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 그 후의 부부 생활 (9/10)

9. 그 후의 부부 생활

성 생활은 음란의 수위를 높여 갔지만 생활은 그렇게까지 변하지 않았다.

전에도 말했듯이 아내의 숙녀적인 면은 아무런 변화하지 않았다.

남 앞에서는 결코 불평하지 않고 그렇다고 무뚝뚝함도 없다.

극히 자연스런 태도로 응해 준다.

사람들이 보면 우리는 세상 어디에든 있는, 보통으로 의좋은 부부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특수한 성벽에 사로잡혀 비정상적인 플레이에 빠진 부부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 갭을 우리 부부는 즐기고 있다.

아내는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창녀의 얼굴이 점점 음란하고, 나에게 네토라레시키는 방법이 능숙해 지는 한편,

숙녀의 얼굴은 더욱 청초하게 되어, 현모의 분위기를 더 물씬 풍기게 됬다.

둘이서 지낼 때는 양쪽 면이 절묘하게 혼합된다.

섹시 함을 강조한 옷차림은 결코 무너 뜨리지 않지만 팬티 등은 좀처럼 볼수 없다

남을 대한 때와 마찬가지로 몸가짐에 항상 신경 쓰고 있다.

좋은 의미의 예의범절을 차림에도 나는 뇌쇄한다.

아내를 치한 같은 눈으로 쳐다보, 팬티를 들여다 보려고도 한다.

자신의 아내를 상대로 필사적으로 팬티 노출을 보려는 남편이 있을까?

차분하게 생각하면 터무니 없는 경우지만,

아내의 농간에 당하고 있던 내게 이성 같은 것은 있을수 없었다.

어느 날 대낮부터 팬티 노출, 자위 행위를 졸랐다.

당연히 아내는 꺼렸다.

간청 끝에 그냥 서 있는 모습을 아래에서 올려다 볼 뿐이라는 조건으로 OK 해 준다.

서둘러 발밑에 기어들면 스커트 속에는 헝클어지지도 더러워지지도 않은 깨끗한 팬티가 있다.

이 또한 좋다.

보기 흉한 것을 알면서 자위 행위를 시작했다.

아내는 약속대로 그냥 선 채, 말로 몰아붙이는 것도 물론 없었다.

흥분을 높이는 재료는 눈앞의 보통 팬티 노출과 나 자신의 망상뿐이다.

조용히 아내의 사타구니를 덮고 있는 하얀 팬티.

이 안에에 있는 여성의 성기도 흥분시와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딱 닫혀 있음에 틀림 없다.

보지가 보이는 양면성과

아내 자신의 이중성이 망상 속에 둘러싸인다.

청초하고 얌전한 아내가 딴사람처럼 음란하고 적극적으로 쾌락을 탐하며 헐떡이다.

보지도 별개 같게 빠끔히 벌어지며, 줄줄이 음액을 쏟아내, 강직한 육봉을 근본까지 삼키다.

탐욕스러운 성적 호기심을 간직하면서도 모르는 듯한 얼굴로 서있는 지금의 아내.

끝없는 음란함을 가지면서, 조용히 팬티 속에 들어가 있는 지금의 보지.

양쪽의 모습을 아는 만큼 더 흥분감은 높아진다.

가랑이속 속옷에는 균열에 따른 형태로 갈라져 그 앞쪽에는 음모의 그림자가 희미하게 비쳐있다.

평상복의 팬티이기 때문에 잘 비치지는 아니지만, 그 평범함이 오히려 참을 수 없다.

팬티의 부푼 곳이나 주름, 솔기와 인연의 장식, 그런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이 흥분 재료가 된다.

나는 아내의 흐트러진 모습이나, 함빡 젖은 채 변색한 팬티를 떠올리면서 자지를 훑었다.

훑으면서 한심한 목소리로 헐떡인다.

팬티 노출•자위에 빠져 있는 비참한 모습을 냉정한 심리 상태의 아내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아내의 음부를 만지는 것도 넣는 것도, 보는 것 조차도 금지 당하고 있다는 비참함까지도

흥분 재료가 되어 달려들어 왔다.

아내의 보지에 넣고 싶다,

철저히 거부한다,

양쪽의 의식이 가파르게 높아져 심하게 갈등한다.

비참한 모습을 노출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한심한 소망도 들려주고 싶다.

평상심의 아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냉정하게 생각할 여유도 없이

정신을 차려 보면 한심한 말이 입을 따라 나섰다.

"아내의 보지에 넣고 싶다! 팬티속의 보지에 넣고 싶어서 못 견디겠다!!! 직접 보여 주면 안돼?"

하면서 자신의 말로 흥분했다.

평온한 아내와 쾌감에 번민하는 자신과의 격차에 언제나처럼 순식간에 사정감에 휩싸였다.

목 안에서 신음 소리를 흘려 대량의 백탁 즙을 자신의 배 위에 터뜨렸다.

쥐어 준 휴지로 닦아내면서 치마 밑에서 얼굴을 빼내어, 아내를 만났다.

모멸의 빛은 떠오르지 않았다.

한심한 나는 또 이런 형태로 자위해도 되냐고 물었다.

"응, 가끔은.."

쓴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승낙했다.

약간 어이 없어 하는 얼굴이긴 했지만,

남편이 자신의 팬티 노출로 자위한다는 시츄에이션은 그다지 나쁜것도 아닌 것 같다.

불륜 직후의 더러운 속옷을 드러내다 것이 아니다,

사타구니를 남편의 얼굴을 비비대고 망측한 모습을 드러내다 것도 아니다.

그냥 서 있을 뿐,

게다가 평소의 깨끗한 속옷을 보일 뿐만이다.

부끄럽다고 해도 견딜 수 없는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매력을 재확인할 수 있다면 쾌히 용인하려는 것 같다.

여성이 자신의 매력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어야 여자는 자신감을 갖고 보다 매력적으로 빛난다.

그 점에 관하여 나의 주위에는 반면교사로 밖에 말할 수가 없는 사례가 넘친다.

예를 들면, 술자리 등에서 스스럼없는 분위기가 되어 부부문제가 화제가 되었을 때에

정해진 듯 나오는 말이 "권태기" 또는 "각방을 쓴다"라는 종류의 문구.

창피하다고 숨길 수도 없는 것이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러한 상황은 자신의 아내를 여자로 보지 않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여자로 보지 않게되면 정신적인 의욕이 없어지고, 섹스리스가 되어

성 호르몬이 비활성화하여 성적 매력과 젊음이 없어져 버린다.

부인이 심신이 모두 늙어 버리는 요인이 될 수있다.

그런 점에서, 아내는 정반대이다.

불륜 상대에게 심신이 모두 충분히 사랑 받는 데

변칙적인 부부 생활을 통해 남편으로부터 정신적인 애정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지없이 충실한 섹스 생활을 보내고 있다.

섹시하고, 젊어보이는 아내에 대해 느끼는 느낌도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처럼 이상한 부부 관계는 모두에게 권장할 수는 없다

단순한 불륜이라도 중대한 트러블의 근본이니까 피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안정된 관계와 어지러운 관능은 상반되어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절실하게 통감하지만

이날 이후, 아내는 팬티 노출, 자위 행위를 계속 따라 주게 되었다.

언제나 팬티 노출이 보이게 됐다는 뜻은 아니다.

언제라도 보이면 가치가 없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일상 생활 속에서는 여전히 제대로 방어하고 있다.

내가 자위하고 싶다고 간청했을 때만 보여 준다.

아내의 팬티 노출을 볼 때는 꼭 자위하고 사정하는 것을 의무화된 것이다.

내 사정 횟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아내가 손을 대는 가능성은 줄어든다.

불륜 상대의 의향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구나 라고 직감했다.

사정 횟수의 증가는 아내에게도 장점이 있다.

바람의 방지이다.

나는 아내에게 "혼자 하는 것 외에 바람은 절대로 없다" 라고 전해 듣고 있다.

자신은 바람을 피우면서 뭐든지 제멋대로다 라는 생각은 확실히 있지만

여성과의 성접촉은 평생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이상 부득이 하다.

아내는 불륜에 빠져 있는데 자신은 자위 행위만으로 성욕 처리하는 관계를 원했으니

당연한 요청이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기쁘기도 하다.

정액이 쌓였다고 해도 내가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는 것은 아내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사정에 집착한 것은 나를 물리적으로 성교 불능의 상태로 해 두고 싶다는 생각이 강한 것은

침실 안쪽 열쇠를 붙인 것과 똑같은 이유다.

팬티 노출, 자위 행위는 총 3패턴이 되었다.

불륜 후의 더러운 속옷을 떨어진 거리에서 들여다보도록 하는 것과

통상의 귀가 후, 아내의 분비액이 배어든 속옷을 얼굴에 비비대는 형태,

그리고 평소 아무것도 아닌 팬티 노출을 엿보는 것이다.

어떤 패턴을 선택할지 선택권은 나에게 주었다.

아침, 출근복으로 갈아입은 아내에 욕정, 팬티 노출, 자위 행위를 원했던 때는

"돌아온 후의 것이 좋지 않아?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 와 같이

귀가 후의 팬티 노출•플레이를 넌지시 비추다도 한다.

그런 때는 욕정을 굳이 억제하고 밤중까지 기다렸다가 자위에 잠긴다.

휴일, 평상복의 아내에게 성욕을 품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는

대낮에도 팬티 노출, 자위 행위를 조르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 경우, 아내는 물론 무반응인데, 바라보는 방법의 패턴은 여러가지이다.

처음과 같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형태도 있고,

소파에 앉아 한쪽 다리를 세워 주기도 한다.

아내는 옷 자락을 억제하는 기분으로 글자 그대로의 치라리즘을 선 보이면서

자위 행위에 빠진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치라리즘=우연히 보이는 속옷이나 맨살에 흥분하는 성적 취향을 가리킴]

냉정한 아내와 시선을 얽히면서 하는 자위 행위는 각별하다.

나는 다소 과장하여 번민, 허덕이고, 사정한다.

냉정한 심리에서 욕정 한 인간을 바라보면 필시 어리석게 보일 것이다.

그 싸늘함이 참을 수 없다.

의외로 이 형태의 팬티 노출, 자위 행위가 나가 가장 즐겨 찾는 형태가 됬다.

하드한 섹스를 만끽하는 사람이 보면 이런 부드러운 도착증 플레이가 뭐가 즐거우나?

라며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성 행위에 의한 흥분의 정도는 반드시 플레이의 하드함에 비례하지 않는다.

망상의 방법에 따라서는, 부드러운 플레이에서도 마음은 흥분한다.

원래 팬티 페티쉬 취향이 강했던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제약을 부과함으로써 흥분은 높아지고이었다.

아무리 매력 넘치는 여성이 상대라도 아무 여과 없이 성 행위를 거듭해 가면,

언젠가는 질려 버릴것이며, 비록 하드한 플레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만성적인 성적 기아 상태에 놓여 있으므로, 권태기라는 말과 무관이었다.

아내와 행위의 훌륭함을 알고 있으므로,

그것을 겪고 있는 불륜 상대의 쾌감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강렬한 질투와 선망이 한층 더 쾌감으로 승화하고 지칠 줄을 모른다.

아내의 태도는 이제 단순한 연기의 경지를 넘었다.

남의 여자가 되어 앉아 있었다.

불륜 상대가 그렇게 세뇌한 것이고, 그렇게 세뇌하는 것이 아내의 희망이기도 한 것 같다.

만약 내가 아내와 관계를 가지려면 강간이라는 강경 수단을 이용하는 경우외에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만큼 나와의 성 행위는 말로도 태도도 분명히 거절하다.

그나마 성적 도발에는 열심이고, 정신적 애정이 줄어든 것 같게도 안 보여.

뭐라고도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부부 관계이다.

어쨌든 내가 원하는 형태에는 틀림 없다.

신기하게 생각하면서도 아내의 진의를 따지지 않고 그저 네토라레 마조의 길을 매진했다.

팬티 노출, 자위 행위와 함께 아내에 대한 치한 행위도 즐거움의 하나가되었다.

아내가 거실 소파에서 졸았을 때 등이 기회다.

숨소리를 확인하고 잠이 들었다고 판단하자 나는 아내의 신체에 손가락을 뻗는다.

타깃은 물론 가슴과 사타구니.

자극을 가하면 눈을 뜨기 때문에 문지르지는 못한다.

브래지어 위에서 가슴을 손바닥으로 덮거나,

스커트 위에서 고간의 커브에 따라 손가락 끝을 살짝 터치 할 뿐이다.

단지 그것 뿐만의 행위에서도 나는 심하게 발기해 버린다.

마치 낯선 타인을 성추행하는 것 같은, 이상한 흥분에 사로잡히다.

그냥 자위하고 싶어지지만, 생각해 보면 역시 즐거움은 나중에…라고 생각되어

발기된 자지를 열심히 달래기 일쑤였다.

겉으론 평온해도 속으로는 심한 질투가 성난듯 일어나는 나날들…

그 심정을 반영하듯 소프트하면서고 관능적듯한 페티쉬 플레이에 잠긴 날이 계속되는어

몇 달이 지났을 무렵.

아내가 엉뚱한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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