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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못했던 여사친들-42화 (42/295)

< 체육 대회 >

춤을 연습 한지 사흘이 지났다. 프로듀스 101 가희에 빙의한 서영 누나 덕분에 생각보다 춤 실력이 늘었다.

현재 크리스탈은 66개. 크리스탈로 춤 실력을 사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런 목적으로 은미와 섹스를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은미도 구속 플레이를 마냥 좋아하지는 않았다. 적절한 순간과 적절한 분위기에 구속되는 걸 좋아할 뿐. 그래서 세 번 정도 분위기 있게 구속한 게 전부다.

과티 패션쇼는 잠시 뒤로 미루고 이제는 축구 차례다. 운동장에서 몸 풀고 있는 우리들. 반대쪽 스탠드에 있는 상대편을 보자 연병장이 떠오른다.

익숙한 주황색 상의다. 유니폼을 활동복 디자인으로 맞췄다. 일부러 저렇게 맞춰서 입고 왔다니 어느 과인지 대충 예상이 된다. 아니나 다를까 익숙한 얼굴이 계단 위에서 뛰어 내려온다.

바로 인봉이 형이다.

어? 그런데 형이 왜 있지? 저번 생에서도 나랑 같이 시합했었나?

"안녕하세 악!"

"야 이 개새끼야. 너 은미랑 사귄다면서!"

"형. 잠시만요. 아니 사귀는데 왜 때려요?"

"그래야지 분이 풀리니깐."

"아니. 그게 무슨. 악!"

축구 때문에 온 게 아니구나. 그냥 나를 패러 온 거구나. 누가 나 좀 구해줘. 여기가 구타 현장이에요.

"인봉 오빠. 현찬이 뭐 잘못했어요?"

경찰이 오셨군요. 하은미가 달려와서 뒤에서 나를 안았다.

"안녕 은미야. 그냥 반가워서 그래."

"우리 현찬이 괴롭힌 거 아니죠?"

"그럼. 전혀 아니야. 그렇지 현찬아?"

"맞는데요. 괴롭힌 건데요."

"치사한 놈. 은미한테 이르다니. 치트키 쓰냐. 농담이고 두 사람 축하해. 나중에 같이 술이나 먹자. 너 조심해라. 우리 과 거칠다."

인봉이 형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은미에게 안겨 있는 나를 11명의 남자들이 눈에 불일 키고 본다. 형 말이 맞네요. 거칠어 보이네요

운동장에 일렬로 선 22명의 사람. 경기전 악수를 했다. 그때 응원소리가 들렸다.

"민현찬 파이팅!"

은미야. 그만해줘. 네가 그럴수록 사람들이 투지에 불타기 시작해.

-삐익!!!!!!!!

호각 소리에 시작된 경기. 확실히 밀린다. 저쪽은 몇백명의 남자 중에서 고른 정예부대다. 축구를 하러 왔는지, 스파르타인이 되어 그리스를 침공하는 페르시아를 막으러 온 건지 헷갈린다.

하지만 알고 있었지. 저번 생에 5-0으로 졌으니깐. 그 패배의 충격이 10년 넘게 기억 날 정도로 생생하다. 이번 생은 다르다. 나는 극 수비 후 역습 전략을 들고나왔다.

"현찬아!"

약속된 플레이. 공을 올려주는 임석훈과 달려나가는 나. 수비가 속도가 느려서 따라잡지 못한다.

가슴 트래핑은 할 줄 모르고. 떨어지는 공을 향해서 막무가내로 달렸다. 당황하는 키퍼와 뒤에서 쫓아오는 수비수 사이에서, 나는 침착하게 오른쪽 구석으로 피파 Z+D 슛을 날렸다.

-출렁.

골대를 지나서 그물망에 걸리는 축구공. 선제골 성공이다! 나는 스탠드에 서있는 은미, 선미, 서영 누나에게 달려갔다.

"호우!"

세레머니는 누가 뭐래도 호우지!

"꺄~~ 현찬아!"

"저 미친 새끼 세레머니 뭐야."

"현찬아 잘했어."

나를 향해 환호하는 세 사람을 보자 이 순간 박지성 형님 부럽지 않다. 임석훈도 나에게 달려와 머리를 쓰다듬는다.

"임석훈. 나이스 패스였다."

"이 형님 이래 봬도 선출이야. 그런데 큰일 났다."

"왜?"

"저기 형들 얼굴 봐봐."

열한명의 기계과 형들. 쥐라기 월드컵 아크처럼 살벌한 표정이다. 설마 죽이지는 않겠지?

-삑

다시 시작된 경기. 아니나 다를까 플레이가 거칠어졌다. 특히 수비수는 아예 내 옷을 잡고 놓지를 앉는다.

-악!

그때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임석훈이 다리를 붙잡고 쓰려져 있다. 석훈아 너는 절대 다치면 안 돼! 스탠드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임석훈에게 달려갔다.

"너 괜찮아?"

"헤딩하다가 잘 못 떨어졌어. 발목 조금 삐끗한 거 같은데 뛰지는 못하겠어."

"죽는 거 아니지?"

"고맙다. 네가 진짜 친구다. 이 개새끼야. 들것 불러줘."

"진짜야?"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부축이나 좀 해주라."

깜짝이야. 결국 임석훈은 부축을 받으며 운동장을 나갔다. 다시 시작된 시합. 수비의 핵인 임석훈이 빠지자 역사대로 경기는 끝났다. 5:1 패배. 바꿀 수 없는 것도 있구나.

땀 범벅인 채로 스탠드에 가자 은미가 수건과 개토레이를 건네준다.

"현찬아. 골 넣었는데 져서 어떡해. 괜찮아?"

"괜찮아. 은미야. 잘 마실게!"

패배는 별로 아프지 않다. 기대는 하긴 했지만, 이길 거라는 생각은 크게 안 했으니깐.

"그런데 표정이 왜 이리 안 좋아?"

"나? 석훈이 걱정돼서."

임석훈 빠지면 과티 패션쇼 나 혼자 춤춰야 하잖아. 제발 아무렇지 않아라.

- 너 친구 맞아?

호구신님. 원래 이런 반응이 진짜 친구예요.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다시 과 방에 모인 우리. 임석훈은 반깁스를 다리에 한 채 싱글벙글 쇼를 찍고 있다.

"현찬아. 어떡하지?"

"아니야. 아무 말도 하지 마. 다 잘될 거야."

"응. 다 잘될 거 같아. 보름 동안 조심하래."

"의사 선생님은 보통은 그렇게 말씀하셔."

"특!히! 춤 같은 건 절대 추지 말래. 으하하하하!"

젠장. 너 많이 신나 보인다.

"석훈아 잘 생각해봐. 이거는 추억이야. 나는 네가 안 해도 상관없지만, 추억이 없어지는 게 너무 슬퍼."

"지랄. 우리 엄마가 약산데 어디서 약을 팔아."

중지를 들어주는 임석훈. 깔끔하네. 이제 어떻게 하지? 혼자서는 정말 하기 싫은데. 일단 춤 전문가 의견을 들어보자.

"서영 누나 어떻게 해요? 저 혼자 할까요?"

"음... 너 혼자서는 힘들 거니깐 노래를 바꾸자."

"노래를요? 어떤 거로요?"

"조PD 홀더라인으로 바꾸고 현찬이 너를 중앙에 세우고 우리 세 명이 섹시 댄스 추는 거로 하면 괜찮을 거 같은데."

섹시 댄스? 갑자기 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네! 네! 네! 그렇게 해요. 안무는요?"

"채연 둘이서 안무에 포인트만 넣으면 될 것 같아. 대신 현찬이 너는 처음부터 다시 다 배워야 해."

"과티 패션쇼는 모레인데요? 그래도 해볼게요. 나 자신 있어요."

"너 자신 있는 표정 보니 내가 자신이 없어진다. 오늘 내가 안무 짤 테니깐, 내일 나랑 일대일 연습 계속하자. 춤이 달라져서 은미가 가르쳐 줄 수가 없어. 은미야 괜찮지?"

"네 언니. 괜찮아요. 저 어차피 내일은 저녁에 피팅 촬영 있어서 못 하거든요. 현찬아 힘내."

서영 누나와 섹시 댄스 연습이라니. 한 번 해보자.

다음날. 은미와 선미는 이미 춤을 다 배우고 학교를 나갔다. 지금 과 건물 복도에는 나와 서영 누나 밖에 없다.

내 앞에 짧은 반바지와 하얀 바람막이 잠바를 입고 있는 서영 누나. 하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그 땀을 닦아 내자 단발머리가 흔들린다.

저녁 8시쯤 되었나? 벌써 춤 연습도 3~4시간 정도 했다. 서영 누나 혼자서 은미, 선미 파트까지 맡아서 나에게 춤을 가르쳐 주었는데, 한 마디로 굉장히 야하다.

"현찬아. 은미 파트 한번 더 하자."

다시 시작된 연습. 노래에 맞춰서 내 옆에 서영 누나가 선다. 그럼 나는 한쪽 팔로 끌어안으며 한쪽 가슴을 감싼다. 물론 손을 가슴에서 어느 정도 떨어뜨리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실수로 나도 모르게 누나 가슴을 건드리게 된다. 내가 안으면 누나가 다음 동작으로 내 뺨부터 가슴, 허벅지까지 손으로 훑고 내려온다.

은미 파트가 끝나자 누나는 머리를 묶으면서 유니콘 보듯이 나를 본다. 신기한가 보다.

"너 섹시 댄스는 잘 춘다."

누나가 섹시할수록 나는 현자가 되거든요. 누나 몸을 터치할 때마다 흥분이 사라지며 춤 동작이 나노 단위로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 무슨 저주란 말인가?

이번에는 선미 파트. 누나는 몸을 숙여 나의 다리부터 가슴까지 손으로 훑고 올라온다. 그럼 나는 누나의 허리를 안은 채 한번 잡아 끌었다가 풀어 주면 된다. 은미 파트 때문인지 선미 파트는 초등학교 때 춘 마카레나처럼 건전하게 느껴진다.

"이제 마지막 내 파트 하자."

누나는 내 앞에서 나와 겹쳐져 서 있다. 엉덩이를 내 허벅지 쪽에 닿을 듯 말 듯 하게 위에서 아래로 한 번 내려갔다 올라온다. 나는 그 움직임에 맞춰서 누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으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 누나는 한 걸음 앞에서 몸을 숙여 엉덩이를 내 중심부 쪽으로 내민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는 동작인데, 이게 실제로는 떨어져 있지만 멀리서 보면 부딪히는 거처럼 보여서 굉장히 야하다.

"잘하네. 진작 섹시 댄스 할 걸 그랬어."

"은미, 선미랑 하면 잘 못 할 수도 있어요."

"왜? 걔네 둘은 섹시해서? 나는 안 섹시한가 봐. 아무 반응 없는 남자 처음이야."

"누나는 귀여운데요? 잠시만 무슨 반응요?"

"아하하! 농담이야. 원래 춤 잘 추면 안 부딪혀서 몰라."

"근데 누나 민망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덤덤하네요."

"응. 이거는 약한 편이야. 어차피 춤인데 뭘. 연영과 같은 경우에는 실제 키스도 하고 그러잖아."

연영과에 아는 사람이 누가 있었더라.

"너야말로 처음인데 아무렇지 않아서 놀랐어. 보통 부끄러워서 제대로 못 하거든."

"저는 프로입니다. 이런 거에 민망해하지 않아요."

"아하하하. 여자 경험 많아서 그런 거 아냐?"

참. 살다 보니 이런 말도 들어 보는구나. 그나저나 이제는 9시. 과 건물 문 닫을 시간이 다. 그런데 바로 집에 가기는 조금 심심하다.

"누나 이제 내려가요. 맥주 한잔하고 가는 거 어때요?"

"그러자. 나도 오래간만에 춤췄더니 바로 집에 가기는 아쉬워."

"학교 스탠드에서 콜?"

"콜."

땀 흘린 뒤 맥주 한 캔은 국룰이지.

"현찬아. 내가 낼게."

편의점에서 계산하는 서영 누나는 여전히 나에게 신세 지기는 싫나 보다. 우리는 맥주를 들고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 나란히 앉았다. 가을밤, 학교 운동장에는 우리처럼 맥주 마시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현찬아 오늘 수고했어. 짠!"

"짠! 누나도 수고했어요."

"아 오래간만에 춤추니깐 스트레스 풀린다."

누나는 기지개를 피며 환하게 웃는다.

"누나 춤 추는 거 재밌나 봐요?"

"응. 막 가슴 두근거려. 특히 무대에서 사람들이 볼 때는 더 재밌어."

"연예인 해보지 그랬어요?"

"집에서 죽어도 안 된대."

지금은 2006년이니깐, 아직 어르신들이 연예인에 대해서 관대하지 않다.

계속되는 서영 누나의 이야기. 춤을 추면서 자연스럽게 된 스킨쉽이 친밀도를 올려 줬는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에게 해준다. 남동생이 하나 있는 거, 고등학교 때 댄스 동아리 덕분에 인기 많아서 편지도 받아 봤다는 거, 고향 집은 경기도 용인이라는 거 등등.

대부분 소소한 이야기인데 나에게는 디스패치 특종이다. 전부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중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물어보면 안 될 거 같지만, 그런 이야기일수록 더욱 궁금하다.

"누나. 그런데 05학번 동기들하고는 연락 안 해요?"

누나가 복학하고 나서 05학번 동기들하고 인사하는 걸 전생에도, 이번 생에도 본 적 없다.

"05학번? 연락 안 해."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고개를 돌려 서영 누나를 봤다. 하얀 피부에 짧은 단발머리가 바람에 휘날리자 눈동자에 슬픔이 묻어나온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

"현찬아. 너희들에게 미안한데, 솔직히 나 대학교 사람은 친구라고 생각 안 해."

"왜요?"

"작년에 맞았을 때, 동기들이 신고하면 다 도와준다고 했거든. 그래서 신고했어. 처음에는 도와주다가 학교까지 시끄러워지니깐 다 빠지더라.

그때 느꼈어. 대학교 친구는 진짜가 아니구나. 그때부터 대학교 사람들한테는 나도 모르게 벽이 생겨. 괜히 너희들한테 미안하네."

영의정.

-네

대가리 박고. 나를 따라서 말한다. 사람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 사람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응? 너 말이야. 누나가 아픈 사연이 있는 것도 모르고 네 멋대로 판단하고 말이야. 병조판서 너도 머리 박아. 어! 바로 여사친 카드 구하는 거 호구신에게 물어보고! 그러면 되겠어?"

그때 들리는 호구 신의 목소리.

- 이 새끼는 지 불리하면 자아분열이야. 너 선택적 다중인격자냐?

그런가 봐요. 제 몸에는 다중이가 살고 있어요.

"현찬아. 무슨 생각해?"

"아니에요. 그냥 누나가 속마음을 드러내는 건 처음인 거 같아서요. 힘들었겠어요."

"다 지난 일인데 뭐. 나도 별일이네. 너한테 이런 말을 다 하고."

얼마나 상처받았을까?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 등을 돌렸으니.

"너희도 친구라고 생각 안 한다니깐 섭섭하지?"

"괜찮아요. 사람들은 다 자기만의 이유가 있잖아요."

"고마워 이해해줘서. 그래도 정말 너에게 감사하고 있어."

"저에게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다.

"응.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었는데, 너가 챙겨줬잖아. 혜진 언니하고 화해도 하게 해주고. 그중에서 내가 제일 고마운 게 뭔 줄 알아?"

"어떤 거예요?"

"재밌는 학교 생활하게 해준 거야. 나 복학하면 혼자서만 다니기로 마음먹었었거든. 그래도 한쪽 구석에는 재밌게 다니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나 봐. 너희랑 같이 다니는데 너무 즐거운 거 있지? 고마워 현찬아."

서영 누나는 하얀 손을 내밀어서 나에게 악수를 청한다. 나는 하얀 손을 잡았다.

"누나 부탁 하나만 할게요."

"뭐?"

"나중에 우리가 친구라고 생각되면 그때는 맥주 사달라고 해주세요. 누나는 한 푼도 안 내고요. 어때요?"

"아하하하. 맥주? 맥주라. 그래 알겠어."

"그리고 누나. 미안해요."

"응? 뭐가?"

나 혼자 삐져서요.

"그런 게 있어요. 이만 일어나죠."

"그러자. 내일 패션쇼 하기 전에 새벽부터 열심히 연습해야지!"

"아. 제발. 이제는 힘들어요. 누나랑 친구 하기 급 싫어졌어요."

누나는 웃으며 내 등을 팡팡 때린다.

"아하하. 왜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힘내자 현찬아."

"누나 즐기는 거 아니죠?"

"헤헤헤 들켰네. 느는 게 보이니깐 재밌어. 내일 과티 패션쇼도 잘 해보자."

해맑게 웃는 누나의 모습. 전생에는 못 봤던 환한 미소다.

< 체육 대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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