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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못했던 여사친들-60화 (60/295)

< 2학년 1학기 개강 >

학교로 돌아가는 길. 엠티에서 술을 다 마셔서 그런지 짐이 절반 이하로 줄어 있다.

지금 내 차 조수석에는 선미가, 뒷좌석에는 진희, 현아가 타고 있다.

"선미 선배님 수고하셨습니다."

뒤에서 앞으로 손을 내밀어 선미 어깨를 주무르는 현아. 그 붙임성에 선미는 좋으면서도 부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현아야. 괜찮아. 안 해도 돼."

"아니에요. 선배도 다음에 제가 맛있는 거 사 드릴게요. 아! 선배! 우리 이 앞에서 내리면 돼요."

현아야 나만 사주기로 한 거 아니었니? 모두 다 사주는 거구나.

그런데 전생의 나는... 눈물 닦자.

차를 세우자 내리는 후배들. 현아는 문 닫기 전에 갑자기 나를 불렀다.

"현찬 선배! 오늘 집에 가면 싸이월드 확인해 보세요!"

-쾅

현아가 문 닫고 가자 선미가 궁금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너희 둘 무슨 일 있었어?"

"아니. 별일 없었어."

"귀엽네. 나는 후배들 들어오면 귀찮을 줄 알았는데, 저런 후배는 귀여워."

"본 좀 받아라."

"지랄. 죽을래?"

"아니요. 죄송합니다. 농담이고 선미야 너도 고생했어."

"그러게 말입니다. 친구 잘 못 만나서. 으그!"

내 머리를 툭축 치는 선미. 그래도 정말 고맙다.

내가 후배들을 받아 주는 역할을 했다면, 선미는 후배들을 나무라는 역할을 했다.

오히려 더 어려운 역할인데도 특유의 카리스마로 모든 후배를 정리했다.

오죽하면 미친개 이세연조차도 선미 앞에서는 얌전했으니.

선미야 너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자. 다 왔습니다. 선미 마마."

"아하하하. 왜? 고맙기는 하나 보네?"

"그럼. 맛있는 거 먹자. 내가 살게."

"일단 오늘은 좀 쉬고. 나, 갈게."

선미를 집 앞에 내려다 주고 나도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피곤했나 보다. 자고 일어나니 저녁이다.

한 숨자고 일어나서 싸이월드를 확인했다. 현아는 왜 보라고 한 걸까?

- 일촌명 변경 신청이 도착했습니다.

이현아 - 활발한 후배

민현찬 - 고개 숙인 선배

고개 숙인 선배? 고개? 고오오개!

아니 이거 고개가 얼굴이 아닌 거 같은데?

갑자기 떠오른 오티의 한 장면. 현아가 내 품에 안겼을 때 내 소중이가 현아 배에 있었지.

그 순간에 내가 서지 않는 걸 느끼고 일촌명을 바꾼 거구나!

와씨....

그렇다고 고개 숙인 선배가 뭐냐... 너무하네.

후배에게 고자 취급을 받다니. 눈물이 흐른다.

오늘은 개강 날. 전생과 비교해서 학교 가는 길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학교 뒷문으로 혼자 쪼르륵 등교했는데, 지금은 현아와 진희가 강아지처럼 내 옆에 서서 걸어간다.

아침에 자취방을 나와서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 둘이었고, 나를 발견 한 현아와 진희는 쪼르르 달려와 자석처럼 내 옆에 붙었다.

세 명이 걸어가는데 오늘따라 이현아가 조용하다. 무슨 할 말이 있는지 계속 내 얼굴을 쳐다봤다가 다른 곳 봤다가 한다.

너 설마 고자라고 나 외면하는 거 아니지?

"현아야. 왜? 무슨 할 말 있어?"

"아씨. 선배 오해하지 말고 들어요. 부추 좋아하세요? 그런 음식 많이 먹어야 해요. 율무차 같은 거 피하고요."

"켁. 너. 야!"

너 솔직히 말해. 인생 2회차자? 어떻게 20살이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그리고 나 고자 아니야. 네가 전생에 여사친이 아니어서 안 서는 거지. 젠장 이렇게 해명할 수도 없고.

"괜찮아요. 저는 이해해요. 우리 아빠도 그래서 엄마가 부추랑 굴이랑 다 챙겨 줬어요."

"저기. 현아야. 네가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들어 볼 수 있을까?"

"에이. 그건 선배 자존심인데 말 못 하죠."

배시시 웃는 이현아. 이 말괄량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진희도 문제다. 진희는 우리 둘만의 이야기가 있는 게 섭섭한지 귀여운 눈웃음 대신에 얼굴이 굳어져 있다.

"진희야. 현아 말 신경 쓰지 마. 오늘 너희 과대 뽑을 건데, 누구 할 사람 있어?"

"저는 현아가 했으면 해요."

"당연히 제가 할 거예요."

그래. 파라오 뒤를 따르는 너답게 어울리겠네. 그리고 얼굴도 예쁘니깐 클레오파트라 되겠다.

"민현찬씨!"

그때 나를 부르는 소리. 고개를 돌리자 박인혜가 서 있다. 여기 웬일이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면서 나에게 걸어오는 박인혜. 일단 아이들은 먼저 보내자.

"애들아. 선배 아는 사람 만나서 이야기 좀 하고 갈게. 너희 먼저 올라 가 있어."

"네. 나중에 뵐게요."

후배들은 올라갔고, 박인혜는 내 앞에서 섰다.

"오래간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네. 그런데 어쩐일이죠? 은미에게 무슨 일 생겼나요?"

"훗. 아니요. 은미는 잘하고 있어요. 조금 있으면 작은 스포츠 웨어 회사 쪽에 광고도 하나 나올 거예요. 티비 쪽은 아니고 인터넷 쪽이니 한 번 검색해 보세요. 오늘은 아는 언니 만나러 왔다가 우연히 본 거예요."

"언니요?"

"네. 연영과에 아는 언니가 있어서요."

"아... 늦게 입학했나 봐요."

"아니요. 교수인데요."

죄송합니다. 누나!

그래 박인혜 나이 많았지. 전생의 나이를 합쳐도 나는 지금의 박인혜 보다 어리다.

"그런데 어떻게 연영과에 있어요? 대표님은 모델 쪽 이잖아요."

"어떻게 하다 보니 알게 되었죠. 행사 때 만나게 되었는데 친구가 된 정도? 그나저나 요즘 괜찮은 사람 있어요? 현찬 씨 주위에 예쁘고 몸매 좋은 사람 많잖아요."

"음... 키 보시나요?"

"170 이하는 안 돼요. 우리 회사가 패션 전문은 아니지만, 키는 보거든요."

잠시 이혜민을 떠올렸지만, 키 때문에 안 되겠네.

잠시만. 그럼 나는?

"저는 어때요?"

"현찬 씨요?"

"네. 키 크죠. 얼굴 잘생긴 편이죠. 저 춤도 제법 춰요."

"아하하하하."

왜 웃어! 물론 자신감이 과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웃는 건 너무 하잖아.

"미안해요. 현찬 씨 괜찮죠.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꼬셨을 거예요. 그런데 제 사업에는 아니에요."

"왜요?"

"저는 다양한 엔터 모델을 키울 생각이거든요. 패션도 하고, 행사 쪽도 하고. 모토쇼도 하고. 그런 쪽은 비주얼도 중요하지만, 끼가 있어야 해요. 똘끼든 독기든 색기든, 뭔가 확 끌어당기는 매력.

그런데 현찬 씨는 그냥 착한 사람 같다는 분위기밖에 못 내요. 옆에 두기에는 매력적이지만, 티비에서는 크게 매력적이지 않을 거예요."

그건 당신이 내 끼를 못 봐서 그래. 따져봤자 뭐 하겠어? 그리고 나도 별 할 마음은 없다.

"저도 할 마음 없습니다.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네. 다음에 뵐게요."

박인혜는 고개를 숙이고는 연영과 쪽으로 걸어갔다.

그래. 모델은 무슨. 학교나 가자.

"그럼. 일학년 과대는 이현아로 하겠습니다. 현아야 동기들한테 인사해."

"잘 부탁드립니다!"

일학년 과대는 이현아가 되었다.

경쟁자 자체가 없어서 투표하지도 않았다. 그래, 현아는 저번 생에도 과대를 했으니깐 운명대로 가는 건가 보다.

과대가 정해지자 아이들은 잠시 쉬기 위해 강의실을 나간다.

나도 강의실을 나가려는 데 이세연과 눈이 마주쳤다.

"훗."

선명하게 나를 비웃는 이세연.

잠시만! 저 비웃음 뭔데? 설마?

이세연이 지나가자 뒤이어 걸어오는 메뚜기 둘. 나에게 쪼르르 달려왔다.

"선배! 밥 언제 사 줄 거예요?"

"그래그래. 조만간 먹자. 뭐 먹고 싶은데?"

내 질문에 메뚜기 둘의 만담이 펼쳐졌다.

"아웃백요!"

"야! 아웃백에 마늘 많이 나오는 거 있어?"

"아. 선배는 마늘 많이 먹어야 하지. 마늘 스테이크 있지 않아?"

잠시만. 이야기가 왜 그쪽으로 가?

"내가 왜 마늘 많이 먹어야 해? 사람 되라고?"

나를 빤히 보는 두 사람.

"훗. 화이팅! 꺄하하하"

화이팅 포즈를 취하고 도망갔다.

이세연의 웃음. 메뚜기 둘의 웃음과 응원.

일학년에 이상한 소문이 난 게 분명하다.

소문의 내용을 알아내야겠다. 범인을 잡아서 물어보고 싶지만, 이현아는 이미 도망갔다.

이럴 때는 인맥을 이용하자. 나는 밖으로 나가는 엄성현을 붙잡았다.

"성현아. 형이랑 이야기 좀 하자."

"네. 행님."

나를 쫄쫄 따라오는 엄성현. 우리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내가 담배를 입에 물자 성현이는 예의 바르게 불을 붙여준다.

"성현아. 혹시 일학년에 ㅎ 소문 난 거 있어?"

"아... 행님! 괘않습니다. 저는 그래도 행님을 존경합니다."

"그래도에 대한 설명을 좀 해줘야겠어."

"아... 그게..."

"부담 갖지 말고 말해 봐."

"그... 행님이 안 선다는.... 행님! 오해 마십시오. 저는 믿지 않습니다."

그래. 내가 고자라고 소문났구나. 소문낸 사람은 누군지 뻔하다.

나와 잠깐 부비부비를 한 이현아겠지.

"행님. 꼭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인기 더 올라갔습니다."

"뭔 소리야?"

"안전한 선배. 행님은 지금 일학년 여자애들한테 밤새 같이 술 마셔도 안전한 선배로 소문났습니다."

"푸하하하."

젠장. 이거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떡하지? 나훈아 어르신처럼 기자회견을 열어서 증명할 수도 없고.

"행님. 그런데... 진짜 안 섭니까?"

"이 미친놈아. 서! 선다고! 잘 서!"

"맞죠? 캬. 내 그럴 줄 알았습니다. 행님. 걱정 마세요. 제가 일학년들한테 행님 선다고 다시 소문내겠습니다."

미친놈아. 하지 마.

너희들 대학교 첫날에 내가 서고 안 서는 게 뭐가 중요하니.

동아리도 가입하고, 봉사활동도 다니고, 사람들 많이 만나고 다녀야지!

"됐다. 그냥 놔둬."

그래도 내가 발기가 가능하다고 소문을 낸다는 임성현. 겨우 말리고 돌려보냈다.

임성현이 내려가자 이선미가 올라왔다.

"어? 학교 언제 왔어?"

"나 방금. 무슨 일 있어? 표정 왜 그래?"

으흑. 갑자기 눈물이 난다. 이선미에게 일 학년에 소문난 걸 말했다.

"꺄하하. 미치겠다. 진짜? 그렇게 소문났어? 우리 현찬이가 고자라니."

내 팔을 팡팡 치며 웃는 이선미. 그러지 마 나는 지금 너무 슬퍼.

"미치겠다. 이거 해명할 수도 없고."

"냅둬. 재밌잖아. 그러다가 너에게 잡아 먹혀봐야 정신 차리지. 나중에는 현찬 선배 이만하다고 소문나는 거 아니야?"

써니 민효린처럼 담배 피우면서, 양손으로 내 사이즈를 표현하는 이선미.

네가 살았던 곳은 도대체 어디니? 나도 그 개방된 곳에 가서 살아보자.

"섹드립 쩝니다. 이선미 씨."

"왜? 사실을 이야기한 건데. 아니면 내가 대신 해명 해줄까?. 내가 먹어봤는데 잘 선다고 이야기해 줄게."

"아오. 진짜. 나 놀리는 거 재밌지?"

"응. 너 놀리는 게 얼마나 재밌는데. 아니면 후배들에게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

"뭐?"

"네가 진짜 고자처럼 마음의 벽을 치고 있던 건가."

갑자기 궁서체네. 일단 이야기를 계속 들어보자.

"그냥. 네가 일부로 여자를 멀리하는 거처럼 느껴져서. 아직도 은미가 마음에 걸리나 싶어서 물어봤어."

"그런 건 아닌데. 학회장이 되니깐 행동은 조심하게는 되는 거 같아. 미친놈처럼 섹스했다가 잘 못 소문나면 안 되잖아."

"그럼 다행이고. 나는 정말 고자 된 줄 알고 걱정했지."

"선미야. 지금 확인 가능한데."

"아하하하. 미친 새끼. 친구한테 말하는 꼬라지 봐라."

내 머리를 잡고 끌고 와 헤드락을 거는 이선미. 뭉클한 가슴이 뺨에 느껴진다.

"현찬아. 너무 부담 느끼지 말고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어차피 뭘 해도 욕 먹는 게 대표라는 자리야."

"고맙다. 친구야."

"그렇다고 힘들다고 내 자취방에 오지는 마. 고자는 재미 없으니깐. 아하하."

깔깔 웃더니 헤드락을 풀어준다. 나는 다시 선미 옆에 섰다.

"선미야. 네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건데."

"웃기네. 그랬으면 너나 임석훈이나 둘 다 내 꼬봉이야."

인정.

바람에 이선미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분홍빛 입술로 하얀 뺨. 예쁘기는 정말 예쁘구나.

"과대들 다 모였데. 과 행사나 정리하러 가자."

우리는 옥상에서 내려갔다.

과방에 모인 사람들.

나와 이선미 앞에 이현아와 진호형이 있다.

이현아는 일학년 과대, 진호형은 이학년 과대. 3,4학년들은 안 온다고 연락받았다.

"일단 개강총회 때문에 그러는데, 이번 주 금요일 하려고 하거든요. 일학년 너희 개강주는 언제 마실 거야?"

"저희는 수요일에 마시기로 했어요."

"그럼 문제없겠고. 진호형. 2학년 개강주는 언제 할 거예요?"

"글쎄? 애매하네. 우리는 다음 주에 하자."

"그러시죠."

대학교 첫 3월달은 정말 술술술이구나. 학년 개강주에 전체 개강총회에 난리다 난리.

"그럼 이걸로 오늘은 마무리하죠.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아! 선배!"

"안 들린다. 누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린다.

"아 왜요!"

왜기는 너 이상한 소문 냈잖아.

"세연이가 수강 신청 때문에 선배 불러 달래요."

"어? 자기가 직접 오면 되지, 불러 달래?"

"네. 지금 컴퓨터실에 있대요. 올 때까지 기다린대요."

아씨 이세연은 불편한데. 일단 가보자.

"알겠어. 선미야 갔다 올게."

"응. 아. 심심하다."

"서영 누나는?"

"용인에서 안 왔어. 내일 올 거래. 집 먼 사람 서러워서 살겠나."

"조금만 기다릴래?"

"됐어. 자취방 가서 자야겠어. 먼저 내려갈게."

그러고 보니 이선미 쓸쓸해 보인다. 서영 누나와는 코드가 안 맞는지, 은미처람 착 달라붙어 다니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 제일 친한 친구인데. 이선미에게 당구를 가르쳐 줄까?

"악!"

"왜요 선배?"

"아니야 현아야."

오래간만에 오는 호구신의 전기. 당구는 아닌가 보네.

일단 이세연 만나러 가보자.

< 2학년 1학기 개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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