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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못했던 여사친들-31화 (31/295)

< 여름방학 >

내가 팀장이라. 얼마 만이지? 초등학교 때 미화부장이 내 마지막 감투 같은데. 좋다. 제대로 해보자.

"우선 모두 모여주세요."

내 앞에 선 열댓 명의 아이들. 심혜진과 표인봉 형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나를 본다. 망할 흥선대원군 같은 것들.

"어르신하고 이야기했어요. 우리가 잘하는 거보다 즐겁게 하는 게 보고 싶대요. 다들 덥고 힘들어서 짜증 나겠지만, 웃으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죠. 우리가 처음 하는데 잘하겠어요. 재밌게 하죠. 일단 다 같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러 가요."

고개를 끄덕인 후 농장으로 가는 아이들은 한결 편해 보인다. 이제 문제아 두 명을 잡자.

"두 사람 잠시만요. 부탁드릴 게 있어요. 잘 못 해도 뭐라고 하지 마세요."

"알겠어."

"응"

좋아. 이제 재밌는 농활을 해보자.

어르신에게 사과하고 밥도 든든하게 얻어먹었다. 다시 시작된 농활, 하지만 여전히 조용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 컨설팅을 받자. 임석훈한테 전화를 걸었다.

-어. 현찬아. 섹활 재밌냐?

"섹활은 무슨. 건전한 농활이야."

-아직 못했나 보네. 근데 왜?

"팀원들이 너무 조용한데 분위기 띄우는 방법 없어?"

-거기 여자들도 있지? 걔네들 웃겨. 그러면 분위기 바로 뜰 거야.

"여자들? 진짜?"

-어. 형 말 믿고 해봐. 그런데 너 오늘 밤에 잠시 나올 수 있냐?

"왜?"

-담배 좀 사다주라. 절에서 여자, 술 없이는 버티겠는데 담배 없이는 못 버티겠다.

뚝. 미안 너무 귀찮아.

임석훈 말 일리 있다. 좋다 해보자. 심혜진을 빼고 현재 우리 조에 있는 여자는 네 명. 팬클럽 1, 2, 3, 4 다. 마침 따로 떨어져 있어서 말 걸기 편하다. 나는 표인봉 형을 제외한 틴틴파이브 형들을 불러 모았다.

아 취소. 오늘은 맨유다. 반니, 스콜스, 에브라, 긱스가 등에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부터 퍼거슨 감독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나도 말주변이 썩 좋은 편은 아닌데. 이럴 때는 섹마대사 백과사전. 여자는 섹스할 때 칭찬에 약하다. 지금 바지 벗는 상황은 아니지만, 여튼 칭찬은 고래도 탭댄스를 추게 하니, 칭찬하자.

"형들. 부탁할 게 있어요. 저기 네 명 여자아이들한테 가서 무조건 잘한다고 말해주세요."

내 말에 맨유 선수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답답하네. 퍼거슨처럼 신발을 던질 수도 없고. 그때 반니 유니폼을 입은 형이 손뼉을 친다.

"아! 계속 칭찬하면서 친해지란 말이지?"

역시 반니. 괜히 골 결정력이 높은 게 아니다.

"네. 맞아요."

"알겠어. 나 먼저 갈게."

팬클럽1인 은하에게 달려가는 반니형. 남은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지켜봤다. 이게 뭐라고 페널티킥처럼 떨리냐?

"안녕. 은하야. 어? 너 잘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러고 나서 침묵. 은하는 말없이 배 봉지를 싼다.

"은하야. 이번에도 예쁘게 잘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오빠도 어서 하세요."

오빠! 좋다. 반니형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은하는 다시 말없이 배 봉지를 싼다.

"은하야.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해?"

"아. 진짜. 뭐예요. 오빠 나 놀리는 거죠?

"아니야. 나 좀 가르쳐줘."

"진짜예요? 놀리는 거 같은데. 이거 어떻게 하냐면요."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졌다. 반니 선수가 페널티킥에 성공했습니다! 얼싸안는 우리. 크!! 이 맛에 감독 맡는구나. 맛다시를 넣은 것처럼 맛있다. 자 이제 다음 타자를 보내자.

각자 흩어지는 세 사람은 반니형과 비슷하게 여자애들에게 말을 건다. 그러자 조금씩 분위기가 좋아진다. 장난도 치기 시작했다. 퍼거슨 감독님 이런 기분이었군요? 이글파이브도 한 명씩 쪼개서 각 무리에 넣었다. 분위기는 더욱 좋아진다. 그래. 저 형들은 숙맥이어서 그렇지 나쁜 형들은 아니었어.

시끌벅적해진 분위기. 보고 있나 심혜진, 표인봉. 이게 너와 나의 눈높이다.

오늘 일이 끝났다. 네 시의 따뜻한 햇볕 아래에 마을 회관으로 돌아가는 우리. 찰싹 붙어서 걸어가는 모습이 농활 홍보 영상으로 UCC 찍으면 100만뷰는 나오겠다. 특히 은하와 반니형은 결혼 직전이다.

"오빠들은 우리보다 나이 세 살 많잖아요. 우~~ 완전 아저씨다."

"아저씨라니. 아니야."

"그럼 이 노래 알아요?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알지! 그거 세일러문이잖아."

"어? 아는구나."

은하가 반니형 팔을 치며 꺄르르 웃는다. 반니형, 국수 먹으면 나 정장 사줘야 해요.

"현찬아. 너는 우리랑 동갑이니깐 이 노래 알지?"

"뭐?"

"왜. 꾸러기 수비대 있잖아."

"야! 당연히 알지. 똘기 덩이 호치 새초미 자축인묘~ 혜진 선배 다음가사 알아요?"

너도 그냥 이쪽으로 와. 혼자서 시골길 끝을 걷는 심혜진.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본다.

".... 드라고 요롱이 마초 미미 진사오미."

"푸훗."

"꺄하하하"

무표정한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전부 다 빵 터졌다. 혜진 선배는 얼굴이 붉어졌다.

"야! 너희들이 물어봤잖아. 왜 웃어?"

"아. 미안해요. 선배. 재밌어서요."

"언니도 우리랑 맞네. 여기러 와요."

은하가 혜진 선배 팔짱을 낀다. 나도 옆에 가서 어깨를 밀었고. 심혜진 선배는 마지못해 하면서 무리 속에 들어왔다. 것봐 얼마나 좋아? 이제는 표인봉 형 차례인데. 갑자기 러시모어산의 미국 대통령 머리 크기와 비슷한 게 쑥 들어온다.

"너희들 나디아는 알아? 나디아 너에 품에는."

"인봉이 형 우리 그거는 몰라요."

"우~~~~"

"왜 나한테만 그래. 반니 야유하지 마. 나랑 동갑이잖아. 그리고 현찬아. 나 이름 말이야."

"네네. 인봉이 형. 어서 이쪽으로 와요. 혼자 걷지 말고요."

"알았어."

2열 횡대로 서서 만화 주제가를 부르는 우리. 한 명이 첫 소절을 부르면 다 따라 부르고, 다시 다른 한 명이 첫 소절을 부르면 다 따라 불렀다. 우리는 마을 회관까지 걸어가면서 별의별 만화 주제가를 부르며 신나게 웃었다.

"현찬아. 너희 분위기 좋다."

호빈이다. 학생회장 조도 마을회관으로 돌아왔구나. 그런데 다들 등에 귀신 한 마리씩 달고 있지? 굿 안 하면 죽을 거 같은 인상이다.

"호빈아. 무슨 일 있어? 너희 쪽 분위기 왜 그래?"

"어? 아니야. 우리도 재밌는데."

"그래? 은미는 잘하고 있어?"

"여기 형들이 받들어 모신다."

"그래? 나는 다시 우리 조에 간다."

이제 너희들 안 부럽다. 우리 조가 제일 재밌다.

***

셋째 날. 우리 조에는 르네상스가 왔다. 오죽하면 저 심혜진이 다른 사람들 무리에서 웃으며 일할까?

"선배. 괜찮아요?"

"뭐가?"

"날씨 덥잖아요. 어? 선배 머리에 벌."

"꺄아아아악!"

깜짝이야. 그런데 왜 안겨요? 풍만한 가슴이 내 가슴에 짓눌려 있다.

"저... 선배? 벌 날아갔어요."

"어? 아. 미안."

"선배도 무서운 거 있어요?"

"나 벌레 엄청 싫어해."

의외네요. 벌통을 씹어 드실 줄 알았는데.

"그런데 농활은 왜 왔어요?"

"오빠들 아무도 안 간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왔어."

혜진 선배와 배 봉지를 싸며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보다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다.

"현찬아. 너 군대 안 가면 과대 할래? 05학번은 어차피 안 한대."

"네? 저요? 싫어요. 호빈이 시켜요."

"호빈이 그 새끼는 여자 후배만 노릴걸. 네 덕분에 분위기도 좋아졌잖아. 어제는 짜증 내서 미안. 그냥 어쩔 수 없이 왔는데, 내가 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나더라."

"이제 짜증 내지 마요. 나중에 표인봉 형한테 미안하다고 해요."

"알았어. 인봉이 오빠한테는 내가 미안하다 할게."

그때 갑자기 나타나는 커다란 머리. 흔들바위가 설악산에서 굴러온 줄 알았다.

"얘들아. 식혜야. 이거 너희들 주래. 자 혜진아. 현찬아."

"고마워요. 오빠."

지금인가? 자 이제 두 사람 화해 합시다.

"오빠. 어제 미안했어요."

"아니야. 혜진아. 내가 미안했어."

"오빠가 더 나이 많은데, 내가 너무 막말한 거 같아요. 미안해요. 표인봉 오빠."

"아니야. 내가 철없이 군거지. 그런데 혜진아. 뭐 하나 물어볼 게 있어."

"뭐예요?"

인봉이 형이 갑자기 일어나 내 뒷목을 잡았다.

"혜진아. 혹시 표인봉이라고 누가 그랬어? 이 새끼지?"

"네. 현찬이가 그랬는데요. 이름 표인봉 아니에요?"

"닮았다고 부르는 거야. 나 이름 주현수야."

"아! 진짜요. 나 진짜 표인봉인 줄 알았어요."

"켁켁···형.. 미안해요."

"네놈이 잘도 미안해하겠다."

그래도 우리는 웃는다. 것봐. 이렇게 재밌잖아.

"자자. 어르신이 오늘은 여기까지만 일하래. 오후에는 어디 가셔야 한다고. 수박 줄 테니까 가져가서 먹으래."

카. 역시 웃으면 복이 오는구나.

수박을 잔뜩 받고 마을 회관으로 돌아왔다. 평상에 앉아서 수박을 쪼개는 심혜진. 어제였으면 사람 머리 쪼개는 줄 알고 신고 했을건데, 오늘은 착해 보인다. 그런데 심혜진 엉덩이 뒤에 있는 저 익숙한 물건 뭐지?

"현찬아. 너 멀뚱히 서서 뭐해? 어서 여기 와서 먹어."

"잠시만요."

젠장. 저게 왜 저기 있는 거지? 하은미 썬크림이다.

위기다. 갑자기 숨겨놨던 나의 호구력이 올라간다. 앞에서 프리저가 '호오 이거 대단한걸. 호구력이 42000까지 올라갔네요' 라고 말한다.

계속 올라가는 나의 호구력. 스카우트는 터진 지 오래다. 하은미에게 선크림을 가져다주고 싶다. 안 돼. 이번에도 호구로 살 수는 없어. 갈팡질팡.

"현찬아. 어디가?"

시불. 결국, 초호구인이 되었다. 나도 미친놈이지. 진짜 이번 만이다.

한 5분쯤 달렸나?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여기 분위기 왜 이리 안 좋지? 이삭 줍는 여인들 패러디 중인가? 참외 따는 여자 무리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하다. 나이트클럽이었으면 당장 나왔을 거다.

"은미야."

하은미도 마찬가지. 인상을 잔뜩 쓰고 있다.

"어? 현찬아! 너 뛰어왔어? 땀을 왜 그리 많이 흘려?"

"선크림 안 가지고 왔지?"

"어떻게 알았어?"

"평상 위에 있더라. 자 여기 있어."

급격히 떨어지는 호구력. 그래. 하얗게 불태웠어.

"진짜? 고마워 현찬아! 그거 때문에 달려 온거야?"

"어. 나 이제 갈게."

"우리도 곧 끝나. 조금 더 있다가 같이 가자. 저기 나무 밑에서 기다려."

그럴까? 옆에서 장판을 가져와 나무 밑에 깔고 누웠다.

씽씽 불어라~ 씽씽 하우X~~

김연아가 왔나?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뺨을 때린다. 눈을 뜨자 하은미가 쭈그리고 앉아서 내 얼굴에 부채질하고 있다.

"은미야. 너희 끝났어?"

"어. 다들 먼저 갔어."

"벌써? 너는?"

"너 잠들어서 기다렸어. 조금 더 누워 있어."

깜빡 잠들었구나.

"일은 어때? 할 만해?"

"나? 재미 하나도 없어."

"사람들은?"

"그냥 그래. 너 얼굴 땀 때문에 선크림 다 사라졌다. 내가 다시 발라줄게. 자 여기 머리 올려봐."

하은미 다리에 머리를 올리고 배자, 선크림을 양손에 짜서 내 얼굴에 바른다. 여왕님이 포상을 내리신다! 그런데 사람이 변한 건가? 아니면 원래 이런 성격이었는데 예전에 나한테만 까칠하게 군 건가?

"현찬아. 선미 어제 통화 했는데, 엄마랑 싸워서 한국 일찍 온대."

"진짜? 선미 성격도 보통은 아니지. 나는 어제 석훈이랑 통화 했는데 뭐라는지. 알아?"

"뭐? 걔 혹시 절에서 누구 건드린 거 아냐?"

"그 정도로 미친놈은 아니더라. 담배 좀 사서 와달래. 여자도 술도 없이 살 수 있는데 담배 없이는 못 산다고."

"절에서 담배 피워도 돼?"

"임석훈이잖아. 어떻게든 피겠지."

"그것도 그렇다. 이제 다 발랐다. 팔에도 발라 줄게."

"아니야. 괜찮아."

"왜? 내 도화지인데 때 타면 안 돼."

"내가 왜 도화지냐?"

"내 마음이야. 팔 어서 줘."

양팔까지 다 바르더니 내 양손을 잡고 낑낑거리며 나를 일으켜 세워 준다. 그때 가슴이 슬쩍 보인다. 땀 닦아 준다고 만지면 안 되겠지?

"잠시만 현찬아. 목에 덜 발렸어."

슥슥슥

"이제 다 발랐다."

쿵쿵쿵.

가슴을 봐서 그런가?

환하게 웃는 은미 모습에 내 가슴이 뛴다.

***

마을 회관에 도착하자 모두가 모여있다. 우리 조는 화기애애하게 수다 떨고, 학생회장 조는 말 없이 있다. 저쪽 조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내 알 바 아니지. 담배나 하나 피우자.

"남자들 다 너무 한 거 아니야?"

"학생회장도 미쳐서 하은미한테 쩔쩔매고. 전부다 꼴 보기 싫어."

구석진 곳에서 불을 붙이려는데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모퉁이 뒤에서 나오는 소린데,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2학년 유민 선배다.

개꿀잼.

일단 엿듣자.

"은미 걔는 일도 안 할 거면서 여기는 왜 온 건데? 다른 오빠들도 걔 하나 챙긴다고 난리잖아."

아. 분위기가 나빠진 이유가 이거 때문이구나. 눈에 대충 그려진다. 남자들은 하은미 하나 챙긴다고 다들 난리였겠고, 그러다 보니 여자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소외되었을 거다. 쯧쯧쯧 진짜 개판이네.

"어? 현찬아 너 다 들었어?"

어? 내가 여기 왜 서 있지? 정신 차려보니 여자 선배들 앞이다.

"네. 선배. 너무한 거 아니에요? 사람 뒷담화를 해요."

"사실이잖아. 잘 됐다. 너 하은미한테 일 좀 하라고 말 해."

"유민 선배 그러지 말고 이건 어때요?"

"뭐?"

"은미 우리 조로 데려올게요."

"너희 조로?"

곰곰이 고민하는 유민 선배. 피식 웃는다.

"그러자. 내가 총학생회장 오빠한테 말할게."

< 여름방학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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