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마왕군 영토 [변경된 마왕군 지도]
나는 내 촉수 영웅들과 라임 선생님을 모아서 내가 어제 들은 얘기들을 전부 해줬다.
내가 감상을 말했다.
“칸파샤. 네가 말했듯이 마왕 후보자들에게 친구, 애인, 허수아비가 다 있다.”
라눌프 왕자는 친구가, 샤기라 공주는 애인이, 순진하고 우유부단해 보이는 실반 왕자는 허수아비로 만들 수 있었다.
칸파샤가 자기가 말한 대로 이루어지니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너르비카가 물었다.
“카일님. 그래서 누구로 선택하실 거예요?”
“그게 고민이야. 현 마왕은 누가 마왕이 되든 자신의 자식들이 모두 살아있기를 원해. 마왕의 부탁을 완수하면서도 한 명을 내 목표를 따르는 마왕으로 만들어야 한다.”
칸파샤가 고민하다가 말했다.
“폐하의 말을 들었을 때 라눌프는 야망이 많은 자입니다. 그런 자는 절대 위험 요소를 내버려 두지 않지요. 그자가 왕이 되면 폐하 몰래 반드시 형제들을 제거할 겁니다.”
“위험한 놈이군.”
“하지만 야망이 크고 능력도 있기에 빛 종족과의 전쟁에서는 뛰어난 동료가 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샤기라는?”
“샤기라는 가문의 품에서 곱게 자랐기에 마왕군을 이끌 자질은 없을 겁니다. 그녀가 마왕이된다고 해도 결국은 할아버지인 아드넬이 실권을 가져갈 겁니다.”
“샤기라와 결혼해도 의미가 없는 건가?”
“그건 아닐 겁니다. 어찌 되었든 나가의왕족과 결혼했으니 나가들은 카일님을 도울겁니다. 하지만 샤기라가 아닌 아드넬이 주도적으로 폐하를 도울 겁니다.”
“그렇다면 실반은 어떻게 생각하나?”
“얘기를 들어보니 잘해주면 형! 형! 하고 따라다닐 텐데 실반이야 말로 카일님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 마왕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언데드들도 카일님의 아군이 될 겁니다.”
“각자 장단점이 있군.”
그때 라임 선생님이입을 열었다.
“촉수 군주는?”
나는 내가 들은 것을 말했다.
“서열 10위 촉수 군주의 이름은 아스모데우스예요. 200년 전에 갑자기 마왕군에 나타나서 전 서열 10위를 이기고 서열 10위가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원죄의 촉수래요.”
라임 선생님이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뭐? 그 아스모데우스 언니? 나 1000년 전부터 있었잖아. 원죄의 촉수 아스모데우스는 내가 아는 언니야~”
루이사가 라임 선생님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1000년 만에 아는 사람을 만나다니 신기하네요.”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라임 선생님의 지인이고 천년 전 촉수 전쟁 경험자니일단 아스모데우스를 만나러 가자.”
나는 메이드에게 아스모데우스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마침 아스모데우스가수도의 개인 저택에 있다고 해서 나랑 촉수 영웅들은 아스모데우스를 찾아갔다.
라임 선생님에게 들은 아스모데우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000년 전 어둠의 신인 촉수 카마이트는 가장 강한 7명의 자식에게 원죄의 신성을 내리고 원죄의 촉수로 만들었는데 아스모데우스는 색욕의 촉수라고 했다.
‘잠깐. 색욕의 신성이면 나한테 없는 거잖아? 그게 아스모데우스한테 있었구나.’
아스모데우스는 카마이트가 가장 총애하는 아내였다.
카마이트의 기준으로는 모든 촉수가 자식이었으니 촉수를 사귀려면 결국 자손과 사귈 수밖에 없었을 거고 가치관 자체가 인간이랑 달랐을 거다.
아스모데우스는 라임 선생님한테 친언니처럼 잘해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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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대저택에 도착하자 아스모데우스의 촉수 부하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게 인사하고 대문을 열었다.
촉수가 마왕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내 마음이 뿌듯해졌다.
우리는 저택의 홀로 안내되었다.
홀에 들어간 순간 나는 충격으로 온몸이 굳어버렸다.
거기 있는 것은 내가 지구의 김철수였을 때 내 목을 날려버린 본체만 5m인 거대한 분홍 촉수였다.
나도 촉수이기에 내 앞의 촉수의 거대한 분홍 몸체와 촉수 다리의 결과 매끄러움만 봐도 그때 그 촉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느끼는 감각은 공포라기보다는 여기서 이렇게 만났다는 충격이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내 부하들이 의아해했다.
분홍 촉수가 귀를 핥는듯한 매혹적인 여성의 목소리로 인사했다.
“위대한 어둠 종족 챔피언님~ 어서 들어오시지요~”
‘나를 모르는 건가?’
나는 모르는 척하기로 하고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소문은 들어서 아실 겁니다.”
“호호호. 요즘 화제의 인물이더군요.”
나는 혹시 아스모데우스가 나를 아는지 보려고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이전에 저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네? 무슨 말인가요?”
“아닙니다.”
인간이었을 때는 적이지만, 같은 촉수이고 상대방이 내 과거를 모른다면 동료가 될 수 있다.
나는 과거는 접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분홍 촉수 덕분에 택배 상하차에서 벗어나서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마침 라임 선생님이 들어오더니 아스모데우스를 보고 흥겹게 방방 뛰었다.
“언니! 언니! 저 라임이에요!”
아스모데우스가 촉수 다리를 마구 흔들며 반가워했다.
“어머! 라임이구나! 1000년 만이네! 얘 너무 반갑다!”
라임 선생님이 양팔을 벌리고뛰어가서 아스모데우스의 거대한 본체를 꽉 안았다.
아스모데우스도 촉수 다리로 라임 선생님의 머리부터엉덩이까지 쓰다듬었다.
아스모데우스와 라임 선생님이 오래간만에 만나서 둘이서만 수다를 떨자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이야기 들어주는 병풍이 되었다.
라임 선생님은 자기가 1000년 전에 도망가서 보하크 숲에 가서 슬라임 왕국을 만들고 최근에 나를 만난 것까지의 장황한 서사시를 말해주었다.
아스모데우스는 라임 선생님의 얘기에 맞장구도 치고 탄식도 하며 즐겁게 듣다가 이제 자신의 얘기를 시작했다.
“어머. 얘~ 카마이트님이 사라지고 너는 그렇게 살았구나. 이제 내 얘기를 해줄게.”
라임 선생님이 우리한테는 보여주지 않는 어린이 같은 모습으로 대답했다.
“네! 언니!”
“카마이트님이 없어지고 나와 살아남은 촉수 부하들은 수도 동남쪽 섬에 스스로를 봉인했어. 그리고 200년 전에 갑자기 봉인이 약해져서 모두 깨어났지. 우리 전력이 꽤 강해서 전 마왕군 서열 10위를 죽이고 내가 서열 10위가 돼서 영지를 먹었어.”
“언니는 원죄의 촉수잖아요! 언니는 엄청 강해서 마왕도 될 수 있을 거예요!”
“아니. 나는 마왕에는 관심 없고 이 자리에 만족해.”
“그럼 실반 왕자는 왜 지지하는 거예요?”
“음. 그냥 마음에 들어서. 이성적으로가 아니라 애완동물로서.”
“언니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음 흘러가는 대로 사는 건 변하지 않았네요?”
“뭐. 그렇지.”
“200년 동안 특별한 건 없었어요?”
“딱히 특별한 건 없었는데?”
‘아니 너 지구에 한 번 침공했잖아! 왜 이건 숨기는데?’
나는 아스모데우스에게 한 번 더 떠봤다.
“혹시 다른 세계로 가신 적이 있으시나요?”
“푸훗. 무슨 얘기 하시는 거예요? 다른 세계로 어떻게가는데요?”
“장난입니다.”
‘진짜 모르는 건가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건가. 일단은 아군 맞겠지?’
“카일님은 보기와는 다르게 장난을 좋아하시나 봐요.”
라임 선생님이 나를 째려보면서 꾸짖었다.
“카일! 아스모데우스 언니한테 무슨 실례니!”
아스모데우스가 웃으며 라임 선생님을 달랬다.
“라임. 괜찮아~ 카일님이 생각보다 귀엽고 내 취향이라서 용서해주자.”
“언니가 그러면 알겠어요.”
‘인간 형태면 몰라도 촉수는 너무 허들이 높아!’
아스모데우스가 나를 보면서 물었다.
“카일님은 지금 마왕 후보자 중에서 누구를 지지할지 고민하고 계시지요?”
내가 고뇌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카일님의 지지층이 되겠습니다.”
“네?!”
“말 그대로예요. 저랑 카일님은 같은 촉수이고 저는 카일님의 어둠의 대륙을 만든다는 목표에 찬성해요. 그리고 카일님은 어둠 종족 챔피언이기에 목표를 이룰 가능성도 큽니다. 저는 마왕보다는 카일님의 아군이 되겠습니다.”
‘오옷! 옛날에 나 죽인 거는 용서해줄게! 다시 보니 촉수도 내 취향인데?’
“감사합니다! 원죄의 촉수인 아스모데우스가 저를 도와준다면 앞으로 큰 힘이 될 겁니다!”
“호호호~~ 같은 촉수끼리 잘 지내봐요.카일님.”
“네. 하하하. 그리면 제가 누구를 지지하는 게 좋을까요?”
“저는 실반 왕자를 추천할게요. 실반 왕자는 순진하고 순종적이라서 카일님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실반 왕자를 이용해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이용한다고 해도 실반이 마왕이 되는 거잖아요. 죽이는 것만 아니면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마음을 정했다.
어차피 늑대인간, 나가, 언데드의 세력은 비슷하다.
내가 실반 왕자를 지지하면 내 입맛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 마왕을 얻고 원죄의 촉수 아스모데우스도 얻을 수 있다.
“저 카일은 실반 왕자를 지지하겠습니다.”
아스모데우스가 촉수 다리를 흐느적거리며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 잘 선택했어요! 제가 실반이랑 다른 언데드 군주들과의 만찬회를 마련할게요. 그리고 이제부터 카일님과 부하들은 이 저택에서 사세요. 촉수병들은 제 저택 바로 옆에 있는 병사용 막사에서 지내면 됩니다. 이 저택은 수도의 제 개인 저택이고 주변에 언데드 군주들의 개인 저택과 병사용 막사가 있어요. 다른 진영이 카일님과 동료들을 해치기 어려울 거예요.”
“배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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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스모데우스의 말을 듣자마자 일사천리로 궁전을 나오고 탐험대의 촉수 병력을 모아서 아스모데우스의 저택으로 거점을 옮겼다.
아스모데우스의 촉수 병력은 모두 나에게 공손하게 인사했고 촉수메이드도 나와 내 부하들을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내 방은 아스모데우스가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해서 아스모데우스 방의 옆방이 되어 버렸다.
나는 촉수 형태는 절대 취향이 아니라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저녁이 되자 아스모데우스의 저택의 커다란 홀에서 만찬회가 열렸다.
만찬회에는 다음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아스모데우스 (원죄의 촉수),
나 (어둠 종족 챔피언),
실반 왕자 (뱀파이어),
할아버지인 서열 4위 발타자르 (뱀파이어),
할머니인 안나 (뱀파이어),
어머니인 제3 왕비 스테파니아 (뱀파이어),
외숙모인 서열 11위 막달레나 (듀라한),
막달레나의 남편이자 스테파니아의 오빠인 로드릭 (뱀파이어),
정글 자치구 레치드할로우 부족의 왕 라이프이터 (언데드 트렌트).
이곳에 실반 왕자를 마왕으로 지지하는 언데드 진영의 최고 권력자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저택 주변에는 이들이 데리고온 병력이 샅샅이 경계하고 있고 주변에 이들이 보유한 개인 막사에도 병력이 주둔하고 있기에 누구도 이 저택을 쉽게 습격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나가와 늑대인간 진영도 각자 같은 진영끼리 병력을 합쳐서 똘똘 뭉쳐있을 것이다.
내가 아스모데우스의 저택으로 간것을 여러 사람이 보았기에 내가 언데드 진영에 붙은 걸 나가와 늑대인간도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랑 내 부하들은 안전을 위해 이제부터는 언데드들이 많은 곳만 다녀야 한다.
만찬회의 식탁에는 갖가지 귀한 동물들이 마취된 채 놓여 있었다.
어떤 동물들은 손목에 수도꼭지가 달려서 열면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아스모데우스와 나는 동물을 입에서 나온 촉수로 폭 찍어서 빨아먹었다.
막달레나와 라이프이터는 동물을 손과 썩은 덩굴로 집어서 입에 가져간 다음 생명력을 흡수했다.
뱀파이어들은 피를 컵에 담아서 마셨다.
발타자르가 나한테 와서 감사를 표했다.
“카일님. 제 부족한 손자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데드 진영은 이제 카일의 아군이 되겠습니다.”
막달레나도 머리를 분홍 리본으로 목에 고정하고 로드릭의 팔짱을 끼고 와서 말했다.
“실반의 좋은 점을 아셨나 보네요. 우리 실반이 순진하지만 할 때는 하는 아이예요.”
로드릭도 고개를 끄덕였다.
레치드할로우 부족의 왕 라이프이터가 나무 뿌리 같은 다리를 움직여서 나한테 왔다.
라이프이터는 언데드 트렌트로 말라비틀어지고 잎이 하나도 없는 썩은 나무로이루어져 있는 트렌트이다.
라이프이터가 으스스한 낮은 저음으로 말했다.
“내 조카가 순진해 보여도 운이 좋단 말이야. 자네 같은 강자가 내 조카를 선택하다니. 흐흐흐. 오늘은 좋은 날이군.”
내가 사람들하고 얘기하며 다니자 실반이 멀리서 나를 보며 쭈뻣쭈뻣했다.
막달레나랑 로드릭이 실반에게 가서 설교하자 실반이 힘내서 내 쪽으로 다가와서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감사했다.
“형! 저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 여자 같은 얼굴과 여자 같은 목소리로 형이라고 하지 마! 꼴린다고!’
“아닙니다. 이제 마왕이 될 분은 체통을 지키셔야 합니다.”
“형! 말 놓아주세요! 우리 친하게 지내요.”
“하하. 그럴까? 나도 너 같은 동생이 생겨서 좋네.”
내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실반을 바라보자 실반이 볼이 붉어져서 두 손을 잡고 꼼지락거렸다.
‘잠깐!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실반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부끄럽다는 듯이 말했다.
“형~ 저도 잘생긴 형이 생겨서 좋아요.”
‘강한 형이 아니라 잘생긴 형? 으아아아! 그래도 여자 같아서 참는다.’
“그래. 혹시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해.”
“네!”
나는 실반에게 내 모험담을 말해주었다.
실반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후에 나는 실반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주변 사람들이 흐뭇한 얼굴로 나와 실반이 우애를 다지는 것을지켜보았다.
나는 많이 얘기해서 잠깐 바람이라도 쐴 겸 와인이든 잔을 들고 테라스로 나갔다.
테라스 아래에서 언데드와 촉수들이 우글거리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실반이 나를 따라 테라스로 나왔다.
내가 물었다.
“실반. 무슨 일이니?”
“형. 저 사실 고민이 있어요…. 상담할 사람이 형밖에 없어요.”
‘형이 좋아요는 아니겠지?!’
“그래. 말해 보렴.”
<변경된 마왕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