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슬라임 왕국
남은 슬라임 4명이 우리에게 미끄러져 왔다.
우리는 다시 인간형으로 돌아왔다.
4명의 슬라임의 색깔은 철 색,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슬라임들이 몸을 떠는 진동으로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루시 누나가 궁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왜 싸우고 있었는지 물어보았다.
“왜 킬러 비와 싸우고 있었나요?”
철 색 슬라임이 대표로 나와서 말했다.
“킬러 비는 슬라임의 천적입니다. 저기 슬라임 시체가 보이십니까? 이름이 바하티라고 하는데. 크윽. 불쌍한 바하티. 킬러 비는 저희를 죽인 다음에 먹기 위해서 해체해서 가져갑니다.”
“정말 안타까워요. 음... 그리고 보니까 킬러 비는 거의 피해가 없었는데 왜 이렇게 쉽게 당하신 건가요?”
“킬러 비의 꼬리 침에서 나오는 독은 슬라임에게 치명적입니다. 그 독에 찔리면 저희의 움직임이 둔화해서 공격에쉽게 노출됩니다. 킬러 비들은 그 독을 무기에 묻혀서 저희를 공격하거나 꼬리 침으로 찔러버립니다.”
“그렇군요.”
“은인께서 바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저희는 모두 킬러 비의 진수성찬이 되었겠지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멜리사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말했다.
“저희는 당연한 일을 했을뿐이에요!”
붉은색 슬라임이 말했다.
“겸손하시군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멜리사가 다른 것을 물었다.
“킬러 비가 있는데 여기는 왜 나오신 거예요?”
철 색 슬라임이 말했다.
“저희는 탐험대입니다. 저희 왕국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킬러 비가 잡으러 오지만 갇혀만 살 수는 없지요. 저희는 왕국 밖의 새로운식물, 동물 또는 길을 찾으러 나왔습니다.”
초록색 슬라임이 슬라임 촉수로 맞장구치며 말했다.
“여러분을 만난 것도 탐험의 성과입니다! 저희는 새로운 종족과 만났어요! 비록 바하티가 희생돼서 너무 슬프지만, 저희의 탐험은 성공입니다!”
4명의 슬라임들이 뿅뿅 뛰기 시작했다.
멜리사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중얼거렸다.
“귀여워….”
루시 누나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풋. 왜 그렇게 뿅뿅 뛰는 거예요?”
초록색 슬라임이 말했다.
“이건 저희의 기쁨의 제스처입니다. 고마울 때, 즐거울 때, 기쁠 때 저희들은 이렇게 뿅뿅 뜁니다.”
멜리사가 나한테 채근했다.
“오빠! 우리도슬라임 발견했으니까 기쁨의 점프를 하자!”
“응? 그럴까?”
뭐, 분위기 따라가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윈스톤을 제외하고 나, 루시 누나, 멜리사는 슬라임들을 따라서 뿅뿅 점프를 했다.
초록색 슬라임이 뿅뿅 뛰면서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도 슬라임 예절의 묘미를 알아버리셨군요!”
노란색 슬라임이 뿅뿅 뛰면서 말했다.
“우리의 슬라임 예절을 다른 종족한테 전파하다니! 비록 바하티가 안타깝게 희생되었지만 기쁩니다!”
윈스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몇 분간 제자리에서 뿅뿅 뛰는 시간을 가졌다.
윈스톤만이 어색한 얼굴로 뒤에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진정되자 내가 대표로 소개했다.
“저희의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촉수의 왕 카일입니다. 여기 있는 동료들은 제 아내와 부하입니다.”
철 색 슬라임이 감탄했다.
“오! 촉수의 왕이라니. 저희가 모르는 대륙에는 촉수의 왕국도 있나 보군요!”
“촉수 왕국은 최근에 생긴 왕국입니다.”
“그렇군요. 저희는 킬러비 때문에 세상과 단절되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빨리 바뀌는데 소식을 듣지 못하다니….”
“슬라임왕국으로 안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당연하지요. 슬라임은 은혜를 압니다. 한 번 슬라임의 친구가 되면 영원한 슬라임의 친구입니다. 따라오시지요.”
4명의 슬라임들이 우리를 슬라임 왕국으로 안내했다.
멀리서 킬러 비들이 우리를 몰래 따라오며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킬러 비들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아서 그냥 무시했다.
하루 정도를 더 걸어가니 숲 밖으로 거대한 돔형태의 구조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가니벌판에 다양한 크기의 돔 구조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것이 보였다.
루시 누나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저게 슬라임 왕국인가요?”
철 색 슬라임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 구조물들이 우리의 집이자 일터입니다.”
“무슨 재질로 만든 건가요?”
“저 구조물은 우리의 몸에서 나온 점액으로 흙을 굳혀서 만든 겁니다. 강철보다 단단해서 킬러 비도 부술 수 없지요. 가장 큰 돔에는 저희의 여왕님이 계십니다.”
멜리사가 감탄했다.
“우와. 흙을강철보다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철 색 슬라임이 공손하게 말했다.
“여러분은 저희 탐험대의 은인입니다. 제 형이 이곳 대장군입니다. 형한테 말해서 숙소로 안내해드리지요.”
내가 속으로 놀랐다.
‘으응? 생각보다 거물이잖아!“
내가 질문했다.
“감사합니다. 혹시 슬라임 여왕을 만날 수 있을까요?”
철 색 슬라임이 대답했다.
“제 형이 대장군이니 형한테 물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아! 제 이름을 아직 말해드리지 않았군요. 저는 ‘치디’라고 합니다.”
치디는 우리를 20m 높이의 돔으로 안내했다.
돔의 한쪽 벽면에 있는 아치형 입구가 있었다.
“여기가 저랑 형이 사는 집입니다. 들어가시죠.”
돔 안에 들어가자 5m 정도의 천장과 아치형의 기둥들이 보였다.
바닥은 그냥 흙인데 어두운 곳에 사는 풀과 꽃들이 자랐다.
한쪽 구석에는 조그만 연못이 있었다.
자연 그대로를 모사한 것 같았다.
치디가 집을 자랑했다.
“집이 꽤 아름답지 않습니까? 여기 있는 이끼는 제가 어렵게 구한 겁니다. 위에서 미끄러지는 감촉이 일품이죠. 2층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벽 쪽에 2층으로 올라가는 빗면이있었다.
슬라임이라서 계단이 아닌 빗면인 것 같았다.
빗면의 표면이 생각보다 미끄럽지 않았다.
2층에 올라가니 3m의 거대한 철 색 슬라임이 있고 주변에 철광석이 쌓여 있었다.
치디가 반갑게 소리쳤다.
“형! 은인들을 데려왔어!”
형이라고 불린 슬라임이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로 말했다.
“은인이라고? 며칠 전에 탐험을 떠나서 만난 거냐?”
치디가 형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형이라고 불린 슬라임이 우리에게 고마워했다.
“제 동생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형 슬라임은 치디도 칭찬했다.
“새로운 종족을 만났으니 치디 너의 탐험이 성공했구나!”
형 슬라임이 우리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제 이름은 ‘치케’이고 여기 대장군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슬라임은 상대의 자유를 존중하기에 이렇게 집에서 근무하고 있지요.”
나도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치케가 말했다.
“한 번 슬라임의 친구는 영원한 슬라임의 친구입니다. 제가 도와드릴 게 있습니까?”
“저는 촉수의 왕입니다. 슬라임 왕국과 교섭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슬라임 여왕을 만나고 싶습니다.”
“오오! 이게 몇십 년 만의 외교인지! 여왕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치디 너는이제 편히 쉬어라.”
“알겠어. 형.”
치케는 즐거워하며 우리를 밖으로 이끌었다.
멜리사가 궁금한 걸 물었다.
“저기 철광석은 왜 이렇게 많은 거예요?”
치케가 말했다.
“식량창고입니다. 슬라임은 뭐든지 먹을 수 있고 많이 먹다 보면 그 특성을 획득합니다. 저는 철 슬라임입니다.”
“앗. 그러면 엄청 단단하겠네요?”
“그렇습니다. 저는 이 단단함으로 킬러 비의 창이나꼬리 침이 박히지 않아서 대장군이 되었지요. 치디도 몇 년 더 철광석을 먹으면 저처럼 단단해질 겁니다.”
“대단해요!”
“하하하. 이 왕국에는 다양한 슬라임들이 살기에 특성도다양하지요. 저보다 더 좋아 보이는 특성들이 많습니다.”
치케는 우리를 중앙의 가장 거대한 돔으로 안내했다.
내가 질문했다.
“혹시 고대 슬라임에대해서 아시나요?”
“고대 슬라임이 누구죠?”
“촉수 전쟁 때부터 살아있는 슬라임이 있나요?”
“저희 여왕님이 촉수 전쟁 때부터 계셨다고 말씀하시긴 하는데 누구도 진위를 가리지 못하고 있지요. 여왕님과 얘기해 보시지요.”
“알겠습니다.”
나는 윈스톤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마도 슬라임여왕이 우리가 찾는 고대 슬라임일지도 모르겠다.”
“주군. 저도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촉수 전쟁 때부터 있었으니 굉장히 강할 거고 슬라임 왕국의 여왕이 된 것도 이해가 됩니다. 한 나라의 여왕이니 등용이 어려워지겠습니다.”
“등용이 안 되면 동맹이라도 맺자.”
“알겠습니다.”
나는 치케한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슬라임한테는 성별이 있나요?”
“당연한 걸 왜 물어보십니까? 슬라임도 남자 여자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루시 누나가 질문했다.
“저는 슬라임이 혼자서 아기 슬라임을 출아하는 걸 봤는데요?”
치케가 설명했다.
“저희는 유성 생식도 가능하고 무성 생식도 가능합니다. 무성 생식을 하면 저희랑 똑같은 성격의 아이가 태어나죠.”
루시 누나가 불가사의의 해답을 얻은 얼굴로 말했다.
“슬라임의 생태는 비밀에 싸여 있었는데 이제야 그 비밀이 풀렸어요.”
이번에는 치케가 물어봤다.
“이 왕국 너머에도 슬라임이 많이 있습니까?”
“당연하죠! 이 대륙에는 슬라임이 아주 많아요!”
“우리 슬라임이 대륙에 많다고 하니 뭔가 자부심이 느껴지는군요. 아! 킬러 비만 없었다면우리도 대륙으로 뻗었을 텐데 아쉽군요. 언젠가 외부의 슬라임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돔의 입구에 도착했다.
돔에 들어가니 엄청난 높이의 천장과 아치형의 기둥들이 보였다.
돔의 안쪽에 높이가 50m는 될 듯한 가장 거대한 황금색 슬라임이 있었다.
황금색 슬라임의 주위를 작은 슬라임들이 돌아다녔다.
치케가 여왕님을 소개하고는 큰 소리로 불렀다.
“저희 여왕님이십니다. 여왕님! 외부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윈스톤이 슬라임들의 행동을 보고 감상을 말했다.
“생각보다 자유롭군요.”
치케가 설명했다.
“저희 슬라임은 모두 동등합니다.직업은 인생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죠.”
“신기한 사고방식이군요.”
“여왕님은 스스로 여왕을 하는 게 너무 좋아서 하시고 계시는 겁니다. 저도 대장군을하는 게 즐겁고요. 모든 슬라임은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스로 좋아해서 일을 한다라…. 제가 주군을 섬기는 것도 좋아서 하는 겁니다. 이해될 것 같기도 합니다.”
거대한황금색 슬라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황금색 슬라임이 지적이면서도 뇌쇄적인 여성의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슬라임 왕국에는 무슨 일로 왔니?”
황금색 슬라임이 반말했지만 생각해보면 1000년도 더 살았으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대답했다.
“저는 촉수의 왕 카일입니다. 여왕님과 교섭하고 싶습니다.”
“촉수의 왕이라고? 내가 여기에 처박혀 있을 동안 세상이 정말 많이 변했나 보네.”
“저는 보하크 숲 북동쪽에 있는 인간의 마을을 촉수로 완전히 점령했습니다. 여왕님과 교섭하고 싶습니다.”
“으응. 어떻게 점령했는데?”
“저는 새로운 특성을 얻는 진화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상대방을 제 부하인 촉수 영웅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음…. 그건 카마이트님의 권능과 비슷한 능력이네~”
루시 누나가 외쳤다.
“촉수의 왕께서는 카마이트님 그 자체입니다!”
슬라임 여왕이 루시 누나를 부정했다.
“그건 아닐 거야. 나는 카마이트님의 세례를 받았거든. 얘가 카마이트님이라면 지금 당장 나를 권속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느낌은 안 들어.”
내가 재빠르게 설정을 말했다.
“저는 오랜 기간 봉인 당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억과 능력을잃었습니다.”
“흐응~~ 뭐 그렇다고 하자. 너 혹시 카마이트님의 유전자를 짙게 물려받은 숨겨진 자식 같은 거 아니니?”
“왜 그렇게생각하시나요?”
“새로운 특성을 얻는 진화의 능력과 상대방을 촉수 영웅으로 만드는 능력은 다른 촉수들은 불가능한 카마이트님만의 권능이었거든. 너는 카마이트님의 찌꺼기 정도는 되는 것 같네.”
“그렇군요.”
나는 본론을 꺼냈다.
“저희는 여왕님을 저희 왕국으로 등용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래? 뭐 관심은 가네.”
“괜찮으신가요?”
“모든 슬라임은 자유로우니까. 내가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사실 너를 보고 있자니 바깥세상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럼…!”
“그런데 문제가 있네?”
“혹시 킬러 비 때문입니까?”
“그래. 내가 떠나면 여기있는 슬라임 모두 킬러 비한테 사육당할 거야. 나는 친구들을 버리고 갈 정도로 책임이 없는 건 아니야.”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여기 왕국을 지켜야 하고 다른 슬라임들은 킬러 비에 약해. 너희들이킬러 비 여왕의 목을 가져오면 내가 진지하게 고민해볼게.”
나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왕이 한 차례 더 말했다.
“참고로 킬러 비 여왕을 촉수 영웅으로 만든다든지 평화협정을 맺는다든지 같은 건 없어. 무조건 목을 가져와. 그리고 나를 등용하고 싶으면 다른 킬러 비를 받으면 안 돼.”
나는 조금 더 고민했다.
킬러 비보다는 촉수 전쟁을 경험한 슬라임 여왕이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윽고 나는 결정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으응~ 잘 선택했어. 내가 치케를 붙여줄게. 치케~!”
“네. 여왕님.”
“네가 여기 있는 애들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도와줘.”
“알겠습니다. 참고로 제동생 치디가 탐험 중에 킬러 비한테 습격을 받았는데 이들이 도와줘서 무사히 왕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슬라임 여왕이 뿅뿅 기쁨의 점프를 뛰었다.
쿵 쿵 쿵
여왕이 점프하는 것을 보니 어째서 이렇게 돔을 크게 지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래? 고마워 얘들아. 너희들은 슬라임의 은인이니 이 왕국 어디에든 갈 수 있어. 치케가 많이 도와줘.”
치케가 대답했다.
“네 여왕님.”
내가 재빠르게 궁금한 걸 물었다.
“여왕님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나요?”
“내 이름? 나는 라임이야~”
“슬라임 뒤에 두 글자인데요?”
“카마이트님이 라임이라고 불렀거든.”
“알겠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돔에서 나왔다.
루시 누나가 치케에게 물었다.
“저희가 잘 수 있는 곳이 있나요?”
“빈 돔이 몇 개 있기는 하니 거기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마음대로 쓰시지요.”
멜리사가 먼저 선수를쳤다.
“3인용 1개랑 1인용 1개 주세요!”
“그러지요.”
치케는 우리를 3인실 돔과 1인실 돔으로 안내했다.
치케가 말했다.
“제가 친구들을 시켜서 뿔토끼고기를 가져오라고 할 테니 오늘은 이만 쉬시지요.”
우리가 기다리자 무릎까지 오는 슬라임들이 뿔토끼 고기를 가져왔다.
우리는 맛있게 먹고 돔 바닥에 굴을 파고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