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먹지 못했던 여사친들-51화 (51/295)

< 피팅 모델 >

피팅 촬영 날 아침.

내 자취방에 석훈, 선미, 은미가 모여있다.

원래 목적은 피팅 촬영인데, 어쩌다 보니 소풍이 되었다. 지금 은미와 선미는 도시락을 만드는 중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요리대회에 나온 부패된 심해 생선 초밥 같은 걸 만드는 건 아니겠지?

"은미야 뭐 만들어?"

"나 베이컨 버섯 말이 만들었어."

요리로 추정되는 검은색 물체. 베이컨 독버섯 말이 인가? 그래도 목숨 걸고 도전하면 먹을 수는 있을 거 같다.

그 옆에 있는 선미. 요리하는 손놀림이 보통이 아니다. 너 백종원 선생님이니? 몇 번 도마에 착착 거리자 야채가 먹기 좋게 잘려나간다.

"선미 너 요리 잘하면서 라면 끓여달라고 한 거야?"

"내가 못 한다고 말했었나? 귀찮았나 보다. 내가 외국에서 자취한 게 몇 년인데. 자~ 한 번 먹어봐."

선미는 나에게 유부초밥을 건넨다. 그래, 얼마나 맛있는지 보자.

띠용! 요리왕 비룡이다! 유부초밥에 맛다시를 넣은 게 틀림없다. 아니면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하지만 옆에 은미가 있으니 표정 관리하자.

"맛있네."

"괜찮지? 은미 너도 먹어봐."

"아~~. 어! 엄청 맛있다. 석훈아. 와서 하나 먹어봐."

"야. 선미가 한 게 맛있어 봤자 얼마나 맛있."

말을 끝내기 전에 선미가 석훈이 입에 유부초밥을 넣었다.

오물거리는 임석훈. 눈이 동그랑땡처럼 커진다.

"미친. 존나 맛있네. 너 이거 사 온 거지?"

"사 오기는 무슨. 누나 감사합니다 하면 하나 더 줄게."

"누나. 감사합니다. 아니, 예쁜 선미 누나 감사합니다."

"갑자기 재수 없어졌어. 너희 둘 다 방해되니 저리 가 있어!"

매정한 것. 나와 임석훈은 침대 구석으로 쫓겨났다.

"너 그런데 왜 갑자기 피팅 모델 해?"

"나? 은미가 하고 싶어 하니깐."

"그게 다야?"

"글쎄."

사실... 싸이월드 업데이트용 사진을 찍는 게 목적이다. 어차피 트위터 때문에 사라질 거지만, 내 싸이에 은미와 찍은 사진이 너무 없다. 이런 게 다 추억이잖아.

그리고 혹시 알아? 싸이 투데이 멤버가 될지? 그러면 조회 수도 폭발하겠지?

이전 생에서 임석훈 싸이 조회 수 보면서 내가 얼마나 부러워했는데.

소소한 버킷 리스트. 나도 싸이월드 투데이 조회 수 10만 찍어보자.

은미가 일하는 옷 가게로 가자 장거한 같은 여자 사장님이 피팅 촬영할 옷을 정리하고 있다.

"언니 나 왔어요."

"은미야, 현찬아 너희 왔구나. 다른 친구들도 왔네."

"안녕하세요. 임석훈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선미예요."

"두 사람도 잘생기고 예쁘다. 너희도 오늘 촬영할 거야?"

임석훈과 이선미는 고개를 도리도리 돌린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우선 스튜디오 촬영부터 하자. 맞은편 건물이야. 이미 말해놨으니 올라가면 돼."

"그런데 저는 어떤 옷 촬영하는 거예요? 혹시 패션쇼 나오는 거처럼 그런 옷은 아니죠?"

"현찬아. 그냥 평범한 커플룩이야. 걱정하지 마. 어서 올라가자."

우리는 사장 누나를 도와서 옷을 한 짐 짊어지고 스튜디오로 올라갔다.

스튜디오에 올라가자 이번에는 사진작가 누나가 우리를 맞이해 줬다. 시간이 없나 보다. 인사를 끝내자마자 사장님이 우리에게 옷을 건넨다.

나는 셔츠 차림에 은미는 베이지색 블라우스로 무난한 커플 룩이다.

"남자 모델 분 재미난 포즈 취해 주세요."

사진사의 말에 '존나 좋군' 포즈를 취했다. 나 정도 피지컬이면 바로 끝나지.

"아하하! 저 미친 새끼. 저게 뭐야!"

"아. 미치겠다. 너 장난 하는 거야?"

빵 터진 이선미와 임석훈. 이거 이상한가?

이상한가 보네. 사진작가 누나가 사진기로 옷 대신 내 머리를 찍을 기세다.

"남자분 혹시 오늘 첫 촬영이세요?"

"네."

"아... 네."

실망하는 사진작가 모습. 거, 누나 너무한 거 아니오. 장난 좀 쳤다고. 제대로 해보자.

한손은 주머니에 넣고 한손은 은미 손을 잡았다. 고개는 가장 인체공학적 각도인 36.5도 옆으로 틀었다. 보고 있나요. 작가님? 이게 저입니다.

"어! 괜찮네요! 지금 괜찮아!"

훗. 달라진 작가 누나의 눈빛. 빠르게 셔터를 누른다.

찰칵. 찰칵.

놀란 건 이선미와 임석훈도 마찬가지. 둘이서 나를 보며 수군거린다.

"석훈아. 현찬이 느낌 있다."

"저 새끼 연습했나 본데?

아직 놀랄 사람 한 명 더 있지. 바로 사장 누나. 내가 '존나 좋군' 포즈를 취할 때만 해도 나라 잃은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자주국방 굳건이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현찬아 너 자연스럽다. 처음에 이렇게 잘하는 사람 처음 봐. 너 처음 맞아?"

아···그게 말이에요···섹스할 때 거울 보면서 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제 몸선을 알고 있거든요.

다시는 섹스를 무시하지 마라!

커플 촬영은 두 시간 정도 찍자 끝났다. 아오. 이것도 만만찮네. 계속 서 있고, 카메라 보러 간다고 걷고, 몇 번 하니 다리에 힘이 풀린다.

그래도, 은미가 계속 카메라를 돌려 보며 웃는 걸 보니 결과는 잘 나왔나 보다. 작가 누나에게 보관하게 몇 장은 직접 보내 달라고 까지 한다.

스튜디오 촬영은 끝. 이제 야외에서 커플 촬영만 하면 된다. 지금은 잠시 점심시간. 내 차 안에서 시트를 평평하게 접고 우리는 밥을 먹고 있다.

임석훈은 검은 베이컨 버섯 말이를 입에 넣고는 나를 본다.

"속옷 촬영 같은 건 안 해?"

"미친놈아. 속옷 촬영이 왜 나와?"

"재밌을 거 같으니까. 은미야 현찬이랑 속옷 모델 해."

은미가 그런 임석훈을 발로 찬다.

"야이 변태 새끼야. 너는 나 보며 그런 상상 하냐?"

"아니 너희 둘이 커플이잖아. 뭐 어때? 그리고 은미야. 너는 나랑 현찬이 대하는 게 너무 달라."

"당연하지. 그걸 말이라고."

계속 티격태격 하는 두 사람. 그만해라 이것들아 밥풀 차에 튄다. 너희는 새 차 매너도 모르냐?

이선미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재밌는지 보면서 웃는다.

"아하하. 쟤네들은 초등학교 때도 저랬을 거야. 현찬아. 너희 마지막 촬영 남았다면서?"

"응. 이제 길에서만 찍으면 돼."

"여기 지나가는 사람들이 연예인인 줄 알겠다."

"나 때문에?"

"지랄. 은미 때문이지."

그래. 너에게 다정한 말을 기대한 내가 아메바지.

그때 갑자기 트렁크가 열리며 장거한 사장님이 얼굴을 내밀었다. 저기요 김갑환 부르기 전에 노크 좀 하세요.

"사장님. 저희 아직 밥 덜 먹었는데요."

"응. 천천히 먹어. 다름이 아니라 꼭 부탁할 게 있어서."

"어떤 거요?"

"저기 이선미 씨."

"네?"

"죄송한데 촬영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돼요?"

갑작스러운 사장 누나의 부탁에 선미는 당황했는지 목에 사례가 걸렸다.

"켁!. 켁! 하... 하. 네? 아. 저는 별로..."

"꼭 부탁드릴게요. 이선미 씨에게 어울리는 너무 예쁜 옷이 있어서요."

"선미야 같이하자! 나 너랑 같이 사진 찍고 싶어."

"은미야... 그게."

씁. 나도 보고 싶은데? 이선미와 하은미의 더블 샷. 임석훈도 마찬가진가 보다. 나를 보며 눈짓을 보낸다.

오케이. 내가 먼저 설득할게.

"선미야. 그냥 같이 찍자. 아! 찍는 김에 석훈이도 찍으면 되겠다. 네 명이 추억 사진 찍자. 그래서 싸이월드에 올리는 거야."

"그래 선미야. 나도 같이 찍을게. 사장님 괜찮죠?"

"어머! 그것도 좋겠다. 그럼 여자 두 명 찍고, 남자 두 명도 찍고, 단체 샷도 찍자."

갑자기 너무 욕심 부리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지, 우리에게 좋은 거구나. 이렇게 아니면 언제 네 명이 사진 찍을까?

머뭇거리던 이선미. 계속된 설득에 결국 승낙의 웃음을 지었다.

"그래요. 그럼 우리 밥 먹고 나갈게요."

네 명이 찍는 사진이라. 이것도 추억이 되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는 임석훈. 양손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고 있는 나.

장동건 정우성의 발톱의 때 느낌이지만, 그래도 분위기 있다. 지나가는 여자들이 우리 두 사람을 구경하고 간다.

"연예인인가 봐."

"잘 생겼다."

수군거리는 소리. 기분 좋네.

"자. 끝났어요."

그런 사람들의 마음과 작가님의 마음은 다른가 보다. 몇장 찍더니 카메라를 아래로 내렸다. 아 왜요! 조금만 더 즐기게 해주세요.

"벌써요? 저희 몇 장 안 찍었는데요?"

"충분해요. 둘 다 인물이 좋잖아요. 이제 여자들 나와요."

"차에 있어서 안 들리나 봐요. 데리고 올게요. 임석훈!"

"이 미친놈아. 내가 무슨 꼬봉이야?"

"아니. 매니저야. 어서 가서 은미, 선미 데리고 와."

임석훈이 투덜 대면서 차 뒷문을 '똑똑' 두드렸다. 그러자 차 문이 열리며 은미와 선미가 내린다.

샤랄라라라라라 널 좋아 한다고~

둘 다 왜 이리 예쁘냐?

임석훈 솔직히 잘 생겼다. 얼굴 고친 나도 솔직히 잘 생겼다.

그런데 하은미와 이선미가 차에서 내리자 우리 두 사람은 바로 연예인에서 매니저로 강등되었다.

이선미. 나는 날카로운 여우라고 생각했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팔이 가려진 롱 니트에 짧은 치마. 머리에는 작은 베레모를 썼는데, 지금 당장 소지섭이 튀어나와서 나랑 사귈래? 나랑 밥 먹을래 외칠 거 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임수정만큼 귀엽다.

하은미. 몸에 착 달라붙는 체크무늬 원피스에 볼륨감 있는 몸매가 그대로 드러난다. 위에 살짝 걸쳐진 카디건, 나에게 애교 부렸던 모습과는 다른 날카로운 눈 화장.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야 라고 외치면 바로 김사랑 대신에 시크릿 가든에 섭외될 거 같다.

"와... 저 두 사람 뭐야? 연예인이야?"

"오늘 촬영 있나 봐."

수군덕거리는 사람들. 어쩌면 2016년이었으면 이 정도 반응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2006년. 한발 앞선 패션 때문인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인다.

아니면 여기가 서울이 아니어서 그렇던가.

모여드는 사람들 때문에 선미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반대로 은미는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온다.

"너희 둘. 진짜 예쁘다."

"정말? 나 오래간만에 이런 옷 입어 보는 거 같아. 선미 엄청 귀엽지?"

"아씨. 불편해. 사람들은 왜 이리 많아? 나 야구 모자 말고는 처음 써보는데."

"너는 평소에도 이렇게 입고 다녀. 맨날 츄리닝 입고 다니지 말고."

"지랄. 죽을래?"

아. 이선미였지? 깜빡했네.

사진작가님과 사장 누나는 이미 원하는 모습이 나왔는지, 빨간 마스크처럼 입이 귀에 걸렸다.

특히 작가 누나는 촬영이 시작되자 군대 유격 받듯이 여기저기 구르면서 사진 찍었다.

- 안 구르는데.

거 호구신님 따지지 좀 맙시다.

계속되는 촬영. 몇몇 사람들은 개인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촬영이 끝나갈 때쯤 사진작가가 나를 부른다.

"민현찬 씨, 임석훈 씨 네 명이 같이 찍어요. 응? 석훈 씨 어디 갔어요?"

"화장실 갔어요."

"그럼 일단 세 사람이 찍어요. 은미, 선미는 현찬 씨 팔짱 껴주세요."

두 사람이 내 팔짱을 끼자, 남자들이 나를 부러움 반, 분노 반을 눈에 실어서 본다.

뭐! 뭐! 내 친구들인데 뭐!

사진 몇 장을 찍자 임석훈이 뛰어오는 게 보인다.

"야! 빨리 와!"

"미안. 같이 찍자."

석훈, 나, 선미, 은미 순으로 나란히 섰다.

사진작가님이 요리조리 움직이면서 우리 네 사람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우리 이거 크게 인쇄해서 액자에 걸어놓자.

"이제 남자 두 명은 빠져주시고, 여자 두 명만 마무리 촬영할게요."

우리는 끝났다! 두 사람을 놔두고 임석훈과 담배를 피우러 구석으로 왔다.

"현찬아 어때? 재밌어?"

"피곤하다. 촬영 힘드네."

"그러게 말이야. 너 고생했어."

"네가 고생 많이 했지. 겉으로 보이지 않았어도 옷 들고 뛰어다니고 했잖아. 한 푼도 못 받으면서."

"너나, 나나 돈이 없는 건 아니잖아. 친구가 없는 거지."

"지랄. 너 같은 왕따랑 비교하지 말아 줄래?"

"웃기네. 나는 여자라도 많다. 너는 우리 말고는 뭐 있냐."

"그래 고오맙다."

낄낄대는 우리 둘. 그때 갑자기 뒤에서 누가 나를 툭툭 친다. 여기 금연 구역이었나?

고개를 돌리자 30대 중반의 여자가 우리를 보고 있다.

"저기..."

"아. 죄송합니다. 담배 끄겠습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혹시 저쪽에 여자 분 매니저인가요?"

"네? 아니요. 친군데요."

"아! 정말요!"

왜 그리 신나셨어요. 누나?

"저는 PIH 엔터인데 모델 기획사예요. 괜찮다면 한 사람 좀 볼 수 있을까 해서요."

"누구요?"

"키 큰 여자분요."

은미를 말하는 건가?

"저기 원피스 입은 사람 말하는 거죠?"

"네. 지금 아니더라도 나중에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명함 주시고 가면 제가 전달 해 드릴게요."

"아. 꼭 부탁드릴게요."

여자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나에게 준다.

낯선 여자에게서 전생의 냄새가 난다. 낯이 익다.

나는 낯선 여자를 빤히 쳐다봤다.

"저기..."

"네?"

".... 혹시 박인혜 실장님?"

"네? 저 아세요? 제 이름이 박인혜인데, 실장은 아니고 대표예요."

박인혜.

전생에서 우리 회사 행사 할 때 만났던 내츄럴 엔터 대표다. 40살의 모습과는 다르게 젊어진 30대의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다.

전생에서 박인혜와의 대화가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쳐 갔다.

"아! 그 대학 나왔어요? 거기에 하은미라고 아세요?"

"네. 1학년 때 같이 다녔어요."

"제가 옛날 모델 기획사 할 때 데리고 있던 아이거든요. 그때 회사가 어렵지만 않아도 더 키워 줬을 건데. 지금은 뭐 하고 지내는지 모르겠네요."

나에게 은미가 모델 한다고 말 해줬던 사람이다.

은미가 이때부터 모델을 한 건가?

< 피팅 모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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