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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 못했던 여사친들-22화 (22/295)

< 고삐 풀린 망아지 >

"혜민아. 갑자기 휴학이라니?"

"나... 전공이 안 맞는 거 같아. 너랑 같이 공부하면서 알았어. 너는 다 잘 알고 나한테 설명해주지만, 내 머릿속에는 하나도 안 들어와..."

"아니 그래도, 이제 다시 공부해서 수능 친다고? 지금 5월이잖아. 수능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어."

"괜찮아. 점수는 잘 안 나올지 몰라도, 어차피 전공 바꾸고 싶은 거니깐."

"전과해도 되잖아."

"미안..."

미안이라는 마지막 말. 옛날 같았으면 '미안한 마음이 있으니 잡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겠지만, 지금 여자아이들이랑 지내다 보니 무슨 의미인 줄 알겠다.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뜻이다.

"내가 기다려줄게. 수능 끝 날 때까지."

"아니야. 미안. 수능에만 집중할래. 미안해..."

놀란 마음에 가슴이 쿵쿵쿵 뛴다.

"알겠어. 혜민아. 어쩔 수 없지.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응원할게."

"응. 고마워 현찬아."

"수능 끝나고 나서 다 같이 한번 보자."

"그래. 이만 일어날까?"

우리는 커피숍을 나왔다.

혜민이는 선미와 은미를 보러 간다며 손을 흔들고 갔다. 내가 자신의 의견을 별말 없이 들어준 것이 고마운지 웃고 있다. 그런 혜민이에게 나도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왜? 미래가 바뀌었지?

너무 놀라서 일단 억지웃음 밖에 안 나왔다. 물론 미래는 어느 정도 바뀌었다. 박호빈 대신 내가 과 여자아이들 중심에 있다. 아니, 일단 두 명과 섹스를 한 것 자체가 바뀐 거다. 그런데 이혜민 휴학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내 기억으로는 이혜민은 4년 스트레이트로 휴학도 없이 졸업한 거로 아는데. 이 정도면 운명이 바뀐 거 아닌가?

"나... 전공이 안 맞는 거 같아. 너랑 같이 공부하면서 알았어."

휴학을 결정한 이혜민의 말.

정해진 죽음을 의도적으로 바꿀 수는 없어.

축제 때 호구신이 나에게 한 말. 하나로 합쳐보자. 집으로 걸어가면서 계속 생각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의도적인 변경은 불가능 하나, 나비효과는 생길 수 있다.

젠장. 까까오톡 내가 먼저 개발하려고 했는데. 아니다. 그랬다가는 미래가 부정적으로 바뀔 수도 있겠어. 그 전에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아이디어만 제공하다가 공칠 수도 있고. 돈 벌기는 또또와 적당히 주식 투자 정도에서만 해야겠다. 고민 속에 걷다 보니 어느덧 자취방이다.

나는 힘없이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띠리리링

갑자기 울리는 스마트폰. 왜지? 섹스도 안 했는데. 나와라!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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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건 또 뭐야?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 추가 보상이 지급 된다고? 이거 만든 놈은 섹스하라는 말이야? 아니면 연애를 하라는 말이야? 아! 섹스하면서 연애를 하라는 말이구나.

그리고 추가로 나온 아이템들, 눈과 코 변경. 완전히 달라지지는 않지만, 적절히 성형한 수준은 된다라... 그런데 나 정도면 꽤 잘생긴 편인데?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자 갑자기 혜민이가 고마워졌다. 바로 눈 변경 구매. 그리고 키도 구매. 똘똘이 둘레도 늘렸다. 이제 둘레는 13cm. 목표까지 거의 도달했다.

잔여 포인트 : 200포인트.

진짜 돈 쓰는 거 순식간이구나. 그나저나 앞으로는 어떻게 하지? 포인트도 바닥이 나고 통장 잔고도 거의 없는데. 그래도 6월이면 돈 벌 수 있으니 버티자.

침대에 눕자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이런 게 이별인가? 한 문장으로 말하면 정신이 없다. 아쉬우면서도, 마음이 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로워졌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하다. 어차피 이별한 거 어쩔 수 없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다.

***

다음날 나는 자취방에 학교도 안 가고 혼자 침대에 누워있다. 혜민이는 부모님이 오셔서 모든 짐을 정리해서 고향으로 갔다.

"으흐흐흑. 혜민아...."

조인성이 발리까지 가서 얼굴에 주먹 넣은 이유를 알겠다. 슬프면 주먹이 먹고 싶구나. 이별은 해일과 같은 거 같다. 하루가 지나니 폭풍이 되어 밀려왔다.

내 자취방 곳곳에 혜민이의 흔적이 묻어있다. 지금이라도 화장실 문이 열리며 혜민이가 가슴을 출렁거리며 나올 것만 같다. 한쪽 구석에는 어제 택배로 배달온 학교 책상이 보인다. 시불. 저거는 왜 사가지고.

컴퓨터를 켜고 싸이월드에 접속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혜민이가 싸이 하자고 할 때 할걸. 어차피 3~4년 뒤면 아무도 안 한다고 거부했는데. 이선미 싸이를 파도 타자 이혜민 싸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모든 사진이랑 방명록이 다 닫힌 상태로 대문에 글 하나만 떠 있다.

- 잘 지내.

으흐흐흑. 나를 위한 다잉메시지.... 아니, 마지막 메시지구나. 나도 미니홈피를 만들어서 꾸몄다.

-너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은 참을개.

너에게 보내는 나의 메시지야. 도토리로 배경음악도 사자.

-지나간 시간들을 모두 다 되돌린 순 없겠지.

프리스타일 Y. 내 마음이야 혜민아. 사랑했었다.

싸이 만든 김에 친구들에게 일촌 신청하며 한 사람씩 구경했다. 와···. 임석훈 대단하다. 조회 수가 폭발한 상태고, 방명록에는 여자들의 글이 넘쳐 난다.

-지이이잉

갑자기 내 휴대폰이 울렸다. 어! 혹시 혜민인가?

"여보세요?"

"야! 수업도 안 나온 새끼가 싸이 만들었네?"

"석훈이냐?"

"어. 일촌 신청 수락했어. 술 마시자. 아이들 다 나온대. 아니다. 정정할게, 은미, 선미 오기로 했어. 혜민이는 없고."

쓸데없이 디테일한 새끼.

"어딘데?"

"학교 앞 TWO다리. 빨리 와라. 형이 위로주 살게."

"알았다. 지금 나갈게."

나가자. 방구석에 있어봤자 궁상밖에 더 떨겠나.

***

딸랑.

"현찬아! 여기야!"

TWO다리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뎅탕에 닭꼬치가 있는 테이블에 친구들이 앉아 있다. 이미 소주 한 병은 깔끔하게 비었다. 자리에 앉자 다들 표정이 안 좋다. 특히 이선미는 인상을 잔뜩 썼다.

"선미야 너 표정 왜 그래?"

"현찬아... 괜찮아?"

"나? 괜찮아지겠지."

"아니 정말 걱정되어서... 오늘 학교도 안 나오고... 그리고... 나는 말 못 하겠어. 은미야 네가 말해."

이선미는 기다랗게 접힌 A4 종이를 하은미에게 준다. 뭐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 내가? 나도 말 못 해. 석훈아 네가 말해줘."

그걸 다시 임석훈에게 건넨다. 뭐지? 이혜민의 마지막 편지인가?

"하... 결국, 내가 말해야 하는 거야? 현찬아... 이거 봐봐."

하얀 종이는 결국 나에게 왔다. 두근두근. 어떤 말이 적혀져 있을까? 종이를 펼치자 내 싸이월드 홈피가 프린트되어있다. 이선미와 하은미는 끅끅거리며 웃음을 참고, 임석훈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너 미니홈피 대문에 적힌 글자 봐봐. 맞춤법 틀렸어. 지금은 참을개가 아니라 지금은 참을게야. 끅끅끅... 흐흐흐흐... 하하하하!!"

"아하하하하!"

"꺄하하하!"

망할 것들. 이래서 싸이월드를 하면 안 된다. 흑역사 공장이니깐.

놀리는 것도 잠시, 친구들은 한참 동안 나를 위로했다. 원래 아픈 거다, 혜민이를 이해해라, 뭐 이런 위로들이다.

그때 말없이 하은미가 말없이 나를 본다.

"은미야 왜? 뭐 묻었어?"

"아니. 현찬아 너 잘생겨진 거 같아."

눈 변경 때문인가?

"내가? 아닌데?"

"진짜야. 뭔가 잘은 모르겠는데, 눈매가 변한 거 같아. 잠시만."

헉. 깜짝이야. 얼굴을 한 뼘 정도 거리로 가까이 붙이고는 내 눈을 바라본다. 하은미의 향긋한 향수 냄새가 코에 들어와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내가 잘생겨진 게 뭐가 중요하냐? 네가 엄청 예쁜데.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린다.

"맞네! 너 눈이 변했어. 울어서 그런 거야? 그런데 되게 분위기 있게 바뀌었다."

고개를 요리조리 돌리면서 나를 본다. 문제는 요리조리 고개를 돌릴 때마다 쳐진 상의 속으로 가슴과 가슴골, 그리고 브래지어가 슬쩍슬쩍 보인다. 갑자기 내 막대기가 딱딱해지면서 봉기를 일으켰다.

- 전하. 새로운 계곡을 점령하고 오겠습니다!

응 너 사형. 솔직한 새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은미야. 아니야. 똑같아. 나 화장실 좀 갔다가 올게."

화장실을 갖다 나오는데 이번에는 임석훈이 일어 서 있다.

"현찬아 내 옆에 서봐."

"왜?"

"아~ 빨리! 보자... 야! 너 키 또 컸어? 이제 나랑 거의 비슷한데?"

"너 키 얼마인데?"

"181"

이제 2cm 밖에 차이 안 나네. 임석훈 말에 하은미가 내 옆에 섰다. 어우... 너 치마 길이 좀 늘여라. 동해 물과 백두산이···. 그리고 향수 냄새 왜 이리 좋냐.

"이제 힐 신은 나보다 크다. 20살 넘어서도 키 크는구나."

"성장판이 이제 열렸나 보네. 벌써 아홉 시야. 이제 집에 가자."

이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는다.

"오늘은 이 누나가 사줄게. 우리 현찬이 헤어졌는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웃기네. 진짜 네가 살려고?"

"누나라고 부르면."

"누나."

"아~~ 끔찍해! 너 먼저 나가 있어. 우리가 계산할 테니깐."

지가 부르라 해놓고는. 먼저 나가서 담배 하나 피웠다. 이것도 얼마 안 남았구나. 이제 길에서 담배 피우면 욕먹는 시대가 곧 올 건데. 그때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저기요? 누구지? 고개를 돌리자 전혀 모르는 여자아이가 한 명 서 있다.

"네?"

"저. 혹시 번호 줄 수 있으세요?"

"번호요?"

레알 마드리드? 레알 소시에다드? 레알 베티스? 여튼 레알? 믿기지 않는다. 이전 생에서는 번호 따이기는커녕, 내가 휴대번호를 물어보면 '죄송해요'하고 우사인 볼트처럼 도망갔었다. 눈매 하나 바뀌었는데 이 정도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차가운 도시 남자. 아무에게나 번호를 주지 않지.

"죄송합니다. 여자친구 있습니다."

"아!... 죄송해요."

여자아이는 후다닥 다시 TWO다리로 들어갔다. 미안... 나는 여사친이 아니면 똘똘이가 서지를 않아.

***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길, 같은 방향에 사는 이선미와 둘이서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슬쩍 옆으로 보자 예쁜 옆모습이 보인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나? 이선미 얼굴은 연예인 뺨치게 예쁘게 생긴 거 같다.

"왜? 할 말 있어?"

"너는 얼굴은 참 예쁘다."

"지랄. 술 샀다고 립서비스 해주는 거 봐."

"맥주 한잔 더할래?"

우리 처음 합체한 날도 이랬었지. 정신 차리자! 나는 아직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

"왜? 따먹으려고? 야! 어떻게 헤어진 여친 친구를 따먹으려고 하냐?"

"미친! 뭘 따먹어. 그냥 들어가기 아쉬워서 그렇지!"

"웃기네. 너 음흉한 생각을 모를 줄 알아? 오늘은 집에 가서 잘 겁니다."

이선미는 나를 놀리며 깔깔 웃는다. 가로등 조명이 화장대 앞처럼 빛나자 웃는 모습이 예쁜데, 재수 없다.

"나도 가서 잘 거야. 잘 자라."

"그래. 내일은 학교 나와. 힘내고!"

등을 툭 친다. 짜슥. 의리는 있네. 너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붕알을 부비부비했을 친구가 되었을 거다. 원룸으로 들어가는 이선미의 골반을 보자 여자인 친구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불. 하고 싶다!!!

그런데, 이선미도 이전 생이랑 비교해보면 많이 변했다. 자판기라고 불릴 정도로 개방적이었던 선미인데, 이번 생에서는 3개월 동안 나 말고는 아무하고도 하지 않았다. 하은미도 나에게 다정하게 변했고. 아는 사람들이 예전 모습과 다르게 변해가는 걸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지이이잉.

"어 석훈아? 왜?"

유일하게 안 변한 새끼. 언제나 한결같은 놈.

"너 이번 주말에 뭐해? 우리 펜션 잡고 놀러 가자."

"이번 주말? 은미랑 선미는 안 될걸? 특히 은미는 집에 일 있다고 했잖아."

"걔네랑 말고. SES 말이야. 세희, 은진, 선희. 너 헤어졌다고 하니깐 한 번 놀러 가자던데?"

"야... 나 어제 헤어졌다. 그런데 다른 여자애들이랑 놀러 가자고?"

"어. 싫음 말고."

"아니야. 너는 그러면 안 돼. 내가 마지못해서 가도록 만들어 줘야 해."

"원래 내가 다 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돈이 모자르네. 내가 30만 원에 차 제공할게. 너는 20만 원만 내라. 콜?"

"콜."

"오케이. 그럼 다시. 현찬아. 제발 가자. 나 돈 없어서 너 꼭 같이 가줘야 해. 너 없으면 분위기도 안 살고. 내가 이렇게 빌게."

별수 있나?

"알겠어. 어쩔 수 없네. 가자."

가야지.

< 고삐 풀린 망아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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