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먹지 못했던 여사친들-57화 (57/295)

< 신입생 오티 >

오티 날. 수 십 대의 버스가 행렬을 이뤄서 도로를 달리고 있다.

나는 박호빈과 선미에게 버스를 맡기고, 서영 누나와 차를 타고 따라가고 있다.

만약을 대비해서 차 한 데는 있어야지.

"누나 오티 가니깐 신나지 않아요?"

"신나지. 그런데 너 차 좋다. 뒤에 시트 접으니깐 침대처럼 되어서 짐 많이 실려."

"그래서 SUV 산 거예요."

"대학생이차도 있고. 다들 부자란 말이야."

누나. 용인 집값 많이 올라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서영 누나와 같이 연습 한 날. 저녁에 맥줏값은 내가 냈다.

전생이었으면 나에게 벽을 치느라 자기가 계산했을 건데, 이제 나를 진짜 친구라 여기는지 계산을 막지 않았다. 물론 대리비를 챙겨주긴 했지만.

여튼 여사친 등록도 했고 나도, 누나도 서로에게 진짜 친구가 되었다.

리조트에 도착하자 버스들이 일렬로 나란히 주차되었다. 나는 그 끝자락에 주차하고 우리 과 버스를 향해 갔다.

"아. 피곤해."

버스 문이 열리며 내리는 이선미. 그 뒤를 따라 줄줄이 사탕처럼 내리는 후배, 선배, 동기들.

우리 버스만이 아니다. 모든 버스에서 사람들이 개미같이 내린다.

"각 학회장은 과별로 버스 앞에 줄 세워 주세요."

인문대 총학생회장 말대로 서둘러 줄 세우자. 안 그랬다가는 사람이 섞여서 월리를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선배님, 그리고 후배님들! 박호빈 기준으로 네 줄로 서주세요!"

양손에 조그마한 팻말을 들고 외치자 4열로 쭉 서는 우리 과 사람들.

이거 유치원 선생님이 된 기분이네.

- 바아아앙.

그때 들리는 자동차 엔진소리. 고개를 돌리자 빨간색 BMW Z4가 들어온다.

데자뷔인가? 익숙한 등장인데. 아! 아직 우리 과 신입생 한 명이 안 왔구나!

잊고 있었던 게 아니라 잊고 싶었던 후배. 쟤는 어떻게 등장까지 전생이랑 똑같을까?

멈춰선 BMW Z4에서 길쭉한 여대생이차에서 내렸다.

키 170cm 정도에 차가운 외모. 맥주를 마시다가 머리에 부었는지 노란 색깔의 긴 머리카락. 버스 탈 때 옆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손잡이 같은 링 귀걸이.

차에서 내린 여대생은 경영이 적힌 팻말을 흘깃 보더니 내 쪽으로 걸어왔다.

"여기가 경영이에요?"

"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제 모여서 숙소 배정하려고요."

"아. 뭐야. 일찍 왔잖아. 다 끝나면 연락 주세요. 차에 있을게요."

툭 돌아서는 신입생. 07학번 최고의 광견 이세연이다.

하은미가 그냥 커피면, 고등학교 진아가 TOP 면, 이세연은 루왁 커피다.

말 그대로 이 구역의 천룡인.

부잣집 딸내미인데, 아침마다 개념을 콘프로스트에 말아 먹는지, 호랑이 기운에 싸가지 없다.

내가 이세연을 보고 당황한 사이, 박호빈이 씩씩거리면서 이세연을 쫓아갔다.

"야! 너 신입생 아냐? 여기 다들 모여 있는 거 안 보여?"

"뭐래? 병신이."

으하하하.

욕먹는 박호빈을 보자 꼬시면서도 전생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아는 사람 중에 검사가 있다는 이세연의 말에, 마법사는 없냐고 했다가 '선배 병신이에요?'라고 욕먹었었지.

잠시만, 이건 내가 잘못한 건가? 하여튼 무시무시한 후배다.

전생에도 이세연은 아무도 못 건드렸다.

몇몇이 군기 잡는다고 혹은 작업한다고 건드렸는데, 선배고 나발이고 전부 욕먹었다. 선을 넘는 게 아니라 선 자체를 모르는 사람. 그게 바로 이세연이다.

이번 생에서 나는 이세연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간단하지 뭐. 미친개는 피하자.

차에 들어가는 이세연을 놔두고 사람들을 리조트로 인솔했다.

들어온 리조트 내부. 부곡하와이 같은 모습은 예전 그대로네.

시설은 대전 엑스포가 시절이 떠오르게 낙후되어 있다. 그나마 방이 20명이 앉아서 놀 수 있을 정도로 커서 다행이다.

우리에게는 큰방 두 개와 여자 방 2개, 남자 방 2개 그리고 집행부 방 하나 해서 총 7개가 배정되었다.

지금 나는 방 배정을 끝내고 강당에 있다.

총학의 주도로 오늘의 일정에 대해 간단한 리뷰를 하기 위해 모였는데, 전부 이세연만 물어본다.

"현찬아. 아까 빨간색 차 누구야?"

호기심이 가득 한 눈으로 나를 보는 연영과 학생회장. 이번에 알게 된 사람인데, 지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다.

"우리 과 신입생이에요."

"경영은 예쁜 사람 많은 거 같아. 오늘 같이 노는 거 어때?"

"형. 신입생끼리 친해지기도 바빠요."

"그러지 말고. 연영과에도 예쁜 사람 많아."

무슨 나이트냐? 술 마시면 부킹 해달라고 하겠네.

귀찮아서 대꾸를 안 하자 연영과 학회장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아! 이번에 우리 과 신입생 중에 경영과 다니다가 들어온 사람 있어."

"누구요? 이름이 뭐예요?"

"이혜민이라던데. 혹시 알고 있어?"

"네? 이혜민요?"

혜민이가 연영과로 갔다고? 그런데 왜 우리에게는 말 안 해줬지?

"왜?"

"저랑 친했었어요."

"그래? 그런데 연영과 온 지 몰랐어? 너만 친했나 보네."

사귄 사이야 이 새끼야.

그래. 그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경영과 학회장이 되니 나와 사귄 사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게 싫겠지.

존중해주자. 그냥 모른 척 해줘야겠다.

스케쥴 표 리뷰를 하고 우리는 각자의 과로 돌아갔다.

집행부 방에 모인 나, 호빈, 석훈, 서영, 선미.

남자 셋에 여자 둘이니 이제부터 우리는 후레쉬맨이다.

후레쉬맨인 우리 다섯은 경영을 지키기 위해 스케쥴 표를 보고 있다.

박호빈은 한참 동안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장기자랑 진짜 빠졌네?"

"응. 작년에 미친놈 하나가 차력한다고 각목으로 머리 쳤다가 병원 갔잖아. 과 소개로 바꼈어."

"아! 맞다 기억난다. 그럼 저녁까지는 자유시간이네. 우리도 좀 쉬자."

"너는 좀 쉬고 있어. 우리는 춤 연습해야 해."

"세상 좋아졌다. 선배들이 장기자랑 준비하고."

"지랄. 후배라고 해 봤자 우리보다 한 살 아래야."

아오. 저 꼰대 새끼. 그래도 전생에 임석훈 다음으로 친했던 놈이라서 버릴 수도 없고.

무시하고 춤 연습이나 하자.

나와 임석훈이 춤을 추자 이선미가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너 왜 이리 잘해?"

"오빠 잘하지?"

"지랄. 근데 진짜 잘한다."

"이러니 바나나 안 바나나?"

"아오. 너 후배 앞에서 그러면 죽여버릴 거야."

미안. 이세연 때문인지, 전생의 바보 같은 개그가 나왔어.

이선미까지 포함해서 우리는 저녁 시간까지 계속 연습했다.

저녁 6시쯤 되자 사람들이 밥을 먹고 한 무리씩 강당으로 들어온다. 나는 후배들을 안내하기 위해 강당 앞에 서서 기다렸다.

"선배! 현찬 선배! 식사하셨어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츄리닝에 패딩을 입고 있는 발랄한 현아와 오늘만 다섯 번째 인사를 하는 진희. 두 사람은 나를 보자 쪼르르 달려왔다.

"밥 맛있게 먹었어?"

"네! 여기 짱 맛있어요!"

짱. 오래간만에 들어보네.

"진희야 너는?"

"저도 맛있게 먹었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희야. 왜 이렇게 착한 거니.

두 사람을 안내하자 이번에는 메뚜기가 들어온다.

너희는 괘씸해서 대충 안내해 줄래.

"지연아 하민아. 저 안쪽에 앉으면 돼."

"선배 우리 밥은 언제 사줄 거예요? 현아는 벌써 사줬다면서요."

"지연아. 너는 선배가 한솥으로 보이지?"

"아니요. 아웃백으로 보이는데요."

쓸데없이 솔직한 녀석.

"알았어 어서 저기로 가."

"우리도 사줘야 해요!"

손을 흔들고 가는 메뚜기들. 너희는 호빈이에게 얻어먹어.

"경영과 학회장이에요?"

깜짝이야.

한눈판 사이에 이세연이 내 앞에 서 있다. 얇은 맨투맨을 입었는데 추워서 그런지 팔짱 끼고 나를 노려본다.

"네. 제가 학회장이에요."

"담요 있어요?"

"담요는 없는데."

"현찬아. 여기 있어."

이선미는 자기가 입고 있던 담요를 이세연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헉. 이선미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이세연.

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 비와이 말 틀린 거 없네. 진짜 깡패끼리는 통하는 게 있나 보다.

이제 후배들은 거의 다 들어왔다. 나도 서서히 우리 과로 돌아가자.

그때 익숙한 얼굴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안녕. 현찬아."

"안녕. 혜민아."

아귀와 고니의 동창회처럼 어색하다. 다행히 이혜민을 본 임석훈과 이선미가 달려와 어색함이 풀어졌다.

"혜민아. 너 어떻게 된 거야?"

"선미야 말 못 해서 미안. 나 연영과로 재입학했어."

"말해 주지."

"그냥. 너희들 부담될까 봐. 나중에 이야기해."

이혜민은 해맑게 인사하고 연영과로 돌아갔다. 임석훈이 그런 혜민이를 보더니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왜? 섭섭해?"

"아니. 섭섭할 게 뭐 있어."

"새로운 과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겠지. 자 우리 과나 챙기자. 민현찬 준비됐나?"

"그래. 준비됐다!"

"마! 정장 입으로 가자."

"그래. 마! 가자."

혜민이는 혜민이의 길을 가겠지. 우리는 우리 길을 가자.

한 과씩 시작된 소개.

잘하는 과도 있고, 상상 초월하게 손발이 오그라들어 신입생을 도라에몽으로 만드는 과도 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과는 연영과다.

야! 뮤지컬은 반칙이잖아. 이게 뭐라고 뮤지컬까지 준비해?

-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연영과의 노래에 신입생들의 눈망울이 촉촉해진다.

- 남은 건 이제 연~~영 뿐~~~~

강당이 울리는 박수 소리.

젠장. 왜 하필이면 다음이 우리야!

이제 우리 차례다. 나는 밝은 노란색 정장. 임석훈은 밝은 초록색 정장을 입고 무대 위에 올라갔다.

하긴 우리도 미쳤지. 이거 한 번 한다고 둘이 합쳐서 30만 원 썼으니.

- 선배님 파이팅!

내가 무대에 올라가자 현아가 일어나서 응원한다. 그 응원 소리에 많은 사람이 웃자 현아는 부끄러운지 숨었다.

현아야. 부끄러워하지 마. 저 웃음소리를 전부 부러움으로 바꿔 줄게.

강당에 우리가 개사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노란색, 초록색 슬림핏 정장을 입은 우리는 노래에 맞춰서 몸을 흔들었다.

따따 따따 음따다, 따따 따따 음따다

처음에는 좌우로 까딱까딱.

박자를 정확하게 맞춰서 두 사람이 똑같이 움직이자, 우리를 바라보는 신입생들의 눈빛이 조금씩 빛나기 시작한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는 경영입니다~ 우리 스타일은 죽여 줍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와 임석훈은 리듬에 맞춰 팔을 크게 좌우로 흔들었다.

-오~~!!

-와~~~!

-잘한다~~

조금씩 커지는 환호성.

- 우리는 경영과. 세상을 업삐리. 경영해 놓는다네 ~

오그라드는 가사. 그래도 후배들은 마음에 드는지 신나서 들썩거린다.

이제 MSG 좀 쳐 보자. 서영 누나 출격.

- 난 알아 광대가 춤 추고~

서영 누나는 무대 중앙으로 오더니 웨이브를 했다. 그 웨이브에 환호성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 오늘은 선배보다 우릴 믿어 리빈다~비다 로카다

2절에 나와 임석훈이 날뛰자 이번에는 여자들 함성이 커진다.

- 꺅!

- 멋있어요!

국어국문학과 신입생들 감사합니다. 너희 선배들이 시조 읽는 거보다 훨씬 낫지?

이제는 후렴구. 분위기 더 띄워 보자!

경영과 앞쪽으로 가서 손으로 일어나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선배, 후배, 동기들 모두 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린 경영입니다.

팔을 높게 들고 내 춤을 따라하는 모두들. 이걸로는 부족하지.

"자 이번에는 노래도 다 같이."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우린 경영입니다."

강당에 모인 열 몇 개의 과.

그중에 우리 과만 신나서 모두가 한목소리로 '반갑습니다' 노래 후렴구를 따라 한다. 다른 과 학생들은 신나는 분위기를 부러운 눈빛으로 본다.

- 세이 오!

마주치는 나와 서영 누나의 손.

- 세이 오!

이번에는 임석훈과 마주치는 나의 손.

이제 마지막이다.

- 간다간다 경영과가 갑니다.

노래가 끝나고 우리 셋은 나란히 땅을 바라봤다.

- 와아아아아아!!!!

- 멋있어요!

- 언니 예뻐요.

- 경영 대박!

숨을 헐떡거리는데, 강당 안 사람들의 환호성이 우리를 감쌌다.

- 디리리리리리릭

이때 들리는 테이프 감기는 소리.

- 끝난 줄 알았지?

- NEW MUSIC FOR SUMMER

그리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조PD의 HOLD THE LINE.

최종 병기 출격이다.

우리 셋이 좌우로 벌리자, 가운데 이선미가 짧은 치마와 나시 티를 입고 모델처럼 걸어 나왔다.

뒤돌아서 선미에게 가는 임석훈. 이선미는 웃으면서 바통 터치를 하더니 무대 앞에 와서 머리끈을 풀었다.

게이트가 열렸나? 강당이 남자들의 환호성에 진동한다.

이 사람들아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내 옆으로 온 이선미. 내가 맨 허리를 휘감자 강당에 여자들 비명이 가득하다.

"꺅~~~~ 진짜 만졌어."

"대박! 진짜야~~~~"

- 첨에는 남자는 남자답게~

이선미의 섹시 웨이브에 여자들이 환호하며 언니를 외친다.

이제 은미 파트. 서영 누나가 대신했는데, 가슴을 쓰다듬자 신입생들에게는 충격인가 보다. 비명 지르고 난리다.

계속되는 노래. 그리고 댄스. 다가온 하이라이트.

서영 누나가 내 앞에 서더니 엉덩이를 내 쪽으로 내밀고 앉았다 일어났다.

- 대박이야!

- 선배 멋져요!"

- 미쳤어! 미쳤어!

반갑습니다 할 때는 우리 과만 신났었다.

지금은? 모든 과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팔을 흔들며 휘파람, 환호, 박수를 보낸다.

이제 마지막 피날레다. 나는 팔짱을 꼈고 서영 누나와 선미는 내 양옆에 서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무대를 끝냈다.

- 경영! 경영! 경영!

- 와아아아아아~~~!!!!!

무대가 끝나자마자 동시에 울리는 수백 명의 환호성.

연영과의 '지금 이 순간'은 진짜 그 순간만이었는지 사람들 머릿속에서는 사라졌나 보다.

지금 이 강당에 있는 모두가 경영만 외친다.

이런 선배들을 보는 후배들은 어떤 기분일까?

메뚜기, 현아, 진희 그리고 다른 선배, 후배, 동기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양팔을 흔들고 있다.

서영 누나 마음 이제 이해가 되네.

우리에게 환호하는 수백 명의 사람들. 과 티 패션쇼와는 비교도 안 되는 흥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 신입생 오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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