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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못했던 여사친들-71화 (71/295)

< 시험 기간 >

학교 앞에 있는 노래방.

우리 같은 사람들이 많은지, 노래방에는 방이 하나만 남아 있다.

시험 기간에 놀고 있는 동료들이 많다는 걸 알자 마음이 놓였다.

"오빠부터 불러요."

현아는 노래방에 들어가자마자 나에게 책을 건넨다.

나는 항상 부르는 노래를 예약했다.

KY 노래방 기계 기준 4011번, 내 눈물 모아. 가자!

"하아늘에 닿으며어어어. 오오오오! 내게로오!!!!!"

하얗게 불태웠어.

짝짝짝짝.

손뼉을 치는 현아와 성현. 어색하게 웃고만 있다.

전생에 노래방 갈 때마다 봤던 표정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에게 주는 표정이다.

그래 나는 음치다.

"와! 선배 잘 들었어요."

"햄 잘 들었어요."

내가 들을 수 있는 최대의 찬사를 들었다.

'잘 들었어요'

그래. 이때까지 나에게 잘 부른다고 말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선배 노래 잘해요. 너무 좋았어요."

그것도 어제까지 구나.

진희는 웃으며 나에게 엄지를 들어준다. 고마워 진희야!

다음으로는 현아가 럼블피시 으라차차를 불렀다.

"다시 내게 찾아온 거야~"

현아는 노래를 엄청 잘하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부른다.

다음은 엄성현 차례. 생각보다 잘 부른다.

마지막으로 진희 차례인데 노래를 예약하지 않는다.

"진희야 노래 안 불러?"

"저는 듣는 게 좋아요. 선배~ 노래 불러주세요."

"에이. 선배 봐봐. 노래 못 불러도 부르잖아. 같이 부를까?"

"아니에요. 선배 이 노래 불러 주세요."

진희는 노래방 책에서 번호를 찾아서 예약했다.

쉬즈곤이 나오면 그대로 노래방을 뛰쳐나가야 겠다고 마음먹을 때 즈음, 화면에 진희가 예약한 노래가 떴다.

-사랑해도 될까요. 유리상자.

쉬즈곤 보다는 해볼 만 했다. 나는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부터 그대를 사랑해도 될까요~"

노래를 부르는 동안 진희는 몸을 좌우로 느리게 흔들면서 손뼉을 쳤다.

내 노래를 이렇게까지 집중해서 듣는 사람은 진희가 처음이다.

노래가 끝나자 진희는 물개박수를 쳤고, 나는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와~~ 선배 노래 잘해요."

"너 선배 놀리는 거지?"

"아니에요. 진짜 좋았어요."

진짠가? 혹시 노래 실력이 는 건가? 다음에 녹음해서 들어봐야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보자.

노래는 못 부르지만, 나에게는 춤이 있다. 춤으로 분위기를 띄우면 된다.

노래방에서 놀 거를 대비해, 옛날 노래 동영상을 보면서 춤을 익혔다.

웬만한 거는 다 출 줄 안다.

나는 터보의 검은 고양이 틀고 앞으로 나갔다.

"오늘 신나게 놀 준비 되었습니까?"

일부러 목소리를 깔고 말하자, 후배들은 내가 뭐 할지 몰라서 빤히 쳐다본다.

나는 양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전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 띠띠띠띠 딩 딩딩.

전주가 끝나자마자 터보 김종국 형님처럼 춤췄다.

팔을 왼쪽 오른쪽으로 격렬히 움직이며 다리는 쉴새 없이 뛰었다.

"와~!! 오빠! 대박."

"햄!"

"선배~~"

환호하는 세 사람.

현아도 신났는지 스스로 앞으로 나와서 노래를 부른다. 엄성현도 앞으로 나왔다. 진희만 앉아 있기에 나는 손으로 잡고 끌고 나왔다.

"검은 고양이 네로~ 네로~"

현아는 노래를 부르고 우리 세 명은 나란히 섰다. '네로~네로~' 할 때 고양이처럼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방향이 꼬이며 서로 부딪히자, 우리는 오히려 그게 재밌어서 서로의 등을 치며 웃었다.

다음 곡부터는 후배들이 오히려 더 신났다.

말달리자를 부를 때는 다 같이 어깨동무하고 닥쳐를 외쳤고, 싸이의 챔피언을 부를 때는 나와 엄성현은 싸이가 되었다.

이현아는 더운지 바람막이 잠바를 벗었다.

헉! 그러자 딱 달라붙는 옷이 보였다. 너 가슴 최소 B컵이구나.

쥬얼리 슈퍼스타를 부르는 현아. 털기 춤을 출 때 가슴이 떨리자, 내 가슴도 떨린... 정신 차리자.

한 가지 아쉬운 건 진희다. 노래를 부르지도 않고, 춤을 추지도 않고 한쪽에 앉아서 탬버린만 친다.

"진희야? 재미없어?"

"아니요. 저 엄청 재밌어요."

"같이 놀자."

"선배 여기가 편해요. 보는 것만 해도 좋아요."

계속 앉아 있는 진희.

그렇다고 억지로 불러내는 건 진희에게 부담이 될 거다.

나는 틈틈이 진희가 지루하지 않도록 말도 걸고 장난도 쳤다.

어느덧 남은 시간은 2분으로 딱 한 곡 할 수 있다.

"오빠 우리 더 놀아요. 나 서비스 받아 올게요. 덤성아 같이 가자."

"야. 니 덤성이라 부르지 말래도."

현아와 엄성현은 노래방을 나갔다.

나는 땀에 범벅이 된 채 진희 옆에 앉았다.

진희는 나에게 물을 건네주더니 갑자기 노래방 책을 들었다.

"진희야. 또 노래 불러 달라고?"

"아니요. 저도 노래 하나만 부르려고요."

진희가 시작 버튼을 누르자 박기영의 '시작'이 흘러나왔다.

"오직 너만을 생각한 밤이 있었어~"

어두컴컴한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진희.

천장에 있는 사이키 조명이 슬쩍슬쩍 진희의 얼굴을 비췄는데, 평소와 다르게 환하게 웃고 있다.

"너를 사랑하고 있다고~ 모든 것을 네게~"

아니, 웃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진희는 노래를 정말 잘 부른다.

박기영의 고음 파트를 가볍게 올린다.

어느새 들어온 엄성현과 현아도 넋을 잃고 노래를 들었다.

"내 마음을 알겠니~ 네가 나의 전부라는 걸."

진희의 노래가 끝났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진희를 봤다.

"진희야. 너 노래 정말 잘한다."

"예? 아니에요. 선배가 더 잘해요."

진희야. 지금 네가 한 말은 호날두가 조기축구 아저씨한테 '무회전 슛 좀 차네요'라고 말하는 거랑 같은 거야.

현아와 엄성현도 진희가 노래 부르는 건 처음 봤나 보다. 놀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진희야. 니 노래 엄청 잘하네. 왜 안 불렀는데?"

"성현아 아니야."

"너 정말 잘해. 오빠! 진희 가요제 나가는 거 어때요? 이번 축제 때 나가는 거예요."

"현아야. 하지 마. 나 떨려서 아무것도 못 할 거야. 선배 저 안 나갈 거예요. 다들 일부러 그러는 거죠? 시간 다 됐다. 우리 이제 가요."

가요제? 괜찮은데? 천천히 꼬셔보자.

우리는 노래방을 나왔다.

다시 빌라에 돌아온 우리 네 명.

내가 현관문을 열자 후배들이 쪼르르 들어온다.

"아! 재밌게 놀았다."

"아씨! 볼링을 쳤어야 했는데. 아쉬워요."

"현아야. 볼링 쳤으면 집에 못 들어왔어. 대신 스티커 사진 찍었잖아."

노래방을 나오자마자 현아는 볼링장을 가자고 졸랐다.

결국 볼링장에 갔는데 마침 자리가 없었던 우리는 스티커 사진만 찍고 왔다.

"이제 다시 공부하자."

"오빠 할리갈리 한 판만 안 할래요?"

"할리갈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어서 앉자."

우리는 다시 거실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는 개뿔.

거실에는 할리갈리 판이 벌어졌다.

딸랑! 짝! 짝!

"아! 엄성현! 너 형 손 올리는 거 보고 쳤지?"

"아입니다. 해엠~"

딸랑! 짝!

"악! 오빠! 일부로 세게 쳤죠?"

"아니야. 실수로 한 박자 늦은 거야."

"아씨! 두고 봐요."

딸랑.

"헤헤헤."

"진희야. 너 너무 빨라. 어떻게 한 데를 안 맞냐?"

"끝! 제가 이겼어요."

뱅 할 때도 그렇고 진희는 의외로 게임을 잘한다. 승부사 기질이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 할리갈리는 진희의 승리로 끝났다.

"앞으로 진희 빼고 하자. 게임 너무 잘해."

"아~~ 왜요~~"

"애들아, 선배 손등 봐봐. 멍든 거 같지? 이거 다 진희에게 맞아서 그런 거야. 너 손 너무 매워."

진희는 빨개진 내 손을 보더니,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선배 괜찮아요?"

"아니요. 멍든 거 같은데요?"

"진짜예요? 어 진짜다... 미안해요. 선배..."

"으아아아. 살짝 만 건드려도 너무 아파."

"선배. 괜찮아요? 어떡해요."

역시 진희가 놀리는 재미가 있다.

지금도 아픈 척을 하자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할리갈리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술 마시자.

이미 공부는 할리갈리를 시작하는 순간 끝났다.

시작할 때 꼴찌 두 명은 맥주와 안주를 사 오기로 내기를 걸었었다.

나는 엄성현과 현아아게 카드를 건넸다.

"현아야. 여기 오빠 카드. 너희 먹고 싶은 거 다 사와."

"진짜요? 오빠한테 맞은 만큼 사 와야지. 덤성아 가자."

"햄 갔다 올게요."

두 사람은 빌라를 나갔다.

나도 담배 하나 피우자.

테라스에서 담배를 물자 진희가 뒤늦게 나를 따라 나왔다.

"진희야. 담배 냄새 옷에 묻겠다. 들어가 있어."

"괜찮아요. 선배 손 잠시만요."

진희의 손에는 물에 젖은 수건이 있었다. 내가 손을 내밀자 수건으로 덮는다.

맞아서 뜨거워진 손이 조금 식었다.

"미안하긴 미안한가 봐요. 후배님."

"선배... 죄송해요."

"하하하. 농담도 못 하겠다. 괜찮아 게임이잖아."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배시시 웃으며 나를 보는 진희.

하얀 피부에 눈웃음이 예쁜 후배. 얼굴도 귀여운 외모에 예쁜 편이다. 진희에게 끼가 있었다면, 남자들로 이루어진 아쿠아리움은 그냥 차렸을 거다.

갑자기 친구들과 있을 때는 진희가 말이 전혀 없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전생에 가장 친했던 후배인데, 잘 지냈으면 좋겠다.

"진희야 학교생활은 어때?"

"저요? 솔직히 말해도 돼요?"

"그럼."

"힘들어요..."

"왜?"

"적응을 잘 못 하겠어요. 고등학교 때랑 많이 달라요. 친구들도 그렇고..."

"뭐가? 선배한테 이야기해 봐."

"고등학교 때는 한 교실에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다들 친해졌는데, 대학교는 아닌 거 같아요. 동기여도 딱히 말할 일도 없고.

성현이랑 현아 말고는 동기 중에 말하는 사람도 없어요.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이 챙겨주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으니 적응하기 어려워요."

진희는 차가운 수건으로 내 손등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선배. 걱정 마세요. 아직 학기 초여서 그래요. 저 잘할 수 있어요."

덤덤하게 말하는 진희의 말투에 '다 제 탓이에요'라는 말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나는 진희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진희야."

"네?"

"대학교와 고등학교 차이점이 뭔 줄 알아?"

"뭐예요?"

"고등학교는 선생님이 출석을 불러주고 없으면 집에까지 전화하지만, 대학교는 출석부에 이름이 없으면 그냥 감점당하고 끝이야. 감점을 안 당하려면 본인이 스스로 교수님을 찾아가야 해."

"스스로... 맞아요. 제가 변해야 해요. 저는 너무 가만히 있는 거 같아요."

말을 끝낸 진희의 어깨가 축 처졌다.

나는 양손으로 진희의 가녀린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진희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오래간만에 도라에몽이 돼보자.

이제 20살인 진희, 조금 오글거리지만 먹힐 게 분명하다.

"아니. 선배가 선생님 해줄게."

"네?"

"학교에 적응할 때까지 선배가 선생님이 되어줄게. 너 안 나오면 찾아주고 불러줄게. 그러니깐 너무 무리하지 마."

"선배..."

"너는 좋은 사람이니깐 금방 적응 할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마. 선배가 있잖아. 어?"

진희는 갑자기 나를 꼭 끌어 앉았다.

내 턱을 살랑살랑 간지럽히는 진희의 머리카락. 어느 회사 제품인지는 모르겠지만, 향긋한 샴푸 냄새가 내 코를 찌른다.

내 가슴과 맞닿은 진희의 뭉클한 가슴.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항상 펑퍼짐한 옷만 입어서 정확한 크기를 몰랐는데, C컵은 되어 보인다.

벌떡!

막대기가 갑자기 급격히 섰다.

아.. 안돼! 나 지금 츄리닝 입고 있단 말이야.

병조판서! 지금 분위기에서는 아니야! 당장 군을 돌려!

내 바람과는 다르게 병조판서는 전 군을 막대기로 보낸다.

빳빳해진 내 막대기가 진희의 배를 누르며 일어났다.

"선배. 말만 들어도 저는 감사하고 힘이 나요. 걱정 안 되게 잘할게요."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너는 내 막대기가 안 느껴지니?

일 분쯤 지나자 자기 배에 느껴지는 게 권총이 아니란 걸 깨달았나 보다.

진희는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멀뚱히 나를 봤다.

"아... 하하하. 진희야 잠시만 놓아줄래."

"네?.. 아. 꺄!"

화들짝 놀라면서 물러난 진희.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가린다.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진희야. 그게..."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슬쩍 보이는 진희의 얼굴은 불타오르고 있다.

"제가 안은 거잖아요. 죄송해요. 선배."

"흠흠... 괜찮아. 이제 우리 들어가자. 아. 그리고 진희야."

"네?"

"진심으로 내가 더 고마워."

"예?"

"그런 게 있어. 들어가자."

전생에 나를 친한 오빠라 생각해줘서 고마워.

고맙다는 말에 진희는 당황한 얼굴로 나를 본다.

"선배... 혹시 저 때문에 고쳐진 거예요? 그래서 고맙다고..."

고쳐진 거라...

아이고 머리야. 학기 초에 잠시 돌았던, 내가 고자라는 소문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이럴 때 당황하면 진짜 변태된다. 웃어넘기기 위해 진희 이마에 딱밤 한 데를 살짝 때렸다.

"너 선생님한테 혼나야겠다. 그런 거 아니야."

"헤헤헤. 그래도 다행이에요."

"뭐가?"

"선배가 안 아파서요."

"너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왜요~~ 이제 들어가요."

어색한 게 풀렸는지, 진희는 내 팔을 잡고 빌라 안으로 끌고 갔다.

띵동. 띵동.

쾅!쾅!쾅!

"오빠! 오빠! 큰일 났어요."

갑자기 현관문 밖에서 난리가 났다.

나는 놀란 마음에 서둘러 현관문을 열었다.

"너희들 왜? 무슨 일이... 어?"

현관문 밖에는 엄성현과 이현아가 술과 안주를 잔뜩 들고 서 있다.

여기까지는 예상된 모습이다.

그런데? 두 사람 뒤에 이세연이 서 있다.

그것도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상태로 서 있다. 지금도 계속 울고 있는데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인다.

드디어 집에서 붕권 세 대 맞고 쫓겨난 건가?

"세연아. 왜? 무슨 일이야?"

일단 이세연 얼굴부터 봤다. 다행히 누구랑 싸우거나 맞은 거는 아닌 거 같다. 얼굴에 다친 자국은 없다.

그렇다고 입고 있는 옷을 보니 나쁜 일을 당한 것 같지도 않다.

회색 재킷과 안에는 검은 색깔 달라붙는 옷. 밑에는 짧은 반바지. 전혀 헝클어져 있지 않다. 이대로 소개팅 나가도 되겠다.

"흑흑흑. 선배. 저 집에 좀.... 으엉엉엉. 데려다주세요."

이세연은 갑자기 내 팔을 잡더니 펑펑 울면서 빌었다.

< 시험 기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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