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구의 신 >
사방이 불타고 있다. 아마 나는 통구이가 될 거다.
지금 나는 화재에 갇혔다. 어쩌다가 갇혔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대로 있다가는 나는 죽는다.
죽는 건 누구나 억울하겠지만, 나는 더 억울하다.
그 이유는 동정이기 때문이다. 젠장, 30년 동정이면 마법사가 된다며! 차라리 마법사가 되었다면 탈출했을 건데.
이대로 불타 죽는다면, 내 시체에서 굳어버린 정액이 사리로 나올 거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나에게 현자의 삶을 살았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시발! 이럴 때가 아니다. 정신 차리자 현찬아! 일단 심호흡 한 번 하자!
"흐~~~~~읍"
심호흡하자 검은 연기가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어리석다니. 나는 죽어도 싸다. 그래도 한 번은 여자 동굴 속에 싸보고 죽고 싶었는데.
나는 정신을 잃었다.
*
"일어나세요. 호...지...여."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 죽은 건가? 아니면 산 건가?
"일어나세요. 호구 자X여!"
대학교 때 내 별명인데! 어느 새끼야?
고개를 들자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서 있다. 아니,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누구세요?"
"나는 호구의 신, 호신이라고 하네."
호구의 신?
맥아더를 믿는 무당도 있다던데, 호구를 믿을 수도 있지. 일단은 이해하자.
"이미 알고 있겠지만, 자네는 죽었다네."
"그럼 여기는 천국인가요?"
"아니. 천국도 지옥도 아닌 중간계야. 자네가 여기 온 이유는 천 년에 한 번 나올만한 호구왕이기 때문이라네."
이거 나 맥이는 거 맞지?
"민현찬. 호구의 정점에 선 자. 모든 호구 중에서 자네가 최고라네. 게다가 호구이면서 모태솔로라니."
"의외로 그런 사람 많을 건데요?"
"아니. 유흥업소에 15만 원 내고 들어가 5만 원 더 얹혀주고 사연만 듣고 나온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라네. 아휴 병신 새···. 아니다."
썅!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꺼내?
"여튼 호구의 정점을 찍은 자네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려고 하네."
"그럼 저를 살려 주시는 건가요?"
"물론. 게다가 20살 때로 돌려주겠네."
레알? 이거는 무조건 콜이지.
"그뿐만 아니라 신비한 능력도 줄 것이네. 여기 스마트폰을 받게나."
호구 신인지 나발인지가 스마트폰을 준다. S사의 초기 모델이다. 난 A사 제품이 좋은데.
"개 잡생각 하지 말고, 이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걸 할 수 있다네. 기본은 간단하네. 섹스하면 포인트가 들어온다네. 그 포인트를 현금으로 만들 수도 있고, 다양한 능력을 살 수도 있지."
여기가 요단강인가 아니면 성인 웹툰 사이트인가? 여튼 꿈꾸던 일이다.
"자세한 건 직접 사용해 보면 알 수 있네. 내 제안을 받겠나? 받으려면 지문 등록을 하게나."
당연히 받아야죠. 죽는 거보다는 낫잖아요. 나는 망설임 없이 지문을 등록했다.
"이제 계약은 성립되었네. 대신 제약이 있다네. 예전의 여사친하고만 섹스를 할 수 있다네."
"여사친요?"
"그래 여사친. 정확하게는 너를 호구로 생각하고 벗겨 먹었던 사람들."
"그랬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저한테 잘 해줬어요. 저도 그런 생각 없이 잘해준 거고요."
퍽퍽퍽
호구신이 갑자기 나를 개 잡듯이 팬다.
"이 미친놈은 뒤져도 상상 속에 빠져있어. 나도 한 호구 하는데 너는 레알 마드리드의 호구날도다."
시발 유벤투스 갔는데.
"주입식으로 가르쳐 주겠네. 자 따라 해봐. 첫째 나는 여사친 하고만 할 수 있다."
"나는 여사···. 그럼 여사친 아닌 사람은요?"
"안 서."
안 서면 어때. 죽거나 그런 건 아니네.
"둘째 합법적으로만 해야 한다."
"합법적으로만이라. 그럼 강제로 하면요?"
"죽어."
네. 이건 무조건 지킬게요.
"대신 매우 엄격한 수준의 강압이야. 네놈이 읽은 야설에서 보던 그런 수준 정도지. 그럼 마지막, 10년 동안 100만 포인트를 채워야 한다네. 안 그러면 자네는 죽어."
"100만 포인트면?"
"돈으로는 100억."
100억? 못 벌겠네. 10년 동안 섹스만 하고 뒤지자.
"자 그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나."
호구신이 나를 발로 찼다. 이 미친놈은 섹스할 때도 바로 넣을 새끼다. 발단 전개 없이 혼자 흔들다가 절정으로 가는 그런 놈이다.
나는 허공으로 떨어졌다.
***
"으아아아!"
좋은 꿈을 꾸었노라. 내가 나비인가 아니면 나비가 나인가.
개소리를 머릿속에서 하는 거 보니 살아 있는 건 확실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원룸이다.
살아는 있는데 개꿈이구나. 물 한잔을 마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뭔가가 다르다."
가구의 배치, 원룸의 크기, 냉장고의 위치 모두 다 어색하다. 정신 차리고 다시 보니 이번에는 익숙하다. 여기는 10년 전 20살 때 내가 살았던 원룸이다.
꿈이 아닌가? 이럴 때는 휴대전화를 찾아서 스마트폰인지 폴더폰인지 확인해야 한다. 그게 클리셰니깐.
책상 위에 돼지 꼬리 같은 케이블과 휴대전화가 연결되어 있다. 사이언이다. 이때만 해도 L사가 휴대폰 잘 만들었었지.
아니 이럴 때가 아니다. 나는 서둘러 휴대전화를 열어 날짜를 확인했다.
2006년 2월.
정말 과거로 돌아왔다. 거울 앞에 뛰어가자 찐따 같은 20살의 내 모습이 보인다. 이건 좀 짜증 나네.
잠시만. 그럼 호구신이 준 스마트폰은? 서둘러 침대를 뒤졌지만 없다. 클리셰 대로라면 나와라 하면 나와야 하는데······.
"나와라!"
정말로 나왔다. 내 손에 선명한 스마트폰이 생겼다.
화면을 한 번 터치해보자 어플 하나가 보인다.
-호구신의 축복
좋은거겠지? 막상 열어보니 별거 없다.
포인트 : 0
상점 : 미개방
환전
기본 매뉴얼
이게 끝. 기본 매뉴얼부터 보자.
포인트 : 과거 여사친과 섹스를 하면 충전됨. 첫 합체 시 1000포인트. 다음부터는 10포인트. 특별한 합체일 경우 100포인트.
상점 : 랜덤으로 한 시간 동안 나타남. 포인트로 각종 아이템을 살 수 있음.
환전 : 포인트를 돈으로 돈은 포인트로 바꿀 수 있음. 1 포인트는 = 1 만원.
보관 아이템 : 아이템을 보관하는 장소
오예! 개꿀. 한번 섹스하면 천만 원을 벌 수 있다는 거 아냐? 나가자. 지금 당장. 하러 가자!
그런데 어떻게? 나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여사친 붙잡고, '내 아를 나아도' 했다가는 내가 환생해서 아기가 되겠지?
아이템 박스 옆에 보이는 작은 숫자 1이 보인다. 그래 처음은 뭘 주겠지. 클릭해보자 내 예상이 맞았다.
첫 합체 이용권. 사용 시 500포인트만 획득 가능.
좋다. 이제 섹스하러 가보자. 더는 동정 호구로 살지 않으리라!
***
WHO. 세계보건기구는 노는 게 확실하다. 그게 아니라면 왜 호구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관리 안 하는가? 30년 살았던 방식이, 죽었다 살아난다고 변하지는 않는구나. 나는 여전히 호구다.
신입생 환영회.
마침 잠에서 깨어난 날이 신입생 환영회 날이었다.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풍경인데 내 위치도 그대로다. 나는 일렬로 4개 이어져 있는 테이블의 맨 구석에 앉아 있다.
"안녕. 나는 박호빈 이라고 해."
호떡같이 생긴 호빈 이라는 놈이 인사한다. 인싸 오브 인싸 이자 나를 호구로 전락시킨 놈이다.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부하에게 하듯이 부탁이라는 부탁은 다 했던 새끼다. 매우 성격이 좋고 다정해서 깜빡 속아 넘어가 다 해줬다. 그 결과 저 새끼는 여자애들 부탁까지 다 나한테 맡겼다. 그러면서 자기는 과 여자애들에게 생색이라는 생색은 다 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인사를 했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그래도 30이라는 나이가 헛먹은 건 아닌 거 같다. 전생에서는 안녕하고 앉았는데, 이제는 입 좀 놀린다.
"반가워. 나는 민현찬이야. 프리미어리그 좋아해. 축구 선수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내가 개소리를 했나 보다. 아이들이 나를 개 보듯이 본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더 심하다.
정신 차리자.
"나는 이혜민이야. 다들 반가워."
이혜민. 기억났다. 꽤 예쁜 얼굴과 여우 같은 행동이 패시브 스킬로 장착되어 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항상 끼 부렸다.
가슴은 큰 편이다. 내가 어떻게 아냐고? 전생에 혜민이가 내 팔에 가슴 비비면서 부탁하면 다 들어줬거든.
이혜민 인사가 끝나자, 오늘의 내 목표가 인사한다.
"이선미야."
이선미.
키 165cm. 예쁘면서도 날카로운 얼굴. 성격은 직설적이고 시원하다.
별명은 자판기. 박호빈한테 들었는데 잘 줘서 자판기란다. 물론 나는 손도 못 잡아 봤지만. 그러고 보니 쟤도 항상 내 리포트를 가져갔었지. 갑자기 빡치네.
이선미를 첫 목표로 잡은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 이선미는 술에 취한다. 그러면 박호빈이 데리고 가서 합체한다. 그리고 내일 박호빈은 나에게 자랑한다. 10년 전 일이지만, 어찌나 부러웠던지 선명하게 기억난다.
오늘 이선미와 섹스하는 주인공은 전생에는 박호빈 너였지만, 오늘은 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거나 기억하고 있냐···하아.
"현찬아 왜?"
"아니야. 호빈아. 그냥."
"아 미안한데, 우리 맥주 좀 더 달라고 해줘. 부탁할게."
"알겠어. 호빈아."
역시 호구는 질병이다. 웃으며 부탁하는 호빈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오늘의 승자는 나니깐.
한동안 술자리가 계속 이어졌다. 나는 적당히 마시면서 버텼다. 흡사 전쟁 치르기 직전의 장군처럼 나의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끝난 술자리.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다음에 보자."
멀쩡히 일어서서 인사하는 이선미.
사실 처음에는 걱정했다. 이선미가 술이 만취되었고, 박호빈이 섹스를 한 거라면?
나는 불법은 안 되니 불가능하잖아!
그러나 이선미는 취해서 조금 비틀거리기는 해도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선미야. 너 집 어디로 가?"
모두가 보는 데서 용기 내 말을 걸었다. 나는 변했다.
"나 저쪽 원룸에서 자취해."
"나랑 같은 방향이네. 같이 가자."
"그래."
다행히 선미는 나에게 거부감을 안 느꼈다. 신입생 환영회 내내 호구처럼 여기저기 다니면서 친구들 부탁 다 들어준 게 도움이 된 건가? 역시 호구의 삶은 틀리지 않았다.
"올~ 벌써 분위기 좋다."
"꺄! 너희 둘이 뭔데?"
박호빈이 이상한 분위기를 잡자 여자애들도 다 호응해준다. 역시 핵인싸 새끼. 부럽다.
"다들 개소리 하지 마. 우리 갈게."
쿨하게 말하고 이선미는 내 옆에 서서 걸어갔다. 나는 그런 선미 옆에서 눈치보는 노예처럼 졸졸 걸어갔다.
< 호구의 신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