다희가 모델을 한다고요?"
"지금 설득 중입니다."
"그래요? 흐음~ 다희야 너는 키도 크고 예뻐서 모델하면 인기 좋을 텐데. 아쉽겠다."
어라? 말에 뼈가 있네? 아쉽겠다가 왜 나와?
칭찬 뒤에 나오는 아쉽겠다는 보통 상대방을 놀릴 때 쓰는 말인데. 싸늘하다.
조금 더 들어보려는데, 다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빠 여기 한 바퀴 돌아요."
그래. 굳이 들어서 뭐 하겠어? 골치 아픈 일에는 끼지 말자.
"그러자. 이세연 대리. 인제 그만 쉬죠."
"킥킥. 참나. 알겠어요. 현찬 과장님."
우리 셋은 다희 동창을 놔두고 자전거 길을 달렸다.
뭔가 잊은 거 같은데. 아차차. 화장실!
막대기가 오래간만에 대용량을 싸야만 한다고 난리다. 지금 당장 가지 않으면 그대로 수문을 열 기세다.
"애들아.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네 오빠. 우리 돌고 있을게요. 알아서 찾아와요."
나는 무리에서 이탈했다. 화장실이 어딨을까? 경기장에 있겠지?
경기장 앞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쪽 귀퉁이에 있는 화장실을 갔다가 나오는데, 아까 봤던 다희 동창과 마주쳤다.
나를 보더니 환한 얼굴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네. 안녕하세요. 여기서 일하시나 봐요."
"네. 여기 스탭이예요. 저기, 혹시 연락처 알 수 있을까요?"
"아... 저희는 요즘 모델 안 뽑아서요."
"아니요. 그쪽에 관심 있어서요."
나한테 관심 있다고? 이놈의 인기는. 이제 이것도 익숙하네.
"죄송합니다. 제가 여자친구가 있어서요."
"설마? 다희가 여자친구?"
"하. 아닙니다."
"그럼 옆에 계신 분이?"
뭘 그렇게 세세하게 물어봐? 어쩔 수 없네. 대충 넘기자.
"뭐 네에."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다희 모델 한다는 거 정말이에요?"
"네 정말입니다."
내가 사진 찍고 모델 하니깐 거짓말은 아니지.
다희 동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본다.
"흐음~ 그럴 리가 없는데."
"네. 다희가 사진찍기 좀 싫어하기는 하죠."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본드걸인 다희는 모델 할 수 없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본드걸은 뭐고 모델을 왜 못 한다는 하지?
핀란드 사람이어서 제임스 본드 할 때 본드걸인가? 아니면 설마 본드를 마신 건가?
잘은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의미인 건 확실해 보인다.
"저기? 무슨 말이죠?"
"아! 하나도 모르시는구나. 헤헤헤. 밥 사주시면 제가 말씀드릴게요."
- 현찬아.
네. 호구신님 알고 있습니다.
민다희 동창, 영화 도둑들의 전지현 대사처럼 어마 무시무시 한 쌍년의 느낌이 난다.
파라오 김혜진 선배도, 섹녀 유소라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한 마디로 기분을 더럽게 한다.
"밥 먹어서 뭐 하겠습니까. 본드걸이라고요? 그냥 다희한테 듣겠습니다."
"다희 절대 말 안 해줄걸요?"
"그럼 평생 못 듣는 거죠. 그럼 이만 가볼게요."
나는 썩은 얼굴을 뒤로하고 경기장을 나왔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서 달리자 두 사람이 보인다. 나는 뒤에 따라붙어서 외쳤다.
"세연아! 이제 집에 가자!"
"벌써요?"
"응. 운동 충분히 했잖아."
"조금 더 타고 싶은데."
"그럼 다른 곳에 가자. 아까 화장실 가다가 이야기 들었는데, 조금 있으면 경기 시작해서 사람들 몰려온대."
굳이 동창 만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지.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다희는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나에게 말했다.
"네. 그래요. 집에 가는 길에 삥 돌아가는 길 알아요."
"너 여기 자주 와?"
"옛날에 왔거든요. 거기 새로운 도로라서 보도도 넓고 사람도 거의 없어서 좋아요."
"그럼. 거기로 가자! 다들 집으로 고!"
"왜 저렇게 신났대? 다희야 이유 알아?"
"아니. 일부러 신나는 척하는 거 같은데."
···
눈치 빠르기는. 여기 계속 있으려니 다희 동창의 불쾌한 얼굴이 마음에 걸린다.
오죽하면 스스로 텐션을 높여도 밝아 지지가 않네.
나눈 두 사람을 재촉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
아... 이제는 힘들다.
돌아가는 길은 저승길이었다. 정말 한참을 돌아서 왔다.
이세연은 이미 녹초가 되었다. 아파트 앞에 도착하자 다리를 절뚝거리며 한마디를 남기고 들어갔다.
"오빠. 나 오늘 하루 동안은 찾지 마요. 죽을 거 같아."
이제 집 순서상 내 차례다. 다희와 나는 또 자전거를 굴렸고 드디어 우리 집 앞에 도착했다.
"다희야. 너희 집 어딘데? 데려다줄까?"
"괜찮아요."
고마워. 나도 예의상 한 말이야. 그런데 너 왜 안가니?
"잘 가. 내일 보자."
"오빠."
"왜?"
"오빠 집에서 맥주 한잔해도 돼요?"
"그럼. 당연하지. 들어와. 우리 집에 옷도 많아. 집에서 씻어도 돼."
"아. 그건 아니에요."
아차차. 우리 아직 거리가 많이 멀지.
"씻고 저녁 8시쯤에 갈게요."
"그래. 그럼 조금 이따가 보자."
나는 우선 혼자 빌라에 들어왔다.
*
카 177cm의 기다란 다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혹시나 짧은 츄리닝을 입고 오지 않을까 상상했는데, 어림없지! 기다란 청바지를 입고 있다.
너 운동할 때도 긴 츄리닝 입더니. 안 덥냐?
"어서 들어와. 맥주 사 왔어? 집에 많은데."
"네. 뭐라도 사 오는 게 예의니깐요."
다희는 기다란 발걸음을 움직이며 거실로 들어왔다.
"일단 소파에 앉아있어. 차려올게."
"네."
보통 남의 집에 오면 구경하고 그러지 않나? 다희는 꼿꼿이 허리를 세운 채, 한쪽 벽만 바라보고 있다.
불편하네. 어서 빨리 술이나 먹자.
나는 안줏거리를 챙겨서 거실에 깔았고, 다희는 거실에 앉았다.
딸깍. 딸깍.
"자. 맛있게 먹어."
"따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온다고 힘들었지?"
"택시 탔어요."
"오늘 자전거 타니깐 재밌더라. 다음에 또 타자."
"네."
"평소에는 몇 시간씩 자전거 타?"
"두 시간 정도요?"
"안 힘들어?"
"익숙해요."
미안. 나 그냥 글 써올게.
젠장 글 이야기를 안 하니깐 고비 사막처럼 대화가 건조하다.
다음 이야기는 뭘 꺼낼까 고민하는데, 다희가 먼저 나에게 입을 열었다.
"오빠. 오늘 저 동창 만났죠?"
"같이 봤잖아."
"말고 화장실 갔을 때요."
"응."
"무슨 말 했어요?"
"내 번호 물어보길래 안 가르쳐 줬어. 그리고 뭐 네가 본드걸이라서 모델을 못 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요? 왜 본드걸인지 들었어요?"
"참나. 그 이야기 듣고 싶으면 밥 사달란다. 어이가 없어서 됐다고 했어. 뭐 본드걸이면 어떻고 본드를 먹으면 어때. 난 어차피 그런 거 신경 안 써."
"하..."
민다희가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쉰다. 너 설마 진짜 본드를...
궁금하다. 직접 물어보자.
"다희야. 괜찮으면 왜 본드걸인지 물어봐도 될까?"
"네. 말해줄게요. 저도 오해 산 채로 있는 건 싫네요. 혹시 반바지 있어요?"
"잠시만."
반비지를 가져다주자 다희가 안방에서 갈아입고 나왔다.
오! 매끈한 다희의 다리! 운동해서인지 정말로 딴딴해 보인다. 툭 찌르면 내 손가락이 튕겨 나올 거 같다.
꿀꺽.
내 눈에서 한 뼘 거리까지 다희가 바짝 붙어서 섰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이거 때문이에요."
아차차. 정신 차리자.
다희는 손으로 허벅지 안쪽을 가리켰다.
거기 뭐가 있길래? 다희의 손끝을 따라갔는데, 손바닥 반만 한 화상 자국이 있다.
"어? 너 다쳤어?"
"네. 이거 때문에 본드걸이라고 불렸어요."
화상 자국이랑 본드가 왜?
....
시발!
"야! 그 개 같은 년 전화번호 불러. 미친년 아냐?"
"오빠 진정해요."
"와! 너는 왜 당하고만 있어? 아. 미치겠네. 와 이렇게 열 받은 거 처음이다."
분노가 조절이 안 된다.
본드걸. 시발! burned girl로 말장난 친 거잖아.
당장 경기장으로 달려가려는데, 다희가 말렸다.
"오빠. 일단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내 팔을 잡고 간절한 눈으로 본다.
하... 빡치지만 일단 다희 말하는 대로 따라주자.
< 운동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