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학년 종강 - 일학년 에필로그 >
너무 많은 일이 급하게 일어났다. 하나씩 정리 좀 해보자.
포인트는 20000포인트
크리스탈은 150개가 들어왔다.
150개 크리스탈 정도면 15억 정도. 포인트는 2억 정도. 합치면 17억이 보상으로 왔으니 실제로 손해 본 돈은 거의 없구나.
뭐 보상이 안 들어왔어도 나는 은미를 위해 돈을 썼을 거다.
대학교 1학년. 20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생에서 첫 사회로 나오는 순간. 이때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예전 인생에서는 1학년 지나고 은미와 연락 끊겼는데, 이번 생에는 졸업하고도 보려나.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 지켜보자.
현재 크리스탈은 256개. 군 면제를 바로 살까?
아니. 조금 더 있다가 사자. 어차피 대학생 4년 동안은 군대를 미룰 수 있다.
그러면 노래랑 춤 실력 뭐 이런 걸 바로 살까?
일단 제일 사고 싶은 건 우장춘의 손길이다.
씨 없는 수박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농업에 큰 발전을 하신 우장춘 박사님.
그분의 손길이면 더는 JYP를 외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올해에 씨를 없애기 위해서 쓴 돈이 6000만 원 정도 된다. 포인트로 쓸데는 몰랐는데 어마 무시하네.
그래도 섹스하면 포인트가 벌리니깐 이것도 일단 보류다. 크리스탈 구매는 조금 더 기다리자.
다음은 ITEM들을 한 번 살펴보자.
턱선 변경 : 2000포인트
입매 변경 : 2000포인트
피부 케어 : 1000포인트
하나씩 꾹 눌러서 확인해봤다.
턱선 변경 : 턱 라인이 서서히 바뀝니다. 양악 수술과 비슷한 효과입니다.
입매 변경 : 입 과 입 주위가 매력적으로 바뀝니다.
피부 케어 : 피부가 연예인처럼 서서히 깨끗해집니다. 다만 술, 담배, 위장크림 등 일상생활로 더러워 지면 다시 사야 합니다.
아니, 위장크림이 어떻게 일상생활이야?
턱선 변경이라. 내 턱이면 그래도 괜찮지 않나? 거울을 봤다.
전혀 괜찮지 않구나. 턱선, 입매, 피부 다 사자. 피부과 가도 되지만, 여러 번 가야 하고 귀찮다.
이게 돈이랑 포인트의 차이구나. 포인트로 있으니깐 게임 ITEM 사듯이 사지게 된다.
다음은 여사친 카드.
내가 가지고 있는 실버 여사친 카드는 6장,
골드 여사친 카드는 2장.
여사친 카드를 쓸 때는 소중히 써야 한다. 섹스가 기준이 되면 안 된다.
섹스가 기준이 되어서 샀다가는 다음날 남이 되는 그런 개떡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잖아.
그리고 섹스를 하고 싶지만, 쫓아다니지 않을 거다.
일 년 동안 섹스를 통해서 섹스의 정수를 깨달았다. 섹스는 마음과 마음이 공유되면서 몸이 공유될 때 최고의 행복을 주는 거다.
그래서 여사친 카드의 기준은 앞으로도 친구가 될 사람이어야 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달래주기 위해 어깨동무를 했는데 머리가 차가워지며 '응 네가 잘 못 했어'라면서 논리적으로 말하면 안 된다.
젠장 한편으로는 서글프네. 친구를 아이템으로 등록해야 한다니.
- 디리리링.
갑자기 울리는 내 휴대전화. 임석훈이다.
- 너 자취방이야? 은미랑 헤어졌다면서.
"응."
- 괜찮아?
"괜찮아."
- 나 지금 선미랑 자취방으로 갈게. 술이나 한잔 먹자.
"그러자."
그래도 친구밖에 없네. 이럴 때는 술 한잔해야지.
*
자취방에 펼쳐진 술자리.
임석훈, 이선미는 소주를 커다란 페트병으로 사 왔다. 무슨 과일주 담그냐?
이선미는 술을 글라스에 채워서 나에게 준다.
"자. 한잔 마셔."
"...나 죽일 생각 아니지?"
"원래 이별 했을 때는 이렇게 마셔야 해."
"미친. 야 술 때문에 죽겠다."
"그래. 마시고 죽어. 그런데 괜찮아 보인다."
"참는 거지."
"다행이네."
한동안 나를 위로하는 친구들.
임석훈이 궁금 한 게 있는지 나에게 묻는다.
"그런데 회사에서 연애 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모델도 그런 게 있어?"
"몰라. 사장 마음 아니겠어?"
우리 이야기를 듣던 선미가 한잔 마시고는 훅 들어온다.
"은미 한데 들었는데, 연예인 쪽으로도 생각하고 있대."
"연예인?"
"응. 그래서 연기 연습도 시킨다고 하더라고. 춤이랑 노래 연습도 시킨다던데."
하긴 저번 생에서도 박인혜와 패션쇼가 아니라 회사 행사 때 만났지. 박인혜는 모델을 연예인으로 키우려는 건가?
조금 있으면 케이블 티비가 열리며 나는 펫, X보이프렌드 등에 모델 출신들 연예인이 많이 나온다.
그 흐름을 미리 읽고 있는 거라면 박인혜는 똑똑 하기는 하다. 일단 지켜보자.
이번에는 임석훈이 자기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워서 나에게 건넨다.
"은미 레이싱 모델 해도 괜찮겠다."
"응?"
"애 가슴도 크고 몸매도 장난 아니고. 남자들이 딱 좋아하는 악!!!"
내 왼발은 임석훈 갈비뼈에. 선미 오른쪽 발은 임석훈 머리통에 있다.
"너는 친구 몸매를 평가해?"
"선미야 평가가 아니라 사실을 말하는 거야. 솔직히 가슴 큰 모델 봤어? 잘 없어. 나라면 은미 레이싱 모델 시킨다. 바로 스타 될걸?"
"지랄."
"어차피 성공하려면 어떻게든 유명해지는 게 제일 중요해. 혹시 알아? 올해 서울모터쇼에 나올지?"
"그래그래 네 맘대로 생각해라. 술이나 한잔 더하자."
다시 채워지는 세 명의 술잔. 이제 애들에게 폭탄을 던질 때가 되었다.
"선미야, 석훈아."
"왜?"
"왜?"
"나 과대 됐다."
"응? 2학년? 그래 네가 해."
"아니 선미야. 전체 말이야."
"...경영과 학생회장 한다고? 네가?"
"응. 혜진 누나에게 연락 왔어. 선배들끼리 쑥덕쑥덕하고 끝났대."
"아. 힘내 현찬아 너는 잘 할 수 있을 거야. 석훈아 미안 나 먼저 가야겠다."
"선미야 같이 나가자. 나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어."
캬! 이것들 손절 엄청 빠르네. 나는 이선미 다리를 붙잡았다.
"너희 둘 어디가! 도와줘야지!"
"지랄. 미안한데 1학년 과대 도와준 것만 해도 힘들어. 앞으로 따로 다니자."
"너무 한다. 야 임석훈. 이 새끼야! 기다려봐."
"아. 제기랄. 도어락 왜 이리 안 열려? 이 새끼 일부러 잠금장치 걸어놨어. 여기가 직쏘의 방이야? 나도 안 해."
누구 마음대로. 우리는 세트메뉴야. 내가 햄버거면 선미는 감자튀김 석훈이는 콜라야.
한동안 계속되는 실랑이. 우리의 술자리는 현관문 앞으로 옮겨졌다. 나는 현관문 앞 신발장에 앉았다.
한숨 쉬는 두 사람. 뭐 별수 없잖아. 이선미는 술을 한잔 마시더니 손으로 바닥을 친다.
"하. 어쩌다가 저런 친구를 사귀게 된 걸까? 아니 05학번들은 학교생활 아예 안 할거래? 04선 배들 빠지면 자기들이 하면 되잖아."
"몰라. 솔직히 작년에 아무것도 안 해놓고 3학년 됐다고 학생회장 해서 집행부 하는 것도 웃기지 않아?"
"그것도 그렇다. 그런데 투표는 왜 안 해?"
"투표했대."
"언제?"
"어제. 3학년들 끼리."
"아... 우리 과는 민주주의 아니었지. 깜빡했네. 부회장은 누군데?"
"박호빈."
정적. 내 자취방이 조용해졌다.
"애들아. 호빈이가 어때서? 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석훈아 잠시만! 여기 2층이야. 창문으로 뛰어내리면 다쳐."
"시발. 군대 가기 싫은데 여기서 뛰어내리고 면제받으련다."
"너 어차피 공익이잖아."
"그래. 다리 한 번 더 다치면 면제되겠지."
"말리지는 않을게."
"어? 아씨..."
임석훈은 다시 얌전히 와서 자리에 앉았다.
"별수 있냐. 잘 해보자. 우리가 과 재밌게 만들면 되지."
"아 몰라. 짜증 나. 다 짜증 나! 귀찮아. 아싸가 내 삶의 목표인데. 하기 싫어~~ 싫단 말이야. 현찬아 나는 빼줘요~~~"
"선미야. 애교 부르지 마라."
"아씨... 술이나 먹자."
채워줄게 가~득히. 원샷!. 우리는 다시 술을 마셨다.
"하여튼 2학년도 잘 해보자. 그러고 보니 우리 세 명밖에 안 남았네."
"이거 무슨 데스노트 아냐? 현찬이하고 사귀면 한 명씩 사라지는 거지. 이혜민도 사라졌고, 은미도 사라졌고. 선미야 너도 조심해. 현찬이 하고 사귀면 사라질지도 몰라."
이선미와 나는 벙어리가 되었다.
아. 그게. 처음 사귄 게 선미이긴 하거든.
"너희 둘이 반응 왜 이래? 어. 잠시만? 혹시?"
귀신같은 놈. 하여튼 눈치는 빨라서. 이선미가 임석훈을 발로 찬다.
"지랄. 그런 거 없어."
"아쉽네. 그런데 혜민이는 뭐 하려나? 현찬아 너 연락 한 적 있어?"
"수능 일주일 전에 잘 보라고 연락했어. 선미 너는?"
"수능 끝나고 만났는데?"
"어? 진짜?"
"응. 은미까지 해서 세 명이 만났어."
너희들끼리는 연락하는구나. 임석훈은 궁금한지 고개를 선미에게 들이민다.
"야. 그때면 현찬이의 전 여친과 현 여친이 만난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지랄. 민현찬은 금지어야. 위험한 초대 봤지? 거기처럼 민현찬 이름 부르면 날아가는 거야."
"크하하하. 졸라 웃기다. 학교는 어디로 간대?"
"글쎄? 그때는 수능 친지 얼마 안 됐으니깐 모르지. 과는 연극 영화과로 원서 넣을 거라던데?"
"다들 연예인 할 생각인가?"
"그건 아닌 거 같아. 무대 쪽에 관심 있어 하는 거 같아. 아. 이제 술 그만 먹자."
"그러자."
술자리를 정리했다. 지금 시각은 밤 10시. 친구들은 정리를 도와주고 밖으로 나갔다.
나도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춘리가 되어 발로 우리를 찬다.
세 사람은 자취방 앞에서 담배를 물었다.
이대로 헤어지기는 뭔가 조금 아쉽다. 술보다는 조금 더 놀고 싶다.
"선미야, 너희 바로 갈 거야?"
"왜?"
"우리 학교 앞에 가자."
"한잔 더하게?"
"아니. 스티커 사진 찍으러 가자."
"스티커 사진? 그러자. 가자!"
우리 세 명은 학교 앞으로 갔다.
*
스티커 사진 찍기 전. 우리는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야구장 가서 공도 치고, 인형 뽑기에 5만 원을 넣기도 하고. 손 바보여서 그런지 두 개 겨우 뽑았다.
지금은 스티커 사진기 앞이다.
이선미를 가운데, 나와 임석훈은 양옆에 섰다.
"조금만 아래로 숙이자."
"왜?"
"그런 이유가 있어."
찰칵.
사진이 찍혔다. 여덟 번 정도 찍는데 우리는 갖가지 표정을 다 취했다.
조금 있자 모니터에 나오는 사진을, 이선미가 보더니 웃는다.
"아하하하. 너 간만에 마음에 드는 행동 했다."
"왜?"
"한자리 비워 놨잖아. 은미 자리야?"
"힘들 때 친구가 있다는 걸 잊지 않게 해주려고."
이선미는 내 등을 팡 친다.
"많이 컸네. 코 찌질이 였던 게 말이야."
"웃기네."
"이제 사진 꾸미자. 내가 할게."
이선미는 펜을 잡더니 사진을 꾸몄다. 빈자리에는 동그라미를 쳐놓고 은미자리라 적었고, 밑에는 '친구야 사랑해'라고 적었다.
"선미야, 네가 은미한테 건네줘."
"알겠어. 이제 가자."
우리는 스티커 사진을 나눠 가진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
지금은 두 시 잠이 안 와서 침대에 누워 있다.
-디리리링
그때 오는 문자 소리. 은미다.
- 다음에는 나도 함께.
선미가 사진을 건네줬나 보다. 하여튼 행동력은 알아줘야 해.
답장을 적어서 보냈다.
- 언제든지 환영해.
열심히 해 은미야. 파이팅이야.
< 일학년 종강 - 일학년 에필로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