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
빌라 거실에 세 사람이 앉아 있다.
나와 선미는 서영 누나가 꺼낸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누나가 치어리더를 한다고요?"
"언니 치어리더요?"
진심인가 보네. 서영 누나는 머쓱한 얼굴로 우리를 본다.
"응. 어떻게 생각해?"
"일단, 놀란 가슴부터 가라앉힐게요. 같이 공연하자는 말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치어리더 라뇨?
"우리 과티 패션쇼 때 치어리딩 했잖아. 그런데 재밌더라고. 특히 댄스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열광하고 같이 응원해주는 게 엄청 흥분되었어."
치어리더라. 끼가 많은 서영 누나다.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댄스보다는 치어리딩이 더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나? 선미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언니. 그런데 치어리더 하고 싶다고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는 인맥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현찬아. 은미 사장님 혹시 치어리더 쪽에 아는 사람 없어?"
"글쎄? 그쪽은 모델 쪽이잖아. 일단 물어는 볼게."
"아니야. 나 아는 사람 있어."
"정말요?"
"응. 선배 아는 사람이 야구 구단 두 군데에 오디션 보게 해준대."
"잘됐네요. 어느 구단이에요?"
"롯데와 한화야."
안됐네요. 하필이면 갈매기와 독수리라니.
갈매기는 그나마 낫다. 내년에 제이로이스터 감독이 오면 어느 정도 흥이 난다.
"나는 한화가 더 괜찮아. 부산은 너무 멀잖아. 대전이면 용인에서도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안돼! 누나, 한화에서 치어리더 하면 몇 년 동안 '나는 행복합니다'만 외쳐야 해요.
그런데? 이미 다 알아봐 놓고는 왜 우리에게 온 거지?
내가 궁금한 표정을 짓자 서영 누나는 한숨을 쉬었다.
"사실, 고민이 많이 돼. 치어리더 하면 휴학하고 할 생각이거든. 이왕 하는 거 일 년 정도는 제대로 해보려고.
그런데 나 이미 일 년 휴학했잖아. 다시 휴학하려니 겁나는 거야. 잘못되면 일 년 또 버리는 거니깐. 나중에 취직할 때 나이 많은 게 문제 될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잘 모르겠어."
현실적인 고민이네.
누나의 전생을 떠올려 보자. 누나는 어차피 3학년 마치고 어학연수 간다. 문제는 그 어학연수가 필리핀 어학원으로 3개월 갔다 오는 거다. 그래서 결론은 일 년 논다. 지금 치어리더 하다가 망해도 그때 노는 거랑 크게 다를 거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운명대로라면 이대로 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하게 된다. 능력에 비하면 아쉬운 회사지만, 누나는 갔고 그 후로는 연락이 끊겼었다.
치어리더를 해서 성공할지 안 할지 모르겠지만, 한다고 해도 원래 운명보다 나빠질 거 같지는 않다. 게다가 지금 눈빛은 하고 싶어 안달 나 있다. 슬쩍 등을 떠밀어 주자.
"누나. 저는 찬성이에요."
"정말?"
누나는 산타 보듯이 나를 본다. 선물은 없어요. 다른 물은 있지만... 정신 차리자.
"네. 치어리더 같은 거는 조직 생활이니깐, 일단 할 수만 있다면 나중에 취업할 때 어필할 수 있어요. 어학연수 간다고 생각하고 치어리더 해봐요. 선미 네 생각은 어때?"
"나는 당연히 찬성이지. 기회가 온다면 하고 싶은 거는 다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언니! 결과는 모르지만, 나는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원하는 대답인가? 서영 누나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마음은 이미 정했구먼. 누나는 어쩌면 누군가에게 확인을 받고 싶었나 보다.
"그래. 고마워. 너희들이랑 이야기하니깐 속이 풀린다. 집에서는 반대했거든."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잖아요. 누나가 보란 듯이 성공하면 돼요. 다만 구단은 바꿀 수 있으면 바꾸세요."
"왜? 환화가 야구 못해?"
"그럴 거 같아서요. 여튼 한 번 해봐요."
"그럼 나 하나만 부탁하자."
"어떤 거요?"
"나 오디션 볼 때 같이 가줘. 혼자 가기 너무 무서워. 나 면접은 처음이란 말야."
"알겠어요. 날짜만 말해주세요. 선미야. 너도 같이 갈래?"
"글쎄? 날짜 보고. 나 병원 가면 못 갈 수도 있어."
"누가 아파?"
아. 서영 누나는 몰랐지? 선미는 이제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나 보다. 웃으면서 우리가 병원을 찾아간 사건을 이야기했다.
"킥킥. 너희 대박이다. 그래도 다들 착하네. 찾아간 현찬이도, 웃으면서 맞이해준 선미도."
"그러니깐 누나도 우리랑 붙어 다녀요. 그럼 복이 옵니다."
"알았어. 그럼 면접 날 보자."
서영 누나가 치어리더라니. 운명이 바뀌는 건가? 일단 지켜보자.
*
다음 주 토요일, 아침 일찍 대전으로 가고 있다.
오래간만에 운전을 안 하는구나. 지금은 세연이가 운전한다.
"세연아. 차 진짜 좋다."
"서영 선배 아니에요. 언니 차예요."
전생이었으면 처음 타봐요? 하면서 음모론자처럼 까끌까끌했을 텐데, 지금은 부드럽게 돌려서 말한다. 내가 사람 하나 만들었구나! 뿌듯하다.
"선배 좋은 일 있어요? 왜 혼자 실실 웃어요?"
"방금 좋은 일 있었는데, 네 말 한마디 때문에 없어졌어."
"뭐래. 선미 언니는 괜찮으세요?"
"응. 아침 일찍 내 차 타고 갔어. 덕분에 내가 BMW를 다 타보네~"
뒤에 앉은 서영 누나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게. 우리가 후배 덕분에 외제 차를 다 타보고. 선배가 합격하면 맛있는 거 꼭 사줄게."
"감사합니다. 저도 선배 치어리더 하면 꼭 보러 갈게요! 선배! 힘내세요!"
"누나. 나도요. 치어리더 되면 꼭 다른 치어리더 나한테 소개해 주세요. 그게 누나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보답이에요. 악!"
세연이가 손을 뻗어서 내 가슴을 쾅 쳤다.
"아! 너 방금 선배 친 거야?"
"드라마 못 봤어요? 몸 쏠릴까 봐 막아준 거예요."
"다음에 내가 운전 할 때 보자."
"그럼 올라올 때는 선배가 해요. 20세 이상으로 보험 되어 있어요."
"미안. 운전하기 너무 귀찮아. 이제 대전 다 왔다. 누나 어때요? 긴장되죠?"
"미치겠어. 나 청심환 가지고 왔잖아."
원래 모습답지 않게 벌벌 떤다. 누나도 긴장하는구나.
"걱정하지 마세요. 누나는 잘 할 거예요."
우리는 대전 야구장 앞에 차를 주차했다.
*
서영 누나는 야구장으로 들어갔다.
11월의 차가운 바람이 우리를 스쳐 지나간다. 주차장에는 나와 세연이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세연은 이 상황이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내 옆에 붙는다.
"너는 왜 그리 신났냐?"
"네? 아니거든요. 선배. 우리 커피 한잔 마시러 가요."
"그럴까? 누가 쏠래?"
"집에 걸어서 가고 싶지 않다면 선배가 쏘세요."
"빵야 빵야"
"아! 짜증 나. 진짜 재미없어."
투덜거리면서도 내 옆에 붙더니, 슬쩍 팔짱을 낀다. 뭉클한 가슴이 닿자 갑자기 커피를 사주고 싶다.
"그래. 선배가 쏠게."
"..."
"넌 산다고 해도 노려보냐?"
"아씨. 갑자기 불안한데. 어서 가요."
우리는 커피숍을 찾아서 걸었다. 5분쯤 걸었나? 세연이가 갑자기 옷 가게 앞에 섰다.
마네킹에 걸쳐져 있는 옷을 보더니 환하게 웃는다.
"가디건 예쁘다."
회색 오버사이즈 가디건인데, 세연이가 입고 절에 들어가면 주지 스님이 수제자인 줄 알고 바로 철사장을 시킬 거 같다.
"저거 입고 절에 들어가면 되겠다. 개량 한복 느낌 나는 게, 너랑 정말 잘 어울릴 거 같아."
"뭐래? 선배나 절에 들어가서 좀 착해지세요. 아. 여기 커피숍 있다. 여기 들어가요."
"잠시만. 저 옷 예뻐? 사줄까?"
세연이 얼굴에 잠깐 웃음이 생겼다.
"아하하. 필요하면 제가 사면 되요~ 옷 사줄 생각 하지 말고 놀리지나 마세요."
"차라리 옷 사주고 놀릴게. 악!"
이세연은 내 발을 밟고 커피숍으로 먼저 들어갔다.
내가 사준다고 말하자 기쁘게 웃더니, 됐다고 하는 이유는 뭘까? 여자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나도 따라서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
아직도 이런 곳이 있구나. 올드한 커피숍이다. 오픈 테이블이 있고, 한쪽에는 칸막이와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는 자리가 있다.
"어디 앉으실 거예요?"
"저희 안쪽에 앉을게요."
"주문하신 커피는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한쪽 구석에 있는 자리에 커튼을 치고 들어갔다. 등을 소파에 기대면 테이블까지 팔이 닿지 않을 정도로 넓다.
이세연은 소파에 앉자마자 쿠션을 배 위에 올린다. 그러자 하얀 티를 입은 가슴이 더 도드라진다. 너 검은색 브래지어 입었구나. 벌써 시스루를 하다니... 너무 좋아!
"커피 나왔습니다."
종업원이 커피를 가져다준다. 빨리 놓고 나가세요. 지금 커피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나는 세연이 가슴만 뚫어지라 쳐다봤다.
미치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세연이만 보면 하고 싶다. 아마 내가 아는 여자 중에서 일방적으로 먼저 건드린 건 이세연이 유일할 거다.
"선배!"
나의 눈빛을 읽었나 보다. 이세연은 고양이가 되어 나를 노려본다.
"왜 노려봐요! 오늘 운전까지 한 사람한테!"
"깜짝이야. 너무 기특해서 봤다. 오늘 운전한다고 수고했어."
"아... 미안해요. 나는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나 싶어서 버럭 했어요."
"아이고~ 요렇게만 있어라. 그럼 선배가 항상 예뻐해 줄게."
"아씨. 예뻐해 준다는 말이 왜 이리 변태 같지?"
예뻐해 준다는 말이 왜 변태 같지? 아... 막대기로 예뻐해 준다고 받아들였구나.
나는 어이가 없어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이세연은 뭔가 잘못된 걸 깨달았는지 고개를 돌린다.
너 음란 마귀 꼈니?
"중생이여. 너의 머리가 변태로 가득 차 있어서 내가 변태로 보이는 거란다."
"뭐래. 재미도 없고. 진짜 나한테 고마워하세요. 이상한 개그 해도 받아주는 건 나밖에 없어요. 아 뜨거워!"
세연이는 카푸치노를 마시다가 흘렸다. 하얀 옷에 커피가 떨어져서 얼룩이 생겼다.
으하하 꼬시다. 그것 봐. 이상한 소리 하면 벌 받는 거야.
"아... 아..."
꼬셔 할 때가 아니구나. 이세연은 예전의 싸가지로 변하기 직전이다.
고개를 숙이고 얼룩을 보면서 부르르 떤다. 위험하다! 살기에 반응하듯이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세연아 진정해."
"아... 아... 짜증나.. 이게 뭐야..."
그래도 화를 안 내려고 노력한다. 짜증 나는 상황에 짜증을 못 내니 이제는 눈물을 터트리려고 한다.
초사이언이 되어서 마인부우를 때려잡기 전에 어서 달래주자.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어디 가요?"
"믿고 기다려봐."
나는 서둘러 커피숍을 나와서 옆집 옷가게가 들어갔다.
"저기 걸려 있는 가디건 주세요."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그냥 저거 주세요!"
사이즈? 그거 측정하다가는 당신 옆집에서 헐크 나와.
서둘러 계산하고 점원에게 옷을 뺐듯이 가져왔다. 커튼을 열고 다시 자리에 돌아가자 세연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나를 본다.
"나 놔두고 어디 갔다 온... 어라?"
시선이 가디건에 쏠린다. 짜슥, 어린아이네. 바로 좋아한다. 울고 있는 게 부끄러운지 대놓고 웃는 대신에 입술만 씰룩거린다.
"손에 뭐예요?"
"믿고 기다리라고 했지? 너 화내면 절에 보내려고 승복 사 왔어. 오버핏이라서 입으면 커피 묻은 거 가려질 거야. 잠시만."
나는 이세연 옆에 앉아서 가디건을 어깨에 걸쳐줬다.
그렇게 좋아? 짜증은 이미 눈 녹듯이 사라졌나 보다. 이제는 대놓고 아이처럼 좋아한다.
울다 웃으면 어디에 털 난다던데. 다음에 확인해 보자.
"가만히 있어 봐. 얼룩도 닦아 줄게.
물티슈로 세연이 가슴에 묻은 얼룩을 닦았다. 얼룩을 닦고 닦고 닦다 보니, 가슴을 주무르고 있다.
내가 많이 매워졌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세연이 아주 순해 졌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아. 선배. 만지지 마요."
투덜 대면서도 내 손길을 피하지는 않는다.
"닦아주는 거야. 그리고 여기서 말하면 밖에 다 들린다?"
"아 진짜 변태래도. 선배 모든 여자한테 다 이러죠? 이 옷도 작업한다고 사 온 거네."
"아닌데. 너한테만 그러는데. 나 거짓말은 안 하잖아."
"그렇긴 하죠... 진짜 저한테만 그래요?"
"그럼."
왼손 엄지손가락에 침을 바르고 이마에 붙였다. 그러자 세연이는 재밌는지 깔깔 웃는다.
오른손으로 안 했으니 무효란 거는 나만 알고 있어야겠다.
"킥킥킥.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요."
"조금 전까지 짜증 내려고 하더니, 이제 좀 괜찮아졌어?"
"네. 기분 좋아졌어요."
"확인 한 번 해봐야겠어."
"어떻게요? 아~ 잠시만요."
손을 하얀 티 속으로 집어넣었다. 배를 더듬고 올라가서 브래지어 위로 가슴을 쥐었다. C컵 가슴이 부드럽고 말캉하다. 떨리지 않는 걸 보니 진정되었나 보다.
"갑자기 다시 짜증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럼 커피 한 모금만 마셔봐. 내가 다시 풀어줄게."
"또 뭐 하려고.. 불안한데. 이렇게요?"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신다. 그러자 거품이 입술에 묻었다. 휴지로 거품을 닦으려는 손을 잡았다.
"거품 닦아 줄게."
"네? 읍."
세연이에게 키스했다. 이거 나중에 시크릿 가든에서 대박 치는 거야.
짜랍. 짜랍.
세연이도 이 분위기가 좋은지 혀를 빤다. 나는 이제 브래지어 아래로 손을 넣어서 맨 가슴을 만졌다.
아! 여기서 하고 싶다! 내 정신을 색무새가 지배한다. 세연이를 소파에 눕히고 뒤에서 넣고 싶다!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세연이 계곡을 향해 진격하는데 갑자기 막혔다.
"아. 선배. 여기서는.. 스타킹 신어서 싫어요."
"스타킹 사 올까?"
"그리고 밖에서 들릴까 봐 무서워요.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고 싶냐고? 나를 뭐로 보고!
"나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열 배는 더 하고 싶어."
고개를 위아래로 파다닥 거리며 말하자 세연이가 피식 웃는다.
"진짜. 변태란 말야. 손으로 해줄게요."
손이라.... 칼같은 선미는 비빌 여지가 없었지만, 이세연은 다르다. 협상 테이블이 벌어졌다. 새로운 안을 제시해 보자.
"입으로도 해줘."
다음 안을 제시한 후, 방금 사 온 가디건을 잡고 흔들었다. 세연이는 씨익 웃더니 내 허리띠를 풀었다. 팬티를 내리고 막대기를 꺼내더니 손으로 잡았다.
나는 세연이 가슴을. 세연이는 내 막대기를 쓰다듬었다.
보고 있나 강철의 연금술사? 이것이 등가교환이다.
슥삭. 슥삭.
따뜻한 세연이의 손이 막대기를 흔들자 쿠퍼액이 흘러나온다.
"설마 이거 지금 한 거예요?"
"무슨 소리니? 남자는 원래 이 정도 나와."
"에이~ 거짓말."
"맛보면 알 수 있는데."
섹드립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자, 날카로운 고양이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이세연 님. 이거 협상에 포함된 사항입니다.
"그냥 해달라면 되지 왜 그렇게 말해요?"
머리끈으로 노란 머리를 묶더니 막대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 11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