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생 오티 - 무료 연재 끝 >
"대단한 무대입니다. 경영과에게 큰 박수 부탁합니다."
짝!짝!짝!짝!짝!
- 와아아아아아!
강당이 떠나갈 듯이 환호와 박수가 가득하다.
"경연! 이번에도 대단합니다. 저번 과 티 패션쇼 때도 주인공이었는데, 이번에도 또 주인공이 되었어요. 기분 어때요?"
"기분은 매우 좋지만, 저는 제가 주인공이라고 생각 안 합니다. 여기 있는 신입생들이 주인공이죠. 우리는 그저 신입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뿐입니다."
내 이름은 도라에몽. 손가락 발가락이 이미 다 사라져서 오글거림을 모르는 남자지.
정치나 할까? 입에서 꿀 달린 말이 술술 튀어나온다.
"이런 좋은 선배를 뒀다니 경영과는 부럽습니다. 후배들에게 해줄 말 없나요?"
"해줄 말 있죠. 애들아 재밌어?"
"네! 재밌어요."
"현찬선배 최고예요."
양손으로 손나팔을 만들어 큰소리로 외치는 후배들.
"과별 행사는 더 재밌게 놀자!"
후배들의 환호는 강당을 가득 채웠다.
"네! 좋은 학회장을 둔 경영과가 부럽습니다. 다들 수고하신 경영과에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오는, 강당이 터질듯한 박수와 환호를 뒤로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
경영과 자리로 돌아온 우리. 04학번 선배들이 잘했다고 칭찬해 준다.
"너희 정말 잘하더라. 학회장 잘 뽑았네."
"형들 감사합니다. 못 하면 어쩔까 걱정했었어요."
"에이. 너희가 최고였어. 혜진이가 너 잘한다고 하더니 진짜잖아.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선배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이제 후배들에게 환호를 들어볼까?
어쭈? 얘네들은 자기들끼리 더 신났다. 팔을 위로 들고 좌우로 흔들면서 만나서 반갑습니다를 외치고 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는 경영입니다~ 현찬 선배 멋있어요. 석훈 선배도 너무 멋져요."
현아야 너 술 마신 거 아니지? 그 옆에서 조심스럽게 손 흔들고 있는 진희. 귀엽네.
나는 진희 손을 잡고 하늘 높이 들었다.
"다 같이 진희 따라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하자. 시작."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린 경영입니다!"
진희의 손을 따라서 움직이는 아이들. 진희도 신났는지 손을 놓아도 알아서 흔든다.
나의 무대에 모든 신입생이 하나가 되었다. 아. 한 명 빼고.
이세연은 담요를 덮고 빤히 나를 쳐다보기만 한다.
음. 무서우니깐 피하자.
"그럼 마지막으로 경영 무대까지 봤습니다. 이것으로 모든 전체 행사는 끝났습니다. 이제 과별로 하시면 됩니다."
이제 단체 행사는 끝이다. 숙소에 올라가서 우리과 끼리 게임하고 놀자.
*
멍청했다. 나는 멍청이였다.
큰 방에 사람들이 다 들어갈 줄 알았다. 아니, 전생에는 다 들어갔었던 거 같은데.
내가 일일이 연락을 돌려서 전생보다 많은 사람이 온 건가?.
그 결과 눈물을 머금고 방을 두 개로 나눴다. 준비 한 게임은 MT 때 하자.
방 두 개를 나와 호빈이가 각각 담당했다. 나는 둥글게 앉은 사람들 가운데 섰다.
"안녕하세요. 학생회장 민현찬입니다."
"오~~~~~"
짝짝짝짝
무대의 흥분이 사라지지 않았는지 박수와 환호 소리가 크다.
사실 나도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신난 마음에 양손을 들고 고개를 끄덕이며 환호를 맞이했다.
이대로 분위기를 더 끌어 올리고 싶지만, 이제 조금 진정시켜야 할 때다.
대학교 입학하고 처음으로 과 행사를 하는 신입생들. 술김에 사고라도 나면 곤란하다.
그리고 04학번 선배들이 신입생들 술 너무 많이 먹여도 곤란하고.
"오늘 술 마시기 전에 하나만 지켜 주세요. 우리 학교는 오티때 사고 나기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나만 약속했으면 합니다. 선배님들, 먹기 싫은 신입생들은 억지로 술 먹이지 말아주세요."
"에이~~ 그럼 재미없지."
몇몇 반항하는 복학생 형들. 그중에 대표 격인 진호 형이 앞서서 손을 좌우로 흔들며 반대한다.
내가 그럴 줄 알고 형들을 위해 준비한 게 있어요.
"그래서 제가 특별한 술을 준비했습니다. 양주입니다."
선배들의 눈이 번쩍 떠졌다. 어떻게 준비했냐고? 임석훈 아버지 인맥을 이용했다.
임석훈 집에 있는 그 많은 양주 대부분이 군납이었을 줄이야. 2007년이면 페북도 없으니 고발도 못 하고, 군대가 개판일 때긴 하지.
그렇다고 수십병을 준비하지는 못했다. 내가 준비한 것은 열병 정도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양주라면서 캡틴큐 안 꺼낸 거에 다들 감사하세요!
"선배님들. 어떻게 하실 건가요?"
"현찬아. 우리가 다 마실게. 양주 자리 따로 만들어줘."
"물론이죠, 그럼 후배들 잘 챙겨 주길 부탁드립니다."
"애들아. 술 먹기 싫으면 바로 말해. 술은 원래 이야기하면서 목만 축이는 거야."
얼씨구나. 다들 태세전환 바로 하네. 여튼 분위기도 조금 진정시켰고 이제 술 마셔 보자.
*
멍청했다. 나는 조금 전보다 두배로 멍청했다.
내가 상상한 그림은 이랬다. 04 선배들은 얌전히 양주를 마시고, 07 후배들은 얌전히 소주를 마시면서 게임도 하고 학교생활에 대해 오손도손 이야기도 나누고. 그런 훈훈한 그림이었다.
"선배~ 이거 맛있어요! 더 줘요."
나는 여자들이 더 기가 세고 술이 강한 우리 학교 전통을 깜빡했다.
이현아는 한 손에 양주를 들고 때 쓰고 있고, 오히려 04 선배들이 슬금슬금 피한다.
진호 형도 어이없는지 내 옆에 와서 현아를 보며 웃는다.
"현찬아. 아까 뭐라고 했니?"
"죄송해요. 우리 과 여자애들 특징을 잠시 잊었어요."
"쟤를 보면 혜진이를 보는 거 같아. 혜진이도 일학년 때, 선배들이 사발에 막걸리 주니깐 순한 거는 안 마신다고 소주 타서 마셨거든."
역시 파라오는 괜히 되는 게 아니구나.
왜 우리과 여자들은 다들 술을 잘 마시는 걸까?
05학번인 서영 누나도 세병은 마시고. 잠시만, 서영 누나는 어떻게 되었지?
서영 누나는 아드레날린이 머릿속에서 나와 온몸을 휘감았는지 방 한쪽에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소주 두병 정도 마셨겠네. 그나마 얌전한 06학번 동기 여자애들이 갑자기 고맙다.
결국 양주는 오히려 가속도를 높여 신입생들을 취하게 했다. 지금 시각은 11시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굴러다니는 애들이 몇몇 보인다.
특히 벽에 기대고 있는 엄성현. 일학년 남학생인데, 나와 같은 고향이라서 전생에 몇 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성현아 괜찮아?"
"예! 햄. 괘않습니다."
벽을 보고 이야기하지 말고, 나를 보고 이야기해.
"피곤하면 들어가서 일찍 자."
"햄! 아입니다. 멀쩡합니다."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너 지금 상태 안 좋아."
"햄! 존경합니다. 아까 무대 너무 멋있었습니다. 그런데 햄은 어떻게 사투리 안 쓰십니까?"
햄! 햄! 햄! 내가 무슨 스팸이냐! 사투리야 여기서 오래 생활했으니 안 쓰는 거지.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 내 옆에 오는 현아와 진희. 현아는 한 손에 빈 양주병을 든 채, 웃으면서 내 팔에 매달렸다.
"선배~ 햄이 뭐예요?"
"형님을 사투리로 한 말이야."
"진짜요~ 그럼 나도 부를래요~ 현찬 햄~ 현찬 햄~"
그런 현아를 보더니 갑자기 다가오는 메뚜기 둘.
"현찬 햄~ 현찬 햄~ 우리 아웃백 언제 사줘요."
"너흰 그냥 아웃이야."
"아하하하. 우리는 아웃이래! 아하하하."
이걸 웃는 거 보니 다들 제정신이 아니구나.
다행히 진희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나 보다. 햄, 햄 거리지 않고 나를 말똥말똥 쳐다본다.
"진희야 괜찮아? 술 많이 먹었어?"
"누구세요?"
진희야. 그냥 자라.
성현이를 끌고 가서 남자 방에 눕혔고, 현아와 진희를 끌고 가서 여자방에 눕혔다.
방에 안 들어간다는 거 30분만 쉬고 나오라고 했다. 술이 조금 깨든가 잠들든가 둘 중 하나겠지.
한동안 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 상황을 체크했다. 무리 지어서 웃고 떠들며 술 마시는 후배, 선배, 동기들.
사실 나도 저 사람들 무리에 끼여서 술 마시고 놀고 싶다.
하지만 학생회장이라는 책임감이 술을 못 마시게 한다. 감투 쓴다고 꼭 좋은 거는 아니구나.
그래도 MT 때는 제대로 놀 수 있겠지.
현재 상황은 1/3이 자러 들어갔다. 아이엠 그라운드 해라고 술판을 벌였더니 배틀 그라운드가 됐네.
"현찬아! 현찬아!"
보급 상자가 떨어졌나? 나를 급하게 부르는 이선미. 그 옆에는 이세연이 썩은 양말이 코에 들어갔는지 인상 쓰고 있다.
"왜? 무슨 일이야?"
"세면대 막혔어.
이선미 말을 들어보니 누군가가 오늘 저녁에 뭘 먹었는지 세면대에 확인했다고 한다.
"세연이가 씻으려고 들어갔다가 발견했대."
"학회장이잖아요. 빨리 해결해 주세요."
"알겠어. 내가 처리할게. 세연아 너는 일단 여자방 화장실 써."
"그 방 화장실이에요."
시불.
잠시만. 여자방은 오티 초반에 금남의 방으로 지정했는데.
"선미야. 우리 처음에 했던 말 기억나? 여자방은 금남의 방."
"임석훈이 지금 젓가락 들고 긁고 있어. 어서 들어가 봐."
아오. 별수 있나? 이선미에게 왼손을 체포당한 채 여자방에 들어갔다.
*
방에 들어가자마자 여자 후배들이 나를 보더니, 장난친다.
"어? 선배! 꺄악! 변태다! 여기 여자방이거든요."
"너희가 애들이지 여자야? 화장실 막혔다고 해서 온 거야."
한쪽 모퉁이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자 진희와 현아가 궁금한지 따라 들어왔다.
화장실에는 임석훈이 젓가락으로 세면대를 쿡쿡 찌르고 있다.
"석훈아. 상태 어때?"
"국과수 의뢰해서 범인 찾고 싶다."
어느 정도길래? 고개를 슬쩍 들어 세면대를 봤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스포닝 풀이네. 지금 당장 저글링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다.
"선배 무슨 일이예? 웩."
고개를 내밀어서 세면대를 보고는 헛구역질을 하는 진희. 고개를 숙이고 차마 보지 못하는 현아.
이선미는 몇 번 보더니 화장실을 나갔다.
다들 난감한지 세면대 앞에서 아무것도 못 하고 발만 동동 굴리고 있다.
"내가 해결할게. 다들 비켜. 잘못하면 튀니깐."
"뭐 하려고?"
너희들 내가 군필인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그래도 막상 하려니 떨리네. 심호흡하자. 하나, 둘, 셋.
"어떡해!"
"현찬 선배!"
"어... 학회장 선배?"
현아, 진희, 세연의 목소리가 동시에 뒤에서 들렸다. 나는 맨손을 집어넣어 손바닥에 스프닝 풀을 담아 변기에 버렸다.
몇 번 긁어내자 막힌 원인이 다 빠져나갔는지 물이 흘러내려 간다.
"선배 괜찮아요?"
"진희야. 괜찮아. 너 술 깼나 보다. 이제 누구냐고 안 물어보네."
"아. 제가 그랬어요?"
"됐어. 더러우니깐 뒤에 서 있어."
샤워기에 물을 틀고 세면대 전체를 청소했다. 손도 비누로 씻었고, 이제 끝이다.
"세연아 이제 써도 돼."
"아... 네."
"또 불편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석훈아 가자."
"캬! 역시 기사 민현찬. 새로운 여왕들이 나오니 바로 움직여. 악!"
미친놈. 꼭 맞아야 정신을 차려요.
그때 후배들을 밀치고 들어오는 선미. 잠시만 너 오른손에 그거는? 새하얀 선미의 손에 고무장갑이 매달려 있다.
"현찬아. 여기 고무장갑."
"···."
"왜?"
그래. 조금 전 나는 가오가 육체를 지배했었구나.
젠장. 이래서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다.
오버했다. 정신 차리자.
*
마라톤처럼 술을 달리는 사람들.
배틀그라운드처럼 자기장이 있어서 밖에서 술 마시면 세배로 취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 지치다가도 그 모습을 보면 힘이 난다.
나는 가운데 있는 야외 테라스에서 담배를 하나 물었다.
- 딸깍.
그때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이현아. 이번에는 또 무슨 사고일까?
죄지은 사람처럼 양손을 모으고는 내 앞에 섰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더니 현아 머리가 휘날렸다. 그러자 보이는 눈물이 맺힌 현아의 두 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걱정되는 마음에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현아야 무슨 일이야?"
"선배. 죄송해요."
"왜? 왜? 선배한테 이야기해 봐."
"아까 세면대 제가 한 거예요..."
임석훈 영장 가져와! 구속시켜!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정신 차리자.
후배 상대로 미란다 고지 말해서 뭐 하겠냐. 그리고 이미 다 지난 일인데.
게다가 나라 팔아먹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현아.
의도한 거면 머리 좋네. 더 큰 일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사소한 걸 터트리는 전략.
-또르륵.
아닌가 보다.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이게 뭐라고 우냐?
그러고 보니 현아는 이제 갓 고등학교 졸업했지. 내가 유치원 선생님이 맞구나.
< 신입생 오티 - 무료 연재 끝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