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인어공주의 꿈
결국 한 병사가 왕에게 물어보러 갔다가 돌아왔다.
“왕께서 보자고 하십니다.”
우리는 아리엘과 함께 궁전의 어전으로 들어갔다.
어전에는 포세톤 왕이 산호와 수정으로 장식된 권좌에 앉아있고 주위에 인어 근위병들이 삼지창을 들고 서 있었다.
포세톤은 왼손으로 이마를 부여잡고 세상 다 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포세톤이 아리엘을 힐난했다.
“아리엘. 외부의 존재를 끌어들였구나.”
“아빠. 카일은 내 애인이야.”
포세톤 옆에 서 있던 오빠인 클라이만 왕자가 화를 냈다.
“네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너 때문에 아버지가 힘드신 거 안 보여?!”
“오빠! 나는 진심이야.”
“하…. 아무리 진심이라도 너는 왕국의 공주야. 정 연애를 하고 싶으면 왕국에도 괜찮은 남자들이 많은데 왜 아버지가 만나지 말라는 인간을 만나니!”
“나는 카일뿐이야. 제발 부탁이야. 오빠.”
포세톤이 한 손을 들자 모두 조용해졌다.
포세톤이 내게 물었다.
“너는 누구지?”
“저는 카일입니다.”
“너는 인간이 아니구나.”
“그렇습니다.”
아리엘이 놀라서 나를 바라봤다.
“카일? 인간이 아니라니 무슨 말이야….”
“미안해. 아리엘. 나는 인간이 아니야.”
“카일... 나를 속인 거야?”
“하지만!”
“!”
“너랑 함께한 기억과 마음만은 진짜야. 제발 믿어줘. 아리엘.”
아리엘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간이 아니라니….
아리엘이 고민했지만,머릿속의 저울이 카일에게 기울었다.
아리엘이 나에게 질문했다.
“카일. 나를 좋아하는 건 진심이야?”
“그래. 너랑 같이 있고 싶었어. 숨겨서 미안해….”
“알겠어. 믿을게.”
포세톤의 얼굴이 잠깐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아리엘이 알아서저 남자를 싫어하기를 바랐는데 바뀌는 게 없었다.
아리엘이나 일반 병사들은 모르겠지만 강자인 포세톤은 저 남자에게 숨겨진 강대한 힘을 느끼고 있었다.
포세톤이 빛 종족이기에 카일의 종족이나 어둠 종족 챔피언으로서의 정체는 느끼지 못했지만 말이다.
포세톤은 저 남자와 그의 동료들을 왕국에 받을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윽고 포세톤이 입을 열었다.
“카일과 그 동료들은 왕궁에서 떨어진 건물을 빌려줄 테니 그곳에서 거주하는 것을 허가한다.”
아리엘의 얼굴이 환해졌다.
왕국에서 쫓아내지 않은 것만 해도 아버지가 많이 양보해준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빠! 고마워요!”
“물러가라.”
포세톤이 손을 젓자 병사들이 와서 아리엘과 카일 무리를 밖으로 내보냈다.
카일 무리는 왕궁 외곽의 건물로 안내되었다.
포세톤이 바보라서 카일 무리를 받은 건 아니었다.
포세톤은 자신의 무력에 자신이 있고 인어 왕국은 약하지 않았기에 언제나 저자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포세톤이 원하는 것은 저자들이왕국에서 수상한 짓을 하다가 들켜서 아리엘이 현실을 깨닫고 자신이 저자들을 죽일 명분이 생기는 거였다.
포세톤이 지금 저자들을 쫓아내도 아리엘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아예 죽여버리면 아리엘이 아버지를 증오할 것이다.
카일 무리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주변에는 포세톤이 숨겨둔 스파이들이 겹겹이 싸여있었다.
스파이들은 카일이 아리엘이랑 성교하려고 하면 카일을 죽이는 임무도 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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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어 왕국에 들어와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인어 왕국에 들어오니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 주변에는 스파이들이 우글거려서 운신의 폭이 좁았다.
스파이들이 보는데 대놓고 인어들을 촉수로 감염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나는 일단 인어 왕국을 즐기기로 했다.
명목상 나는 아리엘의 애인이니 아리엘과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했다.
나는 오늘 아리엘과 인어 왕국 로데오 거리로 데이트를 나왔다.
아리엘이 나를 불렀다.
“카일! 여기 봐봐! 정말 예쁜 조개껍데기야!”
로데오 거리에는 곳곳에서 예쁜 조개껍데기를 팔고 있었다.
“진짜네. 여기 분홍색과 노란색의 빛이 어우러져서 마치 복어처럼 보인다.”
“풉. 너 진짜 설명 웃기게 하는구나.”
내 뛰어난 감에 뒤에서 몰래 따라오는 스파이들이 느껴졌지만, 나는 모른 척하고 아리엘의 손을 잡고 다른 곳으로 갔다.
우리는 비싼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생선찜을 먹고 헤어졌다.
아리엘과 다니면서 나는 인어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인어들도 인간과 비슷하게 해초랑 물고기를 기르고 집에서 살고 장사를 하고 여러 놀거리가 있었으며 금화를 사용했다.
아리엘은 카일이 왕국에 온 날부터 얼굴이 무척이나 밝아졌다.
아리엘이 중얼거렸다.
“역시 여자는 사랑하면 행복해지는 거구나. 킥킥.”
아리엘은 매일 카일과 만나서 데이트를 하며 왕국을 돌아다니는 게 하루의 낙이었다.
아빠는 아리엘을 보면 한숨을 쉬고 오빠는 설교했지만, 아리엘은 사랑의 힘이 결국은 이길 거라고 믿었다.
아리엘은 오늘 카일을 놀라게 해주려고 약속도 잡지 않고 카일의 집으로 혼자서 몰래 찾아갔다.
아리엘이 카일의 집의 창문을 들여다봤는데 충격적인 장면이 보였다.
카일이 갈색 머리에 가슴 큰 여자의 다리를 베고 소파에 누워있는 게 아닌가.
아리엘은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아리엘이 카일의 집 문을 쾅 열고 들어가서 소리쳤다.
“저년은 뭐야!”
나는 놀라서 일어났다.
“아리엘...”
“그냥 동료라며! 근데 왜 저년 다리에 누운 거야!”
내가 후회했다.
‘아 망했다. 약속도 안 잡고 올 줄 몰랐는데. 하다가 들켰으면 진짜 죽었겠네.’
“루시 누나가 누워도 된다고 해서….”
아리엘이 눈을 부라리며 루시 누나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 네가 정말 불장어(여우)구나. 임자가 있는 남자를 건드려?”
루시 누나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루시 누나가 일어서서 눈을 부라리며 비꼬았다.
“네가 매력이 없어서 카일이 나랑 함께 있고 싶다는 걸 어떡해.”
“뭐? 이 미친년이!”
“카일은 내 거야!”
아리엘이 루시 누나의 머리끄덩이를 잡자 루시 누나가 비명을 지르며 아리엘의 머리끄덩이를 잡았다.
“꺄아악! 이거 놔!”
“네가 놔! 이 쌍년아!”
나는 멍하게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루시 누나가 내 명령으로 아내라는 걸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었고 마법을 쏴서 아리엘을 산산조각 내지 않은 것도 다행이었다.
계속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고 있으면 안 되니까 내가 그 둘을 말렸다.
“미안해! 내가 미안해! 제발 싸우지 마!”
라임선생님, 멜리사, 윈스톤까지 와서 말리자 그 둘이 떨어졌다.
루시 누나가 씩씩거렸다.
“씩씩. 넌다리도 없잖아. 카일은 너 같은 물고기는 관심 없데.”
“아니. 카일은 매일 나랑 데이트했어. 너 같은 년은 잠깐 즐긴 것뿐이야.”
루시 누나의 이마에 힘줄이 또 하나 돋았다.
“흥. 넌 카일이랑 자지도 못했지? 풉. 자기가 아직도 카일의 첫 번째라고 믿고 잇는 거 봐.”
“뭐? 카일 진짜야?”
“그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아리엘은 여자 특유의 감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아리엘이 눈물을 퐁퐁 쏟으며 오른손을 들어서 내 뺨을 풀스윙으로 때렸다.
쨔아아악
나는 피하지 않고 그냥 맞았다.
아리엘이 울면서 양손으로 내 가슴을 치며 소리쳤다.
“이 나쁜 놈! 이 바람둥이!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쁜 놈아!”
“미안해. 아리엘.”
아리엘이 집 밖으로 헤엄쳐나가자 나는 재빠르게 아리엘을 따라갔다.
여기서 놓치면 영영 놓칠 것 같아서였다.
내 빠른 민첩 덕분에 문 앞에서 아리엘의 손을 잡을수 있었다.
아리엘이 잡힌 손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이거 놔! 이 나쁜 놈아!”
나는 아리엘을 품에 안았다.
아리엘이 소리쳤다.
“놔! 이 변태야!”
아리엘이 내 가슴과 머리를 퍽퍽 쳤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아리엘을 품에 안고 놓지 않았다.
이윽고 아리엘의 움직임이 멎었다.
내가 애원했다.
“아리엘. 제발 가지 마.”
“그러면 왜 그년이랑 있었던 거야!”
“미안해. 잠깐 흔들렸어.”
“흑흑. 네가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이 나쁜 놈아!”
“정말 미안해. 아리엘.”
아리엘은 내 품에 한동안 얼굴을 묻었다.
“흑흑. 제발 나를 버리지 마.”
“알겠어.”
“혹시 내가 아래가 물고기라서 그런 거야?”
“그런거 아니야.”
“그럼….”
“정말 잠깐 흔들린 거야.”
“알겠어. 믿을게.”
나는 오늘 아리엘과 함께 사과를 위한 데이트를 했다.
무조건 아리엘을 치켜세워주자 아리엘의 기분이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아리엘은 나를 산호가 아름답게자란 아무도 없는 곳으로 안내했다.
내 감에는 스파이들이 사방에서 어슬렁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적어도 아리엘의 눈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카일. 너는 인어가 노래를 들려준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
“무슨 의미인데?”
“너를 평생의 반려로 선택한다는 거야.”
“....”
아리엘이 뮤지컬에서처럼 팔을 휘저으며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죠.
제가 사랑을 할 거라고 믿지 못했죠.
지금은 아니에요~
당신을 만나다 보니.
당신 없는 세상 이제 생각할 수 없어요.
지금은 세상이 아름답게 보여요.
제발 제 마음 받아주세요.]
인어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어둠 종족 챔피언인 나의 마음조차도 녹여버리는 힘이 있었다.
아리엘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나를 감싸던 원죄가 정말로 약간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나는 말없이 아리엘에게 다가가서 감싸 안았다.
아리엘이 내 가슴에 머리를 묻고 나를 꽉 안았다.
“카일. 이제 나는 너밖에 없어. 제발 떨어지지 마.”
“알겠어.”
나는 아리엘을 그녀의 집까지 데려다주고 내 집으로 돌아왔다.
루시 누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카일. 그년 그냥 없애버리자.”
“누나. 그건….”
“너. 진짜 그년 좋아해? 우리 목표 잊었어?”
“누나. 아직 나는 목표를 잊지 않았어. 그리고 아리엘도 불쌍한 애야. 아리엘은 그냥 놔두자.”
“너 아리엘에게 마음이 조금 있구나. 알겠어. 두고 보자.”
루시 누나가 씩씩거리며 자기 방으로 갔다.
“휴…. 힘들다.”
처음에는 인어 왕국을 먹으려고 아리엘을 이용했는데 지금은 아리엘에게 정을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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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톤 왕은 클라이만 왕자와 함께 오늘 일어난 일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포세톤 왕의 입에 함지박만 한 웃음이 피어났다.
“푸하하하. 그 바람둥이 녀석 때문에 아리엘이 곧 포기하겠구나.”
클라이만 왕자가 웃으며 맞장구쳤다.
“네 아버지. 우리가 힘쓰지 않아도 알아서 헤어지니 얼마나 좋습니까?”
“아리엘이 상처받겠지만 이것도 세상사는 경험이다.”
“당연하지요. 아리엘에게 더 좋은 인어 남자를 소개해주겠습니다.”
“휴…. 아리엘이 저렇게 외로워하니 어쩔 수 없지. 가문, 지위, 성격 다 고려해서 찾아봐라.”
“알겠습니다.”
“저번에 난파선에서 지상의 고기랑 술이 나왔는데 같이 먹으러 가자.”
“오! 기대되는군요.”
아버지와 아들은 희희낙락하며 고기랑 술을 먹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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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은 그 일이 있고 난 뒤에 더 적극적으로 나를 찾아왔다.
아리엘은 아예 우리 집에 자기 방을 하나 만들어서 살게 되었다.
내가 뇌 기생 촉수로 나에 대한 집착을 약간 높이긴 했지만, 지금의 집착은 그 이상으로 어마어마했다.
루시 누나는 아리엘이너무 싫어져서 아리엘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면 아리엘과 루시 누나가 내 옆에 앉아서 신경전을 벌였다.
아리엘이 나한테 딱 붙어서 젓가락으로 밥을 먹여주면, 루시 누나가 자신의 다리로 내 허벅지를 문질렀다.
아리엘도 지지 않고 물고기 하체를 내 다리에 비볐지만, 비늘로 인해 약간 미묘했다.
나는 두 여자 사이에 끼인 신세였다.
윈스톤, 라임 선생님은 모르는 척했고 멜리사는 나한테 가까이 오고 싶은데 참고 있었다.
그 밖에도 루시 누나는 은근슬쩍 가슴을 나한테 밀착해서 아리엘을 화나게 했다.
나는 아내인 루시 누나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컸기에 조용히 잘해주었다.
하지만 이런 내 행동이 아리엘이 나에게 더 집착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아리엘은 내가 자신을 사랑하는데 불장어한테 흔들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리엘은 자신의 사랑으로 내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그 사랑을 나한테 확인받고 싶어 했다.
아리엘은 내 사랑을 확인받으려고 온종일 나에게 붙어있었다.
오늘 나는 지쳐서 방에서 쉬고 있었다.
아리엘이 내 방에 들어왔다.
내가 아리엘에게 말을 걸었다.
“아리엘. 왜?”
“카일. 제발 나 안아줘.”
“응? 이제 늦었잖아.”
“못 참겠어. 조금만 머리 쓰다듬어줘.”
“알겠어.”
아리엘이 나한테 다가오자 창밖에서 스파이들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아리엘이 나한테 다가와서 내 무릎 위에 앉고 나를 꽉 안았다.
나는 아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카일. 너도 인어 다리가 싫어?”
“아니.”
“네가 그 불장어한테 조금 흔들리고 있는 거 다 알아.”
“아니야.”
아리엘이 내 가슴에 머리를 마구 비비며 애원했다.
“제발 나만 봐줘.”
“아리엘.”
“네가 원하는 거 다 해줄게. 네 애도 많이 낳아줄게.”
“아리엘. 알겠어. 오늘은 이미 늦었으니 자자.”
“카일. 나 인간 아니라고 버리는 거 아니지?”
“아니야. 내가 널 왜 버려. 가자.”
나는 아리엘을 들어서 그녀의 방에놓아둔 후에 내 방으로 돌아와서 잘 수 있었다.
아리엘은 방에서 혼자서 생각했다.
‘그 불장어가 기세등등한 이유는 단지 다리가 있어서야. 가슴은 부자연스럽게 크고 얼굴은 내가 더 예뻐. 카일이 그 여자를 선택할 이유가 없어. 단지 같은 인간이니까 조금 흔들리는 걸 거야. 내가 다리가 있다면 무조건 나를 선택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