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육 대회 >
아침 연습도 끝났다. 이제는 마지막 실전만 남았다.
시간은 오후 두 시. 정문 앞 도로에 차량을 통제하고 무대가 설치되었다.
내기 준비한 복장은 카고바지에 과 티다. 지금 당장 태양을 피하며 다녀야 할 것 같은 패션이다. 이래야지 여자 세 명이 더 돋보인다나.
다음은 은미, 선미, 서영 누나. 과 티에 짧은 하얀색 치마를 입었다. 8888577 비밀번호를 찍고 있는 한 프로야구팀 치어리더 같은 모습이다. 지나가는 남자들이 그런 세 사람을 흘깃흘깃 쳐다본다.
-지금부터 패션쇼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선언으로 시작된 무대. 딱 봐도 하기 싫은 학생들이 나와서 어색한 춤을 추고 있다. 크흑. 왜 전생의 나와 겹쳐 보이는 걸까?
이제는 우리 차례다. 일단 나 먼저 무대 위에 올라갔다.
-우우우우 꺼져라!
-잘생겼다~
소리 난 곳에 익숙한 사람들이 보인다. 인봉이형과 농활 때 만났던 은하 및 팬클럽이다. 인봉이형 두고 봐요.
-New music for summer 2
시작된 음악. 노래에 맞춰서 춤을 췄다. 잘은 못 추지만 생각보다 괜찮나 보다.
-오~~ 오~~
여자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너희 내년에 크리스탈 모으고 제대로 춤춰서 눈물 흘리게 해줄게.
-첨 에는 여자는~
브아걸 파트가 나오자 이선미가 무대 뒤에서 나에게 다가왔다. 풀 메이크업에 포니테일을 한 이선미. 헉? 너 왜 이리 예쁘냐. 나는 이선미의 허리를 잡고 내 쪽으로 끌었다. 선미는 웨이브를 하면서 한 손으로 내 허벅지부터 가슴까지 훑더니 오른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와!! 대박!!
-오~~~~!!!
군인이 된 공대 형들이 질투의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형... 형들 너무 그러지 마세요.
- 선은 넘어가라고~
이제 하은미 차례. 뒤에서 걸어와서 내 왼쪽 어깨에 손을 올린다. 너, 너도 평소보다 훨씬 예쁘잖아. 내 뺨부터 허벅지까지 쓰다듬는 은미. 나는 팔을 뻗어 가슴을 감싸야 하는데 조금 과격하게 하느라 가슴을 만져버렸다.
-와아!!!!! 방금 뭐야?
-꺅! 대박!!!!!
비명에 가까운 환호 소리가 들린다. 과감해질수록 더 커지네?
- 너무 오래 끌면 질릴지~
이제 서영 누나가 나올 차례다. 앞으로 나와서 선미와 은미 손을 내 어깨에서 걷어내고 내 앞에 선다. 그리고 절반은 내 몸에 걸친 채 웨이브를 한다.
이제 나는 슬쩍 빠질 차례. 선미, 은미, 서영 누나 순으로 서서 칼군무를 추자 정문은 군부대가 되었다.
-경영! 경영! 경영!
계속되는 세 사람의 안무. 촬영하는 사람들까지 보인다. 이제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다. 누나의 섹도시발, 아니 섹시도발 댄스. 누나는 내 앞에서 서서 안겼다.
아 원츄
팔을 올려 누나 머리를 쓰다듬는 나.
알아 늑대들의 말.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드는 누나. 계속 서로를 쓰다듬는 안무에 정문은 환호와 비명으로 가득 찼다. 이제 하이라이트인 엉덩이를 내 쪽으로 내미는 안무다. 누나가 숙였다가 일어나자 다들 발을 구른다.
- 미쳤다. 미쳤어
- 방금 부딪힌거 아냐?
네. 누나가 과격하게 하느라 부딪혔어요. 이제 마지막 피날레다. 음악이 끝나는 타이밍에 나는 팔짱을. 은미와 선미는 양옆에서 내 어깨에 손을, 서영 누나는 내 앞에 한쪽 무릎만 꿇고 앉으면서 무대가 끝났다.
- 와!! 멋있다~ 경영 최고야!
- 한 번 더! 한 번 더!
정문을 울리는 함성 과 박수.
이 맛이구나. 짜릿하다. 온몸에 전율이 감돈다. 우리는 다 같이 손잡고 인사한 후 무대를 내려왔다.
"대박 우리 너무 잘했어!"
"언니가 잘해줘서예요."
"언니 수고했어요!"
세 명이 서로를 칭찬하는 모습. 뿌듯하구먼. 세 명으로 걸 그룹을 만들어 볼까? 임석훈이 목발을 집고 다가와 나를 보며 웃었다.
"너 연습 정말 많이 했다."
"죽을 만큼 했어. 내 인생 최고의 노력이다."
"병신 같지만 괜찮았어. 아씨. 나도 다치지만 않았으면 나가는 건데. 아쉽다. 이제 곧 발표한대."
"정말? 벌써?"
- 과 티 패션쇼 우승 학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진짜네? 무대 위에서 종이 쪼가리를 들고 있는 사회자. 나와 눈이 마주쳤다.
- 우승. 경영학과입니다. 축하합니다.
"현찬아 우리가 우승이야."
내 품에 안기는 은미. 옆에서 안기는 선미. 그리고 서영 누나도 나에게 안겼다.
"누나 고생했어요."
"현찬아 우리가 일등이야!"
"그렇게 좋아요?"
"응! 나 너무 좋아!"
누나는 어린아이처럼 나에게 안겨서 깡충깡충 뛰었다.
- 경영 대표 나와서 수상이랑 상금 받아 가세요.
기뻐하는 우리를 보며 말하는 사회자가 말했다. 대표라.
"누나 어서 나가요. 대표 나오라잖아요."
"어? 네가 대표잖아."
"나는 두둠칫 한 것밖에 없어요. 누나가 우리 대표였죠. 맞지 얘들아?"
이선미는 내 얼굴을 한쪽으로 민다.
"맞아요. 언니가 고생했죠. 이 새끼는 두둠칫만 했어요."
은미와 석훈이는 머뭇거리는 서영 누나 등을 밀었다.
"언니. 언니가 대표로 올라가요."
"누나. 어서 올라가요. 늦으면 100만 원 못 받아요."
"아니 그래도 현찬이가."
"누나 올라가세요. 얘들아. 밀어드리자!"
서영 누나는 우리에게 등 떠밀려 올라갔다.
- 와!!!!!!!!!!
- 최고였어요!
- 언니 멋있어요!
비 내리듯이 환호성이 쏟아진다. 무대 위에 선 누나는 감동했는지 눈물을 글썽인다.
-네! 환호성이 대단 한대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한서영입니다.
-고생하신 팀장님을 위해 다시 한번 큰 환호 부탁드립니다. 한!서!영!
-한서영! 한서영! 한서영!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내년, 과 티 패션쇼도 기대해 봐도 될까요?
-내년에는 더 제대로 보여 드릴게요.
서영 누나는 갑자기 우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저기 있는 제 친구들과 함께요! 애들아! 고마워! 나 고생했으니 맥주 사줘!
맥주라. 저 말의 진짜 의미는 나밖에 모르겠지? 양손을 들어 엄지를 세워줬다. 누나 이제 우리 진짜 친구네요!
*
우리는 개강 주를 마셨던 그 술집에 뒤풀이 중이다.
다들 술에 미쳤다. 이때까지 체육대회는 스쳐 지나가는 행사였는데, 우리 과 최초로 우승을 해서 오늘은 전부다 한계선 없이 달리고 있다.
그중에서 제일 미친 사람은 바로 나! 서영 누나와도 친해졌고, 상금도 얻어냈고! 미션 컴플리트. 모든 걸 이뤘구나.
"우리 과대 잘했어!"
"현찬아 최고야! 내년에는 네가 학생회장 해!"
"민현찬! 민현찬! 민현찬!"
이게 바로 과대라는 거야! 그나저나 은미가 없어서 아쉽다. 피팅 촬영 마치고 늦게 합류한다고 했는데. 언제쯤 오려나?
이미 두 병 넘게 술을 마셨다. 은미 오기 전에 정신 좀 차려야겠다. 술을 깰 겸 화장실에 갔다. 일단 잠시 홍수를 일으키자. 화장실 변기에 있는 나프탈렌이 노아의 방주처럼 출렁인다.
"아. 너무 많이 마셨나. 현찬아. 오늘은 취하면 안 된다. 정신 차리자. 아. 섹스 하고 싶다."
어? 미친. 나 새로운 술버릇 생겼나 봐. 눈을 감고 병조판서에게 내 몸의 리듬을 맡겼다.
"섹스. 섹스. 섹스 온 더 비치."
-딸깍.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끌어 안았다. 은미 왔구나.
-꼬무룩.
아니다. 은미가 아니다. 키도 아니고 내 뒤에 느껴지는 가슴 감촉도 은미 사이즈가 아니다. 그리고 누군지 알겠다. 꼬무룩 해지는 나의 소중이. 서영 누나다.
"누나. 나 지금 볼일."
"현찬아~ 고마워."
"누나 잠시만요. 나 3초만요."
서영 누나는 내 몸을 감싼 팔을 푼다. 몸을 앞으로 돌리자 다시 나를 꽉 안는다.
"너 왜 계속 섹스라고 외쳐? 그렇게 섹스 하고 싶어?"
"누나. 그게 아니라 미쳐서 그래요."
"누나랑 할래?"
이게 무슨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지는 급전개인가? 맥주 사주면 된다는 친구가 설마 그 친구? 나는 놀란 얼굴로 누나를 보았다.
누나는 빨개진 볼로 나를 올려다 본다. 나는 현자가 되어 누나의 심리 상태가 맵핵을 킨 것처럼 훤하게 보인다. 2002월드컵 이론이 적용된 분위기인데?
월드컵 때문에 흥분된 감정을 옆에 있는 사람 탓으로 착각한다는 이론. 그 고양된 흥분감을 더 느끼고 싶어서 섹스까지 이어지기도 해 실제로 월드컵이 있었던 다음 해인 2003년과 2007년은 그 전년도에 비해 출산율이 올라갔다. 아니 왜 이런 게 내 머릿속에서 튀어나오는 거지?
아무튼 지금 서영 누나도 마찬가지인거 같다. 낮에 무대에서의 흥분과 술까지 마셔서 오픈 마인드가 된 상태. 기회는 이때다.
병조판서! 병조판서!
- 전하. 병조판서가 의식이 없습니다.
김첨지 마음을 알겠다. 왜... 왜 설렁탕을 사 왔는데 먹지를 못하니.
"현찬아 누나는 별로야?"
"누나. 그게 말이에요."
지금 제가 황희정승 맹사성 장영실로 이어지는 조선 유학자와 맞먹는 현자거든요. 오죽하면 술까지 깨네. 다음에 술 취하면 누나에게 안아 달라고 해야겠다.
"이래도?"
내 손을 잡아서 자기 상의 속으로 넣는다. 말랑한 누나의 가슴. 꽉 찬 A컵으로 가슴은 물방울 형상으로 예상되며, A컵 브라를 착용할 경우 압박감이 조금 느껴지는···아씨 미치겠네.
그때 갑자기 누나가 내 소중 이를 잡았다. 손으로 비벼도 아무 반응이 없자 당황하더니 운다.
"나는 매력 없구나···흑···흑···"
아니. 울지 마세요. 고추가 안 서서 여자를 울리는 일이 내 인생에 생기다니.
호구신님 여사친 카드 대여 안 되나요? 누나의 우는 모습을 보니깐 마음이 너무 아파요.
- 마이너스 100억 어때? 콜?
잠시만요. 손익계산서 좀 따져보고요. 아씨. 왜 이리 현명해지냐. 일단 누나를 진정시키자.
"누나 미안해요. 누나를 친 누나처럼 생각해서 그런 거여요. 누나가 매력이 없어서 그런게 아니니깐 울지 마세요."
강제 멋있는 남자가 되는구나. 누나는 마음이 조금 풀렸는지 눈물을 닦는다.
"미안 현찬아. 나 조금만 안겨 있을게."
"네···누나."
"고마워···그리고 미안해."
"아니에요"
"은미는 좋겠다. 이런 순수한 남자친구 있어서."
어···일단 그런 거로 하죠.
"현찬아. 나 갑자기 후회되는 게 있어."
"뭐예요?"
"일 학기 때 복학 안 한 거. 그랬으면 내가 네 옆에 있을 수도 있었는데. 아쉬워."
누나는 핸들이 고장 난 에잇 톤 트럭. 갑자기 고백하다니.
말을 끝내고 갑자기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더니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한다.
"나 뭐 한 거지! 아 진짜 미치겠어. 현찬아 미안. 고백 못 들은 거로 해줘."
누나. 고백이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은데요. 가슴 만지게 해준 게 더 부끄러워야 정상 아닌가요?
"누나. 그럴 수도 있죠. 저도 그랬거든요. 이제 나가죠."
"그래. 아 쪽팔려. 현찬아 제발 비밀로 해줘."
"싫은데요~ 한 번씩 놀려야지."
"아 몰라. 그래도 내가 한 말은 진심이야. 그리고 너도 오늘 후회할걸? 나 잘 주는 여자 아니거든."
누나는 배시시 웃는다. 저번 생에서 내가 아는 누나는 은장도로 변사또 모가지 딸 정도로 청순 그 자체였는데. 진짜 여자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화장실을 나온 우리. 누나는 술집으로, 나는 잠시 밖으로 나와서 담배를 하나 물었다.
- 그랬으면 내가 네 옆에 있을 수도 있었는데.
나를 좋아한다는 누나의 말. 슬픈 건 그 말을 들을 때 전혀 떨리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화장실 타일이 몇 개인지 세어질 정도로 차분했다. 현자 상태 때문인가? 누나의 감정이 이해가 될 뿐 마음속에 공유가 되지 않았다.
친한 사람의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 그것 자체가 고문이다. 사이코패스가 된 기분이다.
여사친 카드. 어떻게든 얻어야겠다.
- 이 새끼. 머리 엄청 굴렸는데? 합리화 쩔어요.
호구신님. 그러니깐 힌트 좀 줘요.
- 실버 카드 힌트 줄게. 섹스와 관련되어 있어.
섹스요?
다시 대답 없는 호구신. 섹스라. 역시 쓰리섬인가? 아니지, 그랬으면 SES와 할 때 얻었어야지. 도대체 뭘까?
아. 머리 아프다. 일단 최대한 많이 섹스를 해보자. 그러면 정답이 나오겠지.
*
다음날 아침. 오래간만에 혼자 집에 있다. 현재 내 머릿속은 단 하나의 생각에 집중되어 있다. 바로 여사친 카드다. 섹스와 관련된 게 뭘까? 일단 전문 지식을 얻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 매직미러
- 시간아 멈춰라
- 게임해서 지면
프루나 오래간만이네. 섹스의 원피스가 한때 이곳에 있다가 토렌트로 옮겨갔지.
-디리리링.
그때 갑자기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침부터 누구지?
"여보세요."
-너 뭐해?
"누구세요?"
-나 지민이야.
지민이? 아! 고등학교 동창인 티몬과 품바에서 품바!
"품바!"
-너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다음 주 명절이잖아. 어떻게 내려갈 거야? 표 구했어?"
"아니. 내 차 타고 내려갈 건데."
-안 그래도 호빈이가 너 차 있다고 하더라고. 나랑 은하도 같이 데리고 내려가 줘.
"은하? 아 고등학교 은하. 알겠어. 일단 자세한 약속은 나중에 잡자."
-응. 그리고 이번 명절 때 동창회 한대. 거기 같이 가자. 너 진아 기억나?
"진아?"
진아···진아. 최진아?
"최진아?"
-응. 너랑 엄청 친했다면서? 너 변했다니깐 보고 싶다고 하더라.
친했다니! 최진아 너만 친했겠지. 삼국지에 인중여포 마중적토가 있다면, 내 삶에는 대중은미 고중진아가 있다. 대학교 중에서는 하은미가 제일 나를 부렸고, 고등학교 중에서는 진아가 나를 제일 부렸다.
2년 동안 같은 반이었는데, 과학 시간에 0.001g까지 측정되는 정밀 전자저울에 몸무게 잰다고 올라가서 작살 냈던 아이다. 내가 그랬다고 선생님께 일렀는데 나는 아무 말도 못 했었다. 진짜 다시 생각해도 전생의 나는 호구중의 호구다.
"그래. 알겠어. 일단 명절 때 다시 연락할게."
진아라.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추억이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가 아니라 바로 작년이구나. 그러고 보니 환생하고 대학교 친구들하고만 놀았구나. 이번 명절 때고등학교 친구들도 한번 봐야겠다.
< 체육 대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