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생 오티 >
- 일촌 신청이 왔습니다.
다들 행동력이 빠르다. 집에 가서 싸이를 확인하니, 많은 후배에게 일촌 신청이 와 있다.
선배님.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 진희
진희와 나의 일촌 명은 잘 따르는 후배와 본받고 싶은 선배.
내성적인 진희가 이 정도 표현을 했다니. 얼마나 용기를 냈는지는 예상이 된다.
우리 밥 사주세요!
- 지연, 하민.
메뚜기들의 일촌 명은 착한 후배와 밥 잘 사주는 선배.
이것들은 벌써 메뚜기 할 생각밖에 없네.
선배님. 오늘 즐거웠습니다. 앞으로 학교생활 잘 부탁드릴게요.
- 현아.
현아의 일촌 명은 활기찬 선배와, 활기찬 후배.
씩씩하고 활발한 현아 답다.
그 외에도 많은 후배들이 나에게 일촌 신청을 했다.
아이고, 일촌 명 정하는 것도 고생인데, 한방에 편하게 정리됐네.
지금은 저녁 8시. 혼자 자취방에 있으니 심심하다.
이럴 때는? 풋볼매니지먼트 해야지.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롤 양쪽 윙으로 세워서 EPL을 점령하자.
솔직히 솔로가 되니 자유로운 것도 있다. 이 자유 얼마 만인가?
일단 맥주 사 와서 마시면서 하자. 나는 맥주를 사러 자취방을 나왔다.
*
담배 하나 물고 편의점 가는 길.
편의점 앞에서 남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누군가 등을 툭툭 친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 두 명이 보였다.
포니테일 머리에 패딩을 입고 있는 이현아.
단발머리에 안경을 쓰고 있는 한진희.
현아는 신난 강아지처럼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 진희는 조용히 고개 숙여 인사한다.
"너희 집에 안 갔어?"
"저희 둘 자취하잖아요. 미리 방 구해서 들어 왔어요. 선배님 뭐 하세요?"
"나는 맥주 사러 왔어."
"다른 선배들이랑 같이 마시려고요?"
"아니. 혼자 마시려고."
"에이~! 청승맞다. 우리 여기 구경시켜주세요! 다른 아이들 다 집에 가고 우리 둘만 남아서 할 게 없어요."
"구경? 뭐 볼 거 없는데."
"맛있는 집 없어요?"
맛있는 집이라. 대부분 대학교 앞에는 전설의 치킨집이 하나씩 있지.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다. 셋이 먹다가 하나가 치킨으로 나와도 눈치 못 챌 정도로 맛있는 집이 있다.
"너희 치킨 먹을래?"
"네! 저는 좋아요."
"진희 너는?"
"저도 좋아요."
"그래. 먹으러 가자."
나, 현아, 진희 순으로 서서 치킨을 먹기 위해 원룸촌을 걸어갔다.
*
학교 앞 명물 치킨집. 개강했으면 30분씩 기다려야 하지만, 아직 2월이어서 그런지 한가하다.
노르스름하게 잘 튀겨진 치킨이 지금 우리 앞에 있다. 현아와 진희는 한입을 먹더니 골목식당 말고 한식대첩 백종원 선생님처럼 감탄한다.
"선배! 진짜 맛있어요. 대박."
"그렇게 맛있어?"
현아는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그 옆에 진희도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많이 먹어."
"잘 먹겠습니다."
정말 맛있나 보다. 아니면 밥을 굶었던가. 두 사람은 폭풍처럼 치킨을 흡입한다. 한동안 치킨을 먹는 아이들을 구경만 했다.
그런 내 모습을 현아가 보더니 웃으며 묻는다.
"선배. 그런데 얼마 전에 헤어졌다면서요?"
"응? 어떻게 알았어?"
"호빈 선배가 이야기해 줬어요. 우리 과에서 제일 예쁜 선배와 사귀다가 헤어졌다고요."
박호빈. 에밀레종 같은 새끼. 동네방네 다 말하고 다니나 보네.
"응. 호빈이 말이 맞아. 그런데 왜?"
"선배 지금 인기 엄청 많거든요. 오늘 선배 좋은 사람 같다고, 재밌다고 난리였어요. 맞지 진희야?"
"정말이에요. 그럼 당분간은 여자친구 안 사귀겠네요?"
"그렇지. 당분간은 조금 쉬면서 혼자로 지내려고."
은미 때문은 아니다. 나는 은미에게 해줄 수 있는 많은 걸 해줬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아리기는 하지만, 불편하지는 않다.
다만 연애를 조금 쉬고 싶다. 브레이브 하트의 멜깁슨처럼 자유를 외치고 싶다.
내 말에 현아는 배시시 웃으며 맥주를 마신다.
"선배는 못 쉴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말이야?"
"선배 야구 좋아해요?"
"좋아하지."
"선배는 지금 FA 상태거든요. 어디서 러브콜이 올지 몰라요."
"풉!"
미친. 내가 지금 여대생이 아니라, 마산 야구장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 갈매기 아재랑 이야기 하는 건가?
장난기 많은 이현아다. 아마 지금 한 말이 나에게 관심 있어서 한 말은 아닐 거다.
그래도 저런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닐 거고, 궁금하다.
"왜? 너희 동기 중에 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
"아직은 몰라요. 그런데 관심 있어 하는 사람 있을걸요. 제가 스파이가 돼 드릴게요."
이현아는 내 물음에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윙크하면서 말했다.
"하하하. 됐어. 너는 어쩜 예전 그대로야?"
"네? 예전요?"
"아니야. 예전에 알던 동생이랑 닮아서. 진희는 어때? 대학교 오니깐 설레지 않아?"
"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걱정 돼요."
"왜? 뭐 때문에?"
"제가 내성적인 성격이거든요. 잘 어울리지 못 할까 봐 걱정이에요."
진희는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인다.
전생에서 나와 제일 친했었던 후배, 그리고 나와 비슷하게 겉 돌았던 후배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던데, 진희를 보자 굽다 못해 한 바퀴 돌아진다.
"걱정 마. 내성적이면 어때. 그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야. 학교 생활하다가 힘들면 말해. 선배가 챙겨 줄게."
"감사합니다."
"선배! 저는요?"
이현아가 포크로 하늘을 콕콕 찌른다. 포세이돈이냐? 아이고 이 말괄량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현아야 너도 힘들면 이야기해. 내가 보기에는 그럴 일은 없겠지만."
"왜요! 저도 내성적이에요."
"웃기네."
"아씨. 안 통하네."
입읍 툭 튀어 내밀더니 다시 치킨을 먹는다.
이현아는 포스트잇같이 어디에나 붙을 정도로 붙임성이 좋다.
나야 외모가 바뀌고 인싸가 되었지만, 이현아는 태생이 인싸다.
그렇다고 안 예쁜 것도 아니고, 게다가 다른 아이들도 잘 챙긴다.
물론 과하게 챙겨서 저번 생에 이현아와 친구들 밥값으로 나간 돈이 50만원 정도 되었지. 아씨. 그러고 보니 이번 생에도 자연스럽게 밥 사고 있네?
이현아는 이번에는 닭 다리를 들고는 나를 본다.
"선배 그럼 우리 둘이 양동생 안 할래요?"
"풉!"
맥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갔다. 양동생이라니, 무슨 조폭도 아니고.
"됐네요. 그냥 선배 후배 하자."
"칫. 재미없게. 알았어요. 나도 오빠라고 안 불러줄 거예요."
"너는 졸업 할 때까지 선배라고 불러. 꼭!"
"아! 선배. 나중에 나보고 오빠라고 불러 달라고 하지 마세요. 진희야 너도 꼭 선배라고 불러."
"응. 알겠어. 잘 부탁드려요 선배님."
"그래. 치킨 마저 먹자. 맛있지?"
진희는 걱정이 날아갔는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선배님. 정말 맛있어요."
그래. 역시 치킨이 진리구나. 치킨 앞에는 모두가 밝아지지.
***
- 크리스탈로 춤 실력을 구매하였습니다.
이제 당신의 춤 실력은 아이돌 정도입니다. 다만 전문 B-BOY 와 비교하면 잘 추는 건 아닙니다.
나는 크리스탈로 춤 실력을 구매했다.
아이돌이 어디냐. 목각인형처럼 움직이는데, 아이돌이면 감사하지.
누나가 짠 안무, 답이 나오지 않았다. 동작이 너무 격렬하고 복잡하다. 춤추다 보면 내 팔다리가 낙지처럼 꼬여 있다.
"현찬아 여기야."
오늘은 둘이서 연습하기로 한 날이다. 용인의 한 연습실 앞에 가니 누나가 손을 흔들고 있다.
"누나 안 늦었죠?"
"응 나도 방금 왔어. 너 자신 있어 보인다?"
"연습 많이 했거든요. 놀라지 마세요."
"그래? 나는 너 가르쳐줄 생각에 벌써 머리가 아픈데. 어서 들어가자."
훗. 완전히 달라진 나를 보여드릴게요.
*
처음 본 댄스 연습실. 그리 크지 않지만, 한쪽 벽면이 거울로 되어 있다. 뭐 특이한 곳인 줄 알았는데 별거 없네.
"누나 여기 어떻게 아는 거예요?"
"고등학교 선배가 하는 곳이야."
누나는 레깅스에 펑퍼짐한 흰색 티로 갈아 있고는 내 앞에 섰다.
"이제 시작 해볼까? 우선 먼저 해봐."
팔을 어깨위로 올리고 몸을 풀더니 한쪽 구석으로 가서 음악을 틀었다.
음따 음따 음따다
흘러나오는 노래. 크리스탈 위력이 대단하다.
머릿속에 춤 동작을 떠올리기만 해도 내 몸이 리듬감 있게 움직인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루브를 타며 팔을 크게 흔들었다.
"어?"
놀란 눈으로 나를 보는 서영 누나. 나도 놀라워요.
계속되는 노래. 칼같이 잰 나의 안무. 구경하던 누나가 갑자기 옆에 난입해서 춤을 춘다.
- 고되게 돌아가는 삶 속에~
가사에 맞춰서 한 템포씩 발을 돌리며 한 바퀴를 돌았다.
- 으라차차 내 맘속에
왼발, 오른발 순으로 앞으로 움직이며 팔도 맞춰서 걸었다.
- 세이 오
짝.
완벽한 데칼코마니처럼 마주친 우리의 손. 지금 이 순간 나는 강백호 서영 누나는 서태웅이다.
노래가 끝나자 누나는 손뼉을 치며 나를 봤다.
"너 연습 진짜 많이 했네? 아니. 이거는 연습으로 되는 게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된 거야?"
"뒤늦게 춤을 깨달았어요. 어때요?"
"최고야. 임석훈보다도 훨씬 잘해. 나보다도 잘 추겠는데?"
그건 아니에요. 비슷한 수준은 되려나?
"현찬아. 조금 더 어렵게 해봐도 될까?"
"그럼요. 괜찮아요."
누나는 내 앞에서 즉흥적으로 춤 동작을 몇 개 더 추가했다.
아니 크리스탈 안 샀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춤추다가 팔다리 꼬여서 죽을 뻔했네.
"어때? 어렵지? 무리하지는 마."
"일단 같이 해보죠."
누나를 따라서 안무를 몇 번 같이 했다. 한 네 번쯤 했나? 춤이 몸에 익더니 누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쳐진다.
"어때요? 잘하죠?"
"응. 엄청 잘해. 소름 돋을 정도야. 연습한다고 고생했어. 너무 기특하다! 우리 저번에 췄던 춤 한 번 해보자!"
저번에 했던 춤이라면? HOLD THE LINE 말하는 건가?
머릿속에 춤동작이 그려진다. 음악만 나오면 리듬에 바로 취할 거 같다.
고개를 들고 거만한 표정을 취했다. 나는 지금 리듬에 미친 자니깐.
"누나. 음악 주세요."
"아하하. 자신 있어 보이네."
서영 누나는 노래를 틀고 옆에 섰다.
정면의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친다.
캬! 내가 봐도 멋있다. 이전의 어정쩡한 자세에서 지금은 각이 딱 잡혀 있는 자세다.
계속 춤추는데, 갑자기 누나가 다가와서 부비부비했다. 아 맞다! 이거 섹시 댄스였지?
어정쩡한 춤 동작이 괜찮아지니깐 스킨쉽도 과해진다. 은미 파트에서는 누나 가슴에 손을 올렸고, 선미 파트에서는 내가 누나 허리를 감았고, 누나 파트에서는 누나가 엉덩이를 내 부분에 비볐...
누나. 갑자기 왜 이래요. 뭐 그래봤자 나는 현자가 될 뿐이지만.
춤이 다 끝나자 누나가 마지막 동작으로 내 몸을 안았다.
"누나 어때요? 나 잘하죠."
"어! 엄청 늘었어. 그런데···"
"왜요?"
"아씨. 너는 내가 정말 별로야? 아무 반응이 없어?"
갑자기? 지금 그런 분위기 아닌데요?
"아니 그게 말이죠."
"미안. 괜히 예민해졌어. 춤추면서 상대방 반응이 없으면 기죽거든. 같이 춤추는 사람도 안 섹시하다고 느끼는데, 보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생각 들어. 하···우리 좀 쉬자."
개떡 같은 논리인데 왜 찰떡처럼 이해가 돼지? 하긴 스킨쉽 하는데 상대방이 가만히 있으면 실망스럽기는 하지.
그래. 서영누나라면 몇 달을 함께 지낸 사이잖아.
이제 친구가 될 때가 되었다.
"누나 저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화장실에 들어가서 스마트폰을 켜고 실버 여사친 카드를 눌렀다.
여사친 등록하시겠습니까? 이름을 적어주세요.
한서영.
이름을 적자 서영 누나 얼굴이 뜬다. 민증 사진인가? 흑역사네.
등록 완료되었습니다.
첫 번째 여사친 등록 완료.
한정된 여사친 카드를 어떻게 써야 할까? 머릿속에서 많이 고민했다.
섹스가 우선일까? 아니면 그 사람과 오래 가는 가능성이 우선일까?
결론은 지금 내 마음을 우선으로 하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이 기준이다.
한서영 누나면 충분하다.
다시 연습실로 돌아왔다. 서영 누나는 포카리를 하나 나에게 건넨다.
"누나 우리 과티 때 했던 거 한 번 더 해봐요."
"아니야. 괜찮아 현찬아. 오늘 이 정도만 하자."
뭐라고요! 젠장. 나 이제 누나에게 반응한단 말이에요! 진짜 반응하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고요. 아니 이게 좀 이상하네?
섹스하고 싶다 그런 마음은 아니다. 단지 아이템을 샀으니 효과가 있는지 궁금하다.
"누나 신경 써주는 거면 괜찮아. 나도 미쳤지. 별 이상한 이유로 너에게 섭섭하고. 배치기 연습 한 번 더 하고 가자."
그래. 확인이 뭐 중요하겠어.
"누나 끝나고 맥주 마실래요?"
"너 차 가지고 왔잖아."
"대리 부르면 돼요."
"그래. 맥주 한잔 마시자. 오늘은 네가 사! 나 얻어먹을래."
서영 누나는 해맑게 웃는다.
우리가 친구가 됐다는 게 중요하지.
누나 이제 우리 진짜 친구네요. 오티 함께 잘 해봐요.
< 신입생 오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