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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못했던 여사친들-35화 (35/295)

< 하은미 >

침착하자. 이선미였을 수도 있다. 그래! 이선미가 내 고추를 만져주고 간 후 하은미가 왔을 수도 있다. 머릿속에서 방금 일어났던 일을 다시 떠올려보자.

나는 허공에 가슴이 있다고 생각하고 양손으로 잡아봤다.

C컵. 젠장. C컵이다. 이선미보다 컸다. 아니지?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잘 못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

- 그런데 왜 스쿼트 하면서 고민하는데?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잖아요.

허벅지 혈관을 강하게 펌핑해도 소중이는 꼬물이 상태다. 아무리 잡고 흔들어도 서지 않는다... 이럴 때가 아니다. 이선미에게 전화하자. 화장실로 들어가 이선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너 몸 괜찮아?

"선미야. 오해하지 말고 들어."

- 잘 안 들려. 왜 기어가는 목소리야?

"일단 내 이야기 좀 들어줘."

-말 해봐.

"혹시. 내가 너한테 가슴 만지게 해 달라고 했어?"

- 갑자기 무슨 소리... 야! 너 설마?

망할. 눈치 더럽게 빠르네.

- 꺄하하하하! 아 졸라웃겨. 나 아니야. 하은미야. 미치겠다. 미치겠어.

"그래. 알았다. 하... 일단 내일 보자."

-현찬아. 너 어떻게 할 거야?

애는 왜 갑자기 궁서체야?

"글쎄? 미안하다고 해야지."

-말고. 은미말이야. 은미가 너 좋아하는 거 알잖아. 마음을 받아 주던가. 아니면 거절하던가 결정 해야 하지 않겠어?

"야. 나는 말했잖아. 너를"

-나는 말했잖아. 너를 좋아하지만 사귀지는 않을 거라고. 그런데 너는?

"....."

-나도 임석훈도 은미가 너를 좋아하는 거 알고 있어. 그거 모른 척하는 우리는 얼마나 힘들지 생각해봤어? 우리 네 명이 더 친구로 남기 위해서는 네 마음 확실하게 해줬으면 해. 30년 모태솔로로 산 사람처럼 애매하게 굴지 말아 줬으면 좋겠어.

헉? 프로이트세요? 대화 몇 마디로 사람 정확하게 분석하네.

"알았다."

-그래. 은미 너 아프다는 소리 듣자마자 알바 때려치우고 달려왔어. 잘 해라.

맞다. 이선미 말, 엄마의 잔소리처럼 다 맞다. 은미는 나를 좋아한다.

우리 과 여신이라고 불리는 하은미. 큰 키에 예쁜 얼굴. 모델을 해도 될 정도의 몸매로 모든 남자가 탐내는 아이다. 그런 아이가 나를 좋아하니 우쭐해진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은미 마음을 받지 않은 이유는 뭘까? 예전 모습 때문일까?

아니. 그것도 아니다. 지금 은미에게는 이전 삶에서의 차갑고, 까칠하고, 싸가지없고, 자기만 알고, 배려 없고, 남 무시하던 모습도 없다.

- 그거 피해망상임.

닥쳐 호구신. 나 지금 맑은 고딕체다. 매우 이성적이고 냉철하다.

그리고 지금 내 눈에는 은미가 예쁘다. 보고 있으면 가슴도 두근거린다.

그래. 더는 고민하지 말자. 과거고 나발이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자.

문을 열고 화장실을 나왔다.

"현찬아. 일어났어? 몸은 좀 괜찮아?"

두근.

하은미는 부스스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창가에 들어온 빛이 하은미의 예쁜 얼굴을 비춘다.

흠흠...뭐.. 예쁘긴 예쁘네. 흥.

"어서 여기 누워."

내 옆에 달려와 팔짱을 끼고 침대로 안내한다. 저... 은미야. 나 그 정도로 중환자는 아니야. 침대에 눕자 물수건을 내 머리에 올려준다.

"은미야. 고마워."

"아니야. 현찬아. 그래도 열은 많이 떨어진 거 같다. 많이 편해 보여."

"몇 시에 왔어?"

"나 점심때쯤."

"지금 몇 시야?"

"지금? 음. 밤 12시네."

12시간이나 있었구나. 나는 엄마가 아파도 두 시간 있다가 나왔는데.

"쉬고 있어. 나 죽 데워 줄게."

싱크대 앞으로 가서 미리 사 온듯한 죽을 냄비에 넣고 끓인다. 은미에 대한 내 마음속 방어벽이 거의 무너졌는지, 아니면 나를 보살펴주는 마음 때문인지 그런 은미가 너무 예쁘게 느껴진다.

긴 생머리에 가녀린 어깨. 날씬한 허리. 항아리 같은 골반. 착한 생각. 착한 생각.

은미는 죽을 다 데웠는지 그릇에 담아왔다. 침대 옆 조그마한 서랍장 위에 올리고는 한 숟가락 뜬다.

"현찬아. 한입 먹어. 아플수록 먹어야 해."

"고마워 은미야. 내가 먹을게."

"아니야. 너 손 들 힘도 없잖아. 아까도 들어 달라고.. 아니다. 내가 먹여줄게."

고마워. 확인 사살해줘서.

"잘 먹을게. 앗! 스러루러리랍"

"현찬아 왜?"

"아니야. 맛있어서 그래."

이 죽은 폼페이 특산물인가 보다. 베수비오 화산에서 만든 죽인 지 엄청 뜨겁다. 이열치열인가? 너무 뜨거워서 몸에 저절로 힘이 생긴다.

설마 이렇게 가슴 만진 거 처벌하는 건 아니겠지? 하은미 얼굴을 보니 아닌가 보다. 눈에 나에 대한 걱정을 가득 담고 있다.

손대면 툭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 같다.

"어서 먹어. 많이 먹어야 해."

"5분만 있다가 먹으면 안 될까?"

"어? 왜? 맛없어?"

"아니야. 지금 먹을게."

내 입에 계속 들어오는 마그마 죽. 네 이놈 지금 당장 역모를 꾀한 자를 불어라. 임석훈! 임석훈이 제일 개새끼입니다. 이게 고문이었으면 당장 친구 팔아먹었을 거다.

하지만, 그것도 단 세 숟가락이다. 은미는 내가 뜨거워하는 걸 알아채자마자 선풍기를 가져와서 죽을 식혀서 준다.

두근.두근

선풍기에 흩날리는 하은미 머리카락. 엘라스틴 했나 보다. 하얀 뺨과 가녀린 턱선 라인이 정말 예쁘다. 그 모습에 반해 허겁지겁 죽을 다 먹었다.

꺼억. 소리 없는 트림을 했다.

확실히 먹으니 살겠다. 살 거 같으니 고추를 만져달라 부탁한 게 현실감 있게 VR로 떠오른다. 굳건아! 기다려라. 형이 조금 있으면 군대로 간다. 은미는 세면대에 죽 그릇을 넣고 내 옆에 앉았다.

"내가 어제 감기 걸린다고 했지?"

"네. 잘 못 했습니다."

"너 여자친구는 고생하겠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서야 어떻게 해."

내 머리에 차가운 물수건이 올라온다.

두근.두근.두근.

두근거리는 심장. 하은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벨튀꾼처럼 내 심장을 누르고 튄다.

덥썩.

"왜 현찬아?"

벨튀꾼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알겠다. 나도 하은미를 좋아한다. 이 전생에서의 기억은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면 된다.

"은미야. 나랑 사귀자."

"어?..."

"은미야. 좋아해. 나랑 사귀자."

머뭇거리는 표정. 다가와, 다가와 전진처럼. 너도 나를 좋아하잖아.

"현찬아. 일단 아픈 거 다 나으면 이야기하자."

아직 차가운 물수건을 은미는 교체했다.

옛날 같았으면 '어. 그래. 그나저나 늦었는데 너 집에 가.'라고 말했겠지. 하지만 내 연애 경험이 벌써 몇 번인데. 슬쩍 웃는 표정이나 행동으로 봐서 싫은 건 아니다. 이건 킹스맨 같은 거절이다. 여왕이 패시브로 가지고 있는 기본 매너다.

"은미야. 그럼 나 지금 너무 아파서 죽을 거 같은데 부탁 하나만 들어줘."

"뭐? 꿀물 태워 줄까?"

"아니. 나랑 사귀자."

"어? 아하하하. 뭐야."

"내 묘비명이야. 그렇게 적어줘. 하은미에게 사귀자고 하고 죽다. 나 이제 죽을게."

"하하하. 죽지 마. 우리 현찬이 죽으면 안 돼."

"손 잡아주면 살 거 같은데."

3.2.1. 덥석. 내 손을 꼭 잡는 하은미. 굳건아! 형 군대 안 가도 된다.

"고마워. 은미야."

"뭐가? 고백 받아준 거 아닌 데."

"그럼 나 혼자 사귈게."

"아하하. 이제 고백 받아주는 거야."

키스. 하은미의 혀가 내 입속에 들어온다. 이건 달달한 베이비 키스도, 진한 프렌치 키스도 아니다. 바로 고약한 취두부 키스.

하은미는 오늘 아파서 하루종일 양치를 못하고, 코도 막혀서 입 벌리고 자서 입안이 메마른, 나에게 키스를 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너 진짜 나를 좋아하는구나.

"헤헤헤."

"은미야. 감기 옮으면 어떡하려고."

"그럼 그때는 네가 나 키스해줘."

"알겠어. 내 가슴도 만지게 해줄게."

"어? 현찬이 너 기억하고 있었어? 제정신이 아니어서 기억 못할 줄 알았는데."

역시 존버가 답이구나. 가만히 있을걸.

"미안. 가슴 만져서."

"괜찮아 농활 때 약속 했었잖아. 너도 만지게 해준다고."

고민된다.

'하은미 씨. 그때 분명히 전부라고 하셨는데, 어서 밑에도 만지게 해주세요.'라고 말할까?

지지지직.

"악!"

"왜? 현찬아? 왜? 왜?"

"아니야. 은미야."

간만에 경고하는 호구신. 그래 오늘은 참아야지. 어차피 막대기도 꼬물이 상태에서 서지도 않는다.

"석훈이랑, 선미 깜짝 놀랄거야. 현찬이 네가 말해. 난 말 못 하겠어."

"알겠어. 은미야."

"이렇게 병간호해주는 여자가 어딨냐. 고맙지? 나한테 잘해줘야 해."

"응. 고마워 은미야. 잘해줄게."

은미는 나를 끌어안았다. 손을 올려 가슴을 만지자 한번 노려보더니 다시 끌어안는다. 나는 다시 가슴을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잘 지내자 은미야.

***

나의 세 번째 연애가 시작된 지 5일이 지난 날.

앞으로 나에게 잘 해라는 말이 다음에 밥 한번 먹자는 말처럼 형식적인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여왕의 명령일 줄이야. 이틀이 지났는데 벌써 멜 깁슨이 필요하다. 아니, 멜 깁슨으로는 안 되겠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 훗! 지금 나는 쇼생크 탈출이다.

"현찬아. 나 화장 다 끝났으니 정리 해놔."

"알겠어 은미야."

"그리고 이제 저녁 시간 되었으니, 라면 끓여. 선미 너구리 좋아하니깐 너구리 사 오고. 선미야 너구리 먹을 거지?"

"어? 아니 나는 괜찮은데."

"현찬이가 사 올 거야. 현찬아 어서 사와."

"알겠어. 은미야.

현관문을 걸어나가자 임석훈이 따라 온다. 편의점으로 걸어가는데 임석훈은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깐죽거린다.

"낄낄. 우리 현찬이 졷됐다~ 졷됐다~"

"뭐가?"

"내가 말했지? 하은미 연애 스타일. 남자친구를 종 부리듯이 부린다고. 거절하지 그랬어?"

"내가 고백한 거거든."

"진짜? 와우! 스스로 노예가 된 그대에게 박수를!"

"지랄. 그런데 진짜 왜 그러지? 아니. 분명히 사귀기 전에는 안 그랬거든?"

"사실. 조금 이상하긴 해. 그 이전 남자친구 같은 경우에는 사귀기 전부터 노예였거든. 그때와는 다르게 너한테 되게 잘 하는 거 보고 하은미 정신 차렸다고 생각했는데. 왜 저러지?"

편의점까지 갔다가 오는 5분의 시간 동안 나와 임석훈은 셜록 홈스와 왓슨이 되어서 추리를 했다. 어느덧 내 자취방 앞이다. 임석훈이 마지막 결론을 나에게 던졌다.

"모르겠다. 너 일이니깐 네가 알아서 해. 나는 꿀잼 계속 봐야지."

아오. 여자의 마음도 모르는 이놈을 믿은 내가 바보지.

하은미와 사귄 지 10일 정도 지났다. 오래간만에 번화가에서 술 마시는 자리다. 이선미와 임석훈이, 나와 하은미가 나란히 앉아있다.

"현찬아. 젓가락."

"알겠어. 은미야."

모두에게 젓가락을 나눠줬다.

"현찬아. 물."

"알겠어. 은미야."

모두에게 물을 나눠줬다.

임석훈과 이선미는 그 광경을 덜덜 떨면서 본다. 오죽하면 이선미가 은미를 말린다.

"은미야. 현찬이 너무 시키는 거 아냐?"

"응? 괜찮아. 현찬이 이런 거 좋아해. 그렇지?"

"응. 맞아. 신경 쓰지 마. 선미야."

정말 괜찮아서? 아니면 사랑해서?

아니. 그냥 정신이 나가서다. 예전 인생의 하은미가 천사였을 정도로 나를 부린다. 지금 내 기분은 하은미의 포켓 몬스터가 된 기분이다. 지우야 피카츄가 피까피까 거리는 게 X까X까 일수도 있어.

술자리는 분위기가 좋지 않다 보니 오래 갈 리가 없다. 우리는 9시가 안 돼서 헤어졌다.

"선미야. 조심히 들어가."

"응. 은미야. 너희 둘도 잘 들어가."

"알겠어. 현찬아. 내 가방 들어."

"네."

임석훈이 한 마디 하려다가 이선미가 말린다. 걱정 마 애들아. 나에게 다 생각이 있어.

하은미를 데려다주는 길. 나는 번화가의 끝자락에 멈춰서 하은미를 바라봤다.

"은미야. 나한테 조금만 잘 해주면 안 돼? 아까 아이들 눈빛 봤지? 오죽하면 나를 불쌍하게 봐."

"싫어. 왜? 아이들이 보는 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그래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은미야. 나는 너를 좋아해. 너에게 많은 걸 해주고 싶어. 그렇다고 내가 노예가 되고 싶지는 않아. 나는 지금 너와 함께 있으면 노예가 된 기분이 느껴져. 이게 정상적인 연애는 아니잖아? 조금만 잘 해주면 안 될까?"

"싫어."

하은미는 나를 쏘아본다.

"그래. 알겠어. 우리 헤어지자."

"어? 현찬아. 뭐?"

"이런 말 해서 미안해. 헤어지자."

이거는 행동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대하는 은미의 태도에서 종 부리듯이 하는 게 느껴지는 게 문제다. 그나마 둘이 있을 때는 괜찮은데, 친구들이 있으면 몇 배는 심해진다.

"현찬아. 그게 아니라."

"미안. 은미야."

"현찬아. 잠시만. 우리 그때 약속. 아니 이야기 좀 해."

약속? 무슨 약속 말하는 거지? 은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 시선을 따라가자 간판이 하나 보인다.

모텔.

하. 맷돌 손잡이가 없네. 지금 장난하나? 나를 도대체 어떤 인간으로 보는 거야?

"은미야. 지금 우리 분위기가 저기에 들어갈 분위기야? 그리고 내가 몇번이나 너에게 부탁했었잖아. 섭섭한 거 있으면 말 해라고. 그런데 너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잖아.

그리고 저길 왜 들어가? 너는 지금 이런 상황에서 장난이 나와?"

"미안..."

하은미는 고개를 숙여서 땅을 본다. 어라? 사귀기 전 하은미 모습이다. 왜 갑자기 사귀기 전 하은미로 돌아왔지?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나의 제일 친한 친구이자 의형제나 마찬가지이며 여자의 심리에 대해서라면 박사급 지식을 가지고 있는 존경하는 임석훈이 하은미가 예전보다 심하다고 말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그래. 내가 너무 경솔했구나. 이야기를 들어보자.

"화내서 미안해. 그리고 네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내 마음대로 헤어지자고 말해서 미안해. 일단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응... 어디서?"

나는 고개를 돌려 모텔을 쳐다봤다.

< 하은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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