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루시의 과거
띠리리리리링
[100pt를 사용하여 고등 지성 생명체인 인간의 뇌와 연결됩니다.]
이제 진화포인트는 67pt 남았다.
진화하자마자 루시의 뇌 신경들과내 촉수 다리들이 연결되며 루시의 정보가 들어왔다.
갑자기 엄청난 양의 정보가 내 머릿속으로 물밀 듯이 쏟아져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아아.... 어? 아아아아악!”
고등 지성 생명체인 인간의 뇌는 너무나도 복잡했다.
방대한 기억과 그 기억과 연관된 수억 개의 감정들.
인간의 650개의 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운동 피질의 신호들.
인간의 뇌는 눈으로 보는 기호들과 소리로 듣는 음절들까지 일일이 의미를 자동으로 부여하고 연결되는 감정과 가능한 행동들을 불러일으킨다.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받아들여서 이해하고 조절해야만 인간의 완벽한 제어가 가능했다.
내 인간 수준의 미천한 지능과 자아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나를 구해줄 알림이 울렸다.
띠리리링
[당신은 한 가지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종족 진화의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50pt를 사용해서 ‘뇌 기생 촉수’로 진화하겠습니까?]
“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알림이다. 한 가지에 집중하다 보면 종족을 바꿀 수 있는 거였냐. 그래 한다.”
종족이 바뀌는 느낌은 너무나도 신기했다.
나의 신체뿐만 아니라 본능과 본질까지도 바뀌는 느낌이었다.
내 몸에서 더 많은 촉수 다리들이 나왔다.
모든 촉수다리에서 기다랗고 미세한 섬모들이 셀 수 없이 죽죽 삐져나왔다.
섬모 하나하나가 루시의 뇌 신경 시냅스에 연결되며 뇌 신호들을 받아들였다.
나는 시냅스들에서 얻은 신호들의 의미를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이제는인간의 행동과 정신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나는 남은 진화포인트를 모두 지능에 투자했다.
지능이 올라가는 것은 바둑에서 2수까지만 보고 있다가 갑자기 4수, 5수까지 볼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제 루시를 내 입맛에 맞춰서 조절하는 것만이 남았다.
현재 내 스테이터스를 보니 기분이 우쭐해졌다.
등급도 중하급 촉수가 되었고 특성에 ‘고등지성체 뇌 제어’가 생겼다.
[1. 이름 : 김철수
2. 등급 : 중하급 촉수
3. 종족 : 뇌 기생 촉수
4.
힘 : 1
체력 : 2
민첩 : 1
지능 : 39
마력 : 0
5. 권능 :
1) *****
2) 진화
6. 특성 : 고등지성체 뇌 제어, 뇌 신경 모방, 뇌 연결(뿔토끼, 인간), 마취 점액, 소화액 면역, 촉수생성, 칼날 촉수, 흙 굴 파기
7. 진화포인트 0pt
]
나는 뿔토끼처럼 루시의 자아를 없애고 빈껍데기 인형으로 만들어서 내 맘대로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2달간의 시간 동안 루시가 마음에 들었고 루시의 자아가 온전한 상태로 나를 도와주기를 원했다.
또한, 내가 루시가 되면 뭔가 TS물같고 내 자아에 여성성이 영향을 미칠지도 몰랐다.
나는 루시의 기억 담당 대뇌피질에 집중해서 1살 때부터 축적된 장기기억들을 살펴보았다.
“음음. 그렇게 된 거였나.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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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는 원래 게일 왕국의 조그만 마을에서 부모님과 1살 어린 남동생과 살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은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했다.
남동생의 이름은 ‘카일’이고 다른 남매들처럼 서로 티격태격 싸우기도 했지만, 그녀는 누나로서 남동생을 사랑했다.
당연히 루시는 부모님도 매우 사랑했다.
루시는 옆에 있는 도시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돈을 모으고, 이 돈으로 틈틈이 마법학원에 가서 마법을 배웠다.
마법학원은 궁정 마법사나 마법 학교 교직원이 될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은 마법사들이 편하게 돈을 벌기 위해서 세운 학원으로 곳곳의 도시에 있었다.
개인과외를 하는 마법사도 있고 대형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마법사도 있었다.
루시는 뛰어난 마법 재능으로 빠르게 마법 능력을 향상했고 어느새 마법학원 강사를 능가할 수 있었다.
루시는 가족한테 언제나 자신은 위대한 마법사가 돼서 돈을 많이 벌고 가족을 행복하게 하고 동생도 좋은 학교에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루시가 위대한 마법사가 되었을 때는 동생이 이미 다 큰 어른이 되어있겠지만 말이다.
루시가 18세가 된 해의 어느 날이다.
루시는 마법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터벅터벅 마을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루시의 눈에 저 멀리 마을에서 연기가 나는 것이 보였다.
“뭐야!무슨 일이야!”
루시는 불안한 마음에 마을로 뛰어갔다.
마을에 도착하니 불길이 치솟고 비명이 들렸다.
“꺄아아악!”
마을의 정문에 넝마나 가죽 갑옷을 걸치고 얼굴에 흉터가 그득한 도적들이 여자를 강간하고 있었다.
곳곳에 마을 사람들의 사체가 있었다.
저항한 흔적인지 도적들의 시체도 있었는데, 지금 상황을 보니 마을이 저항에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루시는 체인 라이트닝 마법을 발사했다.
정문 옆에서 바지를 내리고 정신없이 여자를 강간하던 3명의 도적이 통구이가 돼서 쓰러졌다.
“크아아악”
루시는 강간당하던여자에게 달려갔다.
엄마랑 자주 수다를 떨던마을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 정신 차리세요!”
“어엉엉엉. 어엉엉엉엉.”
아주머니는 강간의 충격으로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다.
루시는 일단 아주머니는 구했으니 가족의 안위를 보기 위해서 집으로 달려갔다.
루시는 은폐, 엄폐에 사용하는 인식저해 마법을 자신에게 걸었다.
뛰어난 강자나 특수한 능력이 있는 몬스터는 바로 알아보겠지만, 도적 정도는 피할 수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도 비명을 지르는 마을 사람들, 그런 마을 사람들을 죽이거나 폭행하고 강간하는 도적들, 집에서 재화를 들고나오는 도적들이 보였다.
루시는 자신의 집에 도착했다.
루시의 집은 불타고 있었다.
루시는 거기서 보이는 비참한 광경에 한순간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루시가 사랑하던 동생과 아버지는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 피떡이 돼서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아름다웠던 어머니는 알몸에다가 배에 칼이 박혀서 땅에 고정된 상태로 도적 2명한테 강간을 당하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유부녀 보지가 쫄깃한데?”
“빨리 끝내라. 크크크. 너 다음은 나다.”
“아직 30분은 더할 수 있다고!”
루시는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엄청난 분노를 삭이며 파이어볼 마법을 발사했다.
도적들은 강간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파이어볼이 오는 것을 눈치채지못하고 정통으로 맞아버렸다.
“으악악. 뜨거워. 크악”
“살려! 살려줘!”
두 도적의 상체가 재가 돼서 흩어져 내렸다.
루시는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이미 동생이랑 아버지는 어떻게 봐도 시체인 상태였다.
“엄마! 엄마! 저에요. 루시예요.”
어머니는 눈물을 죽죽 흘리며 루시를 바라봤다.
“루시... 너라도 살아서 다행이다. 으윽. 고통스럽구나.”
루시의 어머니도 배에 칼이 박힌상태에서 강간당하면서 피가 너무 흘렀기에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루시.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끝을 아는 듯 마지막 말을 내뱉고 눈감았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아무리 흔들어도 어머니의 몸은 식기만 했다.
저 멀리서 15명의 도적이 다가왔다.
가운데 한 명은 가죽 갑옷에, 판금 투구를 쓰고 거대한 대검을 어깨에 메고 있는데 딱 봐도 도적들의 대장이고 강해 보였다.
도적 대장이 분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너가 우리 애들을 통구이로 만든 년이냐? 오늘 넌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서 평생 내 전용 오나홀로 사용해주마!”
아무리 루시라고 해도 강자를 포함한 15명을 전부 상대할 수는 없다.
때마침 저 멀리서 말들의 발굽 소리가 들렸다.
마을을 관리하는 영주의 기사와 병사들이 지원군으로 오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점은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도적들은 말발굽 소리가 들리자마자 자신들의 말을 타고 빠르게 밖으로 도망갔다.
정규병과 싸우면 도적들이 몰살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기사와 병사들이 도착했을 때 마을 안에는 폐허밖에 없었다.
병사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살아있는 사람들을 마을 중앙으로 모았다.
200명이 있던 마을인데 살아남은 자들은 30명 남짓이었다.
기사가 투구를 벗고 착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게 다인가?”
루시는 치솟아 오르는 슬픔과 허망함에 기사에게 소리쳤다.
“왜 이렇게 늦은 거예요. 이미 다 죽었잖아요! 제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없다고요!”
이 말은 살아남은 마을 사람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듣고 있던 병사가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
“평민이 기사한테 무슨 망발이야! 예의를 지켜라!”
기사가 병사를제지하며 대답했다.
“후우우우. 미안하군. 우리도 최대한 일찍 도착하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도적들의 수가 많고 체계적이었던 것 같다. 도망간 도적들은 지금 쫓고 있고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잡아서 정의의 철퇴를 내릴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지원금을 주겠다. 살아남은 자들에게 10골드씩 줘라!”
병사들은 가져온 금화 주머니에서 10골드씩 꺼내서 살아남은 자들에게 주었다.
어떤 귀족들은 평민을 벌레 보듯이 하고 이 정도도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과하고지원금까지 주는 이 기사는 굉장히 높은 인격을가진 자였다.
루시는 입을 다물고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살아갈 만큼 큰돈은 아니지만 일단 이거라도 받아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집이 다 타버렸기에 루시는 집에서 돈이 될만한 남은 것들을 모으고가족의 시체를 땅에 묻은 후 마을을 떠났다.
이후 루시는 모험가로 생활했다.
모험가는 각 도시의 모험가 길드에 등록한 후에 길드에서 의뢰를 받아서 해결하거나 몬스터의 부속물을 팔아서 돈을 버는 직업이다.
루시는 23살 때까지 최대한 모은 돈으로 브래돈 마을에 집을 분양받아서 살게 되었다.
브래돈 마을을 선택한 이유는 도시에서 벗어나서 아름다운 자연 속에 있으면 지금까지도 자신을 괴롭히는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루시는 브래돈 마을에서 포션상점을 운영하고 엘빈을 만나면서 다시 여리고 활발했던 어렸을 때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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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내가 파악한 루시의 기억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확실하게 루시의 자아를 보존하면서도 나에게 복종하게 만들지 고민했다.
인간의 자아는 매우 복잡하므로 조금만 삐끗해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신이 구성되거나 망가질 수 있다.
루시를 복종시키기 위해 고도의 계획이 필요한 이유였다.
이렇게 불쌍한 여자를 내 맘대로 한다는 게 양심이 찔리지만 별로 크게 상관하지는않았다.
물론 나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도 흘리고 다른 사람들이 아파하면공감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구에서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기나긴 바닥 생활을하면서 나의 인격이 만들어졌기에 내가 살기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별로 거부감이 없었다.
어쩌면 세상이 나라는 괴물을 만든 것일지도 몰랐다.
또한, 나는 이렇게 예쁘고 재능있는 여자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 여자로 만들고 싶어졌다.
엘빈한테는 미안하겠지만 말이다.
만약 내가 원래부터 촉수였다면 인간의 자아보존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겠지.
나는 루시의 뇌에 있는 모든 것을 느끼며 계획을 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