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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못했던 여사친들-25화 (25/295)

< 월드컵. >

6월 초 시험 기간이 다가왔다.

- 현찬아. 이거 이해 안 돼.

- 은미야. 이해하지 말고 그냥 외우는 게 좋아.

- 그래? 어렵네.

지금은 도서관이다. 하은미는 내 옆에 앉아 연습장에 사랑의 러브레터... 는 아니고, 시험내용을 끄적이며 물어본다. 이번 생에도 하은미 공부 가르치는 건 변함 없구나. 다만 제자의 태도는 조금 바뀌었다. 예전에는 뻣뻣했던 애가 얌전해져 있다. 집에서 통금 어겼다가 맞았나? 애가 왜 순둥이가 되었지?

맞은편에 앉아서 공부하는 임석훈과 이선미. 임석훈은 자빠져 자고 있고, 이선미는 MP3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있다.

두 사람을 보는데 은미가 내 팔을 톡톡 쳤다. 그런데 너 옷이 너무 짧은 거 아니니? 민소매에 가까운 반 팔에 짧은 치마를 입었다. 하은미를 바라보며 가르쳐 줄 때마다 치마와 맨다리가 보인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예전과 다르다. 임석훈과 광란의 날을 보낸 지 보름이 지났다. 예전이었으면, 치마 틈으로 손을 넣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섹키호테. 그런 저렴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톡톡톡.

이번에는 앞에서 누가 책상을 두드렸다. 고개를 들자 임석훈이 엄지로 도서관 출구를 가리키며 소곤거린다.

"현찬아 나가자. 쉬었다 하자."

"콜 석훈아. 이선미 불러. 은미야. 우리 쉬었다가 하자."

"그러자."

이선미를 툭툭 치는 임석훈. 선미는 인상을 찡그리다가 우리 세 명이 엄지로 출구를 가리키자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흡."

"아. 미안."

"은미야. 괜찮아."

하은미가 내 쪽으로 몸을 돌리다가 무릎으로 내 다리를 살짝 쳤다. 순간 느껴진 맨들맨들한 촉감. 만지고 싶... 나는 섹키호테. 이 정도에 흥분하지 않는다.

앞서서 같이 걸어나가는 선미와 은미. 그 뒷모습을 몇몇 남자들이 본다. 하긴 누가 봐도 늘씬한 아이들이다. 임석훈이 두 사람 뒤에 도둑처럼 접근한다.

"석훈아 너 뭐 하려고?"

"별거 아니야."

두 사람 등에 포스트잇을 몰래 붙였다. 저기에는 뭐라고 적혀져 있을까?

"현찬아. 나 은미랑 화장실 갔다가 갈게. 매점에 자리 잡아놔."

"알겠어. 선미야. 과자 먹을래?"

"나는 바나나 우유. 은미 너는?"

"나는 빈츠. 부탁할게."

부탁할게? 이제는 적응될 만도 한 데 왜 이리 적응 안 되냐.

매점 한쪽 구석 테이블 위에 빈츠와 바나나 우유가 있다. 나와 임석훈은 그 테이블에 앉아 있다. 임석훈이 나를 보며 말을 했다.

"야. 너 카오스 해봤어?"

"카오스? 워크래프트 유즈맵 말하는 거야?"

"존나 재밌음. 오늘 하러 갈래? 형이 가르쳐 줄게."

하. 참나. 이 애송이 봐라. 이전 생에서 내가 너 가르쳐 줬었어. 리그오브레전드 나오고 안 한 게임인데, 오래간만에 들으니 반갑네. 한판 하러 갈까나?

"너희들 게임방 가려고?"

"왔어? 선미야. 여기 바나나 우유."

"땡큐,"

바나나 우유를 받는 이선미. 물 묻은 손으로 임석훈 얼굴을 한 번 문대고 간다.

"은미야 빈츠 사 왔어. 까줄까?"

"땡큐. 현찬아."

하은미도 물 묻은 손으로 임석훈 얼굴을 문대고 간다. 쟤네 왜 저러지?

"너희 왜 그래?"

이선미가 임석훈 머리를 움켜잡았다.

"임석훈 이 미친놈이 등에 포스트잇 붙여 놓았잖아. 은미 등에 붙여져 있는 거 보고 웃었더니 내 등에도 붙어 있었어."

"뭐라고 붙어 있었길래?"

두 사람은 블랙잭에서 마지막 카드를 내미는 딜러처럼 노란 포스트잇을 내밀었다. 뭐라고 적혀 있는 거지?

- 민현찬 여왕님 1

- 민현찬 여왕님 2

"야이. 임석훈 이 미친 새끼야."

"크하하하. 왜? 혜민이 없어졌으니 새로운 여왕을 뽑아야지. 우리 현찬이는 기사니깐 여왕이 있어야잖아."

"기사한테 개 잡듯이 맞아 볼래?"

"너 그거 기사도에 위배 되는 거야!"

사자왕 리차드가 되어서 임석훈을 두드려 패고 싶다. 그런 우리 둘을 향해 바나나 우유를 쪽쪽 빠는 이선미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내일 어떻게 할 거야?"

"내일? 선미 너 자취방에서 보자. 어때?"

"지랄. 내 자취방 좁아. 현찬이 너 자취방에서 보자.

"그럴까? 그러자. 내일 월드컵은 내 방에서 보자."

내일은 바로 6월 13일. 월드컵 대한민국 대 토고전이 있는 날이다. 한국의 첫 경기이자 승리하는 경기다. 결과를 아는 축구는 김빠진 콜라처럼 시시하지만, 월드컵은 다르다. 축구 보는 재미가 절반, 같이 보는 재미가 절반이다.

이미 또또 베팅마저 끝났다. 아무리 축구를 좋아하는 나지만, 10년 전 월드컵 경기를 모두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2006년 독일 월드컵은 이변이 거의 없었던 월드컵.

그래서 몇몇 이변이라 불렸던 경기와 강팀들의 경기는 기억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가나의 설리 문타리 형님이 체코 네드베드 형님 뚝배기를 2:0으로 깼던 경기 같은 거 말이다. 여튼 이미 베팅은 끝났다. 그리고 벌써 3000만 원 정도 벌었다.

"그럼 치킨은 누가 살 거야?"

임석훈이 나를 보며 물었다. 뭐 3000만 원 벌었는데 치킨 한 마리 못 사지는 않지만, 그러면 재미없지.

"석훈아. 사다리 타자."

"오! 임현찬. 기사답게 승부다 이거지. 이선미, 하은미 너희는 어때?"

"재밌겠네. 사다리 타자."

콜 하는 이선미. 하은미는?

"그러자."

오케이. 이래야 월드컵이지.

***

똑똑.

"치킨 왔습니다."

딸깍.

"네. 여기 카드요."

"네. 결제되었습니다."

양손에 치킨을 받고 다시 자취방에 들어오자 깔깔 웃는 목소리가 들린다. 짧은 소매와 반바지를 입고 침대에 누워 있는 하은미. 같은 패션으로 침대에 등을 기대고 있는 이선미.

깔깔 웃는 주인공은 바로 이선미다.

"꺄하하하! 그러게 어차피 너 자취방에서 먹는데 네가 사면 멋있게 사는 거잖아. 괜히 사다리 타서 돈도 내고 생색도 못 내고."

젠장. 망할 사다리 타기. 임석훈이 유턴만 안 그렸어도 이선미가 걸리는 거였는데.

"선미야 월드컵 아직 많이 남았어."

"이제 안 할 건데~ 메롱~"

혀를 내밀고 나를 놀리는 모습이 얄밉다. 너 두고 보자.

"그런데. 임석훈은?"

"선미야. 잠시만, 전화해볼게."

띠리리리링

- 여보세요.

"너 어디야?"

-나 다 왔어. 이제 내려오면 돼."

"알겠어. 내려갈게."

툭.

"나 내려갔다가 올게."

"아, 진짜 그 미친놈은 그냥 보면 되지. 뭘 또 가지고 온다고."

"대신 재밌잖아. 갔다가 올게."

원룸을 나가자 차 옆에서 한 손에 종이가방을 돌고 서 있는 임석훈이 보인다.

"옷 사서 왔어?"

"어. 겨우 샀다."

"티비는?"

"가져왔지. 들고 올라가자."

씨익 웃으면서 뒷좌석 문을 연다. 임석훈은 내 자취방 티비가 작다고 자기 집에서 티비를 가져왔다. 그러는 김에 붉은 악마 티셔츠도 사 왔다. 나는 뒷좌석에 실린 티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게... 왜 매달려 있지?

"야. 이거 벽걸이 티비 아냐?"

"어. 맞어."

"너 이거 어떻게 땠냐?"

"우째우째 하니깐 때지던데?"

"다시 어떻게 붙이려고?"

"우째우째 하면 붙여지겠지."

대단하다 임석훈.

티비도 설치 완료. 맥주도 세팅 완료. 그리고 나, 임석훈, 이선미는 유니폼도 착용 완료 했다. 하은미는? 지금 화장실에서 옷 갈아 입는 중이다.

딸깍.

"야! 임석훈. 너 일부러 작은 거 사 왔지?"

문을 열고 나오는 하은미는 가슴이 커서 그런지 옷이 터질 거 같다. 배꼽이 살짝 보일 정도다. 임석훈은 그 모습을 보더니 배 잡고 웃는다.

"네가 가슴 커서 그런 거야."

"미친 새끼야. 그게 동창에게 할 말이야?"

은미가 맨발로 임석훈을 밟는다. 저거 업계 포상인데? 나도! 나도!

"은미야. 이거로 가려. 신경 쓰여서 축구도 못 보겠다."

"고마워. 현찬아."

결국, 은미는 내 방에 있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유니폼으로 배를 가렸다.

-네 경기 시작합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친구들은 긴장한 채 흥미진진하게 보지만, 나는 결과를 알고 있으니 지루하다. 조금 있으면 골 먹을 건데.

- 카데르 선수의 골로 토고가 앞서갑니다.

"아~~!!! 망했다."

"아....."

"수비 뭐해."

실망에 빠진 친구들.

"애들아. 걱정마. 내가 축구광이잖아. 내 느낌으로는 오늘 백프로 이긴다."

"지랄. 너가 무슨 예언자야?"

"선미야. 진짜 이겨. 내기할래? 딱밤 맞기"

"내기? 그래. 대신 나는 주먹으로 때릴 거다."

아이고야! 빠따로 때려도 상관없습니다.

경기는 전반이 끝나고 후반이 되었다. 하은미가 궁금해하는 초등학생의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현찬아. 그런데 토고가 축구 잘해?"

"토고? 잘하지. 특히 아데바요르 같은 경우는 아스날의."

잠시만. 올바른 대답이 아닌 거 같은데

"아니다. 토고 잘해. 그래도 한국이 이길 거야."

"어떻게 알아?"

"은미 너가 응원할 거니깐.. 우리, 어서 응원하자. 짝짝 짝 짝짝 대한민국!"

마주 보고 박수 치자 하은미는 해맑게 웃는다.

"진짜? 알았어. 대한민국!"

그리고 그때 동점 골이 터졌다.

"시발 골이다!!!"

"대박!!!"

"어? 꺄!!!!!"

...

...

"와!!!!!"

알고 있다보니 한발 늦었지만, 아무도 신경 안 써서 다행이다. 내 손을 잡고 몸을 흔드는 하은미. 그러자 붉은 티셔츠가 출렁인다. 결과를 몰랐다면 경기만 집중했을 건데, 결과를 아니깐 그 외적인 거에만 집중된다.

다시 시작된 경기. 70분쯤 되자 익숙한 프리킥 장면이 나온다. 바로 안정환 형님의 골 장면이다.

"선미야. 집중해. 뭔가 터질 거 같다. 이 분위기 골 나올 거 같아."

"지랄. 골 나오면 내가 두 대 맞아 줄게."

-네 안정환 선수 프리킥 준비 중입니다. 슛하는 안정환

"골!!!!!!!!"

....

"깜짝. 골!!!!!"

"역전이다!!!!"

"꺄!!!!!!!!"

이번에는 한 박자 빨랐네. 다행히 또 신경 안 쓴다. 그때 긴 생머리가 내 싸대기를 때린다.

샤랄랄라라라라~ 널 좋아~ 한다고~

은미가 기뻐하며 나에게 안긴다. 내 코를 파고드는 향긋한 향수 냄새. 내 가슴에 와 닿는 말캉한 촉감. 마지막으로 옷이 들려 올라갔는지 내 손에서 느껴지는 하은미의 맨살 허리. 이거... 이래도 되나?

즐기자!

나도 하은미를 끌어안고 기뻐했다. 다행히 그런 내 위에 이선미와 임석훈이 겹쳐졌다. 마음껏 즐기자... 젠장 왜 성추행범이 된 거 같지?

여튼 경기는 한국의 승리다. 우리는 한동안 승리에 취해 술을 마시다가 헤어졌다. 친구들을 집에 내려다 주고 나와 임석훈은 마지막 담배를 하나 물었다.

"야. 너는 그런데 차 가지고 오면 죽어도 술 안 마신다."

기특한 놈.

"우리 아빠가 술 먹고 음주운전 해서 벌금 100만 원 냈거든. 그 돈이면 펜션 잡아서 노는게 두 번이다."

네가 진정한 자본주의 섹무새구나.

"현찬아. 너 하은미 좋아하냐?"

"어? 갑자기? 왜?"

"형이 도와주려고 하지. 하은미 쉽게 안 넘어온다. 걔 사귀는 데까지 엄청 오래 걸려. 그리고 무시무시한 이야기 해줄까?"

"뭔데?"

"하은미와 사귄 사람은 전부 다 노예였다. 가방 들어줘, 짐 들어줘, 아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응. 그건 나도 알겠다. 하은미 성격이면 그렇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별생각 없다."

"그래? 나는 이만 간다. 내일 보자. 너 그런데 아까 선미하고 내기 하지 않았어?"

아. 시불. 깜빡했네.

***

- 석훈아 진짜 안 볼 거야?

- 미친놈아. 지단이 복귀했는데 이기겠냐? 잘 거다.

- 선미야. 진짜 안 볼 거야?

- 네 시에 어떻게 봐. 그리고 프랑스 잘한다면서.

- 은미야. 진짜 안 볼 거야?

- 미안 현찬아. 너무 늦어.

이것들아. 비긴단 말이야! 안 진다고! 아무리 촉이 좋다고 설득해도 모두 거절했다. 결국, 프랑스전은 나 혼자 경기를 보게 생겼다. 이 축알못들.

새벽 세 시반. 혼자서 티비 켜놓고 앉아 있는데 휴대폰 진동이 온다. 누구지?

- 자냐?"

"어? 안 잤어 선미야. 아니 경기 보려고."

- 나 방금 시끄러워서 잠 깼어. 같이 보자.

두근두근 메모리얼 3

"진짜? 내가 자취방으로 갈게."

- 올 때 맥주 사와. 그리고 경기만 보고 바로 꺼져라.

이선미는 칼 같은 아이니, 안 꺼지면 내 대가리가 촛불처럼 꺼질 거다. 나는 바로 꼬무룩 해졌다.

이선미 자취방. 단둘이 앉아 있는 나와 이선미. 사실 별로 가슴도 안 두근거린다. 친구 사이에 섹스하는 게 뭐 중요하냐.

"선미야. 너 토고전 내기 한 거 딱밤 맞아야지."

"지랄. 언제 했어? 기억 안 나는데."

망할 년.

아니지, 갑자기 머리가 번뜩인다.

"오늘도 내기할래?"

"딱밤 맞기?"

"아니 딱밤 맞기 말고."

"그럼 뭐?"

지금은 싱크빅이 필요하다.

"지는 사람이 이기는 사람이 말하는 거 다 들어주기."

진정한 섹키호테가 되려면 자신이 한 말실수를 고칠 줄 알아야 한다.

섹스하는 건 무조건 중요하다.

< 월드컵.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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