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먹지 못했던 여사친들-148화 (148/295)

< 축제 >

세연, 소민, 다희와 커피숍에 왔다.

올모~~ 패러다이스~~ 아침보다 더 눈부신~

나는 지금부터 프린스 송이다. 위기에 빠진 금잔디는 누구냐?

내 앞에 초조하게 앉아 있는 김소민. 너냐?

그 옆에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민다희. 너냐?

아니면 어이없는 눈으로 나를 보는 이세연...

아차차. 이럴 때가 아니구나.

이세연에게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김소민을 따라다니는 남자가 있는데, 가만히 있는 나를 썸남으로 알고 시비를 걸었다. 뭐 대충 이 정도?

- 시비는 네가 먼저 건 거 아닐까?

호구신님! 그게 중요합니까? 달리는 말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몰라요?

일이 벌어진 거 앞으로 달려 나갈 수밖에 없다. 과연 세연이는 뭐라고 대답할까?

"아씨. 오빠 일인데 해야죠."

"정말?"

"네. 재밌을 거 같기도 해요."

"너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이런 거 싫어하잖아."

"그러게요. 공부만 해서 그런가? 대신 오빠도 하세요. 혼자 하면 재미없잖아요. 오빠 안 하면 나도 안 할 거예요."

원플러스 원인가? 그래. 어차피 묶음 상품 인생인데, 까짓거 나도 하자.

"그런데 나는 뭐 하지?"

"나 고양이 옷 말고 차라리 한복 할래요. 오빠도 같이 입어요."

흐음. 하긴. 고양이 옷은 이런 사진 찍기에는 너무 야한 옷이다.

안 친할 때야 멋도 모르고 시켰지만, 지금은 아니지.

사실 나도 마음에 걸려서 의상 바꾸자고 생각했는데, 잘됐네!

"이세연. 콜! 웬일로 머리 썼대?"

"고양이 지겨워서 그래요. 선미 언니도 부르죠?"

"이미 전화해 놨어. 더 부를 사람 없나?"

"엘레나는 어때요? 외국인이어서 한복 입으면 눈에 확 띌 거예요. 나도 관심이 분산되어서 좋고요."

"흐음···그럼 엘레나도 부르자. 화장은 어떻게 하지?"

"그건 선미 언니 오면 이야기해요. 나는 화장은 잘못하거든요."

나와 이세연은 행사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참 집중하는데, 김소민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

"저기. 두 사람 너무 열정적인 거 아니에요?"

"소민아. 현찬 오빠 불붙으면 어쩔 수 없어. 과대표 정신이 아직 남아 있나 봐. 어휴 나는 저기에 낚여서 국토 대장정까지 갔다 왔어."

"너 설마 후회하는 거냐?"

"조금? 농담이고 재밌었으니 괜찮아요. 이것도 잘하면 재밌겠죠. 추억에도 남고. 아씨! 나도 오빠한테 세뇌당했나 봐."

그렇네? 너도 인싸 맛을 봐 버렸구나.

이세연은 계속 김소민에게 나를 자랑했다.

"나도 처음에는 귀찮았는데, 한번 해보니 재밌더라. 그래서 이렇게 따라다니고 있는 거야. 우리 처음 같이 한 게 야구장이었죠?"

"축제가 먼저 아니었나? 여튼 김소민, 민다희 너희 둘도 큰일 났다."

"왜요?"

"나랑 한 번 놀면 재밌어서 계속 붙어 다니게 되거든. 경영 과에는 전설이 있어. 민현찬과 한 번 논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논 사람은 없어."

내 말에 김소민과 민다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번 기회에 두 사람에게 한량이 아닌, 과대 민현찬의 모습을 한번 보여줘야겠다.

너희도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늪에 들어와 봐라.

"아! 아악!"

"미친놈아! 또 뭘 하려는 거야!"

헤어나온 사람도 있구나.

이선미는 커피숍에 들어오자마자 개 잡듯이 나를 팬다.

그 뒤에서는 이혜민이 깔깔 웃고 있다.

"아하하. 야! 선미가 너 전화 받자마자 몽둥이부터 찾는 거 내가 말렸어."

"야! 이왕 말리는 거 지금도 좀 말려주지?"

"말리긴 뭘 말려. 재밌잖아."

이선미의 폭행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김소민과 민다희는 보더니 놀랬다. 마냥 착한 언니로 보였지? 이세연도 쪼는 게 이선미야.

"뭐? 이번에는 한복 입고 사진을 찍어준다고?"

"선미야 잠시만. 그만 때리고 내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

"그래 말 해봐."

나는 선미에게 우리의 계획을 말했는데, 또 나를 팬다.

"그냥 맞자!"

"아! 아! 너는 안 입어도 돼!"

드디어 폭행이 멈췄다. 선미는 내 옆에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 진작 말하지 그랬어?"

"말할 시간은 줬고?"

"텔레파시라도 보내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나는 모두에게 다시 한번 설명을 했다.

이세연, 나, 엘레나는 모델, 이선미는 화장 및 보조 역할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이세연, 나, 엘레나가 모델이고 고객님이 오시면 민다희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폴라로이드 사진이 나오면, 고객님이 폴라로이드 필름을 들고, 김소민이 디카로 인증샷 찍으면 끝이다.

설명이 끝나자 이혜민이 소리쳤다.

"나도! 나도 할래!"

"너는 쓸모가 없어."

"내가 선미보다 쓸모 있을걸?"

"뭐 잘하는데?"

"나 연영과잖아. 우리 과 연극 분장 많이 해서 화장 잘해."

네가 도움이 되는 날도 있어? 그게 더 괜찮겠네.

좋다. 시나리오는 다 썼고 이제 마지막 서양 배우만 오면 된다.

조금 있자 커피숍 문이 열리더니 엘레나가 들어왔다.

"현찬. 무슨 일이야? 어? 현찬 여자친구 다 있다."

···여자친구가 아니라 그냥 친구야.

잠시만! 그러고 보니, 이혜민, 이선미, 이세연, 엘레나, 김소민, 민다희.

이건!

섹벤져스 어셈블!

"아!!!!!!!!!!!"

호구신님 드립도 못 쳐요?

이혜민이 놀란 눈으로 감전된 나를 쳐다봤다.

"선미야 쟤 왜 저래?"

"가끔 저래. 지병이 있나 봐."

"지병? 병원 가봤대?"

"지랄병."

"아..."

매정한 것들. 그나마 동생들은 걱정되는 얼굴로 보네.

그나저나 엘레나한테 또 설명해줘야 해? 별수 없지.

나는 엘레나에게 계획을 다시 말했다.

"재밌겠다! 나 한복 입고 싶었어!"

아이처럼 좋아하네. 서둘러 하자고 난리다.

축제 마지막 날. 우리는 아침부터 모였다.

8시에 내 자취방에 모두가 모였고, 이혜민은 서둘러 우리를 도화지 삼아 그렸는데, 제법 괜찮게 했다.

준비를 다 한 우리는 학교로 이동했다. 누가 보면 결혼식인 줄 알겠네.

지금 시각은 11시.

나, 세연, 엘레나는 긴장한 채 나무 뒤에 숨어 있다.

"오빠. 막상 하려니깐 너무 떨려요! 아 쪽팔려!"

"나도! 엘레나는 괜찮아?"

"응. 나는 빨리 나가고 싶어."

그래? 나는 이세연과 눈으로 말했다.

엘레나를 먼저 출동시키자. 너 우리의 선봉대가 돼라!

남매 사기단의 탄생인가? 그때 뒤에서 누군가 우릴 밀었다.

망할 이선미다.

"아! 야 지금 밀면 어떡해?"

"빨리 나가! 너희 구경하고 싶으니까. 저기 밖에서 소민이랑 다희도 너희 기다리고 있잖아."

그렇긴 하지. 김소민과 민다희는 이미 책상 하나 깔고 길가에 서 있다.

두 사람에게 가자 김소민이 씩 웃는다.

"다들 너무 멋있고 예쁘네요."

그래, 내가 생각해도 우리 비쥬얼이 장난 아니다.

분홍색 한복을 입은 이세연. 춘향이가 살아 돌아온 거 같다.

하얀 한복을 입은 엘레나는 광개토대왕님이 살아 계셨다면 후손들에게 쌍욕 했을 거다. 블라디보스톡만 있었어도 명절 때 엘레나 같은 사람들이 돌아다녔겠지?

두 사람을 보는데 이세연이 내 팔을 툭 친다.

"오빠 오늘 멋있는데요?"

"왜 반할 거 같나?"

"킥킥. 이건 인정할게요. 뭔가 성균관에서 나온 도련님 같아요."

"그럼 수청 좀 들래?"

"오늘이라면 들 거 같은데요?"

뭐라고! 네 이년! 지금 당장!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아니다.

좋아! 이제 시작해보자.

본격적으로 길가에서 '사진 찍어요 2000원' 피켓을 들고 서 있었는데, 사람들이 우리를 빤히 보고만 갔다.

보기만 하지 말고 사진 좀 찍어요. 2000원에 한 장입니다. 디스 한 갑 가격밖에 안 해요!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끼리 재밌었다 하고 끝나겠다. 어떻게든 개시를 해야 하는데,

그때 파일로 얼굴을 가린 익숙한 사람이 보인다. 내 인생에 이경영 선생님 같은 분이지. 요즘 안 등장한다 싶었다.

"인봉이 형!"

"......"

"봉이 봉이 인봉이 형!"

"이 미친놈아!"

씩씩거리며 나에게 다가온다. 옆에 반니 형도 있네.

"이번에는 또 뭐하냐?"

"형! 사진 찍어요!"

"갑자기 무슨 사진?"

"단돈 2000원에 기념사진 모시겠습니다!"

"너랑?"

"아니요. 저기 계신 분들이랑요."

나는 세연이랑 엘레나를 손으로 가리켰는데, 왜 벌써 지갑이 열려요?

"진작 말하지! 난 너랑 사진 찍는 건 줄 알았거든."

"원하신다면 나도 찍어 드릴게요."

"응 꺼져. 어디에 돈 내면 돼?"

김소민을 가리키자, 인봉이 형은 2000원을 내고 이세연과 엘레나 옆에 섰다.

아차차! 하나 생각 못 한 게 있다. 두 사람은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지.

서둘러 안내를 해주러 가는데 웬걸? 이세연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가운데 서시면 돼요."

"아... 네..."

"다희야! 우리 사진 찍어줘."

"응."

이세연 인봉이 형 엘레나 순서로 서자 민다희가 사진을 찍는다.

캬! 이거 환상의 조합이네. 인봉이 형은 넋이 나가서 입만 헤 벌리고 있다.

그나저나 세연이에게 서비스 마인드가 있다고? 팔척 귀신이 아궁이 기어 다닐 일이다. 너도 많이 변했구나.

인봉이 형은 폴라로이드 필름을 보더니 좋아한다. 그 모습을 김소민이 마지막으로 허락받고 디카로 찍었다.

"형 마음에 들어요?"

"어. 마음에 든다. 너 재밌는 거 많이 하네."

"그럼 친구들 좀 불러 주세요."

"안 그래도 되겠는데?"

"네? 아..."

이미 반니형이 김소민한테 돈 내고 있다. 그 뒤에는 몇몇 사람들이 하고 싶어서 고개를 갸웃갸웃한다.

"그렇네요."

"그런데 너는 안 찍냐?"

"아. 몰라요."

젠장! 내 인기가 이것밖에 안 되는 건가? 나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이 더운 날 한복을 왜 입고 있는 걸까?

그때 누군가 내 두루마기를 잡아당겼는데, 어머나! 여고생들이다!

"오빠! 우리도 사진 찍어도 돼요?"

"그럼. 한 장에 2천 원이야."

"너무 비싸요."

그래? 천 원은 내가 내줄게.

"그럼 천 원만 내."

"정말요! 애들아!"

다단계처럼 친구들을 데리고 온다. 나는 모델이 되어 사진을 찍어줬다.

때로는 한 명이 때로는 두, 세 명씩 찍어줬는데, 캬! 정말 시끄럽다.

마지막으로 찍은 학생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더니 웃으면서 나에게 외쳤다.

"오빠! 너무 잘생겼어요!"

"아하하. 친구들 더 데리고 와~"

"네!"

귀엽네. 나는 한동안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물끄러미 봤다.

- 전자 발찌가 어딨더라.

호구신님 이상한 생각 좀 하지 마세요. 저 쓰레기 아닙니다.

교복이란 신기하구나. 어른이 입으면 야해지는데, 아이들이 입으니깐 귀엽기만 하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길 건너편에 유소라가 교복 입고 있는데, 너 무슨 AV 배우니? 색기가 철철 넘친다. 진짜 유소라는 육덕 대마왕이구나.

유소라는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데, 가슴도 흔들린다.

꿀꺽.

그때 갑자기 이세연이 나타나 내 귀를 잡아당겼다.

"아!!!!!!!"

"입 째진 거 봐. 어떻게 고등학생 보고 좋아해요?"

"오빠 쓰레기 아니다. 아까 걔들은 귀여워서고, 쟤는 우리 과 후배잖아."

"그래요? 기억 안 나네. 그런데 쟤 나한테 불만 있어요? 눈 마주치니깐 갑자기 정색하고 가네."

어라? 정말이네? 유소라는 그냥 훽 가버렸다.

"몰라. 박호빈 전화 왔겠지. 다시 사진이나 찍자. 저기 공대생들 몰려 내려온다. 수업 마쳤나 보다."

점심시간이 되자 대학생들이 위화도 회군한 거처럼 몰려온다.

100장? 금방 찍겠다.

해가 저물어 가고,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많아진다.

그럼 뭐해, 세연이랑 엘레나는 갔는데. 두 사람은 여섯 시 정도까지만 하고 집으로 갔다.

뒤풀이는 동아리에 가야 해서 다음에 하기로 했고, 지금은 나 혼자인데 파리 날린다.

"소민아 우리 몇 장 정도 찍었어?"

"정확하게 92장요. 어떡해요?"

"뭘?"

"100장 채워야죠."

"채우는 건 쉬워. 과 주막에 가면 돼."

"그렇구나..."

그런데 김소민 너 왜 이리 풀 죽어 있니? 사람들 다 같이 있을 때는 괜찮더니, 지금은 나라 잃은 얼굴이다.

민다희는 그런 김소민을 물끄러미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오빠. 우리 맥주 한잔할까요?"

"지금?"

"네. 오늘 고생했잖아요. 조촐하게 한잔해요. 두 사람 여기 있어요. 제가 사올게요."

민다희는 캔맥주 몇 개를 사 들고 왔고, 우리는 근처 잔디밭에 가서 퍼질러 앉았다.

맥주캔을 하나 따자, 김소민은 나를 보더니 웃는다.

"아하하. 오빠 지금 너무 웃겨요. 혼자 한복 입고 뭐 하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뭐 그래도 재미는 있었잖아."

"그건 그래요. 하... 현찬 오빠 미안해요."

"뭐가?"

딸깍.

김소민은 말없이 맥주캔을 땄다.

학교는 축제 때문에 시끌벅적 하지만, 잔디밭에 앉은 우리 세 명은 고요에 휘감겼다.

"나 때문에 오늘 고생하셨잖아요."

"그걸 알면 네가 동준 선배한테 똑 부러지게 말해."

내가 한 말 아닌데? 민다희가 김소민에게 말했다.

"현찬 오빠가 싸운다고 해결되겠어? 네가 말해야지."

"다희 너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잖아. 나는 동준 오빠한테 말했다가 잘못되면 동아리에서 정말 혼자가 돼. 찬혁 오빠도 나랑 안 놀아줄걸? 얼마 전에 봤잖아. 모두 다 동준 선배 따라다니는 거."

김소민은 고개를 푹 숙이고, 민다희는 한숨을 쉰다.

그 모습을 보자 안타깝다. 너희들 뭐하냐? 고작 동아리야. 누가 보면 직장이 걸려 있는 줄 알겠어.

잠시만... 아! 뭐지? 마법에 걸렸나? 갑자기 모든 게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보인다.

그리고 머리부터 등 줄기까지 소름이 돋았다.

나는 애들의 고민을 잘못 보고 있었구나. 문제의 본질은 서동준이 아니라 김소민이야!

말 안 해도 착착 알아듣기에 센스가 있는 줄 알았는데,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거였어.

만약 김소민이 눈치를 안 본다면? 나를 우선시 해 서동준한테 딱 잘라 말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닐까?

김소민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소민아. 동아리 사람들이랑 멀어지는 게 그렇게 겁나?"

"...네. 저는 일학년 때 CC 해서 남자친구랑만 다녀서 과 생활도 거의 안 했거든요. 유일하게 한 게 동아리 생활이에요. 여기 빼면 저는 학교에 있을 곳이 없어요."

김소민은 맥주 한 캔을 원샷 했다.

으이그 답답아. 아 맞다. 얘 21살이지.

아직 자기가 본 것만이 세상으로 아는 나이니깐,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시야가 좁은 거지.

이 꼬맹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은 넓고 사람은 얼마든지 사귀면 된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때 김소민 목에 걸린 디카가 눈에 들어왔다.

"소민아. 너 카메라 전원 켜봐."

"왜요? 오늘 사진 찍은 거 보게요?"

"아니. 나는 아니고 네가 볼 거야."

"제가요?"

"응. 오빠 말 듣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봐."

김소민은 내가 몇 번 권유하자 디카를 억지로 보더니, 5분쯤 지나자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다 봤어요."

"어때?"

"그냥 오늘 재밌었다. 그런 생각 들었어요. 헤헤헤. 그래도 기분 좀 풀리네요."

"그 사진 속에 아는 사람 있어?"

"네?"

"네가 찍은 사람 속에 아는 사람 없지?"

"네."

"오늘 우리가 여섯 시간 동안 사진 찍어도 네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어. 내가 아는 사람도 그 사진 속에는 열 명도 안 돼. 오빠 알지? 과 생활이랑 대외활동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런 오빠도 오늘 사진 찍은 사람은 대부분 모르는 사람이야. 우리 학교만 따져도 그만큼 넓은데, 다른 학교 아니 사회로 확장하면 얼마나 넓을까? 정말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고, 동아리도 있고, 과도 있지 않을까?"

김소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네가 신입생 때 처음 든 동아리여서 애착이 많은 거 알아. 그래서 지금은 네 삶의 전부처럼 보이지만, 10년 뒤, 네 인생에서 보면 사소한 점일 수도 있어."

나도 다시 태어났을 때 어떤 동아리에 들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렸거든.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 동아리도 그중에 하나일 뿐이야."

"그래도 저에게는 소중해요. 다희도 있고 다른 친구들도 있고."

"그렇긴 한데, 사람은 가고 다시 돌아오는 거야. 네가 잡아야 남는다면 친구가 아니야. 네가 힘들어 해도 지랄을 해도 남아주는 게 진짜 친구지. 옆에 다희처럼 말이야."

김소민과 민다희는 눈이 마주쳤다.

"나도 현찬 오빠랑 같은 생각이야."

"그래···?"

"응. 사람에 집착하지 마. 너는 너무 주위 사람들을 신경 써."

역시 절친 팩폭이 특효약이네.

한 마디인데도 김소민은 무슨 말인지 알았는지, 눈빛이 바뀌었다.

디리리링

그때 김소민 전화벨이 울렸다.

"서동준 선배야."

"어? 빨리 10장 찍고 가자. 조금 있다가 간다고 해."

"잠시만요!"

김소민은 뭐라 뭐라 말하더니,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사람 여기 있어요!"

"갑자기 왜?"

"동준 선배 잠시 보기로 했어요."

"그럼 우리도 같이 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NONO를 외치는 김소민.

"제가 쇼부 보고 올게요!"

쇼부? 킹시국에 그런 단어 쓰면 안 돼!

말은 당당하게 하지만 손끝은 벌벌 떨고 있다.

어떻게 하지? 같이 가줘야 할까? 아니면 본인에게 맡겨야 할까?

일단 한 번은 본인에게 맡겨보고 안 되면 도와주자. 불을 지폈으면, 꺼주기도 해야지.

"서동준 넌 죽었어. 내가 대가리 깨러 간다!"

"소민아 됐어. 일단 마음은 가라앉혀.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정문 앞 이디야에서요."

"아니다 싶으면 연락해. 나랑 다희가 갈게."

얼굴이 좀 밝아지네.

김소민은 원래의 활기찬 모습으로 잔디밭을 나갔다.

연락이 안 와서, 일단 나와 다희도 헤어졌다. 한복 입고 다닐 수는 없으니깐.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소민이다.

"어떻게 됐어?"

- 히히. 대가리 깼어요.

"장난하지 말고. 그래도 목소리 보니 잘 해결됐나 보네."

- 그럼요. 내가 왜 이렇게 스트레스 받았나 싶은데요?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해드릴게요.

"그래. 동아리 회식 장소 연락받았지? 나도 지금 갈 거니깐 거기서 보자."

- 에이. 거기 안 가요. 우리 오늘 동아리 사람이랑 같이 다니지도 않았잖아요. 둘이서 한잔 안 할래요?

"응? 다희는?"

- 피곤해서 잔데요.

둘이서? 그러지 뭐.

"그래? 어디서 볼래?"

- 저번에 우리 우연히 만났던 곳 있잖아요. 오빠가 술 취한 후배 데려다준 곳.

"술 취한은 빼고. 거기 근처에 맥줏집 있어?"

- 제 자취방이 근처에요.

자... 자취방에서 먹자고?

"알았어. 지금 갈게."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궁금하니깐 일단은 가보자.

< 축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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