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절규의 숲 [변경된 하멜 제국 지도]
내가 달아오른 분위기를 달랬다.
“자자. 모두 힘 풀어.”
안드레가 나한테 소리쳤다.
“카일 형! 장난해? 언데드랑 대화라니. 이건 미친 짓이야!”
“언데드랑 대화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 그건 편견일 뿐이야.”
“언데드잖아!”
“종족은 중요하지 않아. 인간은 엘프를 노예로 다뤘어. 그리고 엘프와 인간이 전쟁할 때 트롤이 엘프를 구해주었지. 내가 용사 파티에 참여한 것도 마드한 왕이 내가 참여하지 않으면 엘프를 토벌하겠다고 협박해서다. 나는 빛이든 어둠이든 나한테 잘해주면 친구고 못 해주면 적이라는 걸깨달았다.”
안드레가 말문이 막혔다.
내가 선언했다.
“나는 누구든지 먼저 공격을 시작한 자를 적으로 여기겠다!”
박경철, 안드레,아이보스가 당황했다.
카일이 언데드 편에 서면 니사도 언데드 편에 설 거다.
네 명이서 나, 니사, 언데드 전원과 싸우기엔 무리가 있었다.
박경철이 침착하고 기니비르에게 질문했다.
“언데드가인간을 공격하지 않게 할 수는 없어?”
“언데드도 자아가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있어요. 자아가 있는 자는 제가 설득하면 받아들일 거예요. 자아가 없는 자는 저희가 관리하면 돼요.”
“그리고 더는 언데드를 늘리지말아 줄 수 있어?”
“으음. 어둠의 기운을 뿜지 않을게요. 그렇지만 당신들이 제 친구를 죽이면 새로 만들 거예요.”
“이 정도면 된 건가….”
안드레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함쳤다.
“으아아아! 이건 미친짓이야!”
아이보스는 별로신경 쓰지 않고중얼거렸다.
“뭐. 평화협정 체결인가?”
그때 박경철이 뭔가를 깨닫고 나한테 물었다.
“카일 형. 허리에 그거 길룩 형 망치 아니에요?”
“어. 오다가 주웠어. 길룩은 보이지 않던데?”
박경철이 살기를 뿜으며 기니비르를 다그쳤다.
“드워프를 어떻게 했지?!”
기니비르가 모른다는 얼굴을 했다.
“저는 드워프가 누군지 몰라요.”
기니비르가 뒤를 돌아보며 언데드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누구 죽인 거 있니?”
언데드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웅성거렸다.
“네가 죽였냐?”
“나 안 죽였어.”
“나는 피하기 바빴는데?”
“저런 강한 놈들을 어떻게 이겨?”
기니비르가 다시 용사 파티를 바라보고 말했다.
“저희는 모르는 일이예요. 제 기억으로는 가끔 포탈이 오작동해서 공간과 공간 사이에 껴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안드레가 호통쳤다.
“너희들을 어떻게 믿어!”
기니비르가 눈을 부릅뜨고 쏘아붙였다.
“어머! 당신들은 이곳에 들어와서 제 친구들을 훨씬 많이 죽였잖아요! 그리고 저희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나요? 저희도 마음먹으면 동귀어진의 각오로 싸울 수 있어요!”
기니비르 뒤의 언데드들이 일제히 살기를 뿜으며고함질렀다.
“우리는 약하지 않다!”
“내 절친인 리치 아트록을 죽인 놈들아!”
내가 양손을 흔들며 다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워~ 워~ 모두 분노를 풀라고. 싸움을 먼저 시작하면 내 적이 되는 거야.”
언데드들이 조용해졌다.
박경철이 기니비르에게 물었다.
“공간 사이에서 나오는 방법은 없어?”
기니비르가 대답했다.
“저희도 방법을 몰라요. 움구크가 공간 사이에 꼈다가 40년 후에 튀어나온 적이 있어요. 움구크! 맞지?”
시체를 누더기로 기워서 비대한 몸집을 하고 거대한 쇠사슬 도끼를 든 어보미네이션 움그크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맞습니다요. 공간 사이에 갇히면 어두운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데 생각을 안 하는 게 편합니다요. 저도 제가 왜 돌아왔는지 모릅니다요.”
용사 파티가 비통한 얼굴을 했다.
아이보스가 탄식했다.
“아이씨. 길룩 녀석. 내가 더 잘해줄걸.”
안드레는 이제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언데드들을 노려보기만 했다.
기니비르가 박경철에게 말했다.
“이 공간에서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저희를 그냥 내버려 두시면 나가는 길을 안내해드릴게요.”
세리나가 박경철의 손을 꼭 잡으며 설득했다.
“경철아. 편견을 없애고 보면 나쁜 애들은아닌 것 같아. 그리고 이 공간에서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잖아.”
박경철이 마음을 굳게 먹고 결정을 내렸다.
“알겠어. 너희들을 내버려 둘게.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 숲의 언데드를 늘리지 않는다. 이것만 지켜줘.”
기니비르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내가언데드들에게 추가적인 제안을 했다.
“너희들 평생 여기서만 살아서 바깥세상이 궁금하지 않아? 이번 기회에 밖으로 나가는 게 어때? 세상과 소통하는 거야!”
언데드들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환호했다.
“좋습니다! 한번 밖에 나가보고 싶었습니다!”
“인간이 무서워서 나가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나가고 싶습니다!”
기니비르가 손을 꼭 맞잡고 외쳤다.
“카일 오빠! 꼭 나갈게요!”
안드레가 중얼거렸다.
“카일 오빠? 미친….”
안드레가 포기한 얼굴로 소리쳤다.
“으아아아! 이 많은 언데드가 밖으로 나가면 소동이 일어날 거야. 이젠 나도 모르겠다!”
내가 반박했다.
“아니. 언데드도 세상과 소통하며 살 수 있어. 사람들이 언데드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어. 기니비르. 나가자.”
기니비르가 밝은 얼굴로 외쳤다.
“네!”
기니비르 뒤에 있던 언데드들은 숲 밖으로 나갈 기회가 왔다는 걸 친구들에게 알리려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기니비르가 직접 용사 파티를 숲 밖으로 안내했다.
용사 파티는 기억하기도 힘든 복잡한 루트를 통해서 출구 포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기니비르가 말했다.
“이 포탈을 통과하면 바로 호수 위에 떨어지게 돼요. 제가 먼저 나가서 냉기의 오오라로 호수 위를 얼려놓을게요.”
기니비르가 포탈로 나갔다.
안드레가 의심쩍은 얼굴로 말했다.
“나가자마자 총공격 당하는 거 아니야?”
내가 말했다.
“그럼 나 또한 언데드랑 싸울 거야. 용사 파티가 모두 모이면 두려울 게 없다.”
박경철이 말했다.
“갑시다.”
용사 파티가 포탈을 나가자 바로호수를 덮는 빙판 위에 떨어졌다.
거대한 언데드의 군세가 빙판을 둘러싸고 있었다.
안드레가 경악했다.
“으아아아! 뭐야!”
기니비르가 웃으며 소개했다.
“제 친구들이에요. 모두 자아와 지성이 있어요. 여기서 나가려고 모였어요. 공격하지 않으니까 안심하세요.”
용사 파티는 언데드 군대와 함께 탈카 시 방향으로 나아갔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밖으로 나가려는 언데드들이 속속들이 모여들어서 수만 명이나 되는 다양한 언데드의 군대가 이루어졌다.
자아가 없는 언데드들도 기세에 눌려서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다.
아이보스가 혼잣말했다.
“언데드랑 싸우러 왔다가 오히려 친구가 돼서 나가다니. 정말 신기한 경험이야!”
나는 촉수 통신 네트워크로 탈카 시의 이바나에게 절규의 숲 공략이 끝났으니 호위랑 마차를 보내라고 연락했다.
이바나는 알겠다고 하고 연락을 끊었다.
용사 파티는 절규의 숲에서 언데드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편안하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우리가 밖에 도착했을 때 절규의 숲 앞의 벌판에는 내가 부탁한 호위랑 마차는 없고 한 무리의 도적과 암살자들만이 캠프를 차리고 있었다.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뭐지? 이 죽음의 냄새는?’
도적과 암살자들은 우리에게 살기를 뿌리고 있었다.
안드레가 앞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정보 기사단! 나는 안드레왕자다! 무슨 일로 온 거냐?”
얼굴을 검은 복면으로 가리고 검은 타이즈 옷을 입은 여성이 앞으로 나와서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안드레 왕자님.”
그녀는 정보 기사단장아카샤였다.
“무슨 일이야?”
“제가 더묻고 싶군요. 정찰병들이 용사 파티가 언데드와 함께 다닌다고 했는데 정말이군요. 제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기다렸습니다. 마드한 폐하께서 하신 말씀이 맞는군요.”
“이해시켜 봐.”
“성국과 제국에서는 용사 파티에 어둠의 신의 스파이가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는 용사 파티를 비란 시로 데려가기 위해 왔습니다만,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는군요. 저희는 지금 당장 비란 시로 도망가서 용사 파티가 언데드와 손을 잡았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리겠습니다.”
“아니. 내가 반대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거야. 얘기를 들어봐.”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 기니비르가 외쳤다.
“당신들 살인을 저질렀군요!”
다른 언데드들도 수긍했다.
“맞아! 이곳에서 죽음의 냄새가 난다!”
“어마어마하게 죽였군! 역시 인간은 잔인하다니까!”
안드레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언데드의 말은 믿지 않아!”
아이보스가 말했다.
“정말로 피냄새가 난다. 꽤 많이.”
안드레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정보 기사단을 쳐다봤다.
아카샤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숨길 수 없군요. 이곳으로 오던 마차와 호위를 모두 죽였습니다.”
박경철이 분노로 소리 질렀다.
“무슨 짓이야!”
아카샤가 대답했다.
“스토자냐 시와 탈카 시도 어둠의 신에게 잠식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신들을 데려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가 분노로 소리쳤다.
“우리를 데리러 온 무고한 병사들을 죽이다니! 용서할 수 없다!”
아카샤가 내 얼굴을 보고 말했다.
“당신은 어둠의 신의 스파이 용의자입니다. 괜히 분란 일으키지 마시죠.”
나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노려보기만 했다.
여기서 말을 많이 하면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언데드들이 모두 무기를 꺼내 들었다.
챙 차창 샤악
기니비르는 근접 병사들 뒤로 이동해서 냉기를 뿜을 준비를 했다.
나는 얼씨구나 좋다고 생각하며 전기의 망치를 뽑았다.
‘오! 정보 기사단을 여기서 제거하는 거냐?’
내가 먼저 공격하자고 하면 이상하니까 우리는 용사 박경철의 말만 기다렸다.
박경철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박경철 입장에서는 자신을 데리러 온 호위들을 죽인 정보 기사단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보 기사단을 공격하자는 명령을 내리면 정말로 하멜 제국과는 척을 지는 길이었다.
안드레가 갑자기 팔을 양쪽으로벌리고 우리를 보며 가로막았다.
“싸우면 안 돼! 싸운다면 나는 정보 기사단과 함께 싸우겠다!”
박경철이 상처받은 얼굴로 결정을 내렸다.
“큭. 나는 정보 기사단과 싸우지 않겠다! 꺼져!”
아카샤가 탄성을 내질렀다.
“호오~. 아직 왕자님과 용사는 제정신인가 보군요. 제국이 위험한 상황에 그나마 다행이군요.”
안드레가 물었다.
“제국이 위험한 게 뭐야? 용사 파티에 어둠의 스파이가 있는 거?”
아카샤가 대답했다.
“어둠의 군세가 하멜 제국 서쪽을 침략했습니다. 라온 왕국 연합은 거의 멸망했습니다.”
“젠장!”
“용사 파티를 데려가고 싶지만, 어려워 보이는군요.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아카샤가 등을 돌리자 다른 도적과 암살자들도 등을 돌렸다.
그때 안드레가 외쳤다.
“나는 용사 파티에서 빠지겠어! 나도 너희들과 함께 수도로 가겠다!”
정보 기사단이 안드레를 바라봤다.
박경철이 놀라서 물었다.
“진심이야?”
“어. 용사 파티의 행동은 내 가치관과 너무 달라. 나는 이걸 용사의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경철아. 다음에도 내 가치관과 반대되는 일을 한다면 너는 내 적이다.”
안드레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정보 기사단으로 걸어갔다.
저벅저벅
아카샤가 안드레를맞이했다.
“왕자님. 잘 선택하셨습니다. 용사 파티와 함께 있다가는 정말로 어둠에 침식되셨을 겁니다. 궁전에 가면 이단 심판관들의 검사를 받을 겁니다.”
“내 책임이니 상관없다.”
정보 기사단원 한 명이 안드레를 업었다.
정보 기사단이 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아이보스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우리에게말했다.
“이제 파티라고 부르기 힘들게 되었네? 나는 원래 유희를 즐기려고 세상으로 나온 거야. 나도 여기까지만 할게.”
박경철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아이보스 형….”
“너, 세리나, 카일 형, 니사 누나. 여긴 없는 안드레랑 길룩까지. 모두와 즐거운 시간이었어. 다음에 만날 때도 친구야.”
아이보스는 박경철, 세리나, 나, 니사와 차례로 악수를 했다.
아이보스가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거대한 드래곤이 되었다.
“나는 세상을 조금 더 여행하고 즐길게!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는 드래곤 여성이 있을 거야! 어둠과 빛이 싸우는 걸 마주치면 빛을 도울게! 건투를 빈다~!”
아이보스는 남쪽으로 멀리 날아갔다.
박경철이 기운이 빠진 채 축 늘어져서 아이보스를 바라봤다.
나는 이것이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오! 용사 빼고 다 내 편!’
내가 눈짓을 하자 세리나가 박경철의 오른팔에 딱 달라붙었다.
“경철아. 힘내.”
니사는 박경철의 왼손을 꽉 쥐었다.
“경철아! 화이팅!”
나는 박경철의 뒤로 다가가서 어깨를 꽉 잡았다.
“경철아. 힘내라.”
박경철의 눈이 글썽글썽해졌다.
“모두…. 고마워.”
갑자기 내 손이 촉수로 변해서 박경철의 머리를 휘감았다.
박경철이 놀라서 검을 꺼내려고 했는데 이미 세리나와 니사가 꽉 잡고 있었다.
“읍! 으읍!읍!”
내 촉수가 박경철의 뇌에 닿자 박경철은 정신을 잃었다.
나는 박경철의 뇌 구조를 변경해서 나에게 충성하게 했다.
박경철이 나에게 인사했다.
“어둠의 신을 뵙습니다!”
“하하하. 잘 부탁한다. 용사야.”
이제 어둠이 완벽하게 이겼다.
나는 너무 즐거워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으하하하하! 내가 이겼다! 캬하하하하! 이제 망치 전사를 연기할 필요도 없어!”
[변경된 하멜 제국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